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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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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서의 눈물

등록 2019-04-17 11:00 수정 2020-05-03 04:29

3월20일 아침, 무작정 서울 용산역으로 갔다. 가장 빨리 출발하는 목포행 KTX에 올랐다. 두두둑. 굵은 빗방울이 차창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기차를 탔다고 하면 만나주지 않을까.’ 전남 목포 연산동에 사는 서진(가명)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목포 가는 길인데 잠깐 인사만 할게요.” 역시 단호했다. “어제 말씀드렸는데요. 집에서 만나는 건 불편해서요. 혼자라 아이를 데리고 나갈 수도 없고요.” 서진 엄마는 또다시 만남을 거절했다. 결국 목포행 기차 통로에 서서 한참 전화로 인터뷰했다. 서진 엄마는 올해 1월 출산 전후로 전남도와 목포시에서 받았던 복지 혜택과 바람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2시간40분 만에 목포역에 내렸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우산이 없어 장대비를 맞으니 추웠다. 가사도 잘 모르는 노래 이 괜히 떠올랐다. 그곳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백반(반찬이 열 가지 넘는 7천원짜리 백반으로 위로받았다!)을 얻어먹고는 서진이네가 사는 아파트 근처, 목포시청, 목포보건소, 동주민센터를 돌고 서울행 기차를 탔다.

인터뷰 약속도 없이 기차부터 탔던 것은 목포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지방자치단체의 ‘현금 복지’에 관한 기획과 취재를 하는 한 달 중 ‘목포’라는 지역을 정하는 데만 보름이 걸렸다. 지역 간 복지 격차와 그로 인한 주민의 삶의 질 차이를 비교해보고 싶었는데, 재정 여력이 넉넉한 동네는 예상대로 단번에 ‘서울시 강남구’로 뽑혔다. 1인당 개인소득이 가장 높은 서울시 중에서도 고소득 가구 비중이 가장 큰 지역이었다.

반면 1인당 개인소득이 가장 낮은 전남 중에서도 가장 소득이 적은 지역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는 없었다. 통계청 통계는 물론 지자체·민간 통계도 없었다. 통계청 관계자는 시·군·구 소득 통계가 없는 이유로 “지역 간 위화감을 조성”해서라고 설명했다. 전남도청에 전화했더니 “나주가 소득이 가장 낮을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대답을 좇아 사나흘을 취재했는데 결과적으로 틀린 답이었다. 도청의 다른 담당자에 물어보니 “개인소득 통계는 없지만 1인당 지역내총생산이 가장 적은 지역은 목포”라고 했다. 강남에서 태어난 은수와 목포에서 태어난 서진이가 평생 받게 될 복지를 생애주기별로 비교하게 된 이유다.

기사 마감 직전, 독자들이 모인 단체대화방에서는 이런 질문이 나왔다. “왜 굳이 목포로 설정하셨는지? 해당 지역 반발이 있지 않을까요? 저라면 엄청 싫어할 거 같습니다.”

독자들의 질문을 곱씹었다. 내가 사는 곳이 한국의 최고 부자들이 모인 강남과 비교되는 것이 기분 좋을 리 없다. 그런데 자꾸 비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격차가 도드라져야 정부에서 지자체에 복지 재정을 훨씬 더 많이 줄 계기가 생기고, 그 돈을 내야 할 시민의 생각도 달라질 테니. 소설 형식의 기사에서 서진이와 은수가 평생 누리게 될 복지의 양과 질은 꽤 차이가 났지만, 지금 우리의 노력에 따라 결론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수많은 서진이와 은수의 삶도.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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