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조혜림
묵음
특수청소부 김동수가 일하는 장소는 언제나 침묵으로 가득하다. 누군가 떠난 자리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떠난 사람이 너무 오래 방치된 곳이라서 그렇다. 시간이 먼저 말라붙고, 다음에 냄새가 응고되고, 마지막으로 사람의 흔적이 굳어버린 방. 남들은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든 그 공간이 동수에게는 익숙하고 낯익은 사무실이다.
현관문을 열면, 집주인을 따라 죽어버린 공기가 기다렸다는 듯 뛰쳐나온다. 문틈에 오래 갇혀 있던 공기는 젖은 걸레 냄새처럼, 오래 썩은 해산물처럼 비릿하고 기분 나쁜 냄새를 머금고 있다. 방호복을 입고 방독면을 써도 느껴지는 짙고 무거운 냄새가 동수의 어깨를 거칠게 밀치고 문밖으로 빠져나간다. 동수 일행은 사춘기 반항아 같은 공기가 더 이상 가출하지 못하도록 재빠르게 문을 닫는다.
방 안에는 이름이 지워진 채 남겨진 것들이 있었다. 탁자 위에 굴러다니는 우편봉투는 눅눅하게 젖어 글자가 번져 있었고, 건조기에 돌렸는지 구불구불하게 구부러진 주민등록증은 사진 부분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일기장에는 무어라 쓴 것인지 알아보기 힘든 메모가 가득했다. 이따금 ‘아내’ ‘아들’ 같은 단어가 보였지만 도무지 무어라 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 양반 조현병이구먼.’
같이 일하는 직원 한 명이 바닥에 널브러진 약봉지를 들고 중얼거렸다. 약봉지에 적힌 이름조차도 물에 번져 좀처럼 알아볼 수 없었다. 집 안에 널브러진 조각들이 한 개인의 삶을 증언하려 했지만, 어느 것도 온전한 문장을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형사에게 이미 고인의 이름을 들었으면서도, 동수는 웬일인지 자꾸만 고인의 온전한 이름을 보고 싶었다. 선 넘는 짓이라는 것은 안다. 그의 일은 그저 조각의 끝을 닦아내고, 세상이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자리를 비우는 것뿐이다. 고인의 삶의 조각을 맞추는 일은 오롯이 형사나 변호사나 판사 같은 높은 나리들의 몫이다. 그럼에도 마음이 나리들의 영역을 기웃거린다. 닦아내고 떠나야 할 자리에서, 동수는 끈질기게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동수는 고인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침대를 정리하며 생각했다.
‘이 사람은 마지막 순간, 누구에게, 무어라 불리고 싶었을까?’
이름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늘 마음 한쪽이 묘하게 저렸다.
동수는 낮 동안 좀처럼 자신의 이름을 듣지 못한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그를 ‘어이’라거나 ‘형씨’라거나 ‘김씨’라고 불렀다. 그마저도 급할 때는 ‘저저저저, 저기!’라고 불리기 일쑤였다. 쪽방촌 이웃들은 그냥 그를 ‘아저씨’라고 불렀고, 마트 사장은 그를 ‘고객님’이라고 불렀다. 하루에 수십 번씩 불리지만 단 한 번도 본명으로 불리지 않는 삶. 그가 발견한, 이름을 가졌으나 이름 없는 사람들은 어쩌면 자신의 거울 같았다.
있는데 없는, 있으나 마나 한 그런 묵음 같은 존재. 하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일해야 하는 특수청소부에게는 그런 묵음의 삶이 딱 어울리는 거 아닐까, 라고 동수는 금방 합리화했다. 창문을 열었다는 이유로 항의가 빗발치는 일도 잦고, 몰래 숨어들어 물건을 훔쳐가려는 사람도 많아, 청소하는 시간에는 도둑처럼 문과 창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은밀하게 일한다. 한여름에도 예외는 없다. 비좁은 방 안에서 방호복을 입으면 몇 분 만에 땀이 흐른다. 더운 공기 속에서 피에 전 방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분주하게 움직인다.
땀 냄새와 먼지가 함께 코로 들어오는 순간마다 동수는 늘 같은 생각을 한다. 어서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지하에 자리한 클럽으로 도망치고 싶다고. 지상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색과 소리가 분수처럼 쏟아지는 곳. 동수는 그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딛는 상상을 하며 겨우 마음을 추스른다.
그곳에서 동수는 ‘수’(Su)라는 이름의 ‘드랙퀸’으로 산다. 화려한 가발과 속눈썹, 글리터로 뒤덮인 얼굴 아래, 그는 무대 위에서 조금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무대 조명을 받을 때만큼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그 순간만큼은 묵음이 아니었다. 좋든 싫든, 누군가의 목소리 속에 또렷이 발음되는 존재였다.
예명 ‘수’는 그냥 대충 지은 이름이었다. 애초에 이름이 없는 것처럼 살아왔던 동수에게 이름 짓기란 시답잖고 귀찮은 일일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자신의 이름 끝부분을 떼어내 ‘수’라는 예명을 지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손님이 그의 이름에 의미를 붙여줬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그 교수는 그의 이름을 듣고서 무언가 재미있는 것이 생각났다는 듯, 메모지까지 꺼내어 말했다.
“잘 봐요. 수는 영어로 Su…. 이렇게 쓰죠. 그리고 S는 시그마(Σ)와 비슷해요. 그러니까 이런 모양이죠. Σu! 시그마+u 같죠?”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알지 못했다. 동수는 중졸이었다.
“시그마는 ‘합’을 뜻해요. 그러니까 너를 합친다. 사람들을 모으다? 뭐 이런 의미로 생각하면 되지 않겠어요?”
동수는 처음엔 그 말을 농담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끔은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고 느꼈다. 낮에는 죽은 이가 흘리고 간 조각들을 모으고, 밤에는 무대 위에서 사람들을 유혹하는 춤을 춘다. 어쩌면 그는 진짜로 ‘무언가를 모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드레스의 지퍼를 올리는 동안 그는 항상 느낀다. 무대 위에서 부르는 ‘수’라는 이름은 낮의 ‘김동수’보다 훨씬 또렷하고 선명했다. 누구도 그를 김씨라고 부르지 않고, 누구도 저기요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는 여전히 묵음이었다. 지하 2층 클럽은 결국 세상에서 밀려난 것들이 모여 숨을 고르는 장소였다. 사람들은 화려한 조명을 밝히고 음악을 키우며 서로를 끌어안았지만, 그들의 웃음은 언제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여기는 누군가의 ‘밤’에만 존재하는 세계였고, 아침이 오면 조용히 감춰야 하는 취향이며, 지하에 있기 때문에 허락되는 또 다른 익명성이었다. 그는 무대 뒤 거울 속에서, 반짝이는 화장 아래 숨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깨닫곤 했다. 그는 어디에서든 단어 사이에 몰래 숨어든 알파벳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손님들은 공연이 끝나면 사진을 찍고, ‘수! 최고야!’라며 웃어 보이지만, 누구도 그의 진짜 이름을 묻지 않았다. 아티스트를 위한 배려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낮에 어떤 삶을 사는지, 그가 ‘수’라는 이름을 지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삼키고 견디는지. 그 누구도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문득 고개를 숙인다. 무대 위의 박수 소리가 아무리 커도, 종종 그것이 벽에 부딪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빈 울림처럼 들렸다. 그는 화려한 조명을 받는 순간에도 아주 깊은 곳에서 알고 있었다. 지상에서든 지하에서든, 낮의 동수든 밤의 수든, 자신은 결국 한 번도 온전히 불린 적 없는 사람이라는 걸.
지퍼를 끝까지 끌어올린 뒤, 그는 귀걸이를 걸고 거울을 마지막으로 들여다본다.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동수는, 아니 수는, 오늘도 피에로 같은 얼굴로 무대에 오른다. 오직 노래와 조명 아래에서 잠시나마 ‘발음되는 척’하기 위해.
클럽 273
동수는 밤마다 같은 길을 걸었다. 가로등이 뜨문뜨문한 뒷골목을 지나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 앞에 서면, 늘 같은 바람이 불었다. 지상에서는 느껴본 적 없는, 말 그대로 온도가 다른 공기였다. 동수는 핑크빛으로 반짝이는 “CLUB 273”의 간판 아래로 몸을 숨기듯 허겁지겁 들어섰다.
그는 과학도 수학도 몰랐다. 절대온도, 켈빈, 분자운동, 그런 말은 딱히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지하 2층이라는 위치와 그 단어들이 묘하게 잘 어울렸다.
“분자운동이 완전히 멈추는 상태, 그게 절대영도 0K(제로 켈빈)이야. 그리고 그게 –273.15°C고. 그러니까 이 클럽은 지상에서 살아가는 보통의 ‘나’가 멈추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지. 좀 어렵나?”
면접을 볼 때 들은 그 말은 괜히 멋져 보였고, 동수는 아! 하며 입을 벌렸다. 그 얼굴을 보고 클럽 주인장 K는 잠시 웃음을 터뜨렸다. 이후로 K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은 거의 없었다. K는 동수가 출근할 시간쯤이면 이미 완벽한 메이크업을 하고 새침한 표정으로 바에 앉아 있거나, 분장실 한편에서 디렉팅을 하고 있었다.
눈꼬리를 날카롭게 올려붙인 아이라인, 결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가발, 늘 한 톤 차갑게 내려앉은 여우 같은 표정. 그 표정 때문에 신입들은 모두 K를 어려워했다. 동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차갑다’는 것은 외적 성격이 아니라 정말 온도처럼 느껴졌다. 그가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공기가 살짝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동수는 K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었다. 손님도, 직원도, 거래처 사장도 모두 K를 ‘케이’라고 불렀다. 누구도 본명을 물어본 적이 없었다. K 스스로도 말하지 않았다. 그의 민낯을 본 적도, 화장을 지운 얼굴을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동수는 그를 묘하게 존경했다. 그 차가움이 오히려 프로다운 태도처럼 보였다. 누군가 지나치게 다정하면 금방 실망하게 되지만, K처럼 한없이 도도한 사람은 어느 순간 예상 밖의 따뜻함을 보인다는 걸 동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K가 가끔 동수를 불러 함께 술을 마신 날이면, 동수는 하루 종일 그 기억에 매달렸다. 그 몇 번의 술자리가 이상하게 동수의 마음 한편에 남았다. 어떤 감정인지, 동수 스스로도 딱 잘라 말할 수 없었다. 존경인지, 호감인지, 단순한 호기심인지 알 수 없었다. K에게서 들은 ‘케이'라는 이름이 생긴 과정도 동수의 마음에 애틋한 여운을 주었다.
케이라는 이름은 드랙 데뷔 시절, 당시 사장이 술김에 붙여준 이름이라고 했다.
“너 게이잖아. 그러니까 그냥 케이 해. 그리고 K는 묵음일 때가 많거든? 우리 삶하고 비슷하잖아.”
단순한 농담이었을 수도 있지만, K는 그 이름을 버리지 않았다.
“묵음일 때도 있고, 발음될 때도 있고. 그거 진짜 나 같아. 너 같고.”
그런 말을 하는 K의 표정은 낯설게 부드러웠다. 동수는 그 미묘한 얼굴을 오래 기억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K의 민낯을 보고 싶다고, 강렬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화장도, 가발도, 드레스도 벗어낸 맨얼굴. 천으로 가려지지 않은 진짜 피부의 온도. 그런 것들?
동수가 무대에서 공연하던 중, 술에 취한 관객이 그의 드레스를 잡아당겼다. 옷이 크게 찢어졌다. 조명이 비추는 가운데, 어깨 한쪽이 헐벗겨진 채로 그는 마지막까지도 춤을 췄다. 무대에서 내려온 그를 보자 K가 속삭였다.
“수! 내 방에 가봐. 숄 있어. 그거 걸치고 다시 나와.”
동수는 급히 K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닫고 조용해진 순간, 그는 비로소 숨을 들이켰다. K의 방은 K답게 정돈돼 있었다. 흐트러짐이 없는 차가운 방이었다. 화장품도 가발도 색색의 드레스도 오와 열을 맞춰 놓여 있었다.
동수는 그 열을 흩트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옷장을 뒤적였다. 그러다 옷장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낯선 우편물을 보았다. 봉투에는 굵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하늘공동체’
종교 단체? 봉사 모임? 딱 봐도 촌스러운 로고였다. 게다가 ‘공동체’라는 단어는 어쩐지 구린 냄새가 났다. 사이비라기엔 이름이 너무 어설펐고, 그래서 더 수상했다. 그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고 K가 들어왔다. 숨을 급히 들이마신 얼굴이었다.
옷장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본 K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숄은 의자에 걸쳐져 있는데.”
동수는 그제야 의자에 무심히 걸쳐진 보라색 숄을 발견했다.
“담요인 줄 알았어요. 함부로 막 뒤지려고 한 건 아니에요. 그냥….”
어린아이처럼 변명하는 동수를 보고 K는 피식 웃었다.
“그거, 그냥 옛날 거야.”
K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별다른 숨김 없이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난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됐거든? 뭐, 말이 좋아 베이비박스지, 그냥 엄마한테 유기당한 거야.”
‘유기’라는 단어에 동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정작 K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이어갔다.
“태어난 날도, 태어난 병원도, 부모도, 어떤 기록도 없었대. 이름이 없어서 한동안 ‘아가야’라고 불리다가, 그 ‘하늘공동체’라는 곳에서 보육되며 대충 이름을 하나 받았어. 촌스러운 이름이었지.”
동수가 은근슬쩍 본명을 물어보자, K는, 무연고자로 분류된 아이들에게 일괄적으로 붙이는 성씨 비슷한 것이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냥, 난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된 이름 하나 없었던 거지. 공동체에서도 이름 하나 대충 붙여줬고, 술집 사장은 농담 삼아 K라고 불렀고. 근데 아무렴 어때?”
그는 그러고는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그 말을 하는 K의 얼굴은 무척이나 예뻤다. 적어도 동수 눈에는 그랬다. 그리고 동수는 그 예쁜 얼굴을 보았을 때 알았다. K에게 가는 감정이 존경인지, 동경인지, 연민인지, 욕망인지,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저 ‘K의 민낯을 보고 싶다’는 생각은 이제 확실한 감정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그날 밤, 동수의 머릿속은 온통 K의 말과 표정으로 가득했다. 무대에서 춤을 추면서도 의식은 항상 K를 향해 있었다. 음악 대신 K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리고 동수 자신 역시 온전히 발음된 적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으며, K의 새초롬한 표정을 따라 했다.
충만한 밤
클럽 영업을 마치고 나면, 새벽의 공기는 늘 묘하게 무거웠다. 조명이 모두 꺼진 무대 위는 방금까지 환호가 쏟아졌던 곳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고요하고, 홀에는 담배 냄새와 술이 마르며 남긴 단내가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막내인 동수는 마지막까지 분장실에 남아 드랙퀸들이 남기고 간 분주한 먼지를 청소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눈에서 떨어져 나온 눈물에 전 속눈썹 한 짝, 억세고 질긴 음모, 옷에서 떨어져 나온 싸구려 반짝이 장식까지 쓸어 담았다. 특수청소에 비하면 이런 잡동사니 정리야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
“수, 아직 멀었어? 적당히 하고 가.”
K가 불쑥 얼굴을 내밀고 말했다. K의 얼굴에는 아직 화장이 짙게 올라가 있었다.
“아직 샤워실 청소가 남아서요.”
동수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힘든 내색을 하면 엄살 부리는 것처럼 보일까봐 표정에 신경을 쓴 것인데, 평소 표정 관리를 할 일이 별로 없기에, 그게 더 역효과가 났다.
“그럼 같이 할까?”
K가 그렇게 말하며 먼저 샤워실로 들어섰다. 이제 막 공연복을 벗었는지, 민소매를 입은 K의 목선에 일자로 선이 그어져 있었다. 동수는 그 선을 따라 샤워실로 들어섰다.
샤워실 문을 열자마자 뜨거운 증기가 얼굴을 물들였다. 조명은 노랗게 깔려 있었고, 온도차 때문에 벽은 젖어 있었다.
“별로 더럽지도 않네. 물기만 대충 닦고 나가자.”
K는 수건을 길게 늘어뜨린 채 거울을 닦았다. 동수도 흘끔흘끔 곁눈질로 K를 보며 벽을 닦았다. 거울 밖에도, 거울 속에도 K가 있어, 마주 선 쌍둥이 같았다. 동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술기운 탓일까? K의 손등에서 흐르는 물방울을 본 순간, 그 물기가 샤워실 전체의 증기와 뒤섞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아니다, 동수는 술기운이 아니라 욕실을 가득 메운 이 증기 탓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이 뿌옇고 무거운 증기는 사람을 취하게 했다.
K도 그런 기분이었을까. 평소라면 절대 입 밖에 꺼낼 것 같지 않은 목소리가 그 증기 속에서 허물어졌다.
“내 이름이 뭔지 궁금해?”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밖의 K와는 다른 온도였다.
“케이 말고요? 네, 그냥, 뭐, 조금.”
K는 잠시 웃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 감춰둔 무언가를 꺼내는 듯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정충만이야. 성령 충만할 때 그 충만. 웃기지? 진짜 대충 지은 이름 같지 않아? 그렇게 애정도 없이 막 지은 이름이라 그런가 제대로 불러주는 사람도 없었어.”
동수는 그 이름을 조용히 따라 했다.
“정충만.”
K는 바로 고개를 젓고, 눈가를 찌푸리며 말했다.
“부르지 마, 쪽팔려.”
사람에게 이름이 있다는 건 보통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동수와 K에게는 너무 많은 조건과 상처가 붙어 있었다. 샤워실의 열기가 두 사람 사이를 채우기 시작했다.
돌연 쏴- 하고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졌다. 동수는 금세 흠뻑 젖었다. 얼굴로 흘러내리는 물을 두 손으로 닦으며 멍한 표정으로 K를 보자, K는 웃고 있었다.
“땀범벅이길래. 시원하지?”
물줄기가 바닥에 부딪히며 작은 소리를 냈다. K도 물줄기 아래로 스며들어 왔다. 둘은 한참 동안 물줄기를 맞았다. K는 속눈썹을 떼고,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짙은 화장이 한 꺼풀 벗겨졌다. 동수는 처음으로 K의 민낯을 보았다. 화장이라는 방어막이 모두 지워진 얼굴은 생각보다 더 어려 보였고, 생각보다 더 예뻤고, 생각보다 더 외로워 보였다.
동수는 손끝이 떨린다는 사실을 숨기지 못했다. 둘은 거의 동시에 다가갔다. 누가 먼저였는지 모를 만큼 자연스러웠다. 입술이 부딪칠 때, 증기 속에서 울리는 심장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겨우 붙잡아두던 무언가가 모두 흘러내리는 샤워기 물줄기 속에 실려 가는 듯했다.
동수는 K를 힘껏 끌어안았다. K도 마찬가지였다. 숨과 숨이 닿고, 이름과 이름이 뒤섞였다.
“케이든 정충만이든 상관없어요.”
동수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형은 그냥 형이고, 둘 다 예뻐요. 진짜로.”
K가 눈을 감았다. 그 표정은 방어를 내려놓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날 밤, 샤워실은 둘의 이름으로 가득 찼다. 하얀 눈이 천천히 내려 마당을 덮듯, 정충만, 케이, 동수, 수, 다시 케이, 다시 동수. 그 이름들이 천장에 부딪혔다가 조용히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둘은 마치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장난감을 허락받은 아이처럼 자꾸만 서로의 이름을 입안에서 만져보았다.
다음날, 동수는 특수청소를 마치고 차에 올랐다. 그리고 아이스박스에 넣어두었던 시원한 이온음료를 꺼내 단숨에 한 통 비워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이 맑아지자, 지난밤의 일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K의 얼굴을 떠올리자 웃음이 나왔다. 알파벳 하나로는 묵음이었지만, 이제 알파벳 둘이 만나 묵음이 아니게 되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동수는 충만했다.
K에게 연락하려고 휴대폰을 켜자 알림창이 미친 듯이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비정상적인 사인, 그걸 본 순간 동수는 본능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느꼈다.
클럽 273 단톡방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 동수와 K의 정사를 찍어 에스엔에스(SNS)에 올렸다는 제보였다. 입맞춤, 껴안은 순간, 샤워실 문틈으로 비친 실루엣. 들뜬 표정으로 뒤엉킨 두 사람의 얼굴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이거 누가 찍은 건데? 내부 사람이 찍은 거 아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여기저기 퍼지고 있는 게 문제라고.
-대표님, 이거 어떡해요? 반응 완전 살벌한데요. 이대로면 문 닫아야 해요.
K는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동수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대화창에 걸린 링크들을 타고 들어가, 사람들의 반응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동네에 이런 데가 있는 줄 몰랐다.”
“상인들 다 들고일어나야 한다. 애들 다니는 길목인데 저런 쓰레기장이라니.”
“이건 신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신성모독이라고요!”
“당장 영업을 중지시켜야 합니다.”
그 댓글이 힘을 얻고 실체화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클럽의 영업이 시작될 무렵, 주민과 상인들이 몰려와 행패를 부렸다. 종교 단체 사람들까지 가세해 클럽 앞에서 고함을 질렀다.
“동네 기운을 더럽히는 곳을 당장 없애라!”
“공동체를 위해 정화가 필요하다!”
K는 경찰과 구청에 항의했다. 동수도 옆에서 도왔다. 하지만 며칠 뒤 그들에게 돌아온 답변은 영업정지라는 명령이었다.
“‘기분 나쁨’ 죄로 폐업을 시킬 수가 있나? 이게 법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동수는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보건소나 구청에서 마음만 먹으면, 잡다한 조항을 들이대서 뭐 하나 법적으로 걸리게 만드는 거 일도 아니지. 여기 봐, 공식적 이유는 ‘위생 불량’으로 적혀 있잖아. 근데 위생이 불량한 데가 우리밖에 없겠어? 이 동네에서? 웃겨.”
K는 예상했다는 듯 사전통지서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그러고는 입구에 영업정지 스티커를 대충 붙여놓았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처럼 아주 대충. 그래서 동수는 조만간 영업정지 스티커가 떨어지고 다시 간판에 불이 들어올 거라고 희망적인 상상을 했다.
그러나 직원들은 당연한 듯 하나둘 떠났다. 그들은 동수와 K를 위로하는 척 따뜻한 말을 건넸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남긴 눈빛은 분명 차갑게 식어 있었다. 같은 세계에 사는 사람들조차, 자신의 이익과 손해가 걸린 일에는 냉정했다.
동수만큼은 달랐다. 당사자라서가 아니라, K이기 때문에 위로하고 싶었다.
“형, 괜찮아요. 다시 어떻게든….”
그러나 K는 동수의 말을 끊었다.
“수, 오늘은 그냥 돌아가줄래?”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지하 2층의 공기는 절대영도보다 더 차갑게 내려앉았다.
무연고자
그 후로 K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고, 메시지는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클럽 273에 찾아가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철문 위에 붙은 영업정지 스티커가 동수를 조롱하듯 붙어 있을 뿐이었다. 이곳이 정말 반짝이는 조명과 웃음으로 가득한 곳이었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고 싸늘했다. 그 고요함이 K마저 집어삼켰는지, K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동수는 여전히 특수청소부 일을 하며 숨죽여 살아가고 있었다. 간혹 기자나 유튜버 따위가 인터뷰를 요청하곤 했는데 당연히 거절했다. 그저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에게 연락이 왔다.
“김동수씨 맞나요? 정충만씨 아세요?”
질문으로 시작된 전화는 부고로 이어졌다. 경찰은 피곤이 잔뜩 밴 목소리로 덤덤하게 K의 죽음을 알렸다. K가 오피스텔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것이다. 며칠 동안 복도 전체를 뒤덮은 악취 때문에 주민들이 집주인에게 줄기차게 항의했고, 견디다 못한 집주인이 경찰을 데리고 올라가 문을 열었다고 했다. 동수가 만난 무연고자들의 사인과 흡사한 죽음이었다. 어째서 K가 그런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까? K는 무연고자가 아니다. 적어도 동수라는 지인이 있었다.
동수가 정신을 가다듬기도 전에, 경찰은 아무 감정도 실리지 않은 음성으로 덧붙였다.
“메모가 있었습니다. 청소 비용과 함께 김동수씨 이름이 적혀 있더군요. 특수청소 하시는 분이죠?”
동수는 바닥이 살짝 흔들리는 기분을 느꼈다. 숨을 들이쉬었지만, 폐까지 도달하지 못한 채 가슴 어딘가에서 막혔다. 경찰은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K를 ‘무연고자’라고 불렀다. 절차에 따라 시립 장례식장에서 합동장례가 진행된다고 했다. 동수는 바짝 말라붙은 입술에 침을 바르며 입을 뗐다.
“연고자 있는….”
그러나 말끝이 점점 흐려졌다. 현실이 바로 앞에서 무겁게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장례를 치른다는 건 단순히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큰돈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동수는 월세를 제때 내기도 빠듯한 처지였다. 본인이 모든 것을 끌어안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다. 부담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의 커다란 짐이었다.
동수는 K의 부탁대로 K의 마지막을 정리했다. 동수는 청소하며 K의 이름을 몇 번이고 불러보았다.
“케이, 미안해. 정충만. 잘 가.”
그는 혼잣말로 사죄를 반복했다. 손에 익은 동작들로 방을 금세 비워냈지만, 정작 동수의 마음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K가 남긴 물건은 많지 않았다. 그가 공연할 때 썼던 작은 왕관, 메이크업 박스, 옷가지 몇 개, 그리고 파일철 하나 정도였다. 파일에는 손으로 적은 계획들이 있었다. 드랙퀸 인터뷰를 준비하며 써 내려간 문장들. 유튜브 콘텐츠 기획안. ‘성소수자 쉼터 만들기’라는 제목 뒤로 연필 자국이 옅게 번져 있었다.
동수는 그 파일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K는 절대영도에서 살아간다고 했지만, 누구보다 절대영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가슴이 시렸다. 세상에서는 제대로 발음되지 않는 이름이었지만, 계속해 누군가에게 불리고 싶어 했을 그의 몸부림이 안타까웠다. 그런 마음을 생각하니, 이 작은 방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차갑게 느껴졌다. 동수는 K의 유품을 조심스럽게 정리해 작은 상자에 담아서 따로 분류했다. 그 외의 모든 짐은 특수폐기물로 묶어 전용차에 실어 보냈고, 집은 소독약으로 깨끗하게 소독해 마무리했다. 너무 익숙해서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 익숙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비수를 들이미는 것처럼 아팠다.
얼마 뒤 동수는 K의 납골당을 찾았다. 작은 유리창 너머로 K의 유골함이 보였다. 제법 키가 컸던 K인데, 이렇게 작은 항아리에 들어가다니, 삶이란 얼마나 단순하고 허무한 것인지. 동수는 기가 막혀서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난 뒤에야, 작은 명패에 K가 ‘쪽팔리다’고 했던 이름 ‘정충만’이 적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동수는 명패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그리고 네임펜을 꺼내 ‘정충만’ 옆에 아주 작게 ‘K’라고 적어넣었다. 그 글자를 적는 순간, 동수는 비로소 K가 두 개의 이름 중 어느 것도 버리지 못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둘 다 그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둘 다 그를 지탱했던 작은 온도였다.
납골당을 나서며, 동수는 지갑에서 낯선 명함 하나를 꺼냈다. 동수는 명함을 오래 바라보다 휴대폰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김동수입니다. 네, 지난번 말씀하신 특수청소부 드랙퀸 인터뷰, 그거 하려고요. 사진이요? 찍으셔도 됩니다. 예, 예. 어떻게 할까요. 분장하고 갈까요?”
동수는 납골당 출구로 향하는 계단을 힘차게 밟았다.
■ 수상 소감
방송작가로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며 순수문학과는 다소 멀리 떨어져 지냈습니다. 방송문학, 대중문학, 순수문학 모두 제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이기에 굳이 선을 긋고 싶진 않습니다만. 순수문학에 대한 열정이라고 해야 할지, 미련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감정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다 올해 초, 문득 다시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면 잘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가 혹시 좌절로 돌아오지는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참 기뻤습니다. 헛된 꿈을 꾼 것은 아니었구나, 좀더 꿈꿔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이런 희망의 빛을 비춰주신 한겨레21과 심사위원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늘 응원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혹시 제 작은 머리로 다 담아내지 못할까 염려돼, 감사의 인사는 조용히, 은밀하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기쁜 마음을 자양분 삼아 묵묵히 나아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조혜림

우수상 수상자 조혜림씨. 조혜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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