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십자‘광’, 어디까지 닿을까

[맛있는 뉴스] 부글부글/
등록 2011-05-04 15:15 수정 2020-05-03 04:26
한겨레 류우종 기자

한겨레 류우종 기자

돈내기. 결혼을 앞둔 만리재 왕꽃선녀가 신내림 세게 받고 내리 4곳을 다 맞혔다. 왕꽃선녀는 지난해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한국이 아르헨티나에 4 대 1로 진다는 저주의 신탁을 내렸다 한다. 그해 난 서초동에서 돈을 잃었다. 기자들이 신성한 4·27 재·보궐 선거 개표를 앞두고 ‘분당을-강원-김해을-순천’의 당락에 돈을 걸었다. 지난해 잃은 돈을 만회해야 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은 외롭다. 가장 배당이 높은 쪽으로만 걸었다. 강재섭-엄기영-김태호-무소속. ‘기껏’ 재보선인데 역사의 배신자라는 소리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내기 마감 직전, 왕꽃선녀가 ‘항마촉지인’의 자세로 손학규-최문순-김태호-김선동을 지긋이 써내려갔다. 김태호를 쓸 때는 양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신탁에 저항하는 듯했다. 뒤늦게 이봉수를 김태호로 바꿔달라던 사회팀장은 바로 그 순간 제명이 됐다. 왕꽃선녀는 선거 다음날 피자를 쐈다. 양이 살짝 모자랐다. 신탁이 배고픈 이들의 뱃속까지는 닿지 못한 것일까.

광내기. 독실한 개신교도인 이만의 환경부 장관이 ‘교회 십자가 야간점등 규제’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개신교계 신문의 보도가 나오자 교계가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십자가 야간점등을 ‘빛공해’로 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보도에 따르면 보수 교단 쪽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십자가를 단순히 불빛으로만 봐서 제한하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 “불빛을 제한하겠다는 것은 기독교를 희미하게 만들겠다는 속셈”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환경부 쪽은 ‘장관의 발언은 그런 취지가 아니었다’고 불을 껐다. 실제 십자가만 따로 규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 도심 한복판에서 모텔 간판, 나이트클럽 간판이 번쩍이는데 교회 십자가 네온사인만 끄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쩌다 종교의 신성한 상징이 세속의 불빛과 구분되지 못하게 된 것일까. 네온사인이 없던 시대, 교회는 종교의 가치를 무엇으로 밝혔을까. 초대형 교회의 붉은 네온빛은 추운 이들의 발치에 닿고 있을까.

끝내기. 김연아가 컴백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쇼트 프로그램 경기에서 아사다 마오 바로 뒤에 연기를 하게 된 김연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인 것 같다”고 했다. 피천득 선생의 아름다운 수필 ‘인연’에 나오는 여성 이름은 아사코다. 선생은 아사코를 평생 세 번 만났는데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라고 썼다.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아사코의 얼굴을 봤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아사다 마오와의 인연을 즐기는 듯하지만, 과연 아사다 마오는 주니어 시절부터 쌓아온 김연아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김연아나 아사다 마오나 여전히 시들기를 거부하는 백합이다. 인연을 끝낼 이유가 없다. 그런데 김연아와의 신성한 인연은 그를 추종하는 ‘승냥이들’에게까지 닿을 수 있을까 궁금하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