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진성독자 1만 명 21 영원하리”

<한겨레21>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 1탄, 류이근 편집장 인터뷰
등록 2018-07-03 17:27 수정 2020-05-03 04:28
류이근 편집장이 비워둔 독자의 자리. 김진수 기자가 연출했다.

류이근 편집장이 비워둔 독자의 자리. 김진수 기자가 연출했다.

누가 뉴스를 생산하는가.

고영재, 오귀환, 곽병찬, 김종구, 정영무, 배경록, 고경태, 정재권, 박용현, 이제훈, 최우성, 안수찬, 길윤형…. 1994년 3월16일 1호를 발행한 (이하 )의 역대 편집장 13명의 이름이다.

24년이라는 역사를 지탱한 많은 편집장과 기자들이 있지만, 독자들은 이들을 잘 모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뉴스의 얼굴</font></font>

‘어떤’ 뉴스를 생산하는가는 기자들의 문법이다. 독자와의 소통이 미디어의 핵심 전략이 되는 시대다. ‘누가’ 뉴스를 생산하는가, 뉴스의 ‘얼굴’을 밝히는 일은 뉴스를 매개로 한 ‘커뮤니티’를 꾸리는 일에서 과거보다 우선순위에 놓여야 한다. ‘독자편집위원회3.0’<font color="#C21A1A">(제1218호 알림 ‘010-7510-2154로 문자를 보내주세요!’ 참조)</font>을 구성하면서 맨 처음 구성원을 소개하는 이유다.

제14대 편집장 류이근은 제1210호 <font color="#C21A1A">‘첫사랑’</font>이라는 제목의 ‘만리재에서’로 독자들에게 첫인사를 했다. 그리고 두 달여가 지났다. 그의 ‘작업복’이나 다름없는 하얀 와이셔츠는 여전히 날이 선 듯 빳빳하지만 그의 체력은 눈에 띄게 허물어지고 있다. 제1219호 마감이 시작되는 6월28일, 류이근 편집장은 오전에 출근을 못했다. ‘몸져누운’ 상태에서도 “어제 독자들에게 못다 한 이야기가 있다”며 추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6월27일과 28일 이틀 동안 진행한 인터뷰에서 류이근 편집장은 “진성독자 한 명을 만드는 일이라면, 그 한 명을 늘리는 일이라면 기꺼이 지방에도 가서 독자와 대화할 것”이라며 ‘독편3.0’의 성공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 편집장을 수락한 배경이 무언가. </font></font>

‘제안’이다. 물망에 오른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기에 ‘수락’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적절치 않다. 다만 이전에 제안받았을 때는 고사했다. 에 애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필드’(현장)에 남고 싶었다. 취재기자와 데스크는 직업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17년 동안 했던 일과 다른 일을 하면서 겪게 되는 혼란, 다시 기자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아쉬움이 있다.

신문에서 일종의 탐사팀인 ‘디스커버팀’의 데스크를 하지 않았나.

그때는 ‘플레잉 코치’로 현장에 발을 담글 수 있었다. 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내가 직접 취재하고 기사 쓰는 게 속 편할 때도 있는데 그렇게 할 수 없고, 또 다른 기자들보다 더 잘할 것 같지도 않고. 그리고 지금은 기가 많이 빨린 상태라 취재 욕구가 아주 강렬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 데스크보다 기자 DNA가 여전히 강하게 꿈틀거리는 것은 맞다.

힘든가.

힘들다. 신문에서 경험해서 낯설지는 않은데, 힘들다. 좋은 퀄리티의 잡지를 만드는 일에 시작과 끝이 없다. 규모는 작지만 독립된 매체를 발행하는 일에 보이지 않는 노동이 많다. 광고, 디자인, 마케팅 등 중층적인 과정이 매끄럽게 돌아가야 잡지가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이런 과정을 조율하는 것도 편집장의 몫이다. 이전 편집장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어젠다 세팅’에 자신 있던 시절</font></font>1인 기획 탐사 보도를 일컫는 ‘류이근 모델’ 창시자다.

사내에서 그렇게 말해준다. 영광이다. 경제와 탐사 두 가지를 결합한 첫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애착이 있다. 최근 경력사원 모집 평가위원으로 들어가서도 느꼈지만, 많은 기자와 예비 기자들이 탐사를 하고 싶어 하지만, 대한민국 언론사 가운데 탐사기자를 수용할 토대를 갖춘 곳이 드물다. 탐사와 기획을 혼동하는 것도 아쉽다.

탐사와 기획의 차이가 뭔가.

탐사는 깊이 파는 것이고, 기획은 넓게 파는 거다. 술자리에서라면 길게 부연할 수 있다.

을 탐사 전문매체로 전환하라는 안팎의 요구가 있다.

쉽지 않다. 기자들이 변화된 잡지의 정체성에 맞게 바뀌어야 하는데, 당장 어렵다. 탐사 전문매체로 전환하라는 요구의 근저에는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뻔한 기사가 아닌 에서만 볼 수 있는 기사를 만들어달라는 요구일 텐데, 이는 나한테 너무 자극이 되고 십분 공감되는 요구다. 그런 요구를 충족하는 일이 꼭 탐사 전문매체로의 전환일 필요는 없다. 심층 기사, 기획 기사로도 가능하다.

좋은 시절에 에서 일했다. 그때는 정기구독 ‘21’만 부가 목표였다는데.

2005년부터 2008년까지 3년 동안 있었다. 의 존재감이 컸다. 기사를 쓰면 반향도 컸다. 내가 2006년 9월에 쓴 국세청 관련 기사(제628호 ‘국세청, 국회에 검은 돈 뿌렸다’)의 경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기사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하려 했는데 청와대 참모가 말렸다는 등 권력 핵심부의 반응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뉴스 어젠다를 세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던 시기였다.

그런데 ‘좋은 시절’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게, 그래서 당시엔 독자들까지 굳이 살피지 않았던 것 같다. 10여 년 사이 미디어 환경이 상전벽해와 같이 변했다. 우리가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도 독자들은 사지 않는다. 기자들이 잡지에 쓴 기사의 반향을 포털 사이트 댓글로 확인한다. 씁쓸하다.

포털에서 기사가 유통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 자체는 나쁠 게 없다. 하지만 구조를 보면 모순적이다. 기자가 자기 기사에 대한 반응을 잡지를 돈 주고 사서 보는 독자한테 받는 게 아니라 포털 이용자한테 받는다? 네이버에서 기사를 보는 분들은 사실 ‘ 독자’는 아니다. 이런 모순된 구조가 지속되면 독자와 단절될 수밖에 없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독편3.0은 ‘진성독자’의 플랫폼</font></font>독자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생겼나.

독자의 중요성을 자각한 것은 2013~2014년 미래기획TFT를 하면서였다. 독자가 우리 생존 기반임은 ‘정언명령’인데, 그걸 그때 깨달았다. ‘기자 류이근’에게는 내 기사에 ‘좋아요’라고 반응하는 독자만 있었다. 그때 독자에 대한 인식이 처음으로 확장됐다.

당시 신문 도 정기구독자가 계속 줄고 있었다. 구독자 수가 줄면서 ‘진성독자’가 점점 중요해졌다. 진성독자는 때로 뉴스 제작에 참여하고 신뢰감과 만족감을 느끼는 능동적 독자다. 이런 진성독자가 1만 명이라고 한다면 은 영원할 거다. 독자 전용 휴대전화를 매개로 구성되는 ‘독편3.0’은 진성독자 1만 명을 만드는 ‘독자 플랫폼’이 될 거라 믿는다.

은 위기인가.

위기다. 사실 변지민 기자가 주도해서 쓰는 ‘대한항공 승무원 산재 기사’<font color="#C21A1A">(제1216호 ‘스튜어디스는 왜 백혈병에 걸렸나’)</font>에서 제일 아쉬운 부분이 ‘확장성’이다. 왜 확장성이 적을까 생각해보면,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을 애독하는 진성독자 규모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과거엔 우리가 무슨 기사를 쓰면 진성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그걸 기자가 느낄 수 있었다. 새로 편집장이 되고 나서 페이스북 정기독자 커뮤니티 등을 살펴보면서 너무나 놀랐다. 독자와의 접점이 모두 죽어 있었다.

우리가 달라졌을까, 세상이 달라졌을까, 독자들이 달라진 것일까. 여기 답을 내리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고, 의문을 던지고 끊임없이 답을 찾아가야 한다. 10년 뒤 기자들이 우리보다 더 절박한 상태에서 같은 질문을 던지는 걸 보고 싶지 않다. 그런 상황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진성독자 1명이 요구한다면, 진성독자 1명이 늘어나는 일이라면, 기꺼이 지방에도 가서 대화할 거다. 우리는 독자와 대화해야 한다.

어떤 을 만들고 싶나.

소장하고 싶은 을 만들고 싶다. 단순히 종이매체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인터넷이든 방송이든 어떤 종류의 매체와 비교하더라도 최고의 퀄리티를 갖춘 잡지를 만들어서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다. 의제는 ‘불평등’과 ‘소수자 인권’에 집중하고 싶다.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은 언론이 피해갈 수 없는 주제다. 난민 등 소수자 인권 이슈는 이 오랫동안 다뤄왔고, 그 전통은 지켜나갈 거다. <font color="#C21A1A">제1214호 난민 차노끄난 표지</font>는 우발적인 게 아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소장하고 싶은 , 참여하고 싶은 </font></font>

전반적인 매체 전략은 독자를 의 유형적, 무형적 토대로 만드는 일에 둘 것이다. 설과 추석에 하는 퀴즈대잔치에 독자들이 보내준 엽서를 보면 다양한 ‘요구’들이 적혀 있다. 보도를 요청하는 이슈를 적은 분도 많다. 이건 다른 매체가 갖지 못하는 엄청난 자원이다. 물론 독자들의 요청을 모두 수용할 수는 없다. 다만 독자 참여 메커니즘을 뉴스룸에 꼭 구축하고 싶다.

<font color="#008ABD">글 </font>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font color="#008ABD">사진 </font>김진수 기자 jsk@hani.co.kr




기자 류이근은 누구?


2000년 한겨레에 입사했다. 2007년 신문 와 이 공동으로 꾸린 특별취재팀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의혹을 보도했다. 2012년 당시 처음으로 국가기관이 생산한 전 국민의 소득 정보를 입수해 보도하면서 저널리즘 영역에서 ‘소득 불평등’ 공론장을 확장했다. 전세계에 불평등 담론을 확산한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의 (2013년 출간)이 나오기 전의 일이다. 2013년 5월 경제부 기자 시절 자신이 기획을 전담하는 탐사역을 맡고, 기획 주제별로 출입처 담당 기자가 협업해 심층 보도를 하는 ‘1인 기획 탐사유닛’ 모델을 제안했다. 이는 훗날 ‘류이근 모델’로 불렸다. 이후 탐사보도팀을 이끌었다. 미국 연수 이후 2016년 김의겸 현 청와대 대변인이 팀장을 맡은 ‘미르팀’(기자들은 ‘최순실을찾는사람들’ ‘최찾사’라고 불렀단다)에서 케이스포츠재단, 더블루케이, 정유라 이화여대 부정입학 관련 특종 기사를 썼다. 2017년엔 디스커버팀 에디터로 강원랜드 부정채용 특종 보도를 이끌었다.
<font size="2">*지면 사정으로 ‘21 토크’와 ‘제1218호를 읽고’는 이번호 쉽니다.</font>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font color="#C21A1A">http://bit.ly/1HZ0DmD</font>
카톡 선물하기▶ <font color="#C21A1A">http://bit.ly/1UELpok</font>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