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정국을 대립과 갈등하는 힘의 세 축으로 압축한다면? 하나는 청와대와 여당, 다른 하나는 자유한국당, 그리고 검찰이다. 대표 인물로 표현하자면 문재인 대통령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그리고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이 세 문장에서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이 확인된다. 셋 다 법조인이다. 셋 다 조국 법무부 장관을 중심에 놓고서 각각 다른 지점에 서 있다. 그를 대통령은 임명했고, 황 대표는 반대했고, 검찰총장은 수사 중이다. 황 대표와 윤 총장, 두 사람은 검찰 출신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국의 방향타를 쥔 인물 셋 중 둘이 검찰청 출신이라니.
황 대표는 공안검사를 지낸 뒤 박근혜 정부 때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까지 지냈다. 윤 총장은 특수부 검사를 지내면서 이명박 정부 때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를 하다 좌천됐으나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면서 이름을 날렸다. 두 사람의 과거 삶의 궤적은 너무 다르다. 현재도 한 사람은 집권 세력의 신뢰를 받아 검찰총장에 임명됐고, 다른 한 사람은 집권 세력에 맞서 삭발 투쟁 중이다. 하지만 그 차이는 검찰에서 상쇄된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과정에서 새삼 한국 사회의 여러 모순과 문제가 드러났다. 교육 세습, 불평등, 언론 윤리, ‘검찰의 정치화’….
이번에 검찰이 나서면서 대한민국이 검찰공화국이란 사실을 다시 한번 환기했다. 언론이 의혹을 제기하고 정치권이 편을 나눠 싸우자, 갑자기 검찰이 자신의 논리와 판단과 무기를 들고서 뛰어들었다. 인사청문회를 거쳐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과 자질 등을 검증하는 단계에서 수사권을 지닌 검찰이 법적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놀림감이 되기 일쑤이지만, 정치는 무시되고 실종됐다. 수사를 통해 위법 사실이 드러나면 조 장관의 배우자뿐만 아니라 조 장관마저 기소될 수 있다. 그럴 만하면 기소하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검찰권 행사의 사안과 시기가 꺼림칙하다. 앞으로 불법 의혹이 있는 공직 후보자를 매번 검증 국면에서 수사할 것인가? 공직 후보자에게 엄격한 도덕적 법적 잣대가 적용돼야 하지만, 수사로 모두 해결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행여 그러려면 검찰총장 후보자부터 의혹이 제기되면 수사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이번 수사는 너무 예외적, 너무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보는 시각마다 다를 수 있으나, 거악의 척결이나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을 수사하는 것도 아닌데 특수부를 중심으로 엄청난 수사단을 꾸렸다. 그런 검찰의 수사 행태를 놓고서 청와대와 여당, 검찰이 다투는 모습은 우습기까지 하다. 언뜻 봐서는 견제와 균형이 잘 작동하는 민주주의적 권력 운용처럼 보이지만, 되레 민주주의의 오작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검찰권의 과잉 행사로밖에 안 보인다.
노회찬 전 의원이 수사를 받다가 세상을 떠난 뒤 지난해 7월 만리재에서 ‘검찰공화국의 비극’이란 제목으로 글을 썼다. “대한민국처럼 비선출 집단인 검찰에 힘이 쏠린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비정상적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잘 다루면 된다는 식의 접근으로는 ‘검찰공화국’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검찰의 권한은 더욱 약화되고 분산돼야 한다. 이들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훨씬 강화돼야 한다.”
검찰총장이 윤석열이냐 문무일이냐 아니면 한상대냐 김준규냐의 문제가 아니다. 선의를 가진 총장의 출현을 기대할 게 아니다. 민주주의 진전에 따라 권력기관들의 권한이 분산되고 투명화되고 제한되는 과정을 검찰도 밟으면 된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특별검사의 상설화, 검사 동일체 원칙의 상명하복 문화 파괴 등 숱한 검찰 개혁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실질적으로 진전된 것은 하나도 없다. 정권이 바뀔 뿐 검찰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이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검찰 개혁은 요원해 보인다. 안타까운 건 이번에도 검찰이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탄핵으로 나갔다 탄핵 앞에 다시 선 최상목…“국정 안정 최선”
물에 빠진 늙은 개를 건져주자 벌어진 일 [아침햇발]
윤석열 “2번, 3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니까 끌어내”…국회 장악 지시
“백령도 통째 날아갈 뻔…권력 지키려 목숨을 수단처럼 쓰다니”
김건희의 종묘 무단 차담회, 국가유산청이 사과문 냈다
“이재명·우원식·한동훈부터 체포하라” 계엄의 밤 방첩사 단톡방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안 가결…헌정사상 처음
국힘은 김용현 대변특위?…“공소사실은 픽션” 김 변호인단 입장문 공유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키운 한덕수, 대체 왜 그랬나
조갑제 “윤석열 탄핵 사유, 박근혜의 만배…세상이 만만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