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먹는다. 기자들은 물먹는다. 기자실에서 물도 먹고, 커피도 먹고, 주스도 먹는다. 가끔 저녁 때 술도 먹는다. 그렇게 기자실에서 물과 술만 먹다간 별안간 ‘물먹는다’. ‘낙종했다’는 걸 기자들은 ‘물먹는다’고 표현한다. H₂O를 섭취하는 행위는 “물 먹는다”고 해도 되고 “물 마신다”고 해도 되지만, 낙종의 경우엔 반드시 “물먹는다”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물먹은 기자가 물먹게 한 기자나 언론사를 칭찬하는 일은 드물다. 지난 4월21일 등 여러 한국 언론이 의 퓰리처상 수상을 호의적으로 보도한 것은 보기 힘든 일이란 말이다.
는 2007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비영리 탐사전문 온라인 언론사다. 16년간 의 편집국장으로 일하다 회사가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에게 인수되자 박차고 나온 폴 스타이거(69)가 창간 주역 중 한 명이다. 는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퓰리처상을 받았다. 다행인 건 나라 밖 언론에 낙종한 경우엔 절망감이 좀 덜하다는 사실이다. 위키리크스 사건 당시 영국 일간지 , 미국 일간지 , 독일 주간지 을 제외한 전세계의 모든 언론이 한날한시에 물먹었다. 그러나 “낙종했으니 ‘반까이’(만회하다라는 뜻의 일본어로 언론계 은어)하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물 끓듯 끓는다. 4월21일 부서 얘기다. 물먹었는데도 침울하기는커녕 물 끓듯 분위기가 뜨거웠다. 가수 서태지와 배우 이지아의 위자료 소송 기사가 에 처음 떴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 사실을 이 처음 알았다면 몇 면에 보도했을까” 등 대논쟁이 벌어졌다. 이 사건 단독 보도는 퓰리처상감이라는 말도 나왔다. 정작 당사자들은 말을 아낀다. 팬들도 물먹고 싶다. 목이 탄다. 사실이 아니길 바랄 게다. 배우 이보영의 남자친구로 배우 지성 대신 축구 선수 박지성을 지목했던 한 연예뉴스처럼, 오보이길 빌게다. 정화수 떠놓고 비는 팬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서태지가 다시 싱글이 돼서 다행’이라고 할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물은 다 쓸고 지나간다. ‘서태지-이지아’ 기사의 홍수에 많은 기사가 주목받지 못하고 묻혔다. 4월21일 서울고법은 최재경 사법연수원 부원장(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 BBK 수사 검사들이 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심과 달리 검사들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2007년 은 ‘검사들이 김경준씨를 회유한 의혹이 있다’는 기사로 을 물먹였다. 서울고법은 “허위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인터넷에서는 음모론 홍수가 났다. 한 누리꾼은 “이번 사건은 현직 대통령과 문화 대통령의 권력 싸움”이며 “서태지가 위자료 소송을 덮기 위해 가카를 조종, 사법계를 매수하여 오늘 BBK 판결을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거꾸로 BBK사건도 함께 소송대리중인 한 법무법인이 배후라는 음모론도 있다. 아직 근거없지만, 사실로 밝혀지는 날엔 기자들은 또 물먹는다. 그땐 정말 배우 정아무개보다 더 절망스러울 것 같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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