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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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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급 공무원 이정구

편집장의 편지
등록 2018-07-24 15:50 수정 2020-05-03 04:28

14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그가 울먹였다. 2017년 12월1일,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가 연 공익제보자의 밤과 의인상 시상식장 참석자들의 시선이 순간 그에게 쏠렸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아프게 했을까.

8급 공무원으로 강원도 고성군청에서 일하던 이정구씨는 2003년 군수의 비리를 제보했다. 민원인 땅을 사들이려던 군수가 부정한 방법으로 민원인에게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부패방지위원회도 검찰도, 강원도청도 그의 말을 무시했다. 되레 그에게 찾아온 건 해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복직했지만 군청이 아닌 면사무소로 밀려났다.

그는 흐느끼며 말을 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조직을 사랑했고 무엇보다 진리를 사랑했으며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조직과 진리, 사람을 사랑해 제보한 게 죄인가.

1990년 이후 지난해까지 참여연대가 기록한 102건의 공익제보자들은 이정구씨와 비슷한 아픔을 품었다. 이들에게는 보상 대신 배신이란 딱지와 함께 보복이 따라왔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내부고발자를 키우기 위한 시민교육을 해오지 않았다. 오히려 내부고발자로 나서면 겪을 고난을 학습시켰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추진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교육부 공무원 500여 명 가운데 100여 명이 직간접적으로 관여됐다고 한다. 100여 명은 윗선의 위법한 지시에도 복종했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는 걸까. 왜 그렇게 많은 공무원이 부역했을까란 질문에 어느 역사가는 “공무원 이전 시민인 이들이 민주시민으로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불의와 불법에 맞서 저항과 불복종을 할 수 있다는 권리를 교육받지 않았다는 얘기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박근혜가 아버지 박정희에게 배웠다. 역사 교과서 첫 국정화는 박정희 집권 때인 1974년에 이뤄졌다. 박근혜가 ‘퍼스트레이디’가 된 때이기도 하다. 그때 만든 국정화 체제는 2007년까지 맥을 이었다.

아버지 옆에서 박근혜가 배운 게 또 뭐가 있을까. 바로 권력 앞에서 순종하는 공무원의 체질과 문화였을 것이다. 이는 “독재국가에서나 행해지는 시도”란 역사학자들의 비판에도 탄핵될 때까지 국정화 추진 뜻을 굽히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을 것임이 틀림없다.

박근혜는 왜 역사 기억을 통제하려 했을까. 분명 아버지 시대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바꾸고 싶어 했다. 이를 통해 자신과 자신을 떠받치는 보수세력의 정치적 무기를 강화하려 했을 것이다. 독일사를 ‘정치적 무기로서 역사’로 풀어낸 에드가 볼프룸은 “역사는 내외의 적을 무찌르기 위한 정치적 무기로 사용되어왔고 또 사용되고 있다”고 간파했다. 볼프룸의 말은 적어도 박근혜의 국정화 시도를 해석하는 데 유용하다.

박근혜는 어쩌면 전 국민의 말 잘 듣는 공무원화를 원했는지 모른다. 역사학자 오항녕(전주대 교수)은 (2015년 6월)에 투고한 글(‘독재 권력의 역사 기억 통제’)에서 교육부가 주도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획책에 대해 이렇게 썼다. “국정화는 항상 친일·독재를 미화하려는 주체들에 의해 추진되었다. 기억의 통제라는 파시즘의 일환으로, 전 국민을 국가권력에 순치되어 지시와 명령에 복종하는 신민으로 키우려는 것이다.”

그렇게 된 세상에선 진실과 사람을 사랑해 인사권을 틀어쥔 상사의 비리를 고발한 이정구씨 같은 시민은 더욱 찾기 어려울 것이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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