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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책’이 당신에게 온 데는 특별한 인연이 있을 겁니다. 그 인연만큼 소중한 사람에게 건네주십시오. 걸어다니는 책은 개인이 가질 수 없고,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다니는 책입니다.”
10여 년 전에 2년 정도 매달 ‘걸어다니는 책’이란 놀이를 즐겼다.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골라 이런 내용을 적은 쪽지를 붙인 뒤 지인에게 건넸다. 책을 돌려가며 읽자는 취지였다. 그런 내가 몇 년 전부터 ‘전향’했다. 책 안 빌려주는 남자로 바뀌었다.
요즘 책의 존재는 갈수록 위태롭다. 책은 스마트폰 등 새로운 환경에 치여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새 책을 읽고 되팔 수 있다. 무엇보다 책은 사는 것보다 빌려 읽어도 된다는 인식이 널리 펴져 있다. 그만큼 책이 안 팔리니 출판사들도 책을 찍는 부수를 대폭 줄인다. 결국 소비자에게 이익인 행위가 출판의 다양성을 해쳐, 미래엔 불이익으로 되돌아간다.
이제 이 흐름에 작은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책을 만나는 다양한 문화- 작은 도서관 짓기, 오지에 책 보내기, 헌책방 이용 등에 한 가지 더 ‘레디 액션’할 책 문화가 필요하다. 바로 ‘책은 사서 읽자’는 것. 책 내용이 좋으면 빌려주지 말고 남도 사라고 권하자. 그래서 좋은 책은 많이 팔릴 수 있게 하고, 다양한 책들이 살아남도록 하자.
언제부턴가 물건은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아나바다) 게 생활의 지혜가 됐다. 나도 아나바다로 몇 가지 물건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신간 서적만큼은 아나바다에서 제외했다. 20대 초반부터 내가 읽을 책은 구입해서 읽자는 원칙을 세웠다. 이 원칙은 20여 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유효하다. 내 직장에는 급여와 별도로 지급하는 복지수당이 있다. 나는 이 돈을 모두 책을 구입하는 데 쓴다. 구입한 책을 읽기까지 몇 번의 계절이 바뀌기도 하지만, 새 책을 손에 쥘 때의 느낌은 중독성이 강하다.
책을 살리는 이 작은 브레이크로 다른 즐거움도 맛볼 수 있다. 며칠 전 오전 휴가를 낸 아침에 책장에 몇 달째 꽂혀 있던 책 한 권을 무심히 빼들었다. 몇 페이지를 넘기다보니 흥미가 돋아, 오후마저 휴가를 내고 그 책을 다 읽었다. 빌린 책이었다면 그처럼 불현듯 마주하지 못했을 듯싶다. 집에 책장을 둘 공간이 있다면 ‘책꽂이 산책’도 즐길 만하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둘러보며 제목이나 기억에 끌려 손 가는 대로 펼쳐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책은 빌리지 말고 사서 읽자. 출판 다양성에도 기여하고, 색다른 즐거움도 찾을 수 있다. 더욱이 그리 부끄럽지 않은 지적 허영도 덤으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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