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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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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성해나 작가 “작가는 시대의 몸살을 함께 앓는 사람”

제17회 손바닥문학상 심사위원 성해나의 ‘쓰는 세계’…“사회문제를 쓰는 것은 살과 뼈에 새겨진 소신”
등록 2025-11-06 22:36 수정 2025-11-07 11:36
성해나 작가. 성해나 제공

성해나 작가. 성해나 제공


“작가는 시대의 몸살을 함께 앓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2015년 12월, 그해 손바닥문학상에 ‘수평의 세계’를 보내고 대상을 받은 성해나 작가는 수상소감에 이렇게 썼다. 당시 작가는 문예창작과를 다니는 대학 신입생이었다. “넘어져도 상관없으니 털고 일어나자는 치기와 패기로 소설을 썼”다는 작가는 첫 마음 그대로 세상의 통증을 섬세하고 대담하게 써왔다.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뚜벅뚜벅 문예지에 투고해 발표해온 작품들을 묶어 2022년 펴낸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에는 제주 예멘 난민 사태, 공동화돼가는 농촌, ‘1990년대생’에 대한 기성세대의 오해 등 2018~2020년대의 풍경이 빼곡하다. 2025년 3월 출간된 두 번째 소설집 ‘혼모노’에서 이야기의 템포는 빨라졌고, 흡입력은 진해졌다. 재미동포의 눈으로 본 태극기 집회를 그린 ‘스무드’, 몸주를 소녀 신애기에게 빼앗겨버린 30년차 박수무당의 분투를 쓴 ‘혼모노’ 등은 읽으면서 영상이 재생되는 기분이 든다. 박정민 배우의 추천사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는 적확한 글이다.

열일곱 번째 손바닥문학상은 손바닥문학상으로 글쓰기의 세계를 다진 성해나 작가가 심사위원으로 함께한다. 수상자에서 심사위원이 된 10년 동안 성해나가 ‘써온 세계’를 전자우편으로 묻고 답을 들었다.

“사회, 노동, 소수와 끈끈히 이어져 있던 손바닥 작품들”

 

—2015년 손바닥문학상에 글을 보냈습니다. 손바닥문학상을 알게 되고, 공모에 응한 계기가 궁금해요.

“유년기부터 한겨레21과 씨네21을 줄곧 읽어왔습니다. 손바닥문학상도 한겨레21 지면을 통해 접했어요. 신수원 작가의 ‘오리 날다’(제1회 손바닥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와 이슬아 작가의 ‘상인들’(제5회 손바닥문학상 가작 수상작)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손바닥문학상이라는 명칭도 의미 있었어요. 손바닥을 쓸면 그 사람의 삶이 느껴지잖아요. 손바닥의 굳은살, 땀, 상흔은 우리의 나이테 같아요. 제가 읽은 손바닥문학상 수상작들은 모두 사회, 노동, 소수와 끈끈히 이어져 있었어요. 그 손을 놓지 않고 오래 맞잡고 싶다는 진심이 느껴지는 작품도 많았고요. 그 점이 좋았고, 제가 쓰고 싶은 글의 지향점과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시대와 호흡하려 애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써야겠다는 마음은 ‘결심'에 가까운 것인가요, 다가오는 것인가요?

“손바닥문학상 수상소감에도 적었더라고요. ‘작가는 사회의 몸살을 함께 앓는 사람’이라고요. 그 마음은 녹슬지 않았어요. 아마 글을 쓰는 동안 변치 않을 것 같아요. 제 결심이자 살과 뼈에 새겨진 소신이죠. 소신은 작금과는 동떨어진 (누군가에게는) 낡은 단어지만 저는 이 말이 품은 옹골차고 굳센 결의가 좋아요. 사회문제에 눈을 돌리고, 그것을 재창조해 새로운 의미와 의문을 만드는 집필의 과정이 늘 의미 있다고 여깁니다.”

-소설집 ‘혼모노’에 수록된 ‘스무드’에는 한국을 방문한 재미동포의 시선으로 본 종로와 태극기 집회가 인상 깊게 그려져 있습니다. 소설을 쓰기 전 소설에 등장하는 고급 주택을 묘사하기 위해 부동산을 통해 한남동 고급 빌라에 가보고, 태극기 집회도 직접 참여했다고요. 소설을 쓰기 위해 현장에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흔히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잘 쓴다고 하잖아요. 저는 엉덩이가 가벼워야 더 많은 글감을 모으고, 소설이 진로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항상 엉덩이를 가볍게 하고 쓰는 것 같아요. 소설에 필요한 것들을 모으기 위해 그 일을 겪은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이 되어보는 체화의 과정이 소설 쓰는 데 큰 동력이 됩니다.”

—첫 장편 ‘두고 온 여름’에 실린 인터뷰에서 “‘빌드업’하는 시간을 오래 가져야 비로소 쓸 수 있더라고요. 인물의 전사를 면밀히 생각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건축을 좋아한다고도 하셨어요. 어떤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으면 건축물을 설계하듯 여러 배경과 설정을 조합해서 최적의 설정을 만드나요?

“서사를 구축할 때는 소재나 메시지를 충실히 각인하고 요소를 더하고 빼며 배분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인물을 만들 때는 그런 과정이 무용해요. 건축물을 설계할 때 가장 중점이 되는 건 ‘인간’이기도 하겠지만, ‘효율’이기도 할 것 같아요. 최적의 동선을 짜고, 최선의 테크닉으로 설계도를 다듬어야 하죠.

하지만 소설의 구심점은 효율보다는 인간입니다. 냉철하고 예리하게 내면을 파고들 필요도 있지만 반성과 성찰, 오해와 의심을 거쳐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빚어내고 받아들이는 지난한 과정을 수반해야 합니다. 그건 효율적이지 않고 답이 정해져 있지도 않지만 중요합니다. 이해가 인간을 ‘이타적 존재’로 묶어두는 촘촘하고도 풀리지 않는 끈인 것 같아요.”

“온전히 알 수 없어도 가까이 다가가볼게”

 

—작품 속 할머니들이 인상적입니다. ‘오즈’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 ‘화양극장의’ 전직 스턴트맨이자 동성을 사랑하는 여인 이목씨, ‘언두’의 청각장애 할머니 등 작품 속 노인들이 굉장히 풍부하고 다층적입니다.

“저에게 할머니는 다정한 지지자인 것 같아요. 유년기부터 할머니 손에서 컸는데요. 사랑하는 마음은 같아도 내심 자녀의 성취와 발전을 바라는 부모와 달리, 할머니들의 애정은 그저 잘 자라기를 바라는 데 닿아 있다고 여겨요. 초기작에서 할머니가 ‘다정한 지지자’였다면 지금은 그 결이 좀 달라진 듯합니다. 노인을 주인공으로 둔 소설을 쓰며 그들을 그저 받쳐주는 존재, 기성으로 표하는 게 납작하다고 인지한 것 같아요. 욕망하는 주체, 비정하고 비열한 대상, 우리와 다르면서도 닮은 과거이자 현재, 미래로 그리고 싶었죠. 30년차 박수무당에게서 신애기로 몸을 옮겨가는 ‘혼모노’의 장수할멈뿐 아니라 며느리와 경쟁하는 ‘잉태기’의 시부 역시 그런 존재예요.”

—작품 속 인물 중에 가장 구상하고 그리기 어려웠던 인물은 누구인가요? 어려움은 어떻게 해소했나요?

“소설 ‘언두’의 인물들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농인인 할머니, 코다(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자녀)인 도호, 그들에게 틈입해 관계를 이루는 유수라는 여성의 서사예요. 제가 감지하거나 겪지 못한 사건을 지문처럼 품고 태어난 인물이기에 더 조심스럽게 그렸던 것 같아요. 이 소설을 통해 ‘언어’와 ‘이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교감과 이해를 위해서는 언어가 필요하지만, 어떤 난폭한 언어는 사람을 해치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죠. 같은 언어를 쓰는 이들 사이에서 언어는 요람이고 고향이지만, 다른 언어를 쓰는 이들 간에는 불통만 일으키는 수단이에요. 농인에게도 수어라는 언어가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전혀 닿지 않죠. 그 한계를 소설로 담고 싶었어요. 나는 너희를 몰라, 온전히 알 수는 없어도 가까이 다가가볼게, 라는 마음을 품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인물에게로 서서히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이번 손바닥문학상의 주제는 ‘케이’(K)입니다. 작가님이 ‘K'를 주제로 쓴다면 어떤 소재를 택하실 건가요?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건 아무래도 ‘K-컬처’죠. 제가 이 주제를 받았다면 ‘스무드’ 같은 소설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워낙 넓은 폭을 지닌 주제라 다채로운 소설이 쏟아지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칼륨의 원소기호도 생각나고, 카프카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도 떠오르고요. 이렇게 고민하다보니 2관(한 작가가 두 가지 주요 문학상을 동시에 또는 순차적으로 받는 경우를 뜻함)을 노려볼까… 하는 사념도 드네요.”

—10년 전의 성해나와 지금의 성해나가 쓰는 법은 무엇이 가장 크게 달라졌나요?

“초심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인터뷰를 준비하며 예전에 쓴 일기를 훑어보았는데요. 일기에 ‘내가 주목해야 할 것. 사회와 인간’이라고 써 있더라구요. 사회를 직면하고 관찰하는 태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더라구요. 다만 저도 약관이 아닌 이립이 되었으니, 이십대에는 걸음마 떼듯 소설이 무언지 하나씩 더듬어보고 넘어지기도 했다면 지금은 우뚝 서는 법을 찬찬히 배우는 것 같아요. 즉답보다는 성찰하여 응답하거나, 확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의심을 견디는 방식을 취하는 것 같아요. 아마 10년이 지나면 또 달라져 있겠죠.”

 

“실패는 다음을 위한 진득한 연료”

 

—심사위원으로서 만나게 될 작품에 어떤 기대가 있나요?

“사람들이 품은 지문이 저마다 다르듯, 저마다의 결을 품은 좋은 작품을 만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항상 처음이 어려운 것 같아요. 처음 소설을 쓰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는 가능성이에요. 모든 처음은 가능성이 가장 농후한 시기고, 실패가 탐색이 되고, 헤맴마저 자산이 되는 시절인 것 같아요. 그러니 용기를 가져도 좋습니다. 글을 쓰다 막히고 주저앉아도 다시 일어나서 돌파구를 찾으면 되니까요. 그마저도 다음으로 나아가게 해줄 진득한 연료 아닐까요.”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제 17회 손바닥문학상을 기다립니다 

대상 논픽션·픽션 불문 ‘K’를 주제로 한 문학글

분량 200자 원고지 50~70장 (원고 분량을 지켜주세요. 감점 요인이 됩니다.)

응모 방법 아래아한글이나 MS워드 파일로 작성해 전자우편(palm@hani.co.kr)으로 접수

*전자우편 제목에 [제17회 손바닥문학상 공모] 쓰고 ‘작품명’ ‘응모자 이름’ 포함, 전자우편 본문에 응모자 연락처 기재

마감 2025년 11월30일(일요일) 밤 12시

발표 12월19일 배포되는 한겨레21 제1594호(12월29일치)

상금 대상 300만원, 우수상 100만원(제세공과금 본인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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