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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공화국의 비극

편집장의 편지
등록 2018-08-01 01:51 수정 2020-05-03 04:29

2003년 법원 기자실 간사였다. 출입기자들이 대개 비슷한 또래이긴 했지만 입사 3년차 기자에게 과한 감투였다. 당시 기자실로 출퇴근하는 기자들은 10명 안팎이었다. 서쪽으로 불과 수십m 떨어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출입기자들은 머릿수와 연차가 얼추 두세 배였다. 다시 더 서쪽으로 반포대로 건너에 있는 대검찰청에도 서울지방법원보다 연차가 훨씬 높은 기자들이 상주했다.

기자들이 많은 곳엔 권력이 집중돼 있다. 국회, 청와대, 삼성이 대표적이다. 거기에 검찰을 빼놓을 수 없다. 15년 전보다 지금 더 많은 기자가 검찰청을 출입한다. 출입기자 수로 보면 검찰은 법원보다 더 큰 권력이자 대한민국의 큰 권력이다.

기자가 많은 곳일수록 뉴스도 많다. 그러니 뉴스의 양도 출입처 권력의 크기와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뉴스의 양으로 봤을 때 검찰발 기사는 법원보다 몇 배 많다. 뉴스의 양으로 잰 검찰 권력 또한 법원보다 크다.

3년 전 미국에 머물면서 일간지 를 정기구독했다. 기억이 맞다면 1년 동안 검찰발 1면 톱 뉴스를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는 영 딴판이다. 검찰발 뉴스가 신문과 방송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때가 너무도 많다. 대한민국은 검찰발 뉴스로 홍수를 이룬다. 검찰은 언론사에 가장 중요한 출입처 가운데 하나다. 법원은 그 한참 아래다. 수사가 유무죄를 가리는 재판보다 앞서는, 어찌 보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왜그 더 도그’ 현상이 대한민국 사법 권력과 뉴스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23일 노회찬 의원이 스스로 숨을 거뒀다. 검찰 출신들로 진용을 짠 ‘드루킹 특별검사팀’의 수사를 받던 중이었다. 그가 유서에서 받았다고 고백한 4천만원이 죄가 되는지 아닌지 재판도 받기 전 수사 중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그가 목숨을 끊기 20일 전쯤 TV조선은 노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단독이라며 특검발로 보도했다. 이후 특검과 언론은 핑퐁게임을 하듯 주고받으면서 그의 혐의를 더욱 구체화했다. 조사조차 받지 않은 혐의는 어느새 기정사실이 되었다.

검찰발 ‘노회찬의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다. 최근엔 더욱 느는 추세란다. 법무부 자료를 보면 2004년부터 2014년까지 검찰 수사를 받다가 8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자릿수이던 자살자 수는 2011년부터 두 자릿수로 늘었다. 억울함 항변, 심리적 부담감, 수사 과정에서 겪은 모멸감 등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수사받던 많은 이가 생명까지 포기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데는 죽임의 사회적 맥락이 있다. 개인적 차원의 문제만이 아닌 구조적 메커니즘이 자리잡고 있다. 대한민국은 ‘검찰 과잉’ 사회다. 검찰로 안 될 땐 특별검사가 나선다. 이들의 수사 착수와 구속영장 발부는 사실상 유죄나 다름없이 해석되고 수용되는 현실이다. 유무죄를 가리는 법원은 뒷전이다. 지난 14년간 검찰 수사를 받다 죽음을 선택한 인사들 중엔 도지사, 전·현직 국회의원, 시장, 군수, 사장, 이사장, 교수 등이 있다. 전직 대통령조차 그 길을 피해가지 못했다. 검찰 수사가 몇 사람의 운명만이 아니라 정국의 향배를 좌우하는 경우도 숱했다.

대한민국처럼 비선출 집단인 검찰에 힘이 쏠린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비정상적이다. 200여 명이나 되는 출입기자와 그들이 쏟아내는 엄청난 양의 뉴스, 그 와중에 매년 십수 명씩 숨지는 나라는 어딘가 병리적 현상을 보인다고 할 수밖에 없다.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치르는 비용이라고 하기엔 너무 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잘 다루면 된다는 식의 접근으로는 ‘검찰공화국’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검찰의 권한은 더욱 약화되고 분산돼야 한다. 이들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훨씬 강화돼야 한다. 생명까지 앗아가는 수사는 어떤 식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더는 수사받다 숨지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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