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비롯해 다수의 사람은 자신을 위한 소비를 제외하곤 소비에 인색합니다. 그렇지만 지키고 싶은 가치에 대해선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한겨레(21)도 그렇고, 진보도 그렇고, 조금 더 뻔뻔해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조금 더 뻔뻔해지라니? 오죽 답답했으면, ㄱ독자가 다시 전자우편을 보냈다. 첫 편지는 그 이틀 전에 뜬금없이 날아왔다.
“후원금 제도 도입은 어떨까요? 진보 진영의 언론을 키우기 위해 저도 소액이지만 (언론사) ㅇ과 ㅁ에 후원하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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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제안이 고마웠지만, 머뭇거리면서 답했다. “후원금 제도 도입은 정말 감사하고 고마운 생각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먼저 말을 꺼내기 너무 조심스럽습니다.”
11월9일 ‘2018 #독자와 함께’ 행사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왔다. ㅈ독자가 사전 질문을 신청해 부수 확장 계획을 물으면서 현재 4천원인 잡지값을 5천원으로 올려도 기꺼이 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유는 간단했다. “충성 독자”여서. 사실상 후원이었다. 고마워서 나도 모르게 행사 중 ㅈ독자에게 박수를 보내드리길 부탁했다. 행사 마지막 순서 때 테이블을 마주한 다른 독자들도, 면전에서 야박하게 굴 수 없어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후원금 제도에 호의적이었다.
팔불출 같지만 이 국내 최고 매체 가운데 하나라는 점은 자부하고 싶다. 올해 들어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한국기자상(‘국가정보원 비선 민간여론 조작 조직 실체’), 이달의 기자상 2회(‘경찰 레드펜 작전 관여 및 댓글 조작 의혹’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 국제앰네스티 언론상(#난민과 함께),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이달의 좋은 보도상 4회(‘방송사들의 상품권 페이 실태’ ‘천안함 생존장병’ ‘폭염’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 여성가족부의 양성평등미디어 최우수상(‘안희정 1심 무죄 재판 기록 입수’) 등을 탔다.
주로 기자들이 길게는 서너 달 매달린 탐사, 심층 기획 기사다. 상을 신청하지 않거나 타지 않은 기사들 가운데서도 ‘청소년 자해 3부작’ ‘대한한공 여승무원 산재’ ‘슬픈 돼지의 경고’ 등 좋은 보도는 손으로 꼽기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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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좋은 매체가 지속가능성을 보장받는 건 아니다. 은 그런 현실을 독자에게 알리고 호소하지 못했다. 명분 부족, 아니면 용기의 결여? 뭐가 부족해서 그런지 알 수 없으나 ‘체면’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의 형편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더욱더 적은 사람이 돈을 내고 있다. 광고 수입도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이는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 신문 의 미국 법인이 누리집에 ‘을 후원해달라’면서 알린 내용의 일부다. 구독과 광고에 의존하는 의 현실도 낫지 않다. 은 후원제로 숨통을 텄다. 후원은 1회, 월간, 연간 방식으로 1달러부터 가능하지만, 한도(약 290만원) 또한 있다. 소득공제는 안 된다. 미국 법인은 2016년 9월부터 후원제를 시작했다. 전세계적으로 의 2017 회계연도에만 월 정기구독자와 후원자가 57만 명에 이른다. 이와 별도로 1회 순수 후원자만 해도 37만5천 명이다. 지난해 후원금이 포함된 디지털 부문의 매출이 처음으로 종이 신문 매출을 넘어설 만큼 후원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은 아직 관련 계정조차 없다. 후원금도 0원이다.
누리집에 들어가면 위쪽에 가디언 후원 안내 문구가 뜨고, 그 아래 ‘후원’이 있고 ‘구독’ 안내가 뒤따른다. 첫 화면 맨 아래엔 “은 편집권이 독립돼 있다”는 말로 시작해 “1달러 소액도 좋으니 을 후원해달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커다란 배너가 뜬다. ㄱ독자의 편지처럼 은 말한다. “만약 당신이 을 읽는다면 우리의 관점에 가치를 매기는 일이다. 그러면 후원자가 되어 우리의 미래가 더 탄탄하도록 도와달라.”
ㄱ씨는 후원의 가치를 이렇게 말했다. “밝은 세상을 만드는 데 힘써주면 된다.” 더는 머뭇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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