찬바람이 부는 2022년 10월24일 오전 8시, 빵이 그려진 운송트럭 너머로 가방을 둘러멘 이들이 하나둘 걸어 나왔다. 경기도 평택의 에스피엘(SPL) 공장 직원들이다. 에스피씨(SPC)그룹 계열사인 SPL은 파리바게뜨 등에 빵 반죽(생지)과 샌드위치를 납품한다. 12시간이나 되는 긴 밤을 공장에서 보낸 몸들이 저마다 어깨를 옹송그리며 종종걸음을 친다. 한 사람이 멀어지는 동료의 어깨를 툭툭 치고 손을 흔든다. “내일 봐.” “너도.”
이들의 동료였던 23살 박아무개씨도 10월15일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함께했을 아침 퇴근 풍경이다. SPL 제빵공장 노동자들은 주야 맞교대로 하루 12시간씩 일한다. 박씨의 죽음 이후 SPL의 위험한 작업환경과 과도한 노동강도, 사람보다 생산을 우선시하는 회사 쪽 태도 등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겨레21>은 박씨 동료들의 증언,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노조) SPL지회의 설명, ‘SPL 산재사망사고 대책회의’ 소속 권영국 변호사가 공개한 ‘SPL 평택공장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법률 검토 의견서’,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강동석 SPL 대표이사의 발언 등을 종합해 박씨가 숨진 사고 전후 상황을 재구성했다. 박씨의 죽음은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예견된 ‘구조적 사고’였다.
10월15일 오전 6시께. 해가 아직 뜨지 않아 공장 바깥은 컴컴했다. 전날 저녁 8시부터 시작된 12시간 야간 근무의 끝자락이었다. 2020년 1월 입사한 박씨가 이날 맡은 업무는 ‘와사비 게살 샌드위치’에 넣을 소스 만들기. 야간 근무자가 샌드위치에 넣을 속재료를 만들어두면 아침 8시부터 일하는 주간 근무자가 속재료를 빵에 집어넣어 샌드위치를 완성한다.
박씨 앞에는 가슴께 높이(1.05m)의 커다란 원통형 혼합기계가 있었다. 통 안에는 마요네즈에 고추냉이(와사비) 가루 등을 버무린 ‘와사비 마요 소스’를 섞는 용도의 날개(페달) 두 개가 규칙적으로 뱅글뱅글 돌아갔다. 덮개는 덮여 있지 않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소스가 섞이는 모습이 바로 보였다.
혼합기는 빵 속재료를 섞는 용도로 쓰인다. 슈크림·치즈 등 빵 속재료 관련 공정이 있는 1층에 대부분의 혼합기가 있었지만, 샌드위치 주문량이 늘면서 3층에도 여러 대가 추가로 놓였다. 박씨가 맡은 업무는 와사비 가루와 마요네즈 등을 차례로 넣으며 덩어리가 생기지 않게 섞는 것이었다. 각 재료가 들어 있는 15㎏ 무게의 알루미늄 캔(일명 ‘바트’)을 혼합기에 하나씩 붓는 과정을 반복한다. 작업지침상 둘이서 해야 하는 일이지만, 박씨와 한 조인 작업반장은 다른 작업 등의 이유로 9분가량 자리를 비웠다.
‘오늘 치킨 500봉 깔 예정, 난 이제 죽었다.’ 박씨가 사고가 일어나기 3시간 전에 공장 동료인 남자친구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이다. 박씨가 와사비 게살 샌드위치뿐만 아니라 치킨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속재료도 함께 준비했다는 뜻이다. 박씨가 일하는 냉장 샌드위치 공정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모두 200여 명인데, 이 가운데 속재료를 만드는 야간 근무자는 10여 명이다. 이마저도 대부분 재료 손질 등에 투입돼, 박씨가 맡은 배합 공정의 배치 인원은 2명뿐이었다.
오전 6시15분, 기계 소리가 이상하다고 느낀 작업반장이 박씨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모습은 “물구나무선 것처럼 하늘을 향한” 박씨의 두 다리였다. 박씨의 상반신은 혼합기 안에 가득 찬 고추냉이 소스에 잠겨 있었다. 작업반장이 소리쳐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달려간 한 노동자가 기계의 비상멈춤스위치(동력차단장치)를 눌렀다. “남자 3명이 (박씨의 몸을) 당겼는데도 회전날개에 끼여 빠지지 않았다. 숨이라도 쉬게 할 생각으로 소스를 정신없이 퍼냈다. 사방으로 튄 소스로 현장이 엉망이었다.”(‘SPL 평택공장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법률 검토 의견서’의 현장 노동자 증언)
6시17분, 공장 안에 있던 몇몇 직원이 119가 아닌 회사 사무실로 먼저 전화를 걸었다. “전에 직원이 쓰러졌을 때 동료가 (회사 보고가 아니라) 119 신고를 먼저 했다가 난리가 난 적이 있었”(지윤선 SPL지회 회계 감사)다. SPL은 생산직 직원이 공장 안에 휴대전화를 갖고 들어가는 것을 금지한다.
6시26분, 사무실에서 상황을 전달받은 야간 현장관리자가 119에 전화를 걸었다. 박씨가 발견된 지 11분이 지난 시간이었다. 119 구급차량은 6시43분께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박씨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오전 8시40분께 운구차량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결과 질식사라는 소견을 구두로 전달했다. 박씨의 오른팔은 골절돼 있었다. 폐 등에서는 이물질이 나왔다. 노조는 혼합기 회전날개에 오른팔이 끼면서 몸이 빨려 들어갔고 기계 안에 가득 찬 소스에 질식해 숨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앞치마가 끼었을 거라는 추정도 있었지만, 앞치마 길이가 무릎 아래여서 그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강동석 SPL 대표이사는 10월24일 증인으로 참석한 국회 종합감사에서 “작업 규정상 덮개를 덮고 작업해야 하는데 (재해자인 박씨가) 덮개를 덮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고 말했다. 작업자가 작업 규정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사고라는 취지다.
그러나 이후 밝혀진 사고 현장의 여러 정황은 이번 사고가 단순한 개인 과실이 아니라 오래 누적된 구조적 관행에서 비롯됐음을 보여준다.
먼저 SPL이 사용하는 혼합기는 덮개를 열면 자동으로 멈추도록 설계돼 있다. 날개(페달)가 돌아갈 때 작업자의 몸이나 옷 등이 말려 들어가면 ‘끼임’ 재해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혼합기에 덮개를 설치하거나 작업자와 충분한 안전거리를 유지하도록 조처해야 한다고 고용노동부는 위험기계·기구 자율안전확인 고시에 명시했다. 사고가 일어난 혼합기의 ‘작업 원칙’도 덮개를 닫은 뒤 가동하고, 재료를 추가하거나 내부를 확인할 때는 기계 가동을 멈춘 뒤 덮개를 열어야 한다.
하지만 하루에 정해진 생산량을 채우려면 이런 작업 원칙은 사실상 지키기 어렵다. “크로켓 속재료를 만든다고 치면 야간 12시간 근무 안에 생산해야 하는 목표량이 빵 10만 개예요. 주간 근무자가 오기 전까지 속재료를 다 만들어야 하는데 매번 덮개를 여닫는 식으로 하면 ‘일량’(회사가 요구하는 일일 생산량)을 맞출 수가 없어요. 당근이랑 양파랑 골고루 섞으려면 한꺼번에 와르르 넣으면 안 되고 조금씩 나눠서 섞어야 하는데 그때마다 덮개 여닫을 시간이 없다는 말이에요.” 속재료 만드는 공정에서 10년가량 일했던 전직 SPL 노동자 ㄱ씨의 말이다.
강규형 화섬노조 SPL 지회장도 “샌드위치 주문량이 매일 낮에 확정되는데 회사가 일량 목표를 4만 개로 잡았다가 그날 6만 개 주문이 들어오면 난리 난다. 1분에 샌드위치가 몇 개 나오는지 스톱워치까지 켜서 일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사고가 일어난 혼합기의 날개는 1분에 약 14바퀴를 돌았다. 속도가 아주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점성이 높은 소스라 회전날개만으로 잘 섞이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땐 작업자들이 종종 기계에 손을 넣어 재료를 섞었다. “혼합기가 돌아가도 재료가 가장자리로 밀리거나 뭉치는 일이 많아요. 그러면 저희가 회전날개 도는 박자에 맞춰서 손으로 싹, 하고 (중앙으로 재료를) 밀죠. 그러다가 박자를 한 번 놓치면 쇠로 된 날개가 손을 엄청난 힘으로 밀어요. 그때 (날개가 도는 방향상) 전진만 되고 후진은 안 되니까 상체가 그대로 빨려 들어가는 거예요.” 2016년까지 속재료 만드는 공정에서 일했던 SPL 노동자 ㄴ씨가 말했다.
이런 이유로 SPL 속재료 제조 공정에서는 몇 년 전부터 아예 덮개를 해체한 채 작업이 이뤄졌다. 고용노동부에서 사용을 중지시킨 평택공장 혼합기 9대 가운데 7대에는 아예 덮개가 없었다.
현재순 화섬노조 노동안전실장은 “덮개를 열고 작업 공정을 운영할 거면 거기에 맞춰서 안전장치를 개발하든지, 그게 아니면 (그 공정을 담당하는) 사람을 더 붙이든지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사고시 마지막 보루인 비상멈춤스위치도 제 기능을 못했다. 사고가 일어난 혼합기의 비상멈춤스위치는 기계 본체가 아니라 작업자 눈높이에 있는, 별도의 동력장치에 달려 있었다. 작업자 몸이 실수로 기계 안에 빨려 들어가면 혼자서는 손이 닿기 어려운 위치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상 비상멈춤스위치는 ‘작업자가 작업 위치를 이동하지 않고도 조작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3년간 속재료 공정에서 일했던 노동자 ㄴ씨는 “차라리 혼합기 본체에 스위치를 달아놨으면 눌러볼 수 있었을 것”이라며 “2인1조도 실상은 한 명이 잠깐 화장실을 가거나 서로 다른 일을 나눠 맡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정말 회사가 생산량과 안전을 둘 다 잡으려면 3인1조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박씨의 몸이 혼합기에 빨려 들어간 그 순간에 작업반장은 옆에 있지 않았고, 비상멈춤스위치로 기계를 멈추게 할 수도 없었다.
박씨가 속한 공정의 위험성을 회사 쪽은 몰랐을까.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확보한 SPL의 최근 산재 현황 자료를 보면, 2017년부터 2022년 9월까지 총 37명(박씨 제외)이 산재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15명(40.5%)이 박씨처럼 기계에 몸이 끼이는 ‘끼임’ 재해자였다. 생산설비 가동을 중단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하다가 몸이 끼이는 사고가 특히 잦았다. 사망사고가 일어나기 일주일 전인 10월7일에도 평택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가동 중인 컨베이어벨트를 청소하다 손이 끼이는 사고가 있었다.
위험한 기계를 켜놓은 채 일하는 경우가 왜 많을까. 교반 공정을 3년가량 경험한 직원 ㄴ씨의 말에서 그 배경을 유추해볼 수 있다. “우리 공장은 서면 큰일이 나요. 벨트에 반죽 꼈다고 기계 세우면 관리자들이 쫓아와서 ‘왜 세우냐’ 하고 소리를 막 지릅니다. 그걸 몇 번 겪으면 사람들이 웬만하면 라인 안 세워요.”
노조 쪽은 공정에 대한 안전 교육도 거의 받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아침마다 의례적으로 안전 교육을 이수했다는 서명만 했다는 것이다. 강규형 지회장은 “기계 사용법은 구두로 선임자가 알려주는 정도였고 작업 매뉴얼은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SPL 쪽은 수사받고 있다는 이유로 안전 교육 여부 등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10월15일 오전 9시14분, 고용노동부는 사망사고가 일어난 3층의 혼합기 1대와 1층의 유사 혼합기 6대에 작업중지명령을 내렸다. 기계를 못 쓰게 되자 회사는 사고 현장을 흰 천으로 가리고 직원들에게 수작업으로 속재료를 만들게 했다. 다음날 오전 6시께 소식을 들은 강규형 지회장이 공장으로 달려가 현장을 영상으로 찍었다. 이후 영상이 언론에 공개됐고 고용노동부는 뒤늦게 방호장치가 설치된 혼합기 2대에 작업중지명령을 추가로 내렸다.
회사 쪽은 작업중지명령이 내려지자 속재료를 다른 공장에서 생산하겠다며 대구 SPC삼립공장에 직원들을 파견 보내기도 했다. SPL은 파리크라상이 100% 지분을 가진 SPC그룹의 계열사다. 파리크라상은 허영인 SPC그룹 회장(63.5%) 등 오너 일가가 100% 지분을 가진 사실상의 지주회사 격이다. SPC그룹이 사고 이후 샌드위치 등 일부 품목 판매를 중단했다면 SPL이 무리하게 공장을 돌리지 않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SPL 쪽은 공장 가동이 SPC그룹이 아닌 SPL만의 자체적인 결정이었다는 입장이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10월21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안전경영 시스템 강화를 위해 1천억원 규모의 설비·인력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현재순 화섬노조 노동안전실장은 “이 투자금은 혼합기 등 설비 확충과 인력 충원 등에 쓰여야 한다”며 “안전·환경 분야 투자계획에 대해 시민단체와 시의회 등이 합동검증위원회를 꾸려 매년 이행 점검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7년부터 5년간 배합·혼합기 관련 산재로 숨지거나 다친 노동자는 206명에 달한다. 2022년 5월 경북 청도 고춧가루 공장에서 노동자가 이물질을 제거하려고 기계에 손을 넣었다가 빨려 들어가 숨졌고, 9월에도 식품 혼합기를 사용하던 노동자가 손으로 재료를 넣다가 몸이 기울면서 회전날개에 끼여 숨졌다. 박미진 원진직업병관리재단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생산과 안전의 충돌 지점을 어떻게 해소할지 사업주 의지에만 기댈 수 없다. 정부가 현장에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이유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그에 맞는 현실적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평택=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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