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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난민의 간극

편집장의 편지
등록 2019-06-25 10:14 수정 2020-05-03 04:29

고등학생 때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뜻도 잘 모르는 샹송을 따라 불렀고, 영화 속 도도하면서도 세련된 파리를 동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생이 되어선 홍세화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톨레랑스를 만났다. 파리지앵은 선진 시민사회의 모습이었다.

2005년 그리 춥지 않던 초겨울, 처음 가본 파리에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하필 그때 톨레랑스가 시험받고 있었다. 파리 교외(방리유) 소요 사태로 3천여 명이 체포되고 차 9천여 대가 불에 탔다. 차별에 저항해 소요를 일으킨 북아프리카계 이민자(마그레브) 2세를 향한 파리 시민들의 시선은 한겨울만큼 차가웠다. 파리지앵과 마그레브의 간극은 컸다. 내가 생각했던 파리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게, 당시 프랑스 내무부 장관이던 니콜라 사르코지는 방리유 청년들을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 했다. 정치적으로는 영리한 발언이었다. 지지율을 끌어올린 뒤 우파를 결속한 그는 1년 반 뒤 프랑스 대통령이 되었다.

6월19일 기사 마감을 하면서 간식을 먹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얘기가 나왔다. 그가 부산상공회의소 조찬간담회에서 한 발언이 화제였다. “외국인은 (우리나라에) 기여한 바가 없다…. 산술적으로 (내국인과 외국인이) 똑같이 임금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차별이자 혐오라는 비판이 커지자 다음날 황 대표는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을 바로잡자는 선의였다면서 “어처구니가 없다”고 눙쳤다. 한국당의 막말 시리즈 후속편 격인 그의 발언은 경제가 어려워진 틈을 타 정치적으로는 결코 어리석지 않은, 표를 얻기 위한 계산된 말처럼 들린다. 사르코지를 떠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황 대표가 말하는 외국인은 백인이나 선진국에서 온 이들을 뺀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과 난민을 뜻한다. 외국인,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약자인 난민은 경제가 어려운 때일수록 일자리를 빼앗거나 범죄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공동체의 적으로 손쉽게 지목된다. 정치적, 종교적 의도 등과 결합돼 난민 혐오는 더욱 증폭된다. 그렇게 2005년 파리 방리유 사태에서 파리지앵과 마그레브의 간극이, 2018년 제주도 예멘 사태에서 국민과 난민의 간극이 시공간을 초월해 드러난다.

지난해 이맘때 이 ‘#난민과 함께’ 기획연재를 시작하면서 전정윤 기자는 이렇게 썼다. “세월을 거슬러 2001년 첫 난민을 받아들인 지 18년, 1994년 난민 신청이 처음 제기되고 24년, 1992년 유엔 난민협약과 난민의정서에 가입한 지도 26년이 흘렀다. 한국 난민 제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국제 기준을 좇아 진일보했지만, ‘국민과 난민 사이’는 오히려 벌어지고 ‘제도와 현실의 간극’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 6월20일 제18회 ‘세계 난민의 날’ 전후로 전개되는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는 ‘혐오’라는 프리즘으로 그 간극을 여과 없이 드러낸 일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2019년 다시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았다. 1년이란 시간은 결코 충분하지 않겠지만, 여전히 국민과 난민, 제도와 현실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1년 넘게 의 기획연재를 이끌어온 이재호 기자는 ‘#난민과 함께’ ‘#난민과 함께-나는 난민이다’라는 문패 아래 국내 어느 언론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기사를 써냈다. ‘난민 차노끄난’(제1214호), ‘우리가 살 곳은 어디인가요?’(제1218호), ‘불허된 가족’(제1236호), ‘줌머 난민 2세 차크마 강설아’(제1264호) 그리고 ‘우리도 난민이었다’(제1268호) 등 다섯 번의 표지이야기와 다 열거할 수조차 없는 숱한 기사들. 이를 통해 이재호 기자는 난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난민을 바라보는 우리의 비뚤어진 시각을 조금이나마 교정해 ‘그 간극’을 줄였는지 모른다.

애초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4년을 보낸 배우 정우성과 난민으로서 20년 넘게 프랑스에서 산 지식인 홍세화의 이번호 대담을 끝으로 기획연재 문패를 떼려 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재호 기자가 에 있는 동안은 문패를 뗄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그 간극이 사라져 난민이라는 이유로 더는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올 때까지 보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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