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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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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 기자는 운명공동체다

세 번째 독자 오프라인 모임을 열었습니다

21의 미래는 종이독자의 미래이기도 했습니다
등록 2019-02-03 00:48 수정 2020-05-03 04:29
제3회 독자편집위원회3.0 오프라인 모임을 찾아주신 독자와 기자들이 박승화 기자의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앞줄 왼쪽 셋째부터 정종식, 정유리, 이미수,정성미 독자입니다. 맨 왼쪽부터 조윤영, 이승준, 이재호, 허윤희, 류이근, 진명선, 전정윤 기자입니다. 한가운데 중심을 잡고 있는 어린이는 이미수 독자의 딸이자 <한겨레21> 미래 독자 김서주양입니다. 박승화 기자

제3회 독자편집위원회3.0 오프라인 모임을 찾아주신 독자와 기자들이 박승화 기자의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앞줄 왼쪽 셋째부터 정종식, 정유리, 이미수,정성미 독자입니다. 맨 왼쪽부터 조윤영, 이승준, 이재호, 허윤희, 류이근, 진명선, 전정윤 기자입니다. 한가운데 중심을 잡고 있는 어린이는 이미수 독자의 딸이자 <한겨레21> 미래 독자 김서주양입니다. 박승화 기자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언론은 구독자 수가 많거나 사업 규모가 커야 할 필요가 없다. 미래는 규모가 작아도 양질의 기사를 생산하는 언론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수용자의, 수용자에 의한, 수용자를 위한 언론으로’, 최은경, 2018년 12월호)

‘종이’는 사라지게 될까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를 보면 1984년부터 1992년까지는 명칭이 아예 ‘전국 신문독자 의식조사’일 정도로 ‘종이의 전성기’였습니다. 1996년에 잡지가 추가된 걸 보면, 1994년 창간한 (21)의 영향이 있었던 것은 아닐지 짐작해봅니다. 흠흠.

2010년을 분기점으로 뉴스 시장에서 종이의 퇴출이 가속화됩니다. 그때 처음 모바일이 ‘뉴스 매체’로 포함됐고 2013년엔 소셜미디어가, 2016년엔 SNS와 팟캐스트가, 2017년엔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유튜브)이 포함돼 2018년엔 조사 대상 뉴스 매체가 10가지에 달했습니다. 21이 포함된 ‘잡지’의 경우 1996년 28.9%에 이르렀던 이용률이 4.2%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종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신문은 같은 기간 85.2%에서 17.7%로 줄었죠.

독편3.0의 정신

장황한 통계로 기사를 시작하는 이유는 종이매체와 종이독자가 동시에 희귀해지는 시대, 1월30일 제3회 독자 오프라인 모임을 진행하고 깨달은 바를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독자들과 기자들이 21의 미래에 대해 토론한 3회 모임에서 새삼 우리가 한배를 탄 운명공동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이매체가 소멸하면, 종이독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종이독자가 먼저 소멸할까요, 종이매체가 먼저 소멸할까요. 선후관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고, 확실한 것은 21 뉴스룸과 21 독자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점입니다. ‘독편3.0’의 정신을 요약하면 ‘운명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요. ㅎㅎ

3회 모임은 저녁에 진행된 1회, 2회와 달리 낮 시간으로 옮겼습니다. 지난해 11월 한겨레 문화공간 온에서 열린 ‘2018 #독자와 함께’ 행사 안내를 하던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분들이 저녁 시간 행사에 참여할 수 없는 어려움을 전해주셨습니다. 이런 사연은 독자 단박인터뷰(제1237호 ‘웬일인가요’)에 응해준 이미수 독자님을 통해서도 전해진 바 있습니다. 따라서 새해 첫 모임은 오전 11시에 ‘브런치 모임’으로 열렸고, 당시 독자 단박인터뷰의 주인공 이미수 독자님이 딸 서주와 함께 참석해주셨습니다! 이미수님은 “단박인터뷰 때 #독자와 함께에 갈 수 없는 이유를 말했는데, 이번에 브런치 모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 때문에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 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우선 2018년 한 해 21이 보도한 사안의 후속 보도로 구성했던 송년호 ‘A/S 표지’를 비롯한 최근 보도에 대한 평가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미수 연말 송년호 표지는 마치 21과 송년회 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1년 동안 이런 기사를 보면서 살았구나, 개인의 역사를 확인하면서 1년을 정리하는 시간이 됐다.

정종식 21 보도가 발단이 되어 어떻게 전개되고, 지금 어떤 상황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등을 연결할 수 있어서 좋게 봤다. 꾸준히 하면 좋겠다.

정유리 틱톡 기사(제1247호 ‘유튜브 제친 틱톡, 아싸가 인싸 되는 15초’)를 보면서 요즘 인싸(인사이드의 줄임말로, 어떤 집단을 주도하는 주류를 일컫는 말)가 되려면 ‘오나나춤’은 알아야지 싶어 찾아봤다. 최신 트렌드까지는 아니더라도 독자가 뒤처지지 않게 해주는 게 레드 섹션인 것 같다.

과거 베트남 파병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문제 보도에 반발해 21에 난입했던 이들이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비리 문제를 제보하러 21을 다시 찾았다는 보도도 흥미로웠다.

어대식 자녀가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학교 후배, 행시 후배라 관심 있게 봤다. 나 역시 공직에 있을 때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때 한 선배가 도장을 거꾸로 찍으라고 했다. 고발이 적절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신 전 사무관이 어떤 마음으로 고발했는지 짐작되는 바가 있어 이걸 풀어주는 기사를 21에 기대했는데, 전혀 다루지 않아서 아쉬웠다.

이날 모임에는 이미수님과 더불어 어대식, 정성미, 정유리, 정종식님이 자리를 함께하셨는데요, 21에 쓴소리를 부탁하자 난감해했습니다. 참석자들에게 21에 대한 애정은 ‘잘해야 구독한다’는 조건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하든 못하든 구독한다’는 무조건적 애정이 느껴졌달까요.

정성미 신문은 창간 주주는 아니지만 창간 직후부터 계속 봤다. 21은 2017년 페미니즘 특강 할 때 정희진 선생님 강의를 듣고 난 뒤 구독료를 내고 읽기 시작했다. 나는 신문이나 21을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되지 않는다. 뭘 보든 되게 재미있다. 나는 한겨레 덕분에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하하.

어대식 1991년 지인이 진로 상담을 해왔다. ‘정직한 직업을 갖고 싶다’고 하더라. 그때 ‘한겨레신문에 입사해라. 내가 볼 때 거기가 정직한 회사 같다’고 했다. 진짜로 그가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했다. 매일 아침 한겨레를 받아볼 때마다 그 친구가 생각난다. (어대식님은 이날 1991년에 진로 상담을 해준 지인을 한겨레에서 만났습니다.)

‘종이 덕후’들의 고민

또 하나의 공통점은 모바일과 디지털, 동영상으로 넘어간 뉴스 소비의 대세(?)를 거스르는 분들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참석자들은 모두 21을 비롯한 종이매체로 뉴스를 본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종이 덕후’였습니다. 유튜브나 SNS, 포털로는 뉴스 보는 ‘맛’을 못 느낀다는 분들이었지요.

이미수 아이를 낳고 나서 활자를 받아들이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때 21로 책 읽는 연습을 다시 했다. 아이 키우는 데 집중하느라 외부에 나가지 않았는데, 2~3년 전부터 노원에서 ‘코스모스 읽기 모임’을 하고 있다. 내가 밖에 나가서 뭐든 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를 준 것이 21이다.

어대식 디지털은 내 소유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종이 잡지는 개인 소장품이니 내 자유의지대로 할 수 있다. 종이 없는 세상이 온다고는 하는데 22세기에도 21이 발행되면 좋겠다.

정유리 화면으로 보는 것과 지면으로 보는 건 다르다. 화면으론 대충 읽고 훑어보는 정도다. 나 혼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에서 굳이 화면으로 읽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종이매체라는 21의 존재가 디지털 시대와 ‘불화’하는 것에는 독자들 역시 고심이 깊었습니다.

정종식 한겨레는 내가 세운 신문사고, 내가 주인이다. 그런 점에서 구독자가 늘어야 한다. 사람들이 종이를 안 본다. 아파트 단지 재활용 쓰레기 버릴 때 보면, 21이 나온다. 누군가 본다는 건데, 극소수다. 신문도 별로 없다.

정유리 요즘 세대는 신문이나 주간지 잘 안 본다. 포털에서 제목 뜨는 거 위주로 보는 것 같다. 이걸 문제라고 생각지도 않는 것 같다. 최근 독자 카톡방에서 나온 얘기지만, 21 생존을 위해서라도 후원제가 필요하다. 바쁘면 21이 쌓인다. 그게 쌓이면 부담으로 다가온다. 구독은 부담스럽지만 후원은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미수 우리는 중고등학교 때 고전을 읽었는데, 요즘 애들은 듣는다. 아침마다 밥 먹으면서 오디오북으로 듣는 것이다. 아이들은 우리랑 다르게 커가고 있다. 이런 변화를 받아들여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이미수님의 말에 “21이 종이를 버리고 디지털로만 발행하면 어떨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구독 끊을 것 같은데요”라고 대답하셨습니다. ㅎㅎ 정유리님은 “종이도 잘하고 디지털도 잘하라고 하면 힘들 것 같다”며 21의 생존 전략을 고민하는 류이근 편집장과 똑같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21과 21 독자들의 고민은 똑같았습니다. 양자택일의 가혹한 갈림길에서 ‘21만의 고유한 가치’를 찾아야 한다는 데 독자들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종이든 디지털이든 동영상이든, 어떤 보도를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어대식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노란 프레임은 세계적인 표지다. 그걸로 옷도 만들고 가방도 만들어서 세계적인 브랜드가 됐다. 문학과지성사의 시집 시리즈도 고정적인 표지 디자인이 있다. 나는 21에도 100년 갈 수 있는 표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다. 독보적인 브랜드 이미지가 있으면 좋겠다.

이미수 나에게 기존 21의 이미지는 진보적인 잡지였다. 집안이 경상도 보수다. 대학 시절 21을 처음 구독할 때 일부러 아빠 이름으로 신청했다. 싸우기 바빴고, 대립하기 바빴다. 이제는 진보, 보수의 시대는 지나지 않았나. 21도 상식과 합리, 다른 생각이 공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잡지가 됐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옳다 그르다로 싸우는 세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이 무지개처럼 어우러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정종식 21은 애초 21세기를 제호에 담았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이미지는 약해지지 않았나 싶다. 현안에만 매몰되는 것 같다. 미래지향적 이슈를 찾아서 공론화하면 좋겠다.

정유리 나에게 21은 신뢰할 수 있는 언론이다. 진보-보수라는 게 뭔지 요즘은 잘 모르겠다. 믿고 싶은 걸 믿지 않나. 팩트를 앞에 놓고도 믿고 싶지 않으면 팩트가 아니라고 우기면 된다. ‘가짜뉴스’라는 용어도 쓰기가 조심스럽다. 무엇이 가짜인지 합의가 안 되지 않나.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21 독자 모임 패키지 완성

21의 생존과 미래를 화두로 한 불꽃 튀는 토론은 1시간30분여 동안 이어졌습니다. ‘뒤풀이’는 한겨레신문사 인근 약선음식 전문 ‘곽가네음식’에서 있었습니다. 곽가네음식은 서울 종로 통인시장에서 명성을 떨치던 맛집이었는데,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로 최근 한겨레신문사 근처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독자 오프라인 모임 패키지가 완성됐습니다. 낮 모임은 곽가네 정식, 저녁 모임은 스핑크스 치킨으로요. 하하. 마지막은 2019년 독자들이 주목하는 이슈로 마무리했습니다.

정성미 촛불을 왜 들었나 싶다. 변하는 것 같지가 않다. 특히 검찰이 그렇다. 변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보도를 보고 싶다.

정종식 촛불 든 지 이제 3년째다. 뭐가 바뀌었고 뭐가 안 바뀌고 있는지 샅샅이 훑는 보도를 해달라.

이미수 《SKY캐슬》이라는 드라마도 있고, 요즘 애들 보면 내가 비평준화 고등학교 다닐 때랑 달라진 게 없다. 교육 시민단체 모임에도 나가보았는데, 답이 없다.

정유리 문제가 뭔지는 아는데 대안을 못 찾는 것 같다. 거시적인 대안은 어려워도, 일상에서 대안을 실천하고 사는 사람들은 있다. 21이 삶 속에서 대안을 얻은 사람들을 찾아서 보도하면 어떨까.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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