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신을 ‘멩겔레 삼촌’이라고 했지만 세상은 ‘죽음의 천사’라고 했다. 내과의사이자 유전학자인 요제프 멩겔레는 쌍둥이 연구로 악명을 떨쳤다. 눈 색깔의 변화를 보겠다며 눈에 화학물질을 집어넣거나, 한 아이를 발진티푸스에 감염시켜 다른 아이에게 수혈했다. 살아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들이었다. 심지어 마취제를 심장에 투여해 14쌍 쌍둥이가 하룻밤 새 숨지게도 했다. 나치 친위대 장교이기도 했던 그가 1944년 전후 아우슈비츠에서 벌인 짓의 일부일 뿐이다. 우성 유전인자를 증진하고 아리아 인종의 우수성을 뒷받침하려는 ‘과학적 연구’였다.
인체 실험을 한 나치 의사와 과학자 일부가 제2차 세계대전 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부쳐졌다. 스물세 명 가운데 열다섯 명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름을 숨긴 채 살던 멩겔레는 기소와 처벌을 면했다. 도피한 그는 1979년 브라질 바닷가에서 익사체로 발견됐다.
전범재판소는 판결과 함께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지켜야 할 10가지 원칙을 내놨다. 충분한 정보에 의한 동의, 동물실험 선행, 육체적·정신적 고통 배제 등이다. 이는 뒤에 뉘른베르크 강령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초의 연구윤리 강령이었다.
그 뒤 세계의사협회의 헬싱키 선언(1964년), 미국 하버드대의 헨리 비처 박사의 ‘비처 논문’(1966년), ‘생명의학 및 행동학 연구에서의 피험자 보호를 위한 국가위원회’의 벨몬트 보고서(1979년) 등으로 진화했다.
연구윤리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도 2004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이듬해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이 터졌다. 이후 연구윤리 논의는 봇물이 터졌지만 주로 논문 표절과 생명윤리에 집중됐다. 금전적 이해를 둘러싼 충돌 문제는 뒷전이었다. 그새 점점 더 많은 과학자가 연구소에서 발견한 연구 결과를 상업화하려고 회사를 세웠다. 많은 과학자가 ‘특허 대박’을 꿈꿨다. 그 무리 가운데 김진수 전 서울대 화학부 교수이자 기초과학연구원(IBS) 단장도 있다.
“요즘 세상은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듯합니다. 가져가지도 못할 황금이나 재물을 놓고 아옹다옹 목숨을 걸고 다툴 가치가 있을까요? 일생을 돈과 무관하게 살아온 내 눈에는 하나의 불가사의로 보일 뿐입니다.” 우리나라 화학계의 선구자로 1992년 타계한 이태규 박사가 세상과 과학계를 향해 토해낸 말이다. 그는 말에 그치지 않았다. 실제 정부가 주는 연구비를 다른 젊은 과학자들에게 양보하거나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재단의 연구비조차 쓰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연구에만 파묻혀 사는 선비 스타일’이었던 그는 김 전 교수보다 수십 년 앞서 서울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김 전 교수는 나랏돈으로 개발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특허를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 싼값에 넘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허 가치는 수천억원대에 이른다. 이 지난 9월 제1229호에서 이를 처음 보도했다. 경찰은 수사 중이고, 서울대는 감사 중이다. 서강대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터져 소송 중이다.
미국 과학한림원, 공학한림원, 의학한림원이 공동으로 펴낸 이란 책이 있다. 책의 부제는 ‘책임 있는 연구 수행을 위한 지침서’다. 번역을 감수한 노환진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는 ‘감수자의 글’에서 이렇게 썼다. “연구비 투자만 많이 하면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할 줄 알았다. 과학기술자들이 밤새워 일하면 우수한 논문이 나오는 줄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실을 자랑했고, 월화수목금금금을 존경했다. 선진국 연구실이 원칙을 지키며 느리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내심 우리가 곧 이길 것이라고 자신감을 가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중략)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그가 내린 답은 ‘윤리의 결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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