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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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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등록 2015-08-25 20:05 수정 2020-05-03 04:28

좁고 낮은 단층집의 녹슨 대문을 따라 뛰다보면 막다른 골목이 등장했다. 겨울이라 새벽은 컴컴한데 바람이 차가웠다. 용기를 내야 했다. 걸리면 끝장인 것이다. “잡히지 말라”고 선배들은 바짝 기합을 넣었다.
대학 2학년이던 1992년 겨울, 나는 선거운동을 벌였다. 실정법에 따르자면, 선관위에 등록하지 않은 불법 선거운동원이었다. 양심의 율법에 의하자면, ‘민중후보 백기완’을 자발적으로 지지하는 20대였다. 민중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돼야 하는 이유를 적은 신문을 대학생들끼리 만들었다. 서울 강북의 어느 서민 주택 지역을 돌아다니며 유치하고 조잡한 신문을 뿌렸다.
대문 아래로 신문을 밀어넣으면 득달같이 이빨을 들이대며 개가 짖었다. 가난한 이들의 가난한 살림을 지키는 개들은 가난한 이의 대통령을 뽑자는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겁 많았던 나는 놀란 호흡을 고르는 와중에도 사람들이 깨어 일어날까 두려웠다.
지하철 2호선도 누볐다. 3명씩 짝을 이뤄 2개조로 나누었다. 맨 끝 차량부터 가운데를 향해 한 칸씩 전진하며 신문을 뿌렸다. 그러다 사달이 났다. 다른 조가 사라졌다. 좌석마다 신문은 있는데, 뿌린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경찰이 달려와 잡아갔다는 것을 하루 뒤에 알게 됐다. 그들 가운데 어느 남학생은 경찰 연락을 받은 부모에 의해 곧장 군에 입대하게 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남학생이 바로 나였을 수도 있었다.
인생을 통틀어 ‘정치행동’에 가장 근접했던 겨울이었다. 왜 그랬을까. 개들이 짖어대는 겨울 새벽 골목길을 겁도 없이 왜 누볐을까. 나는 정치와 언론의 힘을 믿었다. 1987년 이후 세상이 바뀌는 것을 보았다. 다만 그렇게 바뀐 세상이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등을 탐독하며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길을 모색했다. 정치학에서 일컫는바 ‘정치 효능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오늘의 젊은이들이 발언하지 않는다면,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치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를 통해 세상이 바뀌는 것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겪은 것이라곤 권력이 수평이동하는 동안,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수직하락했던 일뿐이다. 정당과 언론이 그 추락을 막는데 무슨 도움이 됐는지 기억이 없다. 왜 굳이 정치행동에 나서겠는가. 왜 언론을 탐독하겠는가.
미디어 사회학자인 허버트 갠스는 “정치 혐오와 언론 혐오는 하나의 쌍을 이룬다”고 말했다. (기성) 정당의 위기와 (기성) 언론의 위기는 결박돼 있다. 진지한 뉴스를 외면하는 20~30대가 늘어나는 것은 정치를 진지하게 궁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그들의 처지와 잇닿아 있다.
그러니까 이 청년, 특히 빈곤 청년 문제를 연속 집중 보도하는 것에는 상업주의가 포함돼 있다. 좋은 뉴스를 더 많은 청년들에게 읽히려는 의도가 있다. 좋은 언론이 대접받으려면 좋은 정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좋은 정치는 당대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다. 지금 빈곤과 실업의 문제는 고스란히 청년 세대에 집중돼 있다.

그들이 세상에 관심을 갖고 좋은 언론의 가치를 인정하고 정치의 힘을 믿어 마침내 좋은 정치가 탄생할 수 있도록, 우리는 끈질기게 청년 문제를 고발하고 분석할 작정이다. “저널리즘의 진정한 도전은 더 많은 독자가 정치·경제 뉴스를 읽도록 하고, 뉴스를 더 이상 읽지 않는 독자를 되돌아오게 만들며, 뉴스 수용자였던 적이 없었던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일이다.” 갠스가 말한 저널리즘의 과제는 우리의 과제다. 이번호에서도 청년 문제를 다룬다. 청년 빈곤의 문제를 더 파고들면서 청년정치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청년들을 좋은 언론 쪽으로 끌어당기겠다. 그들과 함께 골목길을 누비겠다.

안수찬 편집장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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