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유미연
맑은 종소리와 함께 편의점으로 들이닥친 것은 손님이 아니라 경찰이었다. 갑자기 웬 경찰이지? 찾을 땐 그렇게 안 온다더니. 하지만 종종 경찰들이 담배를 사는 경우가 있었으므로 최윤호는 굳이 긴장하지 않았다. 이 경찰은 경찰복을 입은 채 카운터 맞은편에 서서 몇 분째 이것저것 묻고 있었다. 경찰과 이야기하는 점주의 모습을 다른 손님들이 어떻게 바라보겠나. 어쩐지 불쾌하다고 생각했지만, 공권력 앞에서 대놓고 불만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의례적인 질문 몇 가지에 성실하게 대답하는 동시에 최윤호는 출입하는 손님들을 살갑게 맞았다. 질문에 대답하면 할수록 경찰은 자리를 더 오래 지키고 서 있었다.
여기까지 하시죠. 개인 업장에서 너무 오래 계시는 것 아닙니까. 저도 좋은 감정 없습니다.
최윤호는 옛 아르바이트생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녀의 근로 형태에 대해서는 최윤호도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으므로 경찰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전부 말하지 못했다. 첫인상이 별로였다는 것, 말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는 것, 그러다 개인 간 마찰로 그만두게 되었다는 것을 진술했다. 편의점 일도 서비스직이죠. 그 친구는 사회성이 너무 없었어요. 사회성도 지능인데.
기호수씨는 여기서 무슨 일을 했습니까?
그냥 다른 아르바이트생처럼… 똑같은 일을 했죠.
똑같은 일. 최윤호는 자신이 내뱉는 거짓말에 속으로 뜨끔했다. 기호수에게 남들처럼 똑같은 일을 기대했다가 놀란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물론 기호수가 제시하는 근로 형태에 자신도 동의하기는 했지만, 그 여자는 융통성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여자 아르바이트생치고 꼴도 별로였고. 여자 아르바이트생에게서 기대하는 외관이나 성격을 기호수는 하나도 충족하지 못했다. 다만 그럼에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집주인이 월세 때문에 실종 신고를 하긴 했는데, 기호수씨가 또 가족도 없으시더라고요. 보게 되시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물건이 실린 트럭이 편의점 앞에 다다르자 경찰은 자리를 떴다. 두 달 전 그만둔 아르바이트생에게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최윤호는 그녀의 신상 정보가 궁금한 적은 없었다. 다만 기호수가 제시한 근로 형태를 다른 아르바이트생에게 권할 때마다 다들 반발이 심했다. 그 정도의 시급으로는 자신들의 생활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자신이 출근해서 편의점 안에 있는 것 자체가 업무라는 식으로 대꾸했다. 매장에 나와서 자리만 지키고 있는데 무슨 업무를 한다는 것인지. 서로에게 합리적인 지점이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기호수를 제외한 아르바이트생들은 꼬박꼬박 최저시급을 받아갔다. 오직 기호수만이 최저시급의 절반을 요구했다. 한 가지 조건을 들어서.
현재 최저시급은 8590원입니다. 저는 그 절반인 4295원만 받겠습니다. 다만, 다른 업무를 제외한 계산 업무만 하겠습니다. 근로계약서는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말이 진짜인가, 농담인가? 최윤호가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믿지 않았다. 최저시급의 절반만 받고도 야간 카운터 업무를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생이라니. 편의점이 위치한 사거리엔 술집 등 유흥업소가 많아 대면해야 하는 손님들의 난도가 꽤 있는 편이었다. 무뚝뚝해 보이는 이 여자가 그런 손님들을 상대할 수 있을지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최저시급의 절반을 받겠다는 제안에 솔깃했다. 그녀에게 무슨 사정이 있어 이렇게 일하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아르바이트생에게 너무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면 곤란해지는 쪽은 점주임을 오래전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을 줬던 아르바이트생이 주휴수당 미지급으로 신고한 이후부터, 최윤호는 상하관계의 정의를 재정립했다.
그래, 나도 대기업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라, 계약서는 뭐. 다음주부터 나와봐.
결국 저녁 8시에 출근하던 외국인 아르바이트생을 강제로 내보낸 뒤 그 자리에 기호수를 세웠다. 기본적인 바코드 찍는 법을 알려준 후, 기프티콘 인식하는 법, 오늘 매출을 확인하는 법, 폐기 물품을 등록하는 법 등을 가르쳤다. 카운터 업무는 처음이 복잡하지 익숙해지기만 하면 금방 익힐 수 있는 내용이었다. 웬만하면 일할 때 스마트폰 하지 마. 시시티브이(CCTV) 다 확인하고 있으니까. 기호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을 가리는 단발머리가 앞으로 더 쏠렸다.
근데, 화장은 안 하나? 립밤 같은 거라도 좀….
기호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화장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인지, 앞으로 안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대답이었다. 카운터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이렇게 칙칙하면 쓰나. 최윤호는 기호수를 위아래로 천천히 훑었다. 건장해 보이는 체격, 화장기 없는 얼굴, 무심해 보이는 분위기. 외모적으로는 최윤호의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최저시급의 절반만 받으면서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겠다고 하니 점주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도 없었다. 그저 앞으로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 볼 계획이었다.
이리 와봐.
카운터 밖으로 나선 둘은 매대에 진열된 과자와 음료를 둘러보았다. 규모가 있는 편의점이라 생활용품부터 음료, 과자까지 품목이 다양했다. 형광등 불빛을 받는 제품들은 색색이 어우러져 선택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물품이 많으니 재고 정리나 확인도 한참 걸리는 일이었다. 들어오는 물건 규모도 어마어마해서 담당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은 자조적으로 사진을 찍어 가기도 했다. 오늘 물품 대박. 재고를 확인하고 제품을 진열하면서 중간중간 카운터 업무도 봐야 했다. 최윤호는 여기까지가 카운터 업무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상표가 돌아간 것 있으면 앞으로 돌려놓고. 선입 선출, 알지? 유통기한 잘 확인해서 진열하고. 우유 같은 경우는 이렇게 매대를 빼면 앞으로 쭉 빠져. 그럼 진열하기 쉬워. 컵라면 같은 경우에는 사다리 타고 올라가면 수납장에 재고가 있으니까, 비어 있을 때마다 채우면 돼.
최윤호가 사다리에 올라 직접 수납장 문을 열며 설명하고 있을 때, 기호수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려운 일을 설명한 것도 아닌데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기호수를 보면서 최윤호는 불안을 느꼈다. 왜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느냐는 반복적인 질문에 무심한 목소리의 대답이 들려왔다.
저는 계산 업무만 보는 것 아닌가요? 이런 업무까지는 할 수 없습니다.
최윤호는 직전의 불안이 눈앞에서 실현되는 것을 보고 아득해졌다. 방금 설명한 업무는 초등학생도 할 수 있을 만한 아주 간단한 업무였다. 매대 진열을 신경 쓰고 재고 확인을 하는 것은 편의점 업무의 기본이기도 했다. 내가 그렇게 무리한 것을 요구했나? 최윤호는 자신이 꽤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해왔다. 지금까지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아르바이트생 월급은 꼭 제날짜에 주었고, 폐기 음식이 남으면 두어 개 나눠주는 인심을 쓰기도 했다. 사람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굴러가는 법이었다.
아니, 사람 일이라는 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고….
이런 업무까지 해야 한다면 최저시급을 맞춰서 주셔야 합니다.
최저시급을 맞춰서 주려면 내가 너를 왜 뽑았겠니. 뭐 하나 볼 것 없는 너를. 최윤호는 자신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기호수의 행색을 보며 최윤호는 기호수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자리를 주는 것만으로도 좀,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요즘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최윤호는 막말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일단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기호수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편의점에서 이뤄지는 대강의 업무를 시연했다. 스태프룸에 있는 청소도구들의 위치, 만지면 안 되는 CCTV 버튼, 본사에서 지정한 음악을 재생하는 법까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싶었으나 기호수가 전혀 귀 기울이고 있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에 거기까지만 했다. 그래도 자기가 사람이라면 눈치껏 할 일을 하겠지. 자기가 사람이라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기호수는 사람이 아니었다.
최윤호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통해 수시로 매장의 CCTV를 확인하며 아르바이트생들을 감시했다. 업무 시간 중에 유튜브만 들여다보며 앉아 있는 아르바이트생들을 특히 혐오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난도가 낮고 편한 일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고치고 싶었다. 손님이 오면 일어서서 인사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유튜브를 들여다볼 시간에 보루 담배라도 정리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편의점은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 할 일이 없겠지만,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면 할 일이 너무나 많이 산재한 곳이었다.
어, 저기….
첫 출근을 해 일을 마친 기호수는 아침 6시가 되자마자 조끼를 벗고 바로 퇴근했다. 최윤호가 퇴근 전 할 일들을 일러주려고 했지만 기호수는 대답 없이 나가버렸다. 기호수의 찜찜한 얼굴을 뒤로하고 매장을 둘러본 최윤호는 순간 기함했다. 테이블에는 라면 국물이 그대로 튀어 있었고, 일반 쓰레기통에는 쓰레기가 꽉 차서 밖으로 쏟아질 듯 나와 있었다. 그래도 이런 청결 문제는 야간 시간대에 바빴다면 백번이고 이해하겠는데, 진짜 문제는 야간 물품이었다. 새벽 1시에 배차 신청을 해놓은 야간 물품이 스태프룸 앞에 그대로 쌓여 있었다. 샌드위치, 도시락, 유제품이 5시간 동안 상온에 있었다고 생각하니 그대로 부아가 치밀었다. 물론 기호수는 물품 업무까지 할 수 없다고 미리 말했지만, 그럼 그 시간에 누가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계산만 하고 갈 수 있단 말인가?
하! 나, 별 진짜, 사람 같지도 않은 게.
최윤호는 상온에 놓였던 우유들을 냉장고에 진열하며 기호수에게 보상금을 청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우유나 김밥이 전부 상해버렸다면, 그리고 이 음식을 먹고 누군가 치료비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모두 기호수가 배상해야 할 일이었다. 최윤호는 기호수에게 당장 전화해서 따져 물으려다 순간 다른 아르바이트생의 시급이 생각났다. 8590원과 4295원. 기호수가 그만둔다면, 야간 아르바이트생을 이 가격에 또 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융통성이 조금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잘 구슬리며 부탁한다면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최윤호는 귓가에 가져다 댔던 휴대전화를 천천히 가슴께로 내리며 설득할 거리를 고민했다.
새벽 물품 정리를 마치자마자 최윤호는 출근 시간대 손님들을 정신없이 맞았다. 주로 커피, 도시락, 샌드위치류를 사가서 미지근해진 음식들 때문에 혹시 항의가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했다. 모든 계산을 마치자 무릎 근처가 전체적으로 뻐근한 느낌이 들었다. 정신없이 계산할 땐 몰랐으나, 시간을 계산해보니 한 시간 동안 앉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물품 계산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윤호는 약간 앓는 소리를 내며 접이식 의자에 앉아 등을 기댔다. 지난 새벽 시간 동안 기호수가 어떤 근무 태도로 일했는지 CCTV로 확인할 참이었다. 휴대전화 화면을 크게 키우고 1.5배속으로 재생 속도를 조정한 뒤 느긋하게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뭐야, 이거?
최윤호가 매장을 떠난 뒤부터 계속, 기호수는 카운터 안쪽에 서서 아무런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포스기를 마주한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손님이 오면 계산하고, 계산이 끝나면 카운터 안쪽으로 다시 돌아가 꼼짝없이 서 있기만 했다. 새벽 4시, 새벽 5시, 새벽 6시. 자신이 도착하는 시간까지 기호수는 카운터 자리 안에서 몇 걸음만 옮길 뿐 자리에 앉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요즘에도 이렇게 요령 없는 사람이 있나. 최윤호는 왜인지 슬그머니 우려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규격에 맞지 않음.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믿지 못할 자질이었다. 최윤호는 크게 한숨을 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복잡해지자 목 뒤에서부터 통증이 올라왔다.
최윤호의 걱정과 우려와 달리 기호수는 지난 몇 개월간 자신의 계산 업무를 잘해냈다. 시재가 맞지 않는 법도 없었고 이상한 손님들의 시비에 감정적으로 대응하지도 않았다. 기호수의 무대응에 먼저 지치는 쪽은 항상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기호수는 끝까지 물품 업무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물류 트럭에서 물품이 들어올 때 편의점 안에서 문을 열어주는 것이 기본 예의임에도 기호수는 그런 예의조차 몰랐다. 최윤호는 고심 끝에 자정부터 2시까지 일하는 야간 아르바이트생을 추가로 더 고용하기로 했다. 면접을 보니 마침 위층 피시방에서 자정까지 아르바이트하고 편의점에 들렀던 남학생이었다. 그렇게 물품과 청소 업무까지 잘 해결되는 듯했다. 아르바이트 한 명을 더 고용해도 기호수의 야간 시급이 파격적으로 저렴했기 때문에 최윤호가 손해 보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일이 반복됐다. 기호수가 근무를 시작한 지 4개월쯤 되었을 때였나.
※재고 맞지 않는 상품: 병소주, 팩소주, 막걸리. 계속 없어지고 있음.
주간에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이 포스기 옆에 메모를 붙여놓았다. 그즈음 최윤호도 재고가 맞지 않는 품목이 늘어가고 있음을 체감했다. 과자부터 사발면, 황도캔부터 면도기까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다양한 품목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편의점 점주들만 모여 있는 단체대화방에서 상황을 토로해봤으나, 범인의 얼굴이 잡힌 CCTV를 캡처해서 붙여두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는 댓글만 달렸다. 범인을 잡겠다고 경찰에 신고해도 확실하게 찍힌 CCTV 장면이 없으면 처벌이 어렵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누가 편의점 점주 노릇이 쉽다고 했나. 본사 가맹비와 인건비를 빼면 최윤호가 가져가는 돈은 옛 회사의 월급만큼도 되지 못했다. 최윤호는 그때마다 턱관절 언저리부터 순식간에 올라오는 편두통을 느꼈다.
어, 저기, 요즘 이상한 손님 없었어? 뭘 숨기는 사람이라든가.
저녁 8시. 마침 시간에 맞춰 기호수가 출근했다. 최윤호는 매장에 들러 주간 아르바이트생과 누가 범인일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서로 짐작해본 범인은 근처 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 매일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학생들이 대여섯 명 단위로 편의점에 들어와 다양한 먹을거리를 사가곤 했다. 소주나 막걸리와 같은 주류는 학생들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품목이기 때문에 더욱 의심이 들었다. 스태프룸에서 나오는 기호수를 붙잡고 최윤호는 재차 물었다.
일하는 시간대에 오는 사람들 중에 말이야, 좀 수상한 사람 없었어?
전 아는 바 없습니다.
아니, 근무 중에 고등학생들 막 들어오잖아. 자세히 본 적 없었어?
그런 적 없습니다.
그런 적 없다며 기호수가 고개를 두 번 젓자 턱끝까지 오는 머리칼이 휘날렸다. 그런 적 없다는 대답이 지금 상황에서 말이 되는 소리인가. 최윤호는 어이가 없어 맞은편 주간 아르바이트생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 아르바이트생은 굳이 입 밖으로 말하지 않고 오직 눈짓으로만 의미를 전했다.
제가 말했잖아요, 쟤 이상하다고.
최윤호가 스태프룸 안에서 매장을 지켜본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간간이 담배나 껌, 커피를 사는 손님들이 들렀지만 수상한 낌새는 없었다. 밤 9시는 손님이 붐비는 시간대가 아니었으므로 최윤호는 살짝 긴장을 풀었다. 환하고 깨끗한 매장과는 다르게 검은 옷과 검은 머리의 기호수는 마치 그림자처럼 어둡고 음산해 보였다. 쟤는 끝까지 저러는구나. 최윤호는 그동안 ‘아르바이트생이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는다’는 손님들의 항의를 겨우 무마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 친구는 점장인 제 말에도 대답하지 않아요. 워낙 내성적인 친구니 이해해주세요. 그런 식으로 감싸오긴 했으나 사실 기호수를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최윤호였다. 아무리 내성적이어도 그렇지, 동네 장사는 친절이 생명인데. 이런저런 불만스러움을 떠올리던 그때, 새로운 손님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초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 모를 작은 여자아이였다. 계절에 맞지 않게 두꺼운 패딩점퍼를 입은 아이는 매장을 한 바퀴 빙 돌며 족발이나 순대를 집어 들었다. 그때까지는 최윤호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 아이가 CCTV 사각지대로 숨어 들어가기 전까지는. 워크인 냉장고 맨 왼쪽 모퉁이로 사라진 그 아이는 그 자리에서 나올 줄 몰랐다. 워크인 냉장고 왼쪽 가장자리. 그 자리에는 병소주와 팩소주, 토닉워터가 있는 자리였다. 스태프룸에 앉아 있던 최윤호는 즉시 튀어 올라 문을 열었다. 워크인 냉장고 쪽으로 가보니 얼굴이 익은 여자아이가 점퍼 주머니에 팩소주를 집어넣고 있었다. 이걸, 그냥 확. 최윤호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아이의 손목을 낚아챘다. 아이는 손에 쥐고 있던 팩소주를 힘없이 떨어뜨리며 겁에 질린 눈빛으로 최윤호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보자마자 최윤호는 이전에 다녀갔던 이 아이와 아이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동 급식 카드로 소주나 담배는 결제가 안 된다니까요.
아, 일단 해봐. 왜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 그래?
최윤호는 하는 수 없이 직접 결제가 불가한 것을 보여줬다. 포스기에서 결제가 불가하다는 창이 뜨고 알림음이 울렸다. 남자가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를 때마다 옆에 있던 여자아이는 불안한 눈빛으로 최윤호를 바라보았다. 남자가 사가는 품목은 대개 편육, 닭발, 소시지였다. 아이를 먹일지 본인 술안주로 먹을지 짐작이 안 가는 것들. 남자는 아이를 데리고 두어 번 더 와서 아동 급식 카드로 소주를 결제해달라고 고집을 부렸으나 이내 포기했다. 그땐 남자가 아주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남자는 찾아오지 않았고 가끔 아이가 찾아와서 음식물을 사곤 했으니까. 그런 줄 알았는데, 애한테 이런 짓까지 시키다니.
너, 지금 가서 아빠 모셔와. 안 그러면 경찰서 갈 줄 알아. 알았어?
지금… 아빠 안 계세요.
그래? 그럼 너희 집 주소 적어놓고 가. 아저씨가 찾아가서 아빠랑 얘기할 거니까.
최윤호는 아이가 불러주는 주소를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기 시작했다. 금화빌라 A동, B103호. 이만 가보라는 말 한마디에 아이는 도망치듯 매장을 달려나갔다. 금화빌라라면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가야 나오는 구석진 동네의 빌라였다. 찾아간들 만나주기나 할까. 대화가 통하기는 할까. 최윤호는 이마 언저리의 핏줄이 바짝 서는 것을 느꼈다. 왜 이렇게까지 일이 커졌는지. 생각보다 복잡한 상황에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어서 오세요.
기호수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리자 최윤호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워크인 냉장고와 카운터는 서로 마주 보는 구조였다. 아이는 굳이 숨길 필요도 없다는 듯 대담하게 팩소주를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걸 못 봤다는 게 말이 되나. 그렇게 대놓고 주머니에 쑤셔넣고 있었는데. 주류 재고가 맞지 않은 기간은 벌써 4개월이나 되었다. 그동안 없어진 품목들의 가격을 합하면 충분히 목돈이 되고도 남았다. 대체 쟤는, 저기 서서 뭘 하고 있던 거야. 최윤호는 기호수의 계산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기호수는 두 손을 모은 채 서 있었다.
너, 일하는 동안 수상한 사람 없다고 하지 않았어?
전 아는 바 없습니다.
아니, 봐봐. 카운터에서 워크인까지 바로 직선거린데. 애가 팩소주를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고. 그런데 그걸 못 보고 서 있었어?
봤습니다.
봤다고?
최윤호는 순간 아연했다. 봤다고? 이게 맞는 말인가. 목격해놓고도 아는 바가 없었다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인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대답이었다.
봤으면, 봤으면 네가 제지했어야지!
저는 계산 업무만 보는 것 아닌가요?
내가 시급 줘가면서 사람 세워놓는 이유가 뭔데. 그런 거 감시하라고….
그런 업무까지 해야 한다면 최저시급을 맞춰서 주셔야 합니다.
거기 서 있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그게!
최윤호의 언성이 높아졌다. 카운터 위에 놓인 라이터나 전자담배를 집어다 기호수의 얼굴에 던지고 싶었다. 손님들한테 이런 식이었구나, 이런 식이었어. 최윤호는 자신이 기호수에게 뭔가를 많이 요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카운터 업무를 보는 김에 겸사겸사할 수도 있는 기본적인 일을 요구한 것뿐이었다. 사람이 하는 일 중에 맡은 역할만 정확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단 말인가? 특히나 편의점이라는 이 특수한 공간 안에서.
조끼 벗어놓고 그냥 나가. 필요 없어. 앞으로 출근하지 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주휴수당이니 최저시급이니 따져서 신고하기만 해봐. 바로 블랙리스트에 올려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절대 못하게 해줄 테니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기호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만 반복했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야 기호수를 카운터 밖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알기는 할까. 물어봤자 속 터지는 대답만 돌아오겠지. 만일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최윤호도 기호수를 계속 고용했을지 모른다. 기호수가 눈치껏 다른 일도 같이 해냈더라면 그렇게 충동적으로 내쫓지 않았을 것이다. 다들 기본적으로 하는 일들만 요구했으니까. 하지만 며칠이 지난 후 최윤호는 기호수의 빈자리를 슬슬 걱정했다. 사라지는 물건값보다 야간 아르바이트생 시급에 더 큰 돈이 든다는 것을 계산해본 이후였다. 새로 면접 보는 아르바이트생들은 기호수와 같은 근무 형태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최윤호는 기호수의 마지막 근무 날짜를 보며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실례하겠습니다.
몇 달이나 지났을까. 지난번의 경찰이 다시 찾아왔다. 왜 자꾸 찾아오는 거야, 재수 없게. 최윤호는 전혀 반갑지 못한 표정으로 경찰을 바라보았다. 오후 2시30분께라 매장 안에 손님은 없었지만, 이런 시간대를 이용해서 진열대를 정리하고 물품도 채워야 했다. 최윤호는 카운터 안쪽 자리에서 팔짱을 낀 채 경찰의 말을 기다렸다. 경찰은 말하려다 말고 한참을 머뭇거리다 갑자기 생각난 듯 질문을 던졌다.
기호수씨 일인데요, 그… 혹시 채용하실 때 등본도 받으셨나요?
아니요. 갑자기 일하겠다고 찾아와서 그 자리에서 채용했어요. 근로계약서 쓰고요.
근로계약서. 경찰은 그 단어를 한 번 중얼거리더니 다시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수첩에 ×자를 그려넣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어… 기호수씨가 어제 자로 사망했습니다. 사망 이유도 특이하고, 무연고 시신이라 처리에 어려움이 많네요.
사망이요?
최윤호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일단 입을 다물었다. 무연고 시신임에도 굳이 여기까지 찾아온 경찰의 저의가 궁금하기도 했다. 주변 가까운 사람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일이 있긴 했으나 왜인지 기호수만큼은, 기호수만큼은 죽음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상이었다.
네. 어제 자 오후 11시05분경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사망 방식이 사고인지, 자살인지. 비 오는 날에 갑자기 가로등 안정기를 건드렸어요. 고압 전류 감전으로 즉사하셨습니다. 그때 입고 있던 의상이 이겁니다.
경찰은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 한 장을 최윤호 앞으로 내밀었다. 책상 위에 펼쳐진 것은 편의점 조끼와 명함이었다. 명함에는 기호수의 이름과 함께 지점명도 같이 적혀 있었다. 아니 왜 하필 이걸 입고. 명함이라도 떼든가. 최윤호는 뭔가 낭패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기호수가 자신에게 마지막까지 손해를 끼치고 간다고 생각하자 더 이상 거들떠보고 싶지도 않았다.
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 친구 말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저도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어떻게 처리하든 이제는 제 알 바가 아닙니다. 나가주세요.
경찰은 기호수의 연고자에 대해 더 알아내보려 했으나 최윤호는 듣기를 거부했다. 최윤호의 강경한 태도에 경찰은 일단 물러서서 매장 밖으로 나갔다. 경찰차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후 최윤호는 매장 밖을 나와 바깥바람을 맞으며 두통을 달랬다. 사실, 최윤호는 기호수가 마지막으로 매장을 나가는 순간 조끼와 명찰을 빼앗지 않았다. 기호수의 고집을 한풀 꺾어놓고 싶은 마음만 있었다. 기호수 같은 사람을 매장에서 일하게 해주는 점장은 자기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호수는 이후 정말로 보이지 않았고, 이런 황당한 방식으로 자신의 마지막을 전해온 것이다.
어쩌면 매장에 다시 찾아오기 위해 조끼를 입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마지막 근무일에 너무 매정하게 내보내서 차마 돌아오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제의 폭우 속에 가로등을 건드린 건 대체… 여기까지만 생각하고 최윤호는 기호수에 대한 생각의 전원을 꺼버렸다. 어차피 이해의 영역에 존재하지 않던 대상이었다. 알아내려고 할수록 경찰과 엮일 일만 생길 것이다. 최윤호가 이런저런 잡념을 뒤로하고 매장 안에 들어서자마자 휴대전화에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아직 아르바이트 뽑으시나요? 야간 시급은 최저의 1.5배로 주나요?
최윤호는 답장하지 않았다. 어떤 대답은 대답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답이 되었다. 최윤호는 본사 트럭이 들어올 때를 기다리며 편의점 출입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본사 트럭의 긴 배기음이 골목 끝에서부터 올라왔다. 트럭을 바라보며 최윤호가 양팔을 크게 흔들자 트럭은 편의점 앞에 멈춰 섰다. 본사에서 나온 설치기사는 하얀 종이상자를 무겁게 들어 올리며 이 상자를 어디에 둘지 물었다. 글쎄, 일단 콘센트가 가까운 쪽에 설치해야 하지 않을까요. 최윤호는 카운터 안쪽에 들어가 콘센트를 꽂을 만한 자리를 손으로 더듬었다.
이상하다. 분명 이 위치쯤에 있었는데. 최윤호는 전류가 흐르는 전선을 손끝으로 헤집으며 콘센트를 찾기 위해 애썼다. 수그려 앉은 채로 고개를 숙이자 얼굴 쪽으로 피가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기사는 하얀 종이상자를 카운터 위에 올려놓고 바닥을 더듬는 최윤호를 내려다보았다. 최윤호는 콘센트를 한참 찾다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기사를 올려다보았다. 기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마주 보자 최윤호는 천천히 일어나 기사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설치기사님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수강 소감
많은 불면의 밤을 지내면서 이런저런 소설을 구상만 했습니다. 그동안 소설의 형식으로 글을 쓰지 못했던 이유는 제 문장 때문입니다. 제 감정이 너무 앞서나가 문장이 미처 감정을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올해 들어서야 제 문장이 일상 속 ‘기호수’를 포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내면에서 올라오는 질문을 이 소설로 조금이나마 대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기계처럼 일하길 바라는 이 세상 속에서, 부디 이 세상의 모든 기호수가 안녕하기를 바랍니다.
소설의 첫 신호탄을 수상의 형태로 터뜨리게 돼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 소설을 읽고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옆에서 늘 글을 써보라고 지지해주던 친근한 벗들, 첫 독자가 돼준 창, 문학의 깊이에 대해 알려주신 많은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성실하고 오래도록 글을 쓰겠습니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자, 이제 시작이야. 내 꿈을!

유미연 제공
유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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