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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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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한겨레21 류우종 기자를 소개합니다

<한겨레21>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 3탄…

박승화, 이정우, 정용일, 김진수, 신정숙, 이승준, 정인환, 변지민 기자
등록 2018-07-17 15:00 수정 2020-05-03 04:28
<font color="#008ABD">누가 뉴스를 생산하는가.
‘독자편집위원회3.0’(독편3.0) 구성을 계기로 시작한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 기획의 마지막은 뉴스의 1차 생산자, 기자들이다. 기자라는 직군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다.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취재기자, 취재기자가 쓴 활자만 있는 기사에 제목을 입히는 편집기자, 기사의 모든 활자의 문법적 오류를 검증하는 교열기자, 현장을 사진으로 취재하는 사진기자 등이다. 뉴스룸에도 이렇게 다양한 기자들이 일한다. 지면에서 차례 맨 오른쪽에는 뉴스룸의 팀별 편제가 소개돼 있다. 그러나 최근 은 소속팀과 무관하게 경계를 넘나들며 발제하고, 기사를 쓰고 있다. 아래는 팀별 편제와 무관하게 자기소개를 보내온 순서대로 배치했다. 교열팀 서윤희 기자는 개인 사정으로, 서보미·김선식 기자는 육아휴직 중이라 이번에 자기소개를 싣지 못했다. ‘010-7510-2154’ 문자를 보내면, 이 달라지는 독편3.0! 마감은 7월20일(금)이다.(1221호 ‘1220호를 읽고’ 참조) </font>
<font size="4"><font color="#008ABD">류우종</font></font>

류우종입니다. 1960년대 후반 대추리와 매향리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인 경기도 화성시 발안에 탯줄을 묻고 부모님 농사일을 도우며 자랐습니다. 주변에서 그림 잘 그린다고 부추겨 유명한 화가가 되겠다고 미대에 입학했습니다.

근데, 고민 끝 앞으로 유명한 화가가 되면 내 그림을 사줄 사람이 상위 1%란 결론에 유명한 화가의 길을 접고 민중미술을 택했고 ‘우수운 성적’으로 졸업하고 발안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간 작업한 걸 보신 어머니가 너는 어떻게 돈을 쳐들이면 쳐들일수록 그림을 못 그리냐고 타박하는 소리에 멍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중학교 때 그린 정물화는 사진 같았는데 목판화는 거칠고 무서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리얼리즘을 고민하다 붓을 버리고 사진을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노동자 사진을 맘에 들어하셨고 지금은 발안 선산의 흙으로 돌아가셨습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박승화</font></font>

사진을 맡고 있는 출판사진부의 박승화입니다. 입사 이후 쭈~욱 여기에만 있었습니다. 능력이 없는 건지, 성격이 나쁜 건지 다른 부서에는 가지 못했습니다. 그사이 2년간 이 아닌 월간 을 담당, 창간과 정간(폐간이 아님!) 했습니다. 취재가 아니더라도 매일 뭔가를 찍고 저장합니다. 뭔가를 관찰하는 것을 좋아해서, 지켜보는 데 공을 들이지만 정작 셔터는 대충 누르는 스타일입니다. 그렇게 찍은 지난 사진들을 꺼내 보기를 즐기며, 남의 사진 보는 것도 좋아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립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 이정우(출판사진부장)</font></font>

‘사진 고르는 일’을 하는 이정우입니다.

싸움구경, 불구경, 사람구경을 돈 받고 하는 직업이 있다 해서 사진기자가 됐습니다. 회사가 사준 카메라를 처음 잡았던 1990년엔 현대중공업 ‘골리앗 투쟁’ 등 노동자와 학생들의 거리싸움이 격렬했습니다. 이때부터 몇 해 동안 최루가스를 모닝커피 삼아 살았습니다.

1994년 극비리에 방한한 제임스 울시 미국 CIA 국장이 한국과 미국 양국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용산 국방부 청사에 들어가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축하 술자리에서 한 선배가 “넌 올해 평생 받을 상을 다 받을 거야”라는 덕담(?)을 해주었습니다. 그 덕인지 그 뒤로 변변한 상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현장에서 쫓겨나, 모니터 앞에 앉았습니다. 맨 앞장부터 뒷장까지 들어가는 모든 사진을 고르고 있습니다. 특히 ‘이정우의 한 컷’이란 꼭지의 사진을 눈 부르트도록 찾아헤맵니다. 좋은 사진은 마음을 움직이는 사진이라 믿고 있습니다. 웃음이 절로 나든지 화가 나든지 말이죠. 일주일에 한 번 저와 한 잔, 아니 한 컷 하시겠습니까?

<font size="4"><font color="#008ABD"> 정용일</font></font>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두려운 적도 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독자는 어떻게 바라볼지 무섭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아마도 세월호 참사 보도를 하면서부터인 듯하다. 취재하는 동안 수많은 생각이 오가고 감정이입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수많은 질타 속에 지속적인 자기 검열과 내가 찍은 사진이 어떻게 표현되고 어떻게 왜곡될지도 걱정한다. 은 그렇게 나를 성장시켰다. 나의 첫 직장은 아니지만 나의 마지막 직장이고 싶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김진수</font></font>

22년 전 1994년 10월 한겨레신문 사진부에 입사해 줄곧 카메라를 메고 있습니다. 당시 가방에 든 첫 장비가 카메라 2대에 렌즈 3개, 스트로보가 1개였습니다. 인터뷰 사진 찍을 때 많이 쓰던 80-200밀리 렌즈와 24-85밀리 줌렌즈에 24밀리 단 렌즈를 들고 현장을 뛴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부터 김대중 대통령의 첫 정권 교체 순간에도 이 렌즈와 카메라를 들고 함께 있었네요. 최근에는 제 개인 장비와 함께 500밀리나 600밀리 초망원렌즈를 들고 취재를 다닐 때도 많습니다. 환경문제에 관심 갖기 시작하면서 무거운 렌즈를 들고 야생에서 생존에 힘겨운 새를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초망원렌즈 덕분에 지면에 옮기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불평등에 관심 갖고 보도하는 한겨레가 전 지구적 약자이자 도시에서 소외된 야생동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카메라 장비가 좋아지면서 사진 표현 방식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관심 있게 지켜본 독자분은 눈치채셨겠지만 마을 뒷산의 멸종위기종 수리부엉이의 모습과 복조리 둥지를 차지한 제비 이야기는 ‘고프로’ 같은 초소형 카메라 덕분에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반딧불이의 사랑비행 장면이나 밤하늘 별을 찍기 위해선 무겁지만 튼튼한 삼각대도 필수입니다. 다양한 렌즈와 장비로 도전적 사진이 훨씬 많은 정보와 감동을 담은 사진을 만들어 독자를 찾아뵙겠습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신정숙</font></font>

저는 기자가 쓴 기사가 독자들이 읽기 전에 혹시 잘못 쓴 말은 없는지 살펴서 바로잡는 교열기자입니다. 맞춤법, 띄어쓰기, 외래어 표기법에 맞지 않는 것은 없는지 보고, 문장을 더 간결하고 정확하게 다듬기도 하고요. 예를 들면, “외국으로 떠나는 친구와 작별 인사를 위해 공항에 마중 갔다”는 문장은 “외국으로 떠나는 친구를 배웅하러 공항으로 가서 작별 인사를 했다” 이렇게요. 축구 경기를 볼 때, 공격수보다 수비수와 골키퍼에 더 감정이입이 돼요. 교열기자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실수한다’와 ‘모든 것을 의심하라’예요. 일할 때 고도로 집중해야 하니까 일이 끝날 때쯤엔 기진맥진하지요. 널리 알려야 할 정말 중요한 기사가 독자에게 더 쉽고 정확하게 전달되도록 오늘도 눈에 불을 켜고 기사를 읽겠습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이승준</font></font>

이승준입니다. 올해 11년차 기자입니다. 야구를 좋아합니다. 기자생활도 스포츠부 야구담당으로 시작했습니다. 독자들이 던지는 다양한 공(관심과 기대)을 배트 중심에 정확히 맞혀 시원하게 안타(기사)로 쳐내는 걸 기자의 본분이라고 생각하며 일해왔습니다. 신문 사회부-경제부-정치부를 거쳤습니다. 늘 안타나 홈런을 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공을 정확히 보려 안간힘을 쓰고 부지런히 스윙하면 안타든 홈런이든 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오늘도 타석에 들어섭니다. 아직 ‘커리어하이 시즌’(가장 잘한 시즌)을 맞지 못한 ‘미완의 대기’입니다. 11년차가 ‘미완의 대기’라고 하니 우습지만, 이게 다 에서 전성기를 꽃피우라는 운명의 뜻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 강속구를 마구 던져주세요!

<font size="4"><font color="#008ABD">정인환</font></font>

지난 4월 통일외교팀에서 정치팀으로 옮겨온 정인환입니다. 1999년 입사해 이번이 네 번째 근무입니다.

강원지역 담당기자와 연출부를 잠시 거치기도 했지만, 사회부 사건기자 시절을 빼고는 주로 국제뉴스에 집중해왔습니다. 이라크전쟁 현장 취재를 비롯해 한때 마일리지 꽤나 쌓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국제뉴스만 해서는 ‘밥값’조차 하기 어려운 형편이어서, 남북관계를 포함한 외교안보 뉴스도 ‘원 플러스 원’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변지민</font></font>

변지민입니다. 에서 최연소(!) 젊은 피를 맡고 있습니다. 고령화가 심한 한겨레신문사라 가능한 일이지만요. 진중권과 윤종신을 닮았단 말을 종종 듣습니다. ‘진지충’이란 말도 종종 듣습니다. 2011년 말 동아사이언스에서 처음 기자생활을 시작해 2017년 5월 대선이 끝난 직후 로 옮겨왔습니다. 잡지 를 만들 땐 우주와 물질의 기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영화 처럼 제 머리를 열어보면 슬픔이 조종석을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아사이언스에 있을 때는 주로 희극을 많이 썼는데 요즘은 비극을 많이 씁니다. 절망과 좌절, 슬픔 속에서 버텨내고 삶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끌립니다. 저는 ‘잡지’를 좋아합니다.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으니까요. 에 있는 동안 색다른 기사 보여드리도록 노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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