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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왜 야구 감독은 운동복을 입나요?

등록 2009-08-13 11:34 수정 2020-05-03 04:25
김인식 감독. 사진 연합

김인식 감독. 사진 연합

<font color="#C21A8D">스포츠를 하지는 않지만 간간히 보기는 하는 40대 남잡니다. 여러 스포츠 중에 감독이 운동복을 입고있는 종목은 야구를 제외하곤 본 적이 없습니다. 감독은 그라운드에서 뛰지 않는데, 왜 운동복을 입고 있을까요? 혹시 실용주의의 나라 미국에서 발전된 스포츠라서 그런가요? 예전에는 선수겸 감독이 있어서 그런가요?(연명흠)</font>

→지금까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 접수된 질문 가운데 가장 답이 명확한 편이라는 점에서 독자님께 일단 감사드립니다.

답을 논하기 전, 몹쓸 상상 먼저 해봤습니다. 스모 선수단 감독이 마와시(엉덩이 두 쪽을 ‘쪽’ 가르는 스모 복장·샅바)를 입고 코치를 하는 장면, 어떤가요? 순진하고 맑기로는 에서 두 번째 가라면 울어버리고 말 저는 살짝 민망해집니다. 2005년 일본에선 스모 유니폼을 짧은 바지로 바꾸자며 어린 스모 선수들이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경기 중에 한 선수의 마와시가 벗겨진 사건이 빌미가 되었습니다. 당시 한 외신 보도에서 어린 선수가 말하네요. “마와시를 입는 건 정말 너무 창피해요. 속옷을 입지 않고 입어야 하거든요.” 선수도 그럴진대, 감독까지 마와시만 입어야 한다면 어떨까요. 음, 엉덩이가 간지럽기도 할 것 같고, 다리를 꼬기도 좀 어색할 것 같고, 감독 위신도 영 안 서는 것 같고, 아, 네, 좀 춥기도 할 것 같고….

미국 풋볼도 마찬가지입니다. 승리에 대한 부담감보다 어깨에 넣은 그 탄탄한 ‘뽕’이 더 무거울 것 같습니다. 코치 브라이언 오서가 바짝 달라붙는 피겨 복장으로 김연아 선수와 손 잡고 세계 신기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풍경도 어딘지 모르게 ‘포토제닉’하지 않습니다.

본론으로 갑니다. 풍경이 어색해서 야구 감독이 선수 유니폼을 입는 건 아니니까요. 여러 종목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야구만은 감독이 가끔 필드(경기장)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선수와 동일하게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는 게 정설입니다. 영화 에선 투수를 교체할 듯 필드로 나온 감독이 “오랜만에 카메라에 비치는 건데, 좀 있다 가자”고 말합니다. 축구나 권투, 농구에선 상상 못할 일이죠. 오심이라도 나오면 당장 더그아웃을 뛰쳐나가 심판과 배도 부딪칩니다.

시작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젠 아예 규정화되어 있습니다. 야구규칙 ‘1.11의 B항’을 보면 “각 팀은 항상 고유의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각 팀이란 선수·코치·감독을 아울러 말합니다. 용어사전에선 “유니폼은 한 팀에 소속된 감독·코치·선수들이 일치감을 유지하고 상대방과 구별하기 위해 착용하는 복장”이라 적고 있습니다.

대한야구협회 이진형 홍보팀장은 “유니폼을 입지 않으면 더그아웃에 있을 수도 없다”며 “(외국선수를 위한) 통역관도 요즘엔 운동복을 입는 추세”라고 말합니다.

윤동균 전 감독(OB 베어스·1991~94)은 “모자까지 쓴 채 얼굴만 유일하게 내보이는 신사적인 경기가 야구”라며 “야구에선 그게 하나의 정장”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축구나 농구는 팬티 차림이어서 감독이 함께 입긴 좀 그렇지 않느냐”고 합니다. 윤 전 감독도 왕년에 ‘몹쓸 상상’ 좀 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 야구 감독의 유니폼은 선수의 것과 양말부터 신발까지 똑같습니다. 속옷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40만~50만원을 들여야 내외 유니폼을 모두 갖춰입을 수 있지만, 알다시피 프로 선수들은 스포츠사에서 협찬해줍니다. 선수당 기본으로 4벌을 지닙니다. 홈구장에서 입는 흰색 유니폼 2벌, 어웨이 경기장에서 입는 유색 유니폼 2벌입니다.

하지만 야구 감독이 정장을 입거나 반바지를 입어도 이상할 것 같진 않습니다. 다만 모든 스포츠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권위와 신화를 만들어왔지요. 그게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우린 보고 즐길 뿐, 마와시에 뒷주머니라도 달아라, 요구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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