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준호 기자
“자, 이제부터 추첨에 들어가겠습니다.” 기사를 위해 어투를 바꾼 것이 아닙니다. 한가위 퀴즈큰잔치 출제위원장 박태우 기자는 정말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계처럼, 공정하고 차갑게. 추첨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회의실로 향하던 편집장 발걸음이 머쓱해졌습니다. “이번에는 제 자리에서 합니다, 컴퓨터로.”(관련 기사는 40~45쪽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올봄 뉴스룸에 처음 들어서던 날, 황톳빛 묵직한 함이 눈에 띄었습니다. ‘ 한가위 퀴즈 대잔치 추첨함’이라는 종이가 붙었는데, 그 쓰임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긴장감 넘치는 음악이 깔리고, 누군가 조마조마해하며 저 함에 손을 넣고, 한 사람 한 사람 당첨 독자가 발표될 때마다 박수가 쏟아지고, 그런 풍경일까.
컴퓨터 추첨은 상상과 전혀 달리 클릭과 클릭으로 이어졌지만, 공정성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엑셀로 정리한 엽서 리스트에, 0~1 사이 난수를 무작위로 부여한 뒤 작은 순서대로 늘어세우고….” 차분한 저음으로 출제위원장이 설명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증거 영상으로 남겼습니다. 지켜보던 편집장은 ‘기계와 공정성’을 기삿거리로 슬쩍 던져봅니다. 당첨자가 발표되고 뉴스룸에 한바탕 웃음이 번집니다. 쓸모 잃은 손때 묻은 황톳빛 추첨함만 그 자리에서 황망합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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