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스럽게 장사해온 주인장이 들으면 서운해할지 모르겠으나, 회사 앞 ‘무삼면옥’은 B급 평양냉면집이다. 면을 날마다 뽑고 설탕, 색소, 방부제, 감미료, MSG 따위를 넣지 않는 걸 자랑하지만 맛도 빼는 게 결정적 흠이다. 정상회담의 뜨거운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5월1일 냉면족의 발길로 이곳마저 붐볐다. 수육 반접시를 시켜놓고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이정우 사진부장은 정상회담으로 ‘스타 음식’ 반열에 오른 평양냉면 면발을 뚝 끊고서 화제를 돌렸다. 북한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또래가 많다는 딸과 나눈 대화를 들려줬다. ‘젊은 세대’ 하면 떠오르는 개방적·진보적 이미지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얘기였다.
하지만 실제 그들의 시선은 다른 세대와 좀 다르다. 청년세대는 윗세대보다 남북문제에 더 보수적이다. 회담 직후 북한에 대한 신뢰도 상승폭이 모든 연령대에서 높아지긴 했으나, 20대의 신뢰도가 가장 낮았다. 상대적으로 뜨뜻미지근하다.
늘 그랬던 건 아니다. 18년 전 평양에서 열린 1차 남북 정상회담을 바라봤던 당시 20대들은 통일, 대북 지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인식이 다른 연령대와 큰 격차를 보이지 않았다. 이는 한국갤럽의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뒤 여론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8년의 청년은 과거의 청년이 아니다. 좋다 나쁘다 떠나서 지금의 청년이 세상에 반응하는 건 과거와 사뭇 다르다. 남북문제에 젊은 세대의 보수적 반응이나 무관심은 교육 등 여러 요인이 얽혀 있겠으나, 이들이 처한 물적 토대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더 가깝게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치열한 생존경쟁을 내면화한 청년세대에게 고상한 민족주의보다 현실적 계산이 세상을 보는 훨씬 중요한 잣대다. 이들에게 통일과 평화는 다른 세대보다 더욱 한가한 얘기일지 모른다. 턱없이 부족한 일자리를 놓고 사투를 벌이는 이들에게 통일은 부담해야 할 비용의 증가를 뜻하고, 대북 지원 확대는 늘어나는 세금 문제로 비치기 쉽다.
요즘 청년들은 윗세대보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과거 세대보다 나을 게 없다. 등록금 융자 탓에 수천만원씩 빚을 지고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이 부지기수다.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과거 세대에 비해 지금 청년들은 늘어나는 빚과 줄어든 소득으로 거주할 공간을 마련하기 더욱 어려워졌다. 집값은 뛰고 오르는 임대료는 좇아가기 버겁다.
윗세대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세대적 약자다. 그럼에도 주거복지 차원에서 경제적 약자인 이들을 지원하는 청년임대주택 정책은 윗세대의 욕망에 짓눌려 좌초되기 일쑤다. 윗세대는 청년의 주거복지를 공짜, 특혜로 쏘아붙인다. 그 내면엔 집값 걱정이 똬리를 틀고 있다.
하지만 청년세대의 주거와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면, 숨통이라도 터주지 않는다면 이들은 ‘낙오된 세대’로 남을 것이다. 그건 결국 윗세대의 불행이다. 청년이 튼튼한 다리로 버텨주지 못하면 빠르게 초고령사회로 넘어가는 우리 사회는 언젠가 폭삭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한반도 북쪽을 응시하는 청년의 무덤덤한 시선은 우리가 이들을 구석으로 몰아넣으면서 비롯된 결과다. 청년들에게 주거와 일자리 걱정을 덜어줬다면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이들의 태도는 어땠을까. 18년 전 남북 정상회담을 바라봤던 지금의 40~50대가 그들의 윗세대와 비슷한 태도를 지녔듯, 지금 청년들도 엇비슷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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