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중천이었다. 그녀는 따끔한 느낌에 눈을 떴다. 토막 난 볕을 안대로 가려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밤새 쌓인 메시지를 확인하고자 화장대 위에 올려둔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글씨 크기를 가장 크게 설정해두었음에도 돋보기를 써야 했다.
‘부고 김수오/ 장례식장: 좋은 병원/ 발인: 2014년 ××월 ××일’.
김수오? 잠에서 덜 깼는지 누군지 바로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알레르기 약을 챙겨 먹었다. 몇 달 전부터 몸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려워 먹기 시작한 약이었다. 병원에서는 갱년기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증상이라고 했다. 그럴 수 있다며 받아들이라고 덧붙였다. 무어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해가 가지 않는 수학 공식을 억지로 외우듯 알겠다고 말하고는 약을 받아왔다.
김수오. 약을 삼키기 위해 마신 냉수를 내려놓자 비로소 그 이름이 차갑게 떠올랐다. 작년까지 가게에서 일했던 젊은 총각이었다. 그녀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눈곱을 떼어내고 미역국에 밥을 한 숟가락 말았다. 어제 끓인 국이었지만 데우니 맛이 그럭저럭 괜찮았다. 되는 대로 밥을 밀어넣고 옷장을 뒤져 검은 옷을 꺼냈다.
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그는 아직 서른도 안 된 젊은 총각이었다. 공익근무를 하고 있지만 돈을 벌어야 한다며 밤에만 일할 수 있는 일거리를 알아보다 찾아왔다고 했다. 일을 시켜보니 눈치가 빠르고 똑똑한 느낌은 아니었다. 실수도 잦았다. 그러나 성실하고 부지런했다. 2년 남짓 일하면서 말도 없이 가게에 늦거나 쉬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일을 시작하고 몇 개월이 지난 다음부터는 급한 일이 생기면 그에게 가게를 믿고 맡겼다. 그런 종업원은 처음이었다.
그는 김치 같은 것을 챙겨주면 그때마다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빈 그릇을 깨끗하게 씻어오는 총각이었다. 반찬이니 과일이니 하는 것들을 받기만 하는 게 미안했는지 언젠가 한번은 그녀의 생일에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결혼하고 처음 받아보는 생일 선물에 얼떨떨했지만 무척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월급을 받은 날이면 그는 돈봉투를 만지작거리다 곧잘 여동생과 조카의 이야기를 꺼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라며 조카 사진을 귀찮을 정도로 보여주기도 했다. 조카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을 때 웃으며 가족이 생겨 기쁘다고 말했다. 조카가 생기기 전에는 핏줄이라고 해봐야 여동생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며. 그와 그의 여동생은 고아원에서 자랐다고 했다. 더 이상 부모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 같다.
그러다 공익근무가 끝나갈 즈음 돈을 좀더 벌어야겠다며 회사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녀는 사람을 또 뽑을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잘된 일 같다며 축하해주었다. 가게를 그만두고도 그는 몇 차례 가게를 찾아왔다. 싱거운 농담을 하며 여동생과 조카 이야기를 꺼냈다. 어두워 보이는 그의 표정에 그녀는 농담으로 가게에서 다시 일할 생각이 없느냐며 권유하곤 했다. 너 일할 때는 몸이 안 좋으면 가게를 쉬기도 했는데, 너 그만두고는 한 번도 쉰 적이 없다며. 어떻게 종업원이 한두 달 일하고 그만두기 일쑤라며. 그렇게 이야기하면 그는 수줍게 웃곤 했다. 그런 총각이 자살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장례식장은 한산했다. 울음소리도 웃음소리도 없었다. 언젠가 사진으로 보았던 수오의 조카만 구석에서 기어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지갑에서 5만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 봉투에 넣고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박금자. 수오의 여동생이 그녀를 맞이했다. 결혼식 때 보고 처음 보는 것이었다. 여동생은 오래도록 금자의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조카가 작은 소리로 엄마를 찾는 소리를 내자 그제야 손을 놓아주었다. 그녀는 떡이라도 하나 집어먹고 나가려다 가슴이 답답해져 신발을 신고 이내 자리를 떴다. 찬바람 생각이 간절했다. 체한 것도 같았다. 바깥으로 나오니 그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가방을 다시 메고 걸음을 옮겼다. 가게에 가야 했다.
가게는 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금자는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열쇠를 꺼내 유리 문을 열었다. 익숙한 손짓으로 두꺼비집을 찾아 모든 레버를 올렸다. 환영합니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어서 오세요. 노래방 기계가 차례로 그녀를 반겼다. TV와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켜고 에어 간판을 꺼내 출입구에 내려놓았다. 간판이 부풀어오르다가 바람이 새는 소리가 나더니 좀처럼 솟아오르지 않았다. 가까이 가보니 얼마 전에 붙인 테이프가 뜯어져 있었다. 몇 달 전에 손님들이 가게 앞에서 비틀거리다가 실수로 찢은 곳이었다. 그녀는 다시 가게로 들어가 테이프를 꺼내 찢어진 부분에 대충 덧대었다. 간판이 금세 부풀어올랐다. 공기가 가득 차자 가슴이 멜론 크기만 한 여자의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멜론만 한 가슴을 가로질러 그보다 더 큼지막한 글씨도 보였다. 춘향이 노래방.
금자가 노래방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그저 누구 밑에서 일해봐야 아줌마가 한 달에 얼마나 벌겠느냐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었다. 남편이 돈만 잘 벌어준다면 밤새 잠 못 자고 손님들 비위나 맞춰야 하는 노래방을 운영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한데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었다. 꼭 에어 간판 같았다.
금자가 노래방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그저 누구 밑에서 일해봐야 아줌마가 한 달에 얼마나 벌겠느냐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었다. 남편이 돈만 잘 벌어준다면 밤새 잠 못 자고 손님들 비위나 맞춰야 하는 노래방을 운영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한데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었다. 꼭 에어 간판 같았다. 잘 부풀어오르다가도 어느 순간 바람이 새며 고꾸라지곤 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 춘향이 노래방이었다.
말을 좀 보태면 그녀에게 남편이란 작자는 욕심이 너무 없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젊을 때는 매력이다 싶어 결혼까지 하게 되었지만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과 갖고 싶은 것이 많은 존재였다. 남편의 헌책방 수입으로는 국거리 쇠고기조차 사기 빠듯했다. 차츰 속이 탔다. 그때부터 동분서주해 일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되는 대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지하에 조그마한 노래방을 차렸다. 그녀에게 아이들을 양육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풍요였다.
처음에는 물론 시행착오도 많았다. 지하에 틀어박힌 채 밤새 깨어 있는 것도 곤욕이었는데 그렇게 앉아 있어도 손님이 없는 날이 허다했다. 어쩌다 손님들이 와도 한껏 취해 있었고, 그중 절반은 외상을 요구하는 손님들이었다. 그런 날이면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무너뜨리고 싶었다. 남편에게 기대고도 싶었고, 좀 가난하게 살아도 상관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아침은 밤의 수만큼 찾아왔다. 해가 뜨고 집에 돌아왔을 때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들은 망아지 같은 눈망울을 지으며 하고 싶은 것과, 갖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그 눈망울들을 배신할 수 없었다. 범죄를 저지르는 느낌이었다. 정당방위 같은 개념으로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그녀는 밤새 노래방에 앉아 있다가 돌아와 아이들의 아침밥을 차려주고 눈을 붙였다. 다시 일어나 저녁밥을 차려주고 곧장 노래방에 달려가 앉았다.
그렇게 10년을 지냈다. 그 시간 동안 금자는 수십 번도 넘게 외상값을 두고 손님들과 혈전을 벌였고, 수백 번도 넘게 손님들이 요구한 아가씨를 부르기 위해 통화를 했으며, 수천 번도 넘게 에어 간판의 공기를 넣었다 뺐다. 그러는 동안 제법 장사 수완이 생겨 단골도 많아졌다. 덕분에 국거리 쇠고기 정도는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사이 아이들은 모두 자라 서울이며 미국 뉴욕이며 하는 곳으로 떠나갔다. 학교를 다녀야 한다며, 혹은 영어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며. 남편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전국을 도망쳐 다녔다. 잘못하면 노래방까지 압류당할 처지였던 터라 이혼을 했다. 몇 해 전부터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저 금자만 묵묵히 춘향이 노래방을 지켰다.
삐리리리 리리 리리리. 가게 문이 열릴 때 나는 기계 소리가 들리자 금자는 깎던 과일을 내려놓고 문을 바라봤다. 어제부터 일을 시작한 종업원이었다. 복만이라고 했다.
“밥은 먹고 왔냐?”
“공익근무 끝나고 바로 와서 아직 못 먹었어요.”
“그래, 일단 밥부터 먹자. 밥 먹고 저 뉴욕 방부터 청소하면 되겠다.”
춘향이 노래방의 방 이름은 세계 각국의 주요 도시에서 착안했다. 그녀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 도시들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이 아직도 어색했다. 대부분의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금자는 보라에게 맥주를 챙겨주고 손님들이 있는 뉴욕으로 밀어넣었다. 보라가 들어가자마자 환호성이 들리더니 댄스음악이 터져나왔다. 누군가 포효했다. 새벽에 노래방에 오는 손님들은 두 부류였다. 울거나 포효하거나. 그녀는 매일 갈 곳 없는 그 소리를 가만히 앉아 들었다.
금자는 냉장고에서 반찬들을 꺼내고 친정에서 가져온 김치를 좀 썰어 찌개를 끓여냈다. 집에는 더 이상 반찬들을 둘 필요가 없어 가게에 거의 다 옮겨놓고 지냈다. 찌개에 두부를 마저 넣고 간단히 상을 차리자 복만은 배가 고팠는지 급하게 숟가락을 떴다.
“천천히 먹어라. 체하겠다.”
그녀의 충고는 개의치 않고 복만은 깻잎을 한 장 뜯어 밥에 올렸다. 깻잎을 복만 가까이에 놓으며 생각했다. 이놈은 얼마나 있을까? 노래방을 운영하면서 손님들을 대하는 일만큼 번거로운 것이 일할 사람을 뽑는 거였다. 손님들이 없을 때면 하루이틀 일하다 말도 없이 안 나오는 종업원이 꽤 있었다. 팁을 못 받기 때문이었다. 금자는 그때마다 허겁지겁 사람 구걸을 해야 했다.
“이모, 이거 깻잎 좀더 먹을 수 있어요?”
복만이 몇 장 안 남은 깻잎을 다 먹고는 더 달라고 하자 그녀는 냉장고에서 깻잎을 한 움큼 꺼냈다. 한장 한장 정성스럽게 깻잎을 떼어내 밥 위에 올려놓는 복만을 보며 그녀는 수오를 떠올렸다. 젊은 놈이 죽긴 왜 죽어. 다 저렇게 먹고 살려고 하는 건데.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복만의 저녁을 챙겨주고 시간이 한참 흘렀음에도 손님들은 오지 않았다. 금자는 내내 TV를 보았고, 복만은 내내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뭐 저렇게 핸드폰으로 할 일이 많을까 하고 드문드문 그를 쳐다봤지만 뭘 보는지는 따로 묻지 않았다. 다만 팁을 못 받은 그가 살짝 안쓰럽기도 해서 치킨을 한 마리 시켰다. 치킨을 보고서야 복만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치킨을 다 먹고 난 뒤에도 손님은 없었다. 금자는 복만에게 손님이 안 올 것 같으니 정리하고 그만 가보라고 말했다.
책을 읽으며 1시간을 더 앉아 있었지만 손님들은 오지 않았다. 그녀는 에어 간판의 바람을 빼고 가게에 들여놓았다. CCTV와 TV를 껐다. 음식물 쓰레기도 따로 챙겨 버리고, 전기까지 모두 내린 다음 가게 문을 잠갔다. 가게 문이 닫히며 하루가 끝나는 소리가 났다. 근처에 술집에 많다보니 아직도 술이 덜 깬 사람들이 고집스럽게 도로를 서성거렸다. 금자는 그들 사이를 비집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월세를 계산하다 잠이 들었다.
해가 뜨려 하고 있었다. 금자는 가려움에 눈을 떴다. 최근 들어 이런 일이 부쩍 잦아졌다. 차가운 물로 급하게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다. 다시 잠들기 전에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열어보니 몇 개의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대출 광고, 초등학교 동창 딸의 결혼식 통보, 핸드폰 요금 내역, 그리고 복만의 메시지였다.
‘이모 저 복만입니다. 저 이제 가게 못 나갈 것 같아요. 그냥 제가 이틀치 일했던 것만 아래 계좌로 좀 보내주세요. ××은행 ×××-××-××××× 김복만.’
그녀는 메시지를 바라보다 핸드폰을 덮었다. 가게에 가려면 좀더 자둬야 했다.
해가 중천이었다. 금자는 일어나 알레르기 약을 챙겨 먹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새로운 메시지는 없었다. TV를 켜고 빨래를 돌리고 친정에서 가져온 찬들을 꺼내 밥을 차려 먹었다. 그리고 설거지까지 끝내놓고 청소를 시작했다. 집은 이제 그녀 혼자 살기에는 너무 넓었다. 자식들이 쓰던 방에는 한때 그 옷이 아니면 도저히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해서 사준 옷들만이 가득했다. 남편의 서재로 썼던 방에는 홈쇼핑에서 주문한 물건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베란다까지 물청소를 하고 나서야 소파에 주저앉았다. 돋보기를 쓰고 다시 한번 핸드폰을 확인했다.
‘아직 입금 안 하셨네요. 오늘까지 입금 부탁드릴게요.’
이틀. 복만이 일한 시간이었다. 그중에 손님을 받은 것은 첫날 한 번뿐이다. 그녀는 그런 그를 위해 두 번의 저녁과 두 번의 야식을 마련해주었다. 물론 손님이 많건 적건 때가 되면 월급도 챙겨줄 예정이었다. 그러나 금자의 호의와 복만의 통보는 별개의 문제였다. 전에는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한 뒤 연락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녀는 5만원을 입금하고 옷을 벗었다. 가게에 가려면 씻어야 했다. 새로운 종업원을 알아보는 것은 그다음 일이었다.
씻고 나온 금자가 화장을 하는 사이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복만이었다.
‘이모 이런 말씀은 안 드리려고 했는데, 추가로 5만원 더 입금해주셔야 합니다. 최저 시급으로 계산해도 그 정도는 나올 겁니다. 급하니까 오늘 보내주세요. 안 보내주시면 신고하겠습니다.’
그녀는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보다 고개를 젓고 화장을 마무리지었다. 목 언저리가 가려운 느낌이 들었지만 옷을 챙겨입는 일에만 신경을 집중했다.
경찰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은 가게에 도착한 지 3시간 남짓 지난 뒤였다.
“여보세요? 춘향이 노래방 박금자씨 맞습니까? 여기 경찰서입니다.”
경찰은 별일이 다 있다며 이야기를 이었다.
“아, 요즘 애들 무서워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틀 일해놓고 돈은 또 돈대로 달라고 했다면서요? 그래서 사장님이 5만원도 넣어줬다면서요? 아,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아닌 말로 똥 밟았다고 생각하시고 사장님께서 그냥 5만원 더 넣어주세요. 안 그러면 고소 취하 안 한답니다. 일단은 사정 알고 계시고요. 연락 주세요.”
그녀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TV 채널을 돌리기 위해 리모컨을 집어들었다. 손톱 끝이 빨갰다. 전화를 하면서 피가 나도록 목 언저리를 긁은 모양이었다.
손님들이 들어온 것은 새벽 2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가게 문을 닫을까 하는데 젊은 남자 3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줌마, 여기 1시간에 얼마예요?”
그중 몸집이 가장 큰 남자가 물어왔다.
“2만원인데 여기 학생들은 못 들어와요.”
금자가 보기에 그들은 아무리 나이를 높게 봐도 고등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 노래만 부르는데 뭐가 그렇게 비싸요? 그리고 노래도 우리가 다 부르는데.”
“어쨌든 학생들은 안 돼요.”
“아줌마 우리 학생 아니에요. 야, 너 몇 살이냐?”
몸집이 가장 큰 남자는 뒤편에 서 있는 남자들을 보며 농담하듯 물었다.
“그러면 신분증 좀 볼 수 있을까요?”
“여기 있어요, 여기! 아, 진짜 우리 성인인데 왜 그래요.”
그녀는 돋보기를 꺼내 신분증을 들여다보았다. 성인이 맞았다.
“됐죠? 우리 어느 방 들어가면 돼요? 저 방 들어가면 되나요? 와! 방 이름이 뉴욕이에요? 뉴욕? 나 뉴욕은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언제 가보나 했는데 오늘 가네.”
덩치 큰 남자는 신기하다는 듯 몇 번이고 뉴욕이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뒤편에 있는 남자 둘은 작은 목소리로 그의 이야기에 호응해주었다.
“아줌마, 여기 뉴욕에 맥주 세트 하나 깔아주세요. 근데 혹시 아가씨도 불러줘요?”
금자는 남자들을 뉴욕으로 안내하고 곧바로 아가씨를 부를 수 있는 소개소에 전화했다. 전화를 걸 때마다 느끼는 것이었지만 노래방을 운영하는 데 아가씨를 찾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었다. 술에 취한 손님들을 상대하는 일은 그에 비하면 간단한 일이었다. 도저히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취한 경우에는 경찰을 부르면 됐다.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외상으로 하겠다고 하는 손님들에게는 나중에 소리 지르고 찾아가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받아내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가씨를 찾는 일은 전혀 다른 개념의 업무였다. 우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했다. 전화기를 붙잡고 아가씨를 찾아나설 때마다 명절에 내려가는 기차표를 끊는 심정이었다. 어쩌다 아가씨를 쉽게 찾은 날이면, 되는 대로 살아온 것 같은 사람도 난데없이 취향을 따졌다. 노력뿐만 아니라 운도 필요했다.
손님들 중에는 대놓고 아가씨 가슴이 너무 작다느니, 화장이 너무 진하다느니 하는 투정을 부리는 이도 더러 있었다. 여과를 잃은 욕망과 법인카드가 뒤엉켜 만들어낸 권력이었다. 권력도 그런 권력이 없었다. 취해서 노래방에 온 손님들에게 맨정신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금자는 그럴 때마다 노래방 마이크로 그들의 뒤통수를 갈겨주고 싶었다. 그런 때는 인내도 필요했다.
몇 차례의 전화 끝에 근처에서 일을 마친 아가씨가 한걸음에 달려와주었다. 보라였다.
“어디 방이에요, 언니?”
“저 방인데 한 20분 전에 들어갔어.”
“언니네 집 사람들은 맨날 취해 있던데, 오늘도 많이 취했어요? 지난번 그 아저씨는 진짜 좀 심했어. 아니 왜 노래 잘 부르다가 갑자기 울고 지랄이야.”
“아니야 보라야. 이번에는 아저씨 아니야. 어린애들 같아. 여기 맥주 더 챙겨가고.”
금자는 보라에게 맥주를 챙겨주고 손님들이 있는 뉴욕으로 밀어넣었다. 보라가 들어가자마자 환호성이 들리더니 댄스음악이 터져나왔다. 누군가 포효했다. 새벽에 노래방에 오는 손님들은 두 부류였다. 울거나 포효하거나. 그녀는 매일 갈 곳 없는 그 소리를 가만히 앉아 들었다.
보라가 노래방 도우미를 직업으로 삼은 계기도 금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편이 공장에서 벌어다주는 돈은 언제나 같았지만, 아이 분윳값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서 뛰어든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금자와 비슷한 동기로 일을 시작한 셈이다. 다만 금자는 노래방 경영을, 보라는 아가씨를 선택한 것뿐이었다.
출산을 했음에도 보라는 아줌마 티가 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가슴이 적잖이 컸다. 그녀가 손님들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면 손님들은 흠칫 놀란 표정으로 보라를 쳐다보곤 했다. 보라의 남편은 물론 말렸다. 처음에는.
“그거 그렇게 흔들어서 돈 버니까 좋으냐?”
보라의 남편은 좀더 부드러운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도 있었지만 공장 일에 지친 탓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는 어조나 어감보단 질문의 당위성에 집중했다.
“그래, 좋다! 좋아! 너도 뭐 까놓고 보면 이거 보고 결혼한 거 아니야?”
일을 시작할 즈음에는 보라 또한 생각이 많았다. 당연히 부드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년이 할 소리 안 할 소리 구분을 못하고! 이제 완전히 맛이 갔구나!”
“내가 뭐! 나는 뭐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네가 돈을 이렇게 고함치듯 화끈하게 벌어다줬으면 내가 밤에 이렇게 있겠어?”
춘향이 노래방 구석에서 격렬하게 이어지던 말싸움은 거기서 끝났다. 남편은 이후 보라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보라는 그날 남편을 보내고 예의 그 부자연스러운 가슴으로 두둑하게 팁을 받았다. 그리고 손님들이 모두 나간 시간에 금자와 함께 남은 과일과 땅콩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다. 보라는 금세 취기가 올라 자신이 미친년이라는 말만 계속 뇌까리다 이내 잠들었다. 금자는 소파 구석에 보라를 눕혀놓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데려가라고 했다. 남편은 슬리퍼 차림으로 달려왔다. 그를 위해 가게 문을 열어주며 내내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근데 보라 본명이 뭐예요? 진짜 보라?”
“아니에요. 보라가 아니라 미자예요. 최미자.”
금자는 이후로도 종종 미자와 소주를 마셨다.
2시간 남짓 지나 뉴욕에서 나온 남자들은 계산도 하지 않고 유유히 가게를 빠져나갔다. 남자들은 법을 잘 알았다. 그들은 미성년자였다. 애초에 들여보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금자는 기가 찼지만 최근에 들었던 다른 가게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들을 그냥 보내주었다. 신고해봤자 춘향이 노래방만 영업정지를 받게 될 것이 뻔했다. 2시간의 포효와 몇 병의 맥주, 그리고 가끔 미자의 가슴을 주물럭거린 대가는 금자의 체념 이외에 없었다. 문제 있으면 신고하세요. 아무 말도 안 하고 뒤편에 서성이던 고등학생 남자는 가게 문을 닫으며 그런 말을 내뱉었다.
금자는 나이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거짓을 간파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죄책감으로 번졌다. 수오가 있었더라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오는 단박에 청소년들을 알아보곤 했다. 제 또래라 그런지 그런 것에는 눈치가 좀 있는 편이었다. 미자는 돈을 안 받겠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미자가 간 뒤에 찾아오는 손님들은 없었다. 그녀는 멍하니 TV를 보았다. 생각 없이 채널을 돌리다가 목 언저리가 너무 가려워 알레르기 약을 찾았지만 가게에는 따로 챙겨둔 것이 없었다. 참기가 점점 힘들어져 냉장고에서 얼음을 하나 꺼냈다. 목에 대니 좀 나았다. 작아지는 얼음을 놓치지 않으려고 자꾸만 손에 힘을 주었다. 얼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차가운 목을 어루만지며 금자는 복만에게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가게 문을 닫을까 하다가 뉴욕으로 들어갔다. 맥주와 땅콩과 담배꽁초가 질서 없이 흩어져 있는 광경을 바라보다 노래방 기계에 숫자를 입력했다. 처녀 시절 부르던 노래가 흐릿하게 방에 뭉개졌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해가 중천이었다. 금자는 안대를 벗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레르기 약을 챙겨 먹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새로운 메시지는 없었다. 허기가 졌다. 뭐라도 먹을 생각에 친정에서 가져온 김치를 큼지막하게 썰어 찌개를 끓여냈다. 두부가 아쉬웠지만 집안일을 마치는 대로 가게에 가야 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돋보기를 쓴 다음 쌓여 있는 고지서들을 정리했다. 내도 내도 낼 돈이 가득했다. 벌어도 벌어도 제자리였다. 그녀는 이불 빨래를 할까 하다가 그대로 소파에 드러누웠다. 돋보기를 벗고 눈을 감았다. 눈두덩이 위로 고지서가 쏟아졌다.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눈을 떠보니 슬슬 가게에 갈 시간이었다. 가게에 가는 길에 파인애플 하나, 딸기 한 박스, 바나나 두 덩어리를 샀다. 과일가게 주인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고맙다고 했다. 이따 가게로 배달해드리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녀는 피곤이 가득한 그의 미소에 애써 웃어 보였다. 불현듯 그가 과일을 팔아 떼돈을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에 도착하니 복만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새벽에 병무청에 신고하겠다고 보낸 협박이 통한 모양이었다. 금자는 공익근무를 하면서 다른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수오가 이야기해준 것이었다. 수오는 근무하는 동사무소에서 회식이 있을 때마다 직원들을 가게로 데리고 오곤 했다. 원래는 공익근무를 하면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은 불법인데, 눈감아주시는 좋은 분들이라고 했다.
‘이모,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공익근무 하면서 다른 일을 하면 안 되는데 제가 잘못했습니다. 고소 취하했습니다. 신고하지 말아주세요.’
그녀는 복만이 이전에 보내온 메시지와 방금 도착한 메시지를 번갈아가며 확인했다. 그의 참담한 역전패였다. 그러나 유쾌하진 않았다. 금자는 일전의 복만이 알려준 계좌로 5만원을 더 이체했다. 젊은 놈이 열심히 살 생각을 해야지. 수 쓰며 살면 나중에 다 돌아온다. 그렇게 메시지를 작성해 보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우선 뉴욕으로 들어갔다. 전날 미성년자들이 남긴 흔적부터 치워야 했다. 테이블에 진득하게 묻어 있는 맥주를 닦으며 금자는 어제 찾아왔던 미성년자들을 떠올렸다. 괘씸한 기분을 지우기 어려웠다. 시간이 흘러, 더는 닦아내지 못할 실수를 저지를 그들의 미래도 그려졌다. 어질러진 방을 모두 치우고 문을 닫았다. ‘뉴욕’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어제 왔던 청년 중 하나는 뉴욕이 처음이라고 했다. 청년은 어떤 나날을 보내왔던 것일까? 앞으로 진짜 뉴욕에 갈 수 있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뻗치자 금자는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이제 와서 신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영업정지만 당할 것이 분명했다. 법이 그랬다. 그녀는 방에서 가져온 쓰레기통을 비웠다. 체념인지 안쓰러움인지 모를 감정들이 쏟아져나왔다.
금자는 아가씨를 기다리며 CCTV를 통해 보이는 바깥을 중간중간 응시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밤과 새벽을 그렇게 확인했다. 온갖 조명이 어둠을 좀먹고 있었다. 밝은 밤이었다. 이 시간에 깨어 있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밟히지도 않는 작은 벌레들처럼 도로를 배회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낮을 거세당한 사람들이었다.청소를 마치고 방에 있는 방석을 교체하려고 구석을 살피다 책을 한 권 발견했다. 어디서 난 것인지 바로 기억나지 않았다. 제목을 보니 재테크와 관련된 책이었다. 한참을 떠올리다 수오가 선물했던 책이라는 것이 기억났다. 자신이 읽고 너무 감명받아 주는 것이라고 했었다. 앞부분에 글귀가 적혀 있는 것이 보였다. 책을 받았을 때는 손님이 많아 제대로 들춰보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금자는 돋보기를 꺼냈다. 매일 밤잠도 못 자고 고생하시니 돈 많이 버시면 좋겠다는 내용의 짧은 편지였다. 희미하게 어지럼증이 일었다. 그녀는 되는 대로 가까이에 있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이것도 갱년기 증상이었나? 의사가 했던 이야기를 더듬어보았지만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상관없었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냉수를 한잔 마셨다.
삐리리리 리리 리리리.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과일가게 주인이었다. 바닥에 과일을 내려놓는 그의 이마에 땀이 드문드문 맺혀 있었다. 금자는 천천히 일어나 그에게 냉수를 건네고 과일값을 지급했다. 과일가게 주인은 급하게 땀을 닦고는 장갑을 벗어 돈을 받았다. 지폐를 반으로 접어 왼쪽 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단단히 잠갔다.
“역시 우리 사장님, 이런 책도 읽으시나보네요.”
그는 금자가 냉수를 가지러 간 사이 떨어뜨린 책을 주우며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매일 수없이 과일 박스를 실어나르는 사람이라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책을 쥐는 손이 어색했다.
“예전에 선물받은 책인데 이제라도 읽어볼까 해요.”
“근데 저는 이런 책은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던데. 역시 사장님은 멋쟁이네요. 그럼 다음에 또 뵐게요. 수고하세요.”
과일가게 주인은 왼쪽 주머니에 달려 있는 지퍼를 한번 더 단단히 잠그며 책을 건넸다. 툭.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종이 같은 걸로 봐서 아마 수오가 책갈피로 썼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과일가게 주인을 배웅하고 책갈피를 주웠다. 처음 보는 이름이 적힌 명함이었다. 수오가 입사했던 회사의 명함이었다.
수오의 사인은 자살이었다. 다단계회사였던 것 같다고, 장례식장에서 금자를 알아본 여동생이 이야기했다. 여동생의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있었다. 금자는 달리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가 입술을 달싹거리는 사이 여동생은 기어다니는 조카를 챙기기 위해 급하게 자리를 떴다. 2살배기 조카가 기어다니기에 장례식장은 너무 넓고 위험했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달려가는 여동생에게서 김치 냄새가 났다. 수오는 여동생에게 자신이 준 김치를 나눠줬다고 했다. 여동생은 그 김치를 먹고 배가 불러 아이를 낳았을 것이다.
장례식을 다녀오고 이틀이 지났으니 오늘 발인이 있을 것이다. 금자는 상복을 입고 하나밖에 없는 오빠를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넣는 여동생을 떠올렸다. 여동생의 마음에 평생 가라앉지 않을 그 불덩이를 떠올리자 속이 메슥거렸다. 메시지를 보냈다. 전화를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았다.
‘김치가 좀 생겼는데 필요하면 보내줄게.’
답장이 바로 왔다.
‘너무 고맙습니다. 오빠가 계속 거기서 일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수오가 있었더라면. 수오가 있었더라면 아마 한번은 휴가를 길게 떠났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번도 타보지 않았던 비행기를 타고,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도시를 가봤을지도 모르겠다. 뉴욕이 좋을 듯싶었다. 뉴욕. 금자는 입에 붙지 않는 그 단어를 발음하며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수오가 선물한 책을 펼쳤다. 돋보기를 꺼내고 천천히 첫 장을 읽기 시작했다. 몇 장을 읽어 내려가다 이내 책을 덮고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멈추고 수화기 너머로 사무적인 목소리가 울렸다.
“저기… 회사를… 그러니까 회사를 신고할 수도 있습니까?”
“무슨 말씀이시죠?”
“젊은 사람이 왜… 자살 같은 것을 했을까요?”
“네? 아주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천천히 설명을 좀 해주세요.”
당황하는 경찰에게 금자는 되도록 상세하게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삐리리리 리리 리리리.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등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화장도 번져 있었다. 취객 여럿이 비틀거리며 가게로 들이닥쳤다. 그중 한 명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어디에 뭐가 묻었는지 바지 끝이 잔뜩 젖어 있었다. 금자는 그들을 뉴욕으로 안내했다. 맥주와 과일을 꺼내 방에 건네주고 아가씨를 찾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한 통화의 전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뉴욕에서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에 있는 마이크 덕에 소리는 더욱 우악스럽게 울려퍼졌다.
금자는 아가씨를 기다리며 CCTV를 통해 보이는 바깥을 중간중간 응시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밤과 새벽을 그렇게 확인했다. 온갖 조명이 어둠을 좀먹고 있었다. 밝은 밤이었다. 이 시간에 깨어 있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밟히지도 않는 작은 벌레들처럼 도로를 배회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낮을 거세당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안대를 씌워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볕이 들지 않는 커다란 방에서 그들과 나란히 누워 잠이 드는 것을 상상했다. 누구도 몸을 긁다 깨지 않는 밤. 금자는 그런 밤을 그리며 챙겨온 알레르기 약을 삼켰다. 내일은 반드시 새로운 종업원을 구하는 광고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김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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