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김영희(필명)
케일라가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숨을 참는 방법이었다.
그는 시어머니의 해녀복을 빌려 입고 처음 겨울 바다에 들어가던 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필리핀의 작은 섬마을에서 태어나 바다를 따뜻한 목욕물 대하듯 살아온 케일라에게, 6㎜ 두께의 고무옷을 입고도 살이 벌겋게 부르트는 한국의 겨울 바다는 난생처음 겪는 냉대 같았다. 영하의 물속에 몸을 담그고 얼굴만 겨우 물 밖으로 내놓은 채, 케일라는 해녀 삼춘들에게 숨 참는 법을 배웠다.
입을 더 꽉 다물라.
숨 너무 깊이 마시지 말젠.
배에 숨이 하영 차민 몸이 안 갈라안치다.
삼춘들은 케일라를 둘러싸고 한마디씩 보탰다. 명화리 해녀 중 물질을 가장 오래 한 김귀남은 며느리인 케일라의 손을 붙들고 물속에 들어가 손가락으로 숫자를 헤아려주기도 했다. 호나, 둘, 싯, 닛, 다솟, 요솟… 열까진 참아야 뿔소라 하나라도 주워 갈 텐데, 케일라는 번번이 일곱을 넘기지 못하고 물 밖으로 튀어 올랐다.
어머니, 나 추워요. 코가, 코가 너무 차가워요.
케일라가 몸서리치며 코로 숨을 내뱉을 때마다 귀남은 자분자분하게 달랬다. 물에 있으맨, 니 코가 똑 떨어져 엇다고 생각하젠. 밖에 나와서도 입으로만 숨 쉬라. 와락 뱉지 말고, 천천히, 호꼼씩 뱉으라. 코는 차라리 막혔다고 생각하라.
높고 곧게 뻗은 코는 케일라의 오랜 자부심이었다. 케이, 코가 참 예쁘지? 햇살 좋은 바닷가에 나란히 앉아 콧방울을 슬쩍 꼬집어주던 어머니의 손가락, 날 닮아서 그래, 그물을 끌어 올리다 말고 흐뭇하게 돌아보던 아버지의 얼굴, 콧대가 절로 높아지던 말들… 그리고 한국에 온 지 2년 만에, 케일라는 코로 숨 쉬는 법을 잊어버렸다.
김귀남은 요즘 바다를 보며 한숨 쉬는 일이 잦아졌다. 홀몸으로 30년간 물질해 애지중지 키운 하나뿐인 아들이 어느 날 배가 테왁처럼 부푼 필리핀 여자를 데려와 결혼하겠다고 말했을 때도, 그러다 이듬해를 넘기지 못하고 고깃배가 뒤집혀 바다에서 죽었을 때도, 그 충격으로 며느리가 배 속의 아이를 잃었을 때도, 숨비소리 한번 휘익- 내고 다시 물속에 들어가던 그였다.
“어머니, 반창고, 지금 붙여요?”
케일라가 손가락에 흰 반창고를 달고 와 물을 때까지도 귀남은 방파제 앞에 멀거니 주저앉아 있었다. 케일라는 시어머니의 숨소리가 평소와 다르다고 느꼈다. 아이고아이고 앓는 소릴 하다가도 금세 휘익- 경쾌한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내던 귀남이 어째서 바다가 꺼지라고 맥 빠지는 긴 숨만 내뱉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 반창고- 안 붙여요?”
“니 씨어멍 귀 안 먹었쪄! 알아서 할 거니, 놔두라!”
케일라는 머쓱하게 돌아서서 양쪽 귀에 반창고를 붙였다. 물질하기 위해 코 다음으로 막아야 할 것은 귀였다. 귀남은 지난 6년 동안 물에 들기 전마다 케일라를 옆에 앉혀놓고 귀에 흰 반창고를 꼼꼼히 붙여주곤 했다. 바당선 이리 안 하맨 귀 찢어진다. 고무찰흙을 뭉쳐 귓속에 넣는 삼춘도 더러 있었지만 깊은 물에 들 땐 반창고가 최고라고 귀남은 가르쳐주었다. 바다에 관한 거라면 귀남은 모르는 것이 없었다. 물에 들기 전에 마늘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물숨이 잘 나지 않는다, 뿔소라는 큰 바위 아래에 손을 넣어보면 많다, 빗창으로 전복을 딸 때는 껍데기에 박히지 않게 살살 달래라, 처음엔 욕심내지 말고 한 번에 한 개씩만 해라, 물 위로 올라오면 입으로 아주 호꼼씩 숨을 뱉으며 소리를 내라, 파도가 세서 물멀미가 날 땐 무조건 밖으로 나와 고무옷부터 벗으라….
물질이 서툴러 홀쭉한 케일라의 망사리에 뿔소라를 몇 조락씩 덜어주는 귀남을 보며 삼춘들은 배를 잡고 앓는 시늉을 했다. 얘, 똥군 망사리가 호강한다게! 어촌계장 씨어멍 없는 사람은 설러 못 살겠수다! 귀남은 그때마다 허리춤에 손을 얹고 호탕하게 웃었다. 아쉬우맨 너이도 계장 메누리 하라!
하지만 요새 귀남의 망사리는 케일라의 것보다도 홀쭉하기 일쑤였다. 물멀미가 난다며 한 시간도 채 못 돼 물에서 나와버리기도 하고, 퇴수 시간을 잊어버리고 먼바다까지 혼자 나갔다가 뒤늦게 빈손으로 돌아오는 날도 있었다. 아이고저라, 우리 대상군이 무사 똥군이 됐수과? 잡아 온 뿔소라를 콘테나에 담아 무게를 재는 내내 삼춘들이 짓궂게 놀려도 귀남은 대꾸 한마디를 못했다. 케일라는 자기가 똥군 소릴 들을 때보다 더 속이 상했다.
김귀남은 명화리 어촌계장이 된 지 10년째 되던 해에 초대 케이(K)-해녀협회장으로 임명되었다. 시내에 있는 큰 건물에, 번듯한 사무실에, 반질반질한 명패가 놓인 책상도 생겼다. 협회장 임명식에서는 도지사가 직접 나와 국가대표 해녀라며 귀남을 치켜세웠다. 당당히 연단에 선 귀남을 보고 케일라는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치며 남편과 아이가 죽었을 때도 안 흘린 눈물을 절절 쏟았다. 한국에 온 후로 남의 집 귀한 아들에 손주까지 잡아먹은 팔자란 수군거림 속에 매양 콧대가 납작해질 일만 있었던 케일라에게, 귀남은 하나뿐인 자부심이었다. 해녀 삼춘들은 물론이고 선장들도 수협 직원도 귀남 앞에선 꼼짝을 못했다.
하지만 임명식에 다녀온 날부터 귀남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물에 못 드는 날도 점점 많아졌다. 케일라는 귀남을 대신해 뿔소라를 더 많이 따고, 젖은 머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쪽파밭에 앉아 종자를 심으며 연신 코를 훌쩍거렸다. 필리핀에 있을 때 케일라는 동네가 다 아는 한국 드라마 마니아였다. 여행을 왔다는 남편에게 처음 호감을 갖게 된 것도 그가 하는 말들이 꼭 드라마 대사처럼 사근사근해서였다. 한국에서도, 제주에서 왔다는 말에 케일라는 특히 더 가슴이 두근거렸다. 드라마 속 제주는 포근한 귤의 나라였다. 남편에게 임신 소식을 전하고 서울로 오던 날, 그가 청귤 한 박스를 들고 제주에서 올라와 청혼할 때까지만 해도 케일라는 제주 사람은 다 마당에 귤나무를 키우며 따뜻하게 사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남편이 나고 자란 제주 북쪽은 해풍이 심해 귤나무가 자라지 못했다. 북쪽 해녀 대개가 물에 못 드는 날에는 쪽파 농사를 지었다. 한겨울 노지에서도 쑥쑥 자라는 쪽파는 해녀 삼춘 손처럼 억세고 매웠다. 케일라는 밭에 나갈 때마다 눈물 콧물을 쏙 뺐다. 삼춘들은 해녀 팔자가 원래 다 그렇게 숨 참고, 귀 막고, 눈물 흘리는 것이라 했다.
요즘 케일라는 일주일에 두 번 한글학교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도청에서 은퇴한 해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강좌였지만 귀남의 전화 한 통에 케일라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수십 년간 물질로 먹고산 삼춘들은 대체로 목소리가 크고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저 외국 아이가 그, 귀남이 메누리다. 필리핀서 왔다게. 이름이 뭐랭 하맨, 캘라? 캐냐?
아니요, 캘라 아니고, 케-일-라! 케일라요!
여든이 훌쩍 넘은 삼춘들은 아무리 크게 말해줘도 케일라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글자들로 공책 한 권을 꽉 채울 때마다 케일라는 전복으로 가득 찬 망사리를 볼 때처럼 마음이 든든했다. 학교에만 오면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글씨를 쓸 때는 또박또박, 천천히 해야 한다는 것이 좋았고, 늘 바쁘게만 오가던 길목에서 표지판과 간판들을 죄다 읽어보느라 멈춰 서게 되는 것이 좋았다.
평생 숨 참고 귀 막기 바빴던 삼춘들은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준 글자를 따라 쓰면서도,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서도 자꾸만 울다 웃었다. 성, 이제 우덜끼리도 우체국 가게! 아덜 집에 점복 보낼 때 주소 대신 써달라 도를 일도 없서, 하영 조쿠다! 고강민이 노랫말도 재게 재게 배워주라!
케일라는 블랙핑크나 아이브를 더 좋아했지만, 학교에선 삼춘들과 함께 제주 출신이라는 트로트 가수 고강민 버전의 ‘동백 아가씨’와 ‘봄비’를 귀가 닳도록 들어도 좋았다. 제주에선 임영웅보다 고강민이었다. 티브이(TV)만 보면 머리가 아프다던 귀남도 고강민이 부르는 노래는 곧잘 같이 흥얼거렸다. 케일라는 삼춘들을 따라 공책 맨 뒷장에 ‘동백 아가씨’ 가사를 받아 적어 귀남에게 가져다주기도 했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어머니, 오늘 고강민이 노래 배웠어요. ‘동백 아가씨’. 같이 불러요?
하지만 케일라가 전복 하나만 따도 입이 마르게 칭찬하던 귀남은 케일라가 정성 들여 따온 노랫말을 보고도 시큰둥했다. 니나 하라. 난 노래 관심 없쪄. 요즘 귀남은, 그 좋아하던 감귤정과를 한 소쿠리 갖다줘도 심드렁하며 멍하니 누워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귀남이 이상하다는 말을 처음 꺼낸 것은 명화리 어촌계에서 두 번째로 물질을 오래 한 애자 삼춘이었다. 며칠 만에 물에 든 귀남이 전복을 하나도 못해오던 날, 애자 삼춘은 케일라를 창고 뒤로 조용히 불렀다.
얘, 느이 씨어멍 말이라… 아무래도 그거이 온 거 같다.
그거? 그거이 뭐예요?
애자 삼춘은 케일라의 귀에 성기게 붙은 반창고를 떼고 속삭였다.
우리 씨어멍이 치매 왔을 때도 비슷했쪄. 계속 얼이 빠져 있지 언? 뭐든지 자꾸 가막가막하구?
케일라는 치매가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귀남이 이상해진 것만은 확실했다. 애자 삼춘 말에 따르면 저러다 가족도 친구도 몰라보고, 제 이름도 잊어버리고, 화장실도 혼자 못 가게 된다고 했다. 니가 시내 나가 큰 병원에 한번 데리고 가보라. 저러다 큰일 나맨. 그러나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자는 케일라의 말을 귀남은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무사,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아직 내가 니보다 낫다.
귀남이 치매인 것 같다는 소문은 갯바위에 밀려드는 파도처럼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삼춘들은 케일라를 볼 때마다 혀를 끌끌 찼다. 니가 똥이 빠지게, 남편도 없이, 혼자 치매 걸린 씨어멍을 어떵 볼 거. 니 팔자도 참, 사무럽다. 애자 삼춘은 귀남 몰래 기저귀를 박스째 싣고 와서 주고 가며 조금 울기도 했다. 필요할 거라. 귀남 언니가 이러는 날이 다 잇쪄, 어떵 할 거라… 눈물 끝에, 삼춘은 케일라의 거칠어진 손을 쓰다듬으며 덧붙였다. 니가 맘 단단히 붙들라. 다른 수가 없쪄. 이것도 다 넘으민 넘는다.
케일라는 밤마다 애자 삼춘이 두고 간 흰 기저귀를 만지작거리며, 아기에게는 한 번도 채워보지 못한 기저귀를 시어머니에게 처음으로 채우는 기분은 어떨까, 상상해보았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남들 눈에 치매 초기인 것 같다는 귀남은 신통하게도 화장실을 잘 가리고, 잘 참았다. 물질하며 화장실 참는 것이 습관이 되어놔서 그런지도 몰랐다. 그저 침통한 표정으로 내리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물에 들지 않을 때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항상 휘익- 경쾌한 소리를 내고는 씩 웃어넘기던 귀남이었다. 그 소리를 들으면 케일라는 마음이 편해졌다. 귀남의 숨비소리는 고난과 역경의 장을 넘기고 다음 장으로 갈 수 있는 주문 같았다. 그런데, 왜….
오늘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드러누운 귀남은 또다시 맥 빠지는 숨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다… 그놈의 K-해녀 어쩌고 때문이다.
어느 날 도청에서 불쑥 전화가 걸려와 K-해녀협회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귀남은 살면서 처음으로 돈 안 되는 일에 시간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여든이 가까운 귀남은 늘 혼자인 며느리가 걱정이었다. 나는 그래도 아들이라도 있었지, 저 애도 아이라도 있었으면, 어떻게든 그걸 보고 살았을 건데…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그것뿐이라 제 손으로 물질을 가르쳐놓고도, 테왁과 쪽파 자루를 걸머지느라 늘 축 처진 케일라의 어깨가 귀남은 못내 안쓰러웠다. 뭐든 높은 자리를 맡아 하나뿐인 며느리의 콧대를 세워주고 싶었다. 그 마음이 이런 파장을 일으킬 거라고는 꿈에도 모른 채.
도청에서 ‘K-해녀협회’ 창립을 부랴부랴 서두른 것은 한 달 후에 문을 열 해녀박물관 개관식 날 해양수산부 장관과의 조찬에 참석할 해녀 대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귀남은 그런 내막까진 몰랐다. 우리 한국 해녀를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사라져가는 해녀 문화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 그러니까 이게 다 우리 해녀 어머님들을 위해, 라는 말이 듣기 썩 나쁘지 않았을 뿐이다.
박물관에 전시하겠다고 호들갑을 떨며 귀남이 쓰던 테왁이며 낡아빠진 해녀복을 받아 갈 때는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우리 해녀 어머님들 한분 한분이 다 살아 있는 박물관 아니겠습니까? 박물관 개관일에 맞춰 전국의 해녀를 초청하는 ‘K-해녀 축제’도 열릴 예정이라 했다. 협회장인 귀남은 그날 온종일 이곳저곳을 돌며 인사말을 하고 사진 촬영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협회장 임명식이 끝나자마자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축제 사무국장이 귀남을 불러 그날의 스케줄표를 건네주었다. 여덟 시에 박물관 앞에서 먼저 단독 사진을 찍으시고요, 십오 분 후에 도지사님 도착하시면 같이 한 번 더 찍으시고요, 여덟 시 반에는 장관님 조찬을 가실 거예요. 조찬 마치면 열 시에 박물관 내부로 같이 이동하실 거고요. 여기 다 적혀 있으니까 읽어보시면 아실 거예요. 귀남은 깨알 같은 글자를 보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회장님, 그런데요, 이번에 박물관 가셔서요, 방명록을 꼭 좀 하나 써주시래요.”
“무사 경핸, 사인만 하면 되는 거 아니라?”
“아니요, 그게요, 박물관에 회장님 입으시던 해녀복을 전시하잖아요. 그 밑에다가요, 방명록도 한마디 꼭 써주시래요. 친필로요.”
습관처럼 휘익- 숨비소리를 내려던 귀남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그게… 언제라?”
“이번 달 말일요. 이제 한 달도 안 남았어요. 장관님도 참석하신다니까요, 이쁘게 잘 쓰시래요.”
귀남은 그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앓아누웠다. 50년 넘게 물질하면서 감기 한번 걸린 적 없던 강골이었다. 이토록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속이 울렁거린 적은 처음이었다. 케일라가 밤새 귀남의 이마를 물수건으로 닦아주어도, 늘 다니는 동네 의원에 가서 약을 타 먹어봐도 소용없었다. 의사도 원인을 모르겠다는 말에 케일라는 울상을 지었지만 귀남은 사실 자신이 무엇을 앓는지 알고 있었다.
한글에 대한 김귀남의 기억은 ‘ㄱ’에 멈춰 있었다. 여섯 살에 처음 미역을 캐기 시작해 국민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소중이를 빌려 입고 물질을 나간 귀남은 ‘ㄴ’을 배우던 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다. 밤새 기저귀도 못 뗀 막냇동생 투정에 잠을 설치고 책상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조느니 바당에 나가 구쟁기 하나를 더 잡는 게 훨씬 남는 일이라 생각했다. 집안에 해녀 하나 있으면 여섯 식구가 굶어 죽지는 않는다던 시절이었다. 맏딸인 귀남이 바당에서 쌀을 벌어오자 둘째, 셋째 동생도 언니를 따라 한다고 나섰지만, 귀남은 동생들이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바당에 나오지 못하게 했다. 그것이 귀남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덕분에 두남이, 새남이는 기역 다음 니은, 니은 다음 디귿을 차근차근 익혀 제 이름은 쓸 수 있게 되었다. 딸 셋을 보고 겨우 나온 제일 끝의 남동생은 철마다 새 옷을 사 입혀 고등학교까지 보냈다.
눈썰미가 좋은 귀남은 한번 보고 들은 것을 잊는 법이 없었다. 기역도 그랬다. 가리비의 가, 고무옷의 고, 구쟁기의 구, 귀남의 귀, 게장의 게… 기역으로 시작하는 글자를 공책 가득 쓰고 나면 한글도 금세 떼고 이름도 단박에 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귀와 남 사이는 이상하게 멀게만 느껴졌다.
귀남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모른다는 말이었다. 그래야만 살아졌다. 어려서는 여섯 식구, 결혼 후에는 남편 없이 홀로 아들을 건사하려니 뭐든 몰라서는 안 됐다. 물속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고, 물 밖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어야 했다. 예보에 없던 풍랑으로 아들이 타고 나간 고깃배가 뒤집혔다는 소식에 모두가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고 있을 때도 귀남은 파도가 잠잠해지길 기다려 바당으로 나섰다. 시체는 건져 와야 하게. 물길은 해녀가 제일 잘 안다.
아들의 시체를 건졌다는 말을 들은 만삭의 며느리가 배를 붙잡고 쓰러졌을 때, 치맛단 아래 삐죽 나온 흰 종아리로 핏방울이 흐를 때, 구급차를 부르기도 전에 그 애를 업고 뛴 것도 귀남이었다. 한참 만에 깨어난 며느리가 텅 빈 배를 만지며 멍하니 천장만 보고 누워 있을 때도 귀남은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알았다. 넘으민 넘는다. 여기선 다 경해 산다. 느영나영 살암시민 또 살아질 거라. 열 길 물속도, 한 길 사람 속도, 귀남은 다 그렇게 훤히 알았다.
글을 몰라 귀찮은 순간은 종종 있었지만 그렇다고 밥벌이를 멈출 수 있는 날은 없었다. 온종일 물질하고 쪽파밭에 앉았다 집에 돌아오면 방바닥에 그대로 걸러져야 다음날 새벽 또 일을 나갈 수 있었다. 배운다는 것은 하던 일을 멈추고 무엇을 모른다고 말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임을, 도통 모르는 것이 없는 귀남도 그것만은 몰랐다.
협회 사무실에서 받아온 팸플릿과 스케줄표를 손에 쥐고, 귀남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통증에 몸서리쳤다. 수심 10m 아래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압력이 사방에서 귀남을 짓눌러,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고약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6㎜ 고무옷을 입던 날처럼 숨이 턱턱 막히고 가슴께가 갑갑했다. 귀남은 생전 앓지도 않던 물멀미를 핑계로 물질을 며칠씩 거르고 케일라의 한글 공부 책을 몰래 꺼내 거기 쓰인 글자들을 따라 써보기도 했다.
하지만 귀남은 가, 고, 구, 귀, 게 같은 글자 다음으로 좀처럼 넘어가질 못했다. 무지의 고통을 느낄 새조차 없이 살아온 귀남은 빽빽한 글자들 앞에 무능해지는 자신을 견딜 수가 없었다. 조급해한다고 잘되는 일이 없다는 걸, 모든 사달은 서두르다 나는 법이라는 걸, 평생 바당에서 먹고산 귀남은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마음은 자꾸 저만치 앞서나갔다. 빨리 익혀야 하는데, 그래야 쓰는데, 조바심을 낼수록 귀남의 기억력은 한참 뒤처져 주저앉아버렸다. 케일라가 다닌다는 한글학교에라도 가볼까, 몇 번을 문 앞까지 가서 망설인 적도 있었지만 도통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귀남이 알기론, 명화리에서 귀남이 한글을 모른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밥상 위에 케일라의 깍두기공책을 펼쳐놓고 종일 끙끙거리던 귀남은 문득 부아가 나서 책과 공책을 냅다 패대기쳤다. 너덜거리는 종잇장을 볼수록 목에서 뭐가 자꾸 울컥울컥 올라왔다. 요깟 손톱만 한 네모 칸이 뭐라고, 요깟 걸 못 채워, 여태 글도 안 배워놓고 뭐 햄시냐, 뭐 한다고 이리 벙하게 살았냐, 돌챙이 같은 거, 모질한 거, 천한 거, 사람도 아닌 거….
젊어서 출항 물질 나가 들었던 말들이 여태 가슴에 박혀 있었던 줄, 귀남은 몰랐다. 제주 바당만 들어선 못 먹고산단 말에 삼춘들을 따라 울릉도로, 구룡포로, 백령도로 몇 달씩 나가 살던 시절이었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마땅한 집도 없이 천막에 가마니를 깔고 자던 날들. 얇은 비닐 틈새로 들이치는 바람이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아 눈물이 질끔 날 때, 천막 밖으로 두런두런 들리던 목소리들. 저 잠녀 가시나들, 지네 동네서 먹을 거 없어 여기까지 기어나왔댜, 남편도 놓고 아도 놓고 나와 아주 돈에 눈까리가 뒤집힌 거라, 우리 돈줄 다 털어가 지네 섬으로 가져가버리는 거라, 천박한 거, 저런 것도 사람이라?
물에서 막 나온 맨살갗처럼 빨갛게 멍든 동백꽃 이파리가 뚝뚝 떨어지던 그 밤, 날 선 말들이 가슴을 후비면 삼춘들은 와락 울음을 터뜨리기도, 벌떡 일어나 대거리하기도 했지만 귀남은 그냥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자양 낼 일어나 바당 나가게. 삼춘들도 그만 잡서. 자고 일어나면 다 잊어질 말들이라, 전복을 넘치게 따고 나면 금세 녹아내릴 설움이라 생각했지만 한번 보고 들은 것을 잊는 법 없는 귀남이 그것만 잊을 리는 없었다. 한번 떠오른 기억은 점점 선명하고 또렷해졌다. 모진 말들만 줄줄 외는 머리가 귀남은 원망스러웠다. 글자를 그렇게 외지, 무사, 좋은 건 외질 못하고, 나쁜 말만 가슴에 냉겼시냐.
“어머니! 뭐 해요?”
케일라가 불쑥 방문을 열었을 때, 귀남은 찢어발긴 한글 공부 책과 공책을 손에 든 채 애처럼 울고 있었다. 케일라는 소리 내 우는 귀남을 처음 보았지만, 이때를 늘 기다려온 사람처럼 귀남에게 다가가 아기 어르듯 안아주었다. 무사 눈물이 나게요? 또 머리 아파요? 케일라는 한 팔로 귀남을 안고, 남은 손은 바위 밑에서 뿔소라를 찾을 때처럼 귀남의 엉덩이 아래에 넣어보았다. 보송한 감촉을 확인하고 마음이 놓인 케일라의 눈에, 그제야 찢어진 책과 공책이 보였다.
“어머니, 한글 공부 하게요?”
메께라. 무심하게 묻는 케일라의 말투에 귀남은 금짝 놀랐다. 물에 들게요? 쪽파 심게요? 매양 하던 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담담한 목소리를 들으니 속에 얹혔던 묵직한 것이 슬쩍 녹아내리는 것도 같았다. 세상 푸념이라곤 모르고 살았던 귀남은 케일라에게 안겨 한참을 조잘거렸다.
이달 말일에 나 가는 거 있젠, 해녀박물관이란 거 안 있언? 가름덜이 나더러, 글을 써달라고 하맨. 나는 아무것도 몰름시니, 무식한 이더러 왜 글 같은 걸 쓰라고 하맨? 나더러 글을 어떵 쓰라게? 나는 몰르쿠다, 몰르켜. 케일라는 귀남의 등을 자분자분히 쓸어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무거운 망사리를 지고 뭍으로 올라와 속에 든 걸 단박에 쏟아버리듯, 귀남은 몇 주간 속에만 모아둔 말들을 와르르 쏟아냈다.
“무사, 캐이 해녀 축제라, 캐이 해녀 대표람시니, 그 생각만 하맨 막 골이 아프다. 괜히 만만하게 봤다가 큰코다치게 생겼쪄.”
캐이, 캐이가 다 뭐이라… 귀남이 한숨처럼 뱉어낸 말에, 가만히 듣고만 있던 케일라가 불쑥 입을 열었다.
“어릴 때는 나 불러요, 집에서. 케이.”
“캐이? 니가 캐이라?”
“네, 케이. 내 이름, 케일라. 줄여서 케이.”
귀남은 모처럼 푹, 웃음이 났다. 내가 캐이 메누리를 모시고 살았쪄. 그것도 몰라부난. 캐이라맨 니도 역시 보통내기는 아니라. 귀남이 웃는 걸 보며 신이 난 케이는 학교에서 새로 받아온 깍두기공책을 펼치고 글자를 적었다.
“어머니, 이거, 뭐라고 읽어요?”
“게?”
“네, 바위틈에 있는 거, 잡아다 깅이죽 끓여 먹는 게요. 여기다가, 선 하나만 그으면, 케. 내 이름, 케이.”
“이거이 케이라?”
“네, 이거이 케요. 선 하나만 그으면 돼요.”
귀남은 저도 모르게 연필을 쥐고 따라 썼다. 게, 선 하나 그으면, 케. 케이는 귀남 옆에 바짝 붙어 앉아, 뒤따라 썼다. 이, 까지 쓰면, 이게 나예요. 케-이.
“아고저라, 이, 까진 몰라부난.”
“한 번에 한 개씩요, 호꼼씩요. 오늘 모르면, 내일 또 배워요.”
“기? 니가 나 배워줄 거라?”
“같이 배워요, 처음부터 다시, 가!”
귀남의 손은 케이의 목소리에 따라 고분고분 움직였다. 잘했어요. 다음은, 나. 빈칸 위에서 망설이는 귀남의 손 위에 슬며시 제 손을 올리고, 케이는 천천히 움직이며 썼다.
“보세요. 이게 나예요. 이제 나랑 같이 배워요.”
귀남은 케이의 손을 잡고 니은의 세계로 첫걸음을 디뎠다. 둘은 매일 밤 새로운 바위틈을 헤치고 다니듯 새 글자들을 캐냈다. 나와 남은 또 한참 멀었다. 시간당 아무리 못해도 소라를 30㎏씩 잡던 귀남의 손은 한 시간을 훌쩍 넘겨도 공책 한 장을 다 채우지 못했다. 하이고, 이다음은 또 이져불언에. 무사 또 몰르켜. 귀남의 엉덩이가 조바심을 내며 튀어 오를 때마다 케이는 귀남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욕심내지 말고요, 한 번에, 한 개씩 해요. 연필을 너무 꽉 잡지 말고요, 살살 달래듯이요. 물에서 전복 딸 때처럼요.
처음 혼자 힘으로 남을 쓰던 날, 귀남의 입에서는 모처럼 경쾌한 숨비소리가 흘러나왔다. 귀남은 이제 자신의 이름 석 자 중 두 글자나 쓸 수 있게 되었다. 아직 갈 길이 얼마나 멀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귀남은 처음으로 모르는 것이 좋았다. 케이가 자신보다 아는 게 많은 것이 좋았고, 늘 기우뚱하던 케이의 어깨가 책상 앞에만 앉으면 반듯하게 펴지는 것이 좋아서, 귀남은 새 글자 앞에서 자꾸만 멈춰 섰다.
“이것만 넘어가면 다음은 더 쉬워요. 어머니, 맨날 말하잖아요. 넘으면, 넘는다!”
“그래, 넘으민 다 넘는다.”
해녀박물관 개관일은 몹시 추웠다. 하지만 귀남과 케이는 칼바람에 오히려 코가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케이는 귀남의 팔짱을 끼고 박물관에 가서 낯모르는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귀남과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고, 귀남이 펜을 들고 수없이 함께 연습한 문장을 또박또박 써내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이런 날 올 줄 몰랐수다.
- 김귀남. 케이. 해녀
■ 수상 소감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습니다.
10년 만에 공모전에 글을 내면서, 당선되고 싶으면 좀더 ‘ 공모전 ’ 답게 , 더 기발하게, 헉!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케이(K)라는 주제를 본 순간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저에게 K는 뭘 너무 잘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씩씩하게 잘해내야 살아남는다는 불안 속에 사는 사람들. 제가 그렇듯이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되, 저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이야기가 좀 지루해도 시선이 따뜻하기를, 재기발랄보다 묵묵한 응원이기를, 참신하지 않아도 진짜 이 사람이 할 법한 말과 생각이기를. 그 마음을 지키는 척이라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 경쾌한 문장, 절묘한 구성을 뽐내고 싶은 (물론 그런 게 있지도 않지만) 마음을 나는 버릴 수 있을까?
올 한 해 , 한겨레21에 빚을 많이 졌습니다. 올 한 해 수많은 ‘K’들의 이야기를 취재하며 많은 고민과 질문을 남겨주신 기자님들과 심사를 맡아주신 세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3년간 ‘무적의 글쓰기’를 연재하며 저를 비롯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주신 김진해 교수님, 선옥님, 정선님, 혜욱님 외 함께 과제 글을 쓰고 나눴던 글쓰기 동지들께 경애의 마음을 전합니다.
김영희(필명)

김영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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