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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요리법 가르친 ‘가정학자’

저렴한 건강식 보급, 컬러 요리책 시대 연 영국 최초 ‘스타 요리사’ 마거릿 패튼
등록 2015-06-26 17:00 수정 2020-05-03 04:28

제2차 세계대전이 낳은 영국의 최초 ‘스타 요리사’ 마거릿 패튼(사진)이 2015년 6월4일 리치먼드 요양원에서 별세했다. 유족은 사망 원인에 대해 “4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유증”이라고 전했다. 패튼은 굶주림에 시달린 영국인의 밥상을 책임진 요리사이자 작가였다. 향년 99.
세계적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는 “패튼의 아름다운 재능이 없었다면 세상은 더 어두웠을 것”이라며 “그녀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요리사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줬다”고 영국 일간지 에 말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의 간판 요리 프로그램 (Woman’s Hour)의 진행자 제니 머레이는 “모두가 있기 전에 그녀가 있었다. 그녀와 함께한 2009년의 방송은 좋은 기억들로 가득하다”고 트위터에서 추모했다.

<font color="#008ABD">전쟁 중 일하는 엄마 위한 레시피 개발 </font>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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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튼은 1915년 영국 바스에서 삼남매 가운데 장녀로 태어났다. 어릴 적 그녀의 꿈은 배우였다. 그녀의 꿈이 바뀐 것은 12살 무렵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때문. 하루아침에 가장이 된 어머니를 돕기 위해서였다. 학교 교사인 어머니를 도와 요리를 시작했다. 그녀는 2011년 인터뷰에서 “(그러나) 우리 집 주방장은 내가 아니었다. 먼저 숙제부터 하고, 정원을 다듬고 가끔 요리를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패튼은 퀸 엘리자베스 여성 학교에서 가정학을 전공했다.
그녀의 첫 직장은 전기회사였다. 그녀는 오븐, 냉장고 등 주방용 전기 제품이 여성에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연구했다. 새로운 주방 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를 개발하고 시연하는 일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그녀는 전쟁 중 식량 배급을 관장하는 정부 부처인 식품부(the Ministry of Food)에 합류했다.
전쟁 동안 영국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었다. 원래 농지가 부족한데다 독일의 대륙 봉쇄령까지 더해졌다. 영국 정부는 비상상황을 선언했다. 전쟁 발발 4개월 뒤인 1940년 1월부터 영국 정부는 단계적으로 식료품 배급제를 확대해나갔다. 달걀, 버터, 치즈 등이 2주에 1개꼴로 배당됐다. 배급제는 전쟁이 끝나고도 10년이 지난 1954년까지 이어졌다.
당시 여성들의 고민은 깊었다. 집안 남자들은 전쟁에 동원됐고, 여성은 일하면서 아이를 키워야 했다. 배급제 때문에 먹을거리가 턱없이 부족했다. 아이들은 굶주렸다. 그녀는 워킹맘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레시피 개발에 앞장섰다. 특히 고기 공급이 부족해지자 다람쥐·말·고래 고기를 대체 식품으로 삼았다.

<font color="#008ABD">영국 최초 ‘텔레비전 요리사’ </font>
영국 정부도 그녀의 요리법 홍보에 나섰다. <bbc>는 라디오 요리 프로그램 (The Kitchen Front)를 신설했다. 패튼은 5분 동안 자신의 요리법을 소개했다. 특히 햄통조림인 스팸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물자 부족에 시달리던 영국 정부는 미국이 제공한 스팸만큼은 배급 품목에서 제외해 자유롭게 유통시키고 있었다. 패튼은 스팸과 함께 보급품인 가짜 크림, 분말 달걀 등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를 선보였다. 전시 상황에서 ‘생존 요리법’을 소개한 것이다. 이를 알리기 위해서라면 병원과 공장 등 사람이 있는 곳 어디든 간다는 것이 그녀의 소신이었다. “그 시절 기차 1등석을 타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한번은 기차 플랫폼에 발을 헛디뎌 다리를 다쳤지만 고통을 참고 방송에 출연했다”고 그녀는 회고했다.
전쟁이 끝난 뒤인 1947년, 그녀는 영국 최초의 텔레비전 요리사로 데뷔했다. 여성 시청자를 겨냥한 <bbc>의 최초 요리쇼 (Designed for Women)의 진행자로 나섰다. 8분 만에 만들 수 있는 간단한 가정식 요리가 주요 방송 내용이었다. 전쟁이 끝났지만 영국의 식량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전쟁 내 망가진 각종 식료품 산업이 회복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신선한 고기의 물량이 적었고 값도 비쌌다. 영국인은 적은 예산으로 부실한 끼니를 때워야 했다. 보통의 영국인들을 위해 그녀는 적은 비용으로 맛있는 밥상을 차리는 법을 텔레비전 프로에서 소개했다. 그의 요리쇼는 1960년대까지 계속됐다.
요리쇼와 함께 컬러 요리책의 시대도 열었다. 그녀가 책을 내기 전까지 영국의 요리책은 흑백이었다. 사진도 없었다. 1961년 발간한 (Every day cook book)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그녀는 죽기 전까지 170여 종의 요리책을 냈으며, 모두 1700만 부가 팔렸다. 의 저자인 니콜라 훔볼라는 “실용적인 그녀의 책은 거실 장식용이 아니라 부엌에 늘 있었다. 여러 세대를 지나도 그녀의 이름을 영국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유”라고 에 말했다.

<font color="#008ABD">170여 종의 요리책 1700만 부 팔려 </font>
패튼의 요리 철학은 단순했다. “내 책의 독자는 요리를 해야 하지만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누군가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고 싶어질 때를 위해 간단한 조언을 담을 뿐”이라고 영국 일간지 와 생전 인터뷰에서 밝혔다. 요리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압력밥솥을 비롯한 각종 주방용품 사용도 권장했다. 적은 예산으로 건강식을 제공하는 것도 그녀의 요리 철학이었다.
그녀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스타 요리사들의 선생님이었다. 영화 의 주인공이자 스타 요리사 나이젤 슬레이터 역시 어릴 때부터 그녀의 요리책을 성경책 읽듯이 봤다고 는 밝혔다. 또 다른 스타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는 2003년 정크푸드에 중독된 아이들의 입맛을 바꾸는 프로그램에 도전하면서 그녀를 찾았다. 패튼은 “아이들의 식습관을 바꾸려면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며 올리버를 격려했다.
영국인은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의 요리책 또한 사랑했다. 스타 요리사마저 그녀를 닮길 원했다. 그러나 그녀는 가정학자로 기억되길 원했다. 2011년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녀는 “누군가 스타 요리사냐고 물어본다면 단호하게 대답할 것이다. 아니다. 나는 가정학자다. 나의 역할은 사람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다.”
<font color="#008ABD">*이 글은 와 위키디피아 등을 참조했습니다.</font>
김승미 여행자·전 기자</bbc></bbc></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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