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교수는 “근대적 이분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세계와 시선을 제시하는 작품을 만나지 못해 아쉽다”고 했습니다. 서윤빈 소설가는 “다른 세계를 설득하는 힘”을 기를 것을 당부했습니다. 임소연 교수는 그럼에도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오래된 세계의 이야기가 더 많이 쓰이길” 바라는 마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진행·정리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 편집자주
에스에프(SF)소설은 우리가 가져본 적 없는 시선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전통’ 문학에 비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다. SF소설은 인공지능, 기계, 로봇, 자연 등 비인간이 인간에 버금가는 주도적 행위자로 사건을 만들어간다. 사건과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됨으로써 인간 문제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SF소설을 읽을 때면 인간과 기술, 인간과 자연, 또는 선과 악이라는 근대적 이분법을 폐지하고, 이 세계를 삼분, 사분, 엔(N)분 하는 새로운 시야를 기대한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시선, 새로운 세계를 제시하는 작품을 만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박준수의 ‘매생이 전복죽’은 통역사로 일하는 주인공이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일자리를 빼앗기는 상황을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다만, 인공지능의 출현 앞에서 저항과 굴복 중 양자택일하라고 요구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조주영의 ‘마늘장아찌’는 경조사비 송금 등 인맥을 관리해주는 인공지능에 얽힌 에피소드를 개연성 있게 전개했다. 그렇게 쌓은 인맥이 실은 두루마리 휴지처럼 얄팍하게 끊어지는 것임을 자각한다는 점에서 인공지능 시대의 진정한 ‘인간관계’에 대해 되짚어보게 하는 소설이다. 서비스 해지로 문제를 해결(회피?)하는 것은 이야기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송새옷의 ‘선한 손길의 사회 세계’는 장면 하나를 단도직입적으로 제시해 도덕적 행위마저 인공지능이 통제하는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현장감과 개연성을 갖추었다. 마무리에 그럴듯함이 떨어지는 게 아쉬웠다. 그 외에 조이장의 ‘아빠 어디야’, 박소람의 ‘엔터’를 흥미 있게 읽었다.
김진해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다른 세계를 설득하는 힘이 필요하다 본심에 오른 17편을 읽으며 든 생각은 AI가 많은 이들에게 가능성이라기보다는 불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수의 작품만이 AI의 긍정적 측면을 조명했으나 그조차도 AI에 뭔가를 기대한다기보다는 인간에게 실망한 결과로 보였다. 아쉬운 것은 어느 쪽이든 AI와 인간의 필연적 공생에 관해 입체적 시선을 보여주는 작품은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대다수 응모작이 AI에 대한 ‘어디서 본 듯한’ 관념에 기대고 있거나 쉽게 상상 가능한 반사 반응에 의존하고 있었다. 손바닥문학상은 전통적인 단편소설보다 짧은 원고를 모집하는 만큼 평범한 아이디어를 높은 완성도로 보완한다는 전략은 쉬이 성공하기 어렵다. 형식에 대한 고민이 좀더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작품이 SF 장르였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굳이 먼 미래나 다른 세계로 시공간을 옮겨놓지 않더라도 AI에 관해 충분히 논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SF 장르를 선택하는 일이 세계관을 편리하게 구성하기 위한 변명이 아니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다른 세계를 다루기 위해서는 충분한 의미와 그를 설득하는 힘이 필요하다.
대상작을 선정하지 못해 유감이다. 아이디어와 사유, 완성도에서 충분한 문학성을 갖췄다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작품이 없었다. 앞서 소재를 다루는 솜씨와 경향에 관해 많이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번 심사의 관건은 완성도였다. 다음 응모에서는 좀더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상대적으로 균형 있는 시선을 보여주거나 형식에 대한 고려가 있는 작품들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마늘장아찌’는 ‘압도적 유한’이라는 AI 서비스의 핵심을 잘 찔렀다. 차기작에서는 작가 특유의 쾌활한 진행이 재미를 넘어 아이러니를 만들어내거나 서늘한 깊이를 드러내는 데까지 나아가기를 바란다. ‘매생이 전복죽’은 통번역이라는 전문 분야에 AI가 어떻게 틈입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그렸다. 설득력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었다. 디테일한 설정이 서사의 밀도로까지 이어졌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선한 손길의 사회 세계’는 형식에 대한 고려가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부조리극을 만들어내는 감각에 비해 세계를 설득하는 힘이 아쉬웠다. 다음에는 더 정제된 작품으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 외 당선작으로 호명하지 못한 작품 중에는 ‘프시케의 시종’이 기억에 남는다. 초반부에 보여주는 아이러니와 글을 이끌어나가는 솜씨가 주목할 만했다. 중반부터 서사가 중심을 잃고 클리셰로 추락하는 문제를 해결한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
서윤빈 소설가
나의 심사 기준은 처음부터 명확했다. 현실에 발붙인 인공지능 이야기. 누군가의 일상과 일터에서부터 뻗어 나가는 인공지능 이야기. 반전과 드라마가 넘치는 이야기보다는 심심하더라도 촘촘한 이야기를 읽고 싶었다.
이 기준에 가장 잘 맞았던 작품이 박준수의 ‘매생이 전복죽’이다. 작가가 실제로 동시통역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동시통역의 현장과 통역 인공지능의 도입이 가져온 크고 작은 변화를 현실감 있게 묘사한다. 인공지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 의아했는데 마지막에 ‘매생이 전복죽’의 엉터리 번역어가 등장하며 전체 이야기를 이리저리 곱씹게 만드는 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조주영의 ‘마늘장아찌’는 또 다른 차원에서 현실적이다. 가상의 자아들이 살아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세계를 현실 세계의 내가 신경 써야 하는 지금의 삶은 얼마나 번거롭고 비효율적인가. 그 수고를 덜어주는 인공지능 서비스라면 충분히 있을 법하게 느껴졌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관계를 인공적으로 처리한다는 발상이 너무나 합리적으로 느껴지면서도, 그 반박할 수 없는 효율성이 왜 거부감을 일으키는지 생각하게 하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송새옷의 ‘선한 손길의 사회 세계’는 나의 심사 기준에서 가장 멀어서 오히려 눈길이 갔다. 이 작품은 인공지능 시스템이 개개인의 선행을 유도하고 노동자를 스트레스로부터 보호하며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이상적인 사회에서 벌어진 한바탕 소동을 다루고 있다. 이게 말이 되나 싶은데 그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질 때, 이야기가 주는 쾌감이 있다고나 할까. 하 하 하!
인공지능이 아직은 우리에게 낯선 존재구나 싶다. 아쉽게도 수상권에는 들지 못했지만,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를 떠올리게 했던 심지안의 ‘모던 타스크’가 기억에 남는다. ‘매생이 전복죽’과 ‘모던 타스크’, 둘 다 인공지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꼭 필요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인간의 노동을 다룬다.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오래된 세계의 이야기가 더 많이 쓰이기를 기대한다.
임소연 동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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