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미 기자. 여긴 추워요. 누가 세상의 온기를 온통 빼앗아갔군요. 그래도 김 기자는 웃네요. 당신의 페이스북에 친구들이 글을 올리고 있어요. 그립다는군요. 다시 기자가 되어 바빴을 당신이 지난해 7월7일 페북에 남긴 마지막 글을 여기에 적어요.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 디지털 공간에서 나도 김 기자를 만났지요. 공부한답시고 잠시 휴직했을 때, 나는 많이 흔들렸어요. 답 없는 질문이 꼬리를 물었지요. 마음에 지진이 난 것 같았어요. 페북의 이런저런 글을 읽었어요. 아픈 사람의 슬픈 글만 찾게 되더군요. 전직 기자, 지금은 백수, 여행 가고 싶으나 결행 못하고 그저 일상을 여행한다는 당신의 글이 눈에 밟혔어요.
“‘왜 아픈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6개월의 시간이 지나갔다. …아픈 사람들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 다만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깨닫고 극복하고자 노력할 때 우리는 서로에게 사람이 된다. 그걸 알지 못하고 그냥 소리칠 때 당신은 내게 괴물이 된다.”
그래, 괴물이 되면 안 된다, 고 꽁꽁 마음먹은 건 온전히 당신의 글 덕분이지요. 지난해 3월 작은 매체의 편집장이 됐어요. 불안은 무모한 용기를 건드리지요. 좋은 언론을 만들자는 뜬금없는 용기가 생겼어요. 이런저런 욕심 가운데 좋은 부음 기사를 내보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죠.
김 기자가 떠올랐어요. 슬픔, 슬프지만 살아가는 일, 아끼던 것을 놓쳐버리고도 다시 사는 일. 그것에 골몰했을 김 기자라면 세상 떠난 사람에 대해 잘 써줄 거라 믿었어요. 만난 적도 없는 이에게 덜컥 제안했고, 연재물 ‘떠난 사람’이 시작됐지요. 당신은 유명인을 추모하지 않았어요. 평범하지만 온 힘으로 살았던 사람에 대해 썼어요. <font color="#C21A1A">맨몸으로 한계에 도전한 등반가</font>, <font color="#C21A1A">전쟁 뒤 서민들의 친구가 되어준 요리사</font>, <font color="#C21A1A">경찰의 총에 죽어간 흑인 청년</font>, <font color="#C21A1A">빈민을 위해 집을 지었던 건축가</font> 등을 썼지요.
‘떠난 사람’은 계속 잘 나오고 있어요. 그렇게 고급스런 부음 기사가 다른 언론에는 없지요. 김 기자가 처음 시작해 잘 정착시켰어요. 이제 내가 부음 기사를 쓰네요. 이 매체의 객원기자였던, 주변 지인들만 각별하게 기억하는, 조금 더 살았다면 두루 알려졌을, 그래서 더 애처로운 어느 기자에 대해 적어요.
오늘 아침, 문자가 왔어요. “우리 이쁜 딸 장례식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김승미 기자 엄마 ○○○ 드림.” 내 번호를 어찌 아셨을까요. 장례식장에 잠깐 들러 혼자 묵념하다 돌아나온 게 전부였어요. 일일이 어렵게 번호를 알아내셨을 어머님을 상상했어요.
어찌 살았는지, 왜 기자가 되려 했는지, 다니던 언론사를 왜 그만뒀는지, 왜 다시 언론사에 들어갔는지, 속속 알지는 못해요. 다만 내 기억 속 김 기자는 좋은 문장을 쓰려고 몸부림쳤지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문장 하나하나를 떨면서 적었지요. 그랬으니 지난여름 다시 들어간 언론사에서 쏟아지는 기사를 일일이 깎고 다듬느라 많이 지쳤겠지요.
얼마 전, 청와대 기자들이 대통령과 기자회견을 했어요. 하나 마나 한 질문을 미리 조율하고, 틀린 답을 해도 되묻지 않았어요. 좋은 회견이었다는 기사도 썼지요. 당신의 빈자리에서 나는 그들을 생각했어요. 문장 하나, 말 하나의 무게를 모르는 윤똑똑이들이 저리 으시대는데, 왜 당신이 떠났나요. 진짜 기자가 되려고 몸부림쳤던 당신이 왜 먼저 떠나야 하나요.
슬프고 아프고 이름 없는 이에 대한 좋은 기사를 써보겠다는, 그런 기사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겠다는 꿈을 품고 이 시절을 견디는 진짜 기자들을 위해 여기에 당신 이름 석 자를 적어요. 김.승.미. 2016년 1월17일 세상을 떠나다. 향년 33. 우리는 당신을 잊을 수 없어요.
안수찬 편집장 ah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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