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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현관문에서 꼭 확인하는 행동 하나가 있다. 우편함을 살피는 일. 정기적으로 내게 배달되는 우편물은 청구서뿐이다. 그것마저도 전자 청구서로 바꾸라고 독촉이다.
가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이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편함을 열어본다. 텅 빈 우편함은 아무도 찾지 않는 집처럼 애처롭기까지 하다. 누가 요즘 손으로 직접 편지를 써서 편지봉투에 넣은 다음 우표를 붙여서 우체통에 넣을까. 하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뜻밖의 편지가 오기를 기다린다. 내게 편지를 보낼 사람이 없는데도….
나에게는 버리지 못하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의 하나가 중학교 때 쓰던 스프링노트다. 스프링노트에는 중학교 때 이야기들이 아직까지도 수줍게 미소짓고 있다. 젊은 나이에 먼저 한 줌의 재로 사라진 친구와의 소소한 기억들이 숨 쉬고 있다. 우리는 학교를 땡땡이치고 바다를 보러 새벽 기차에 몸을 실은 적이 많았다. 가진 것 없이, 우울했던 시절의 답답함을 그렇게 풀고자 했다. 가는 기차 안에서, 매서운 바람을 안고 달려드는 파도 앞에서, 돌아오는 객실 속에서 우리는 스프링노트를 펼치고, 서로에게 편지를 썼다. 대상이 친구이거나, 가족이거나, ‘나’ 자신이거나, 혹은 대상 없는 혼잣말이거나…. 번갈아가며 한 페이지씩 쓴 편지가 스프링노트 한 권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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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노트를 펼칠 때마다 지금은 얼굴을 볼 수 없는 친구의 모습이 생생히 재생된다. 우리가 함께했던 감정의 공감대가 친구와 나의 필체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이후 사회인이 되고, 군대에 가서도 친구와 나는 편지를 주고받았다. 편지의 내용은 변함없지만, 손으로 꾹꾹 눌러쓴 글씨가 그때의 심정을 고스란히 그리고 있다.
필체는 그 사람을 표현한다. 지금은 전자우편이 있고, 문자메시지가 있고, 네이트온과 카톡 등 다양한 문자 소통이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자신을 표현하는 글씨체가 없다. 아무리 다양한 서체가 깔려 있다고 하더라도 개개인이 갖고 있는 섬세한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환경에 스스로 갇혀버리는 것이다.
또한 손으로 움켜쥐고, 쓸어내리는 촉감을 느낄 수 없다. 편지를 받아들고 기뻐하다 편지지가 구겨졌던 흔적, 편지를 쓰면서 흘렀던 눈물 자국, 시간이 지날수록 아련해지는 세월의 흔적이 문자 매체에는 없다. 전자우편과 각종 메시지들은 잡히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곧 사라지는 허상의 매개체다.
요즘은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다. 택배도 주문한 지 이틀이 지나면 독촉 댓글이 쭉 달린다. 이처럼 뭐든지 급하고,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디지털 시대에 몇날 며칠씩 걸리는 손편지는 마냥 뒤처질 수 있고, 시간 낭비일 수 있다. 하지만 한 번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 자신에게, 소중한 인연에게, 가족에게 소소한 이야기를 편지지에 담아 미래에 오래 남을 시간을 선물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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