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김양중 의료전문기자에게 물어봤습니다. 김 기자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과거 동네병원이 많이 없었을 때는 김아무개, 박아무개 식으로 동네병원 이름을 지었다. 이유는 아무래도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런데 동네병원 수가 늘어나다 보니 경쟁이 치열해져 최근엔 친근하면서 기억에 오래 남는 동네병원 이름을 많이 짓는 것 같다.”
실제로 요즘 새로 간판을 내건 동네병원들은 의사 이름 대신 햇빛병원, 안아파병원 같이 부드러운 한글식 이름을 많이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개업한 의사들은 여전히 자신의 이름을 내건 병원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몇십 년 전만 해도 동네병원 이름은 대부분 의사 이름으로 지었죠.
경제학적 관점에서 풀어 보겠습니다. 정보경제학 가운데 ‘정보의 비대칭성 이론’이 있습니다. 즉, 한쪽은 알고 또 다른 한쪽은 모른다는 것이죠. 의사와 환자의 관계도 정보의 비대칭성을 극명히 보여줍니다. 환자는 증상만을 알 뿐 그 증상이 감기인지 독감인지는 잘 알 수 없죠. 결국 의사는 환자보다 정보의 우위에 있고 그 정보의 우위를 통해 ‘권위’와 ‘신뢰’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동네병원 간판에서 의사 이름을 내세우는 것은 이 같은 정보의 비대칭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고착화하게 됩니다. 의사 이름은 그 분야의 전문가로서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것이죠. 하지만 김 기자 말처럼 경쟁이 치열해지고 사회 전체에서 권위주의가 무너지면서 기억하기 쉽고 친근한 이름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동네약국은 어떨까요? 동네약국 역시 과거에는 ‘김약국’처럼 약사의 성을 내세우거나 ‘독일약국’처럼 선진국 이름을 통해 권위와 신뢰감을 주는 간판을 많이 썼습니다. 이때만 해도 동네약국과 동네병원은 경쟁관계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감기에 걸릴 때 동네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을지 아니면 동네약국에 가서 감기약을 사먹을지 고민했으니까요. 하지만 의약분업으로 약사의 처방권은 고스란히 의사에게 넘어갔습니다. 이젠 동네약국과 동네병원은 더 이상 경쟁관계가 아닙니다.
동네약국의 경쟁은 동네병원보다 더 치열하죠. 같은 동네의 다른 약국은 물론 슈퍼마켓과도 경쟁해야 하니까요. 동네약국은 박카스 등 드링크제와 생리대 등 위생용품을 놓고 슈퍼와 경쟁을 벌이죠. 권위와 신뢰를 내세우는 딱딱한 이름으론 다른 약국 및 슈퍼마켓과 경쟁하기 힘들겠죠. 동네약국들이 동네병원들보다 빨리 친근한 한글식 이름을 많이 내세운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동네약국들의 이름도 찬찬히 되씹어 보면 대부분 믿음·소망·참좋은·이웃 등 신뢰를 주는 뜻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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