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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초대 환경부 장관으로 내정된 박은경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불법 농지 취득에 대해 추궁하자 이렇게 해명했습니다. 13년이 지난 지금, ‘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때보다 늘어난 듯합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투기 의혹으로 시작된 폭풍우가 이곳저곳에 비바람을 뿌리며 그들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구성한 ‘부동산 투기사범 특별수사단’은 LH 직원으로 출발해 지방자치단체와 고위직 공무원, 국회의원 등까지 수사를 확대했습니다. 2021년 4월19일 현재 부동산 투기 관련 대상은 198건·868명이며, 신원별로는 지방공무원 109명, 국가공무원 48명, LH 직원 45명, 지방의원 40명, 지방자치단체장 11명, 국회의원 5명, 고위 공직자 4명입니다.
경기도 반부패조사단은 4월26일 기자회견을 열고 “농지법 위반 사실이 확인된 (경기도 내) 농업법인 26곳을 적발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 농업법인은 농지 6만4601㎡를 사들인 뒤 짧은 시간에 필지를 쪼개 634명에게 되팔아 1397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농지법에 따르면 농업법인은 영농 목적으로만 1천㎡ 이상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데, 이들은 농사짓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겨레21>은 투기장이 된 농지의 현주소를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2017년 5월부터 2021년 3월까지 경기도 전체 토지거래 등기정보를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서 받아 분석했습니다. 이 자료에서 매수인의 거주지 정보를 시·군·구 단위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농지(논·밭·과수원)를 사들인 매수인의 거주지를 알 수 있는 거래는 16만4145건이었는데, 농지의 시·군과 매수인의 거주 시·군이 일치하는 경우는 36%(5만8506건)에 그쳤습니다. 나머지 64%(10만5639건)는 농지와 매수인의 시·군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농지 거래 10건 중 6건은 외지인이 했다는 의미입니다. 헌법과 법률엔 농지는 농사짓는 사람만 소유할 수 있다고 적혔지만, 현실에서 땅주인과 농민이 다른 경우가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경기도 중에서도 농지 거래가 가장 활발하고 외지인 매수 비율(84%)이 가장 높은 평택시 토지거래 등기정보를 좀더 살피고, 그곳에서 농민들을 만나봤습니다. 지난 3년10개월간 평택 농지 2만8162건이 거래됐는데, 평택시민이 매수자인 경우는 16%(4443건)에 그쳤습니다. 서울시민의 거래가 29%(8111건)로 오히려 2배가량 많았습니다. 땅을 사들이는 이유는 땅값 상승 때문으로 짐작됩니다. 외지인 매수 비율이 97%인 평택시 현덕면 황산리의 경우 토지 평균가격(개별공시지가)이 2000년 ㎡당 1만1492원에서 2020년 8만840만원으로 20년간 7배 넘게 뛰었습니다. 서해선 안중역 건설(2022년 완공 예정) 등 몇 년 새 현덕면 주변에 불어닥친 개발 바람의 영향입니다.
황산리에서 60년간 산 박아무개(82)씨가 말합니다. “(우리는) 좀 비싸게 주면 다 팔았지. 애들 가르치라니께. 시방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외지인)이 앞을 내다보고 산 거 같아. 철도 같은 거 우리는 생각이나 했어요? 꿈도 못 꿨지.” 옆마을 도대리에 사는 ㄴ씨는 임대료 내기도 벅차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농사짓고 남는 거로 논 샀어요. 지금은 농민이 땅 산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야.” 이제 이곳 주민은 대부분 소작농입니다. 일제강점기에 땅주인 대부분이 일본인과 서울·수원 사람이었던 것처럼, 1950년 농지개혁 이전으로 돌아간 듯합니다.
‘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점령한 그 땅은 70년 뒤 어떤 모습이 될까요.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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