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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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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를 선물하자!

등록 2014-06-10 13:20 수정 2020-05-03 04:27

세월호 참사가 있은 뒤 전남 영광 인근에 사는 친구와 대화를 나눴다. 그 지역도 바다가 지척이니 지나가는 배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리겠거니 서로 슬프고 아픈 마음을 위로하며 수다를 떨었다. 그러던 친구가 정말 심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이 동네에 사는 것도 겁이 난다.” 무슨 소리인고. 그 친구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황톳빛 텃밭이 정말 마음에 든다며 봄이 오면 달뜬 목소리로 오늘은 냉이를 캤네, 쑥을 캤네 재잘재잘하던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털어놓은 사정은 이랬다. “멀지 않은 곳에 원자력발전소가 있잖아. 지난해부터 무슨 비리다 뭐다, 마피아다 뭐다 떠들지 않던?” 아, 그제야 친구의 시무룩하고 심각한 목소리가 이해됐다. 친구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도대체 뭘 믿을 수 있겠냐고. 동해안 쪽 발전소 문제가 있네 없네 뉴스 나오는 거 보니까 겁이 덜컥 나더만. 차로 가면 1시간 거리래도, 그게 잘못되면 떨어진 거리가 무슨 소용이여.”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였다. 기껏해야 아이들이 타는 대중교통의 안전은 문제 없을까, 날마다 다니는 체육센터에 금 간 데는 없나 두리번거리며 지내던 차였다. 온갖 뉴스는 안전 교육을 잘해야 한다느니, 세월호 주인은 어디어디로 도망다녔다느니로 도배되고 있다. 거기에 이제는 지방선거로 한두 주일은 후딱 지나갈 것 같다.

이 와중에 닥친 더위에 여기저기서 에어컨을 빵빵 틀어댄다. 나부터도 별 생각 않고 후텁지근한 공기를 못 견뎌 에어컨을 틀어젖혔다. 친구와 대화하다보니 뜨끔했다. 친구가 한마디 한다. “야야, 너 서울에서 전기 막 낭비하고 그러지 마라. 지난해에도 전기가 부족하네 마네 생난리였잖아. 난 차라리 더 울련다. 우리 그냥 전기 조금씩 쓰고 살자.” 친구는 너스레를 떨었지만, 진심이 느껴졌다.

그래도, 더운 건 너무 싫다. 지난해 한더위를 생각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그래, 부채다. 힘없는 부채 말고, 날개 빳빳하게 풀 먹인 한지로 만든 합죽선! 모양새는 좀 우스워 보일지라도 이동식 에어컨급 바람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기로는 조금 큼지막한 전통 방식의 부채만 한 게 없을 듯하다. 얼마 전에 태어난 손자 녀석의 땀 찬 엉덩이에도 솔솔 부채로 바람을 불어주며 올해 더위를 넘어볼까 한다. 마음 졸이는 친구에게 소포로 보낼 부채도 샀다. “친구야, 올여름 너도나도 이 부채로 시원하게 나보자. 전기 걱정은 살짝 접어두고.”

정은숙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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