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고 보니 영화를 비롯한 미디어는 늘 정보기관 요원들을 출연시킬 때 선글라스를 끼도록 하는군요. 영화 에서 네오를 잡으러 다니다 끝내 비운을 맞은 스미스 요원도 검정 선글라스를 꼈지요. 영화 에서 불법 이민 외계인들을 잡으러 다니는 J와 K도 검은 선글라스를 애용합니다. 한국의 신문 만평도 늘 정보기관원들은 선글라스를 끼운 채 등장시킵니다. 선글라스는 정보요원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액세서리임에 틀림없습니다. 일종의 ‘국제적 기호’ 차원에서 말이죠.
하지만 독자 여러분은 미디어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 선글라스 낀 정보요원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없습니다. 대개 그럴 겁니다. 그럼, 선글라스와 정보요원이라는 ‘샴쌍둥이'는 만들어진 걸까요, 실재하는 걸까요?
우선 국가정보원 홍보실에 물었습니다. 담당자는 “언론이나 영화 같은 곳에서 만들어낸 이미지일 뿐, 현실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는군요. 아는 국정원 직원에게 “혹시 서울 내곡동 청사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돌아다니는 직원을 본 적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전혀 없다”는 답변이 돌아오더군요. 국정원 직원이 되면 선글라스를 별도로 지급하는 것도 아니랍니다.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국정원 이전 국가안전기획부, 그 이전인 중앙정보부 시절 인사들이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사진들이 있는지 찾아봤더니, 1961년 군사 쿠데타 세력으로서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선글라스를 쓰고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그리고 1979년 의문의 죽음을 당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도 검은 색안경을 쓰고 사진을 찍었더군요. 원장은 얼굴을 공개해도 되는 정무직 공무원입니다만…. 아 참, 2007년 거액을 들여 아프가니스탄의 한국인 피랍자들을 풀려나게 한 뒤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언론에 대놓고 공로를 치하해 화제가 됐던, 그 국정원 직원도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군요. 정보요원이 불가피(?)하게 얼굴을 공개해야 하는 상황에선 선글라스를 착용하기는 하나 봅니다.
하지만 이런 단편적 사실을 밑절미 삼아 ‘정보기관 사람들은 원래 선글라스를 즐겨 낀다’는 명제를 100% 인정하기에는 어딘가 찜찜합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사회적 맥락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선글라스라는, 색 입힌 얇은 유리를 사이에 두고는 두 가지 시선이 교차합니다. 선글라스를 끼고 바깥 세상을 바라보는 자의 시선이 첫째요,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제3자의 시선이 둘째입니다. 선글라스를 낀 사람의 눈은 맨눈과는 달리 특정한 색이 입혀진 세상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흔히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본다’고 하는 비유적 표현이 여기서 탄생하지요. 국민들은 국정원 같은 정보기관이 맨눈으로 세상을 본다고 믿지 않습니다. 애먼 사람 붙잡아다 고문과 인권유린으로 자백받은 뒤 간첩이나 좌익분자를 양산했던 국정원의 ‘전과’가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선글라스를 낀 이의 눈을 바라볼 수 없지요. 사람의 눈을 보지 못한다는 건 그가 누군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한때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던’ 국정원 같은 기관은 그 정체가 대부분 비밀에 휩싸여 있습니다. 정도는 다르더라도, 외국의 정보기관 또한 이런 두 가지 사회적 시선의 중간 즈음에 걸쳐져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독자 여러분의 질문을 받습니다. 손가락질당할까 묻기 두려웠던 4차원 질문,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던 이 세상 최초의 질문, 부지런히 발로 뛰어야 답을 얻을 수 있는 질문을 han21@hani.co.kr보내주십시오. 당신의 ‘거대한 의문부호’에 느낌표를 준비하겠습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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