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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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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판 인간

제5회 손바닥문학상 당선작
등록 2013-12-05 14:48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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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극중 여자에게 예쁘다고 하는 말은 거짓이다. 전광판에 [너! 못생겼어!]라고 나오기 때문이다. 여자의 눈에는 전광판이 보이지 않지만 관객은 전광판을 보고 깔깔거릴 수 있었다. 원장님의 특별 지시로 서울 대학로의 연극을 보러 갔었다. 연극의 제목은 ‘전광판 인간’이었다. 녹색말을 먹으면 몸이 초록색으로 변하는 물벼룩처럼, 생각이나 느낌이 가슴팍에 달린 전광판에 드러나, 속마음을 속일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돌아오는 길에 승합차에서 원장님과 기사 아저씨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사 아저씨는 자기 아내의 가슴팍에도 전광판이 달려서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봤으면 좋겠다고 했고 원장님은, 죽을 때까지 같이 살 사람인데 관심을 갖고 살피다보면 언젠가 전광판이 짠 하고 나타날 거라고 했다. 원장님은 전시장 한 곳을 들러서 가자고 했다.

전시장 내부는 조용했다. 많은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벽면마다 새로운 벽이 튀어나와 있는 구조여서 미로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전시된 사진들에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세계인들의 생활상이 담겨 있었다. 흑백사진이라 인물들의 모습이 낯설어 무척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아프리카의 난민, 돌을 채취하는 어린이들, 전쟁에 지친 젊은이들의 모습이었다. 내가 탄 휠체어를 밀어주던 기사 아저씨는 놀랍다는 듯, ‘세상에!’란 말을 반복하며 관람했다. 감상을 이야기하고 싶은 모양인데, 나에게는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저만치 서 있는 원장님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지구상에는 힘들게 사는 이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는 말을 건넸다. 원장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음 사진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내 가슴팍에 걸린 전광판으로 [맞아요! 아저씨! 그런 것 같아요!]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내겐 전광판도 없을뿐더러, 아저씨는 내가 뭔가를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심지어 손가락까지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상지원으로 돌아가는 길, 기사 아저씨가 원장님에게, 은정이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왜 데리고 왔냐고 물었다. 혼자 두기 그래서 데리고 왔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덧붙였다. 은정이가 아무것도 모르는지, 뭔가를 아는지 아무도 모르지 않냐고.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는 것은 그저 우리의 짐작일 뿐이라고 했다.

내게 있어 이 세상은, 활발히 움직이는 것들이 만들어내는 훌륭한 전시장이다. 그렇게 된 지는 19년이 되었다. 사실 그건 태어난 지 19년이 되었다는 뜻이고 내가 세상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하고, 나의 정체성을 관람자로 규정지은 지는 10년가량 되었다. 9살까지의 삶은 내 기억에 없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이 세상을 인식하기 시작했을 땐 이미 많은 것이 늦은 상태였다. 나는 상지원이란 곳에 있었고, 사회복지사들이 나를 돌보고 있었다. 전광판처럼 생긴 네모난 텔레비전을 통해 세상을 구경하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라는 인도 영화에서, 말도 못하고 들을 수도 없는 시각장애아가, 손으로 만졌던 물렁한 액체에 ‘워터’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감격처럼, 나도 내가 존재하는 세상에 정자와 난자가 있고, 양수가 있고, 탄생이 있고, 가족이 가족을 버릴 수도 있으며,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나를 돌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구경꾼의 운명을 받아들이기까지 내 전광판에는 숱한 말들이 쓰여지고 지워지기를 반복했다.


그녀가 들어왔다. 요즘 들어 살이 많이 빠져서 오늘따라 말라 보이기까지 한다. 얼굴은 초췌한 반면 눈은 울었는지 퉁퉁 부어 있다. 목에 걸친 분홍색 앞치마에는 아이들을 씻기거나 먹이면서 묻었을 비눗물 자국과 김칫국물 얼룩이 선명하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내 머리통을 한 대 후려갈기더니 텔레비전 앞에 앉아 리모컨으로 채널을 빠르게 돌렸다.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이 없는지 텔레비전을 끄고 다가와, ‘씨발!’ 하고 조용히 속삭였다. ‘존나 짜증나!’라고 좀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내 머리통을 한 번 더 세게 내리치고는 방을 나갔다.

그녀의 나이는 27살. 집은 인천. 가족은 아버지 한 명이다. 평소 멋 부리기를 좋아하고 화려하게 화장하는 것을 즐긴다. 상지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한 지는 4년 정도 되었고, 그사이 그만둔다고 사직서를 냈다가 번복하기를 반복했다. 내가 있는 건물인 소망동의 4호실을 맡은 그녀가 주로 하는 일은 밥 먹이기, 청소하기, 아이들 씻기기 등이다. 그녀가 즐거운 표정으로 일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다른 사회복지사들과 희희낙락 즐겁게 수다 떠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 출근 시각을 지키지 못해 매번 지각했다. 퇴근 시각이 되면 하던 일도 마무리하지 않고 화장부터 진하게 했다. 근무할 때 입은 흰 티와 검은 바지, 분홍색 앞치마를 내팽개치고, 입고 왔던 미니스커트와 가슴 윤곽이 드러나는 쫄티로 갈아입고 잽싸게 나갔다. 다른 사회복지사들은 그녀가 없을 때 흉을 자주 봤다. 그녀가 잘리고 새로 사람을 뽑았으면 좋겠다고

상지원은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중증장애시설이다. 지적장애, 지체장애, 다운증후군, 복합장애아들이 소망동에 있고 마당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희망동에는 간혹 짐승처럼 울어대는 자폐아들이 거주한다. 4호실 아이들 장애의 특징을 텔레비전을 통해 배웠고 힘겹게 외워두었다. 미성숙한 뇌의 비진행성 손상으로 야기된, 운동과 자세의 장애. 나를 비롯해 이 방의 아이들은 딱딱해진 육체의 형무소에 갇혀 산다. 가끔 상상하곤 한다. 쇼생크 교도소의 벽을 숟가락으로 파서 도망쳐나온 그처럼 나도 육체로부터 탈출을 도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척수가 있는 험하고 어두운 길목을 따라 손톱으로 야금야금 파여진 척추의 구멍을 통해 연기처럼 빠져나가는 것이다. 자유로워진 나의 영혼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짙은 화장을 하고 나간 그녀의 뒤를 쫓는 일이다. 노원구에서 인천까지면 꽤 먼 거리인데 지하철에서 주로 무엇을 하는지, 그의 집은 어떻게 생겼고, 혼자 있을 때는 무엇을 하는지, 남자친구와 있을 때만큼은 해맑게 웃는지 확인하고 싶다. 영혼만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몸까지 자유로워진다면 분위기 있는 근사한 커피숍에 앉아 그녀가 하는 모든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를 쳐주고 싶다.

잠을 자던 5살짜리 뇌성마비 아이, 성일이가 눈을 떴다. 먹고 자는 일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방 아이들. 본능대로 먹고, 기계처럼 잠을 잘 뿐이다. 성일이가 일어났다는 것은 점심시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녀와 다른 사회복지사 한 명이 큰 쟁반에다 밥과 컵, 물병과 양치 세트를 들고 들어왔다. 맨밥에 당근·오이·호박·시금치 등의 삶은 채소를 다져넣고 달걀을 푼 다음, 참기름을 넣어 비빈 비빔밥이 이곳 장애아들의 주식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먹고 소화하고 싸는 일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는 일보다 위대한 생존이라면 난 퇴보를 한 셈이다. 내 차례가 되었다. 그녀가 나를 모로 눕히고 내 입에 한 숟가락씩 밥을 넣어준다. 나는 누워도 무릎이 접혀 있다. 등 뒤로 뻗어 있는 팔 때문에 이 방의 다른 아이들처럼 천장을 향해 똑바로 누울 수가 없다.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눈알을 정신없이 굴리며 열심히 씹고 삼키는 나. 밥 먹을 때마다, 날 가졌던 그 여자를 떠올렸다. 그 여자의 젖을 빨아보긴 했을까.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보니 장애아 낳을 확률이 높은 산모는 모체 혈청 태아 검사, 융모막 검사, 양수 효소 검사 등 출산 전 특별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던데, 그 여자는 이렇게 좋은 검사가 있는 줄 알고 있었을까. 만약, 기형아 검사에서 아무 이상이 없어서 날 낳았다면 생후 몇 개월부터 괴물로 변하기 시작했을까. 그 여자는 지금 편안한지 궁금해졌다. 내가 씹고 삼키는 동안, 숟가락에 다음에 먹일 밥을 떠놓고 기다리는 그녀가 회전하는 나의 눈알을 노려보듯 응시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1년 전 즈음이다. 의자에 앉아 자다가 나와 똑같이 생긴 아이가 내 몸 안에서 기어나오는 꿈을 꾸고 놀라서 눈을 떴다. 붉은 여명이 어둑한 밤을 몰아내고 있는 시각이었다. 4호실의 아이들은 기척도 없이 자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몸속 은밀한 곳, 길고 어두운 구멍에서 뭔가 질척한 것이 흘러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혹 꿈에서처럼, 나와 똑같이 생긴 아이가 기어나오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 아이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다시 집어넣어야 할까를 상상했다. 아이가 나오기 전에 염산이라도 마셔 녹여버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다가 갑자기 얼마 전에 본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바람나서 딴 남자를 따라가는 주제에 그것도 양심이라고 아직 어린 딸을 위해 생리대를 한 박스 사주고 가던 여자.


가끔 상상하곤 한다. 쇼생크 교도소의 벽을 숟가락으로 파서 도망쳐나온 그처럼 나도 육체로부터 탈출을 도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척수가 있는 험하고 어두운 길목을 따라 손톱으로 야금야금 파여진 척추의 구멍을 통해 연기처럼 빠져나가는 것이다. 자유로워진 나의 영혼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짙은 화장을 하고 나간 그녀의 뒤를 쫓는 일이다.

“은정이가 생리를 하나봐, 어떡해!”

목욕을 시키기 위해 기저귀와 팬티를 벗기던 그녀가 기겁을 했다.

“기저귀 갈아주는 것도 힘든데, 한 달에 한 번씩 이걸 어떻게 뒤처리해주냐고, 미치겠네!”

나도 사람이라고 설마 생리를 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했지만 그녀의 입에서 그 단어를 듣자 소름 끼치도록 두려웠다. 초경, 피, 여자, 강간, 임신, 기형아…. 소용돌이치던 내 눈알이 N극과 S극이 만났을 때처럼 ‘착!’ 하고 멈췄고 때마침 눈 주위를 씻기던 그녀의 시선이 화살처럼 내 눈에 꽂혔다. 흠칫 놀란 그녀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녀가 같이 목욕을 시키던 1호실 사회복지사에게 물었다.

“은정이, 뇌병변 맞지?”

“어, 1급이잖아, 이 정도면 특특특 1급인 셈이지.”

“뇌병변이면 머리부터 맛이 간 거잖아. 전신마비가 뇌기능 이상 말고 다른 원인도 있나?”

“없지. 그렇다고 뇌의 전부가 파괴된 건 아니지 않을까?”

생리. 나를 가두고 있던 감옥의 새로운 변화였다. 딱 붙어버린 허벅지와, 종아리가 부채꼴 모양으로 퍼진 채 접힌 무릎이 내 하반신이다. 단 한 번도 서보지도, 걸어보지도 못한 내 하체. 상반신은 더 압권이다. 양팔은 새가 비상하기 위해 뒤로 날개를 활짝 펼친 것처럼 등 뒤로 쭉 뻗은 모양을 하고 있다. 머리는 목을 기준으로 30도 정도 기울어져 있고, 입술 역시 삐뚤다. 눈알은 초점 없이 미친 듯이 돌아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 눈을 피한다. 정면으로 볼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뭔가를 새롭게 인식했을 때, 놀랐을 때, 무엇보다 내 뜻과 의지를 선명하게 밝히고 싶을 때 눈알이 일순간 멈춘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텔레비전으로 이 세상을 배우고, 알아가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목욕을 다 시킨 그녀가 나를 4호실로 옮기고 내 앞에 전신거울을 세우고 말했다.

“한번, 봐.”

어딘가에서 숨죽이고 살면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래그래 네 말이 맞아!’ 하고 맞장구쳐주고 있을 ‘아빠’란 사람이, 꽁꽁 언 저수지에서 썰매를 탄 나를 뒤에서 힘껏 밀어준다면 거울에 비친 이 모습으로 씽씽 달리지 않을까? 내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집요하게 내 눈알을 관찰하며 한참 동안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너, 내 말 다 들리지? 너, 정신은 멀쩡하지?”

그날 이후,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를 더 이상 밥만 축내는 식충이로 취급하지 않고 ‘사람’으로 대접해줬다. 아직은 일방적이긴 해도 첫 소통의 감격을 준 그녀가 나를 의식하고 처음으로 한 행동은 뜻밖의 것이었다. 점심 먹은 뒤, 2시부터 4시까지는 낮잠 시간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4호실에 들어와 방문을 잠그고 이상한 짓을 했다. 이 방의 아이들은 점심을 먹은 뒤 2시경이 되면 알람을 맞춰둔 로봇처럼 잠이 들었다. 잠이 별로 없는 나는 그 시각, 꺼진 텔레비전에 비친 나의 실루엣을 쳐다보며 침묵의 시간을 견디곤 했다. 그녀가 처음 그 행위를 할 때는 도무지 무슨 짓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바지 속으로 손을 넣고 미간을 찌푸린 채 뭔가에 집중하더니 ‘아버지!’ 하고 읊조렸다. 그 행위가 끝나면 내 쪽으로 와서는 ‘미안’ 하고 나갔다.

어느 날은, 나를 앉혀놓고 실눈으로 째려보며 말했다.

“너, 여기 어떻게 왔는지 알아? 원장님이 그러는데, 니네 부모가 여기다 버리고 갔대. 니 부모는 니가 여기에 있는 걸 안다는 얘기지. 원장님한테 물어보니까, 니 부모는 한 번도 여길 찾아온 적이 없대. 어디서 얘길 들으셨는데, 널 버리고 나서 딸을 둘인가 낳고 아주 잘 살고 있대. 널 이렇게 낳은 건 니 부모들인데, 책임도 안 지고 지네들끼리 하하호호 하는 거 생각하면 열받지 않니? 아니다, 그보다 니가 이런 몸으로 태어난 게 원통해죽겠지? 1호실 정민호 알지? 얼마 전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음료수 캔처럼 굴러다니는 애. 민호는 말이라도 하고, 발가락이라도 쓰잖아. 넌 어째 아무것도 못하는 애로 태어났니? 난, 말이야, 널 보면 내가 얼마나 행복한 인간인지 깨닫고 매일매일 감사하게 돼. 난 걸을 수도 있고, 먹고 싶은 것을 골라서 먹을 수도 있고, 사랑도 할 수 있고, 여행도 갈 수 있어. 와~ 누군가를 약 올리는 게 이런 재미구나, 스트레스가 다 풀린다. 내 직업이 정말 스트레스가 많거든. 대부분의 시간을 너 같은 비정상을 보면서 사는 게 얼마나 고역인데. 아! 살 것 같다. 누구나 이렇게 쏟아내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데, 그럴 대상이 없어. 왜냐면 사람들은 다 가식적이거든. 속 이야기를 안 하거든. 흉잡힐까봐.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남의 이목이거든~!”

그녀는 거의 빠지지 않고 낮잠 시간마다 나를 찾아왔다. 문지방 옆에 정물처럼 앉아 있는 나를 텔레비전 화면 가까이 끌어다놓고 포르노를 틀어놓거나, 따가운 햇볕이 방 안 깊숙이 들어온 지점에 앉혀놓고 내 눈동자가 멈추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관찰했다. 내 윗도리를 벗기고 가슴을 만지거나, 내 팔에 빨래를 널어놓기도 했다. 기울어진 내 머리를 억지로 세우려고 힘을 주기도 하고, 자기 머리카락을 뽑아 내 콧구멍을 간질이기도 했다. 자고 있는 성일이를 깨우고는 일으켜 니은자로 앉혔다. 몸을 못 가누는 성일이는 이내 칼등으로 세워진 낫처럼 쿵 소리를 내며 옆으로 쓰러졌다. 그녀는 내 눈알이 멈추는지 확인하면서 그 행동을 반복했다. 웃는 표정으로 안면근육이 마비된 성일이는 디딜방아처럼 쿠쿵, 팍, 쾅, 효과음을 내며 넘어졌다. 그녀가 물었다.

“내가 성일이 괴롭히면 어때? 마음 아파? 너도 감정 있어?”

나는 그녀가 궁금했는데, 그녀는 내게 자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는 사실 사람들의 ‘생로병사의 비밀’보다 ‘희로애락의 비밀’이 알고 싶었다. 사지 멀쩡해서 감사하다는 그녀가 느끼는 행복감, 도대체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미치도록 알고 싶었다. 최근 나는 그녀의 진짜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일주일 전, 오전 10시경. 청소 시간이라 소망동에서 생활하는 모든 장애아들이 거실로 불려나오거나 끌려나와 자기들만의 몸짓과 괴성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때, “보라, 이년 어딨어!” 소리치며 험상궂은 남자가 들어섰다. 억센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게 하얀 얼굴을 하고 있었고, 자글자글한 주름이 많았다. 낡고 허름한 베이지색 면바지에 가로줄 무늬가 들어간 회색 티셔츠를 입고 있는 그의 머리는 산발이었다. “보라, 너 어딨어! 빨리 못 나와!” 고성이 계속되자 다운증후군 아이들 중 어린 애들이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다.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1호실을 청소하던 사회복지사가 뛰어나와 “무슨 일이시죠?” 하며 놀란 얼굴로 물었다. 남자는 “필요 없고! 보라, 이년 여지. 나오라고 그래!” 하면서 처음보다는 더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가 4호실에서 그렁그렁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공포에 떠는 얼굴로 걸어나왔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남자의 종아리에 매달렸다.

“잘못했어요!”

“니년이, 애비 돈줄을 막아? 돈 내놔!”

남자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며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그녀가 뒤로 자빠지자 남자가 옆구리를 발로 걷어찼다. 이때 민호가 남자의 발치까지 최선을 다해 굴러가 입으로 바짓가랑이를 물고 흔들었다. 흠칫 놀란 남자가 징그러운 벌레를 떼어내듯 다리를 마구 흔들었다. 그 바람에 민호가 패브릭 소파 쪽으로 나가떨어져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치고 둥근 베개처럼 뒹굴었다. 그녀가 참을 수 없다는 듯 벌떡 일어나서 남자의 어깨를 뒤로 밀치며 소리쳤다.

“그래! 내가 카드 다 막았고, 돈 다 숨겼어! 내가 돈 버는 기계야? 내가 당신 도박 돈 대주는 돈줄이냐고!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여기서 나가! 당장 나가, 경찰 부르기 전에! 나가라구! 아악!”

누가 알렸는지, 현관문으로 원장님이 들어섰다. 여스님이신 원장님은 흥분한 그녀의 두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침착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표정을 보이고는 남자를 향해 낮은 톤으로 점잖게 말했다.

“아버님, 사무실에 가서 말씀하시죠. 아시겠지만, 이곳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달리 매우 예민합니다. 안정이 필요한 아이들이구요. 사무실 한쪽에 자리를 마련했으니 그쪽으로 가서….”

남자는 원장님의 권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말 잘했네, 여기 애들? 이 병신들이 뭘 알아? 당신, 이 애들 장사해서 한 달에 얼마나 벌어? 어마어마하게 벌지? 기부금과 후원금이 장난 아니라면서? 그 돈 어디다 빼돌리는 거야? 내가 다 조사해봤어, 당신 재산이 수십억이던데, 우리 딸아이 하루 14시간씩 근무해서 벌어오는 돈이 얼만지 당신, 잘 알지? 그렇게 부려먹고, 꼴랑….”

그녀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원장님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풀고 제발 그만하라고 외치며, 남자의 손목을 잡아당기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사라진 그녀는 그날 상지원에서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원봉사자가 먹여주는 점심을 먹었고, 낮잠 시간엔 나를 가장 괴롭히는 고문기술자 ‘시간’과 마주해야 했다. 그녀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가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너만 보면 재수가 없어! 넌 사람한테 받은 상처가 없잖아. 너한테 일어난 일이 사람의 사악함, 그것도 나를 가장 사랑해야 하는 사람의 사악함 때문에 일어난 건 아니잖아. 네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나에게는 숱하게 일어났어, 아버지가 친딸을 건드리는 게 뭔지, 니가 알아?”

3일 만에 출근한 그녀의 얼굴은 형편없었다.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것처럼 움푹 들어가 꺼져 있었고 짙은 그늘이 서려 있었다. 그녀의 눈은 포식자에게 잡힌 동물의 눈처럼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씻기기 위해 소매와 바짓단을 걷어 올렸을 때, 군데군데 검고 푸른 멍 자국이 넓게 퍼져 있는 것이 보였다. 1호실과 3호실 사회복지사가 나누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녀가 상지원을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원장님이 만류했다고 한다. 1호실 사회복지사는 그녀의 아버지가 원장님에게 그녀를 자르면 가만 안 두겠다고 협박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낮잠 시간에 그녀를 기다렸다. 내가 그녀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성일이가 까무룩 잠에 빠지는 것을 보았을 때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방문 손잡이의 잠금 버튼을 누르고 문을 잠갔다. 발을 쭉 뻗어 이제 막 잠들려는 아이들을 한쪽 구석으로 몰더니 나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넓게 펴 내 얼굴을 거칠게 때렸다.

“난, 너만 보면 재수가 없어! 넌 사람한테 받은 상처가 없잖아. 너한테 일어난 일이 사람의 사악함, 그것도 나를 가장 사랑해야 하는 사람의 사악함 때문에 일어난 건 아니잖아. 네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나에게는 숱하게 일어났어, 아버지가 친딸을 건드리는 게 뭔지, 니가 알아?”

그녀가 발로 나를 걷어찼다.

“엄마가 바람나서 집을 나갔어. 남자가 더 좋아서 딸까지 버리는 거지. 술로 지내던 아버지가 날…. 넌, 부모란 작자들이, 너처럼 삐꾸가 아닌데도 지 자식을 버리거나, 욕보이거나, 이용한다는 거 모르지? 넌, 그래도 널 내다버린 부모를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나? 넌, 고장 난 인간이니까, 쓰레기니까….”

그녀가 기울어진 내 목을 강제로 꺾었다.

“도박에 미친 아버지는 날 술집에 보내려고 했어. 겨우 고등학생인 나를…. 난 아버지를 피해 가출했고, 공동체라는 곳에서 고아처럼 먹고 자야 했어.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아르바이트를 해 졸업하고 취직을 했는데 그 인간이 귀신같이 찾아냈어!”

그녀가 나를 발로 세차게 밀어, 머리가 장롱 하단 모서리 부분에 처박혔고 얼굴이 바닥에 쓸렸다. 내 양발과 두 팔이 천장을 향해 솟구쳤다.

“아버지가 날 가두고 때렸어! 난 매일 맞고 살아, 맞기만 하면 좋게? 내가 버는 돈은 아버지 빚 갚는 데 한 푼도 안 남기고 꼴아박히고 있어. 이제 아버지 빚은 내가 평생 갚아도 못 갚을 지경이 됐어.”

그녀가 자기 발을 내 엉덩이에 얹고, 세게 밀었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정수리 부분이 수차례 장롱에 부딪혔다.

“넌, 걸어다니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은 다 행복한 줄 알지? 사는 게 형벌인 나 같은 사람도 있어!”

그녀가 발로 나를 옆으로 넘어뜨리려는 순간, 밖에서 민호 목소리가 들렸다. 그 작은 발로 잠긴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선생님, 여기 계세요? 원장님이 사무실로 오시래요!”

그녀가 나의 옆구리를 발로 있는 힘껏 밀었다. 옆으로 넘어지자 장롱 맨 가장자리에 길게 세워져 있던 옷걸이가 쓰러져 내 몸을 덮쳤다. 좀 전에 그녀가 아이들을 발로 쭉 미는 바람에 다른 아이들 틈에서 비스듬히 누워 있던 성일이가 잠에서 깨어 웃는 얼굴로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날 이후 3일간, 나와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끝나자 오전에 하지 못했던 청소를 하기 위해 사회복지사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오전에 그녀가 원장실로 불려갔다고 한다. 그 사건이 터진 이후 그녀는 원장님과 자주 면담을 하는 눈치였다. 이번엔 심하게 다툰 모양이었다. 짐작하기를 좋아하는 1호실 사회복지사는, 그녀가 드디어 잘린 것 같다고 했고, 옆에 있던 3호실 사회복지사는, 원장님이 그녀의 아버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것 때문이라고 했다. 원장실에서 나온 그녀가 주방 식탁에 엎드려 한참을 우는 바람에 청소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4호실과 거실을 청소하기 위해 왔다갔다 하는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표정을 살폈다. 그녀의 표정은 좀 전에 밥을 먹이며 내 눈을 노려보듯 응시할 때와는 사뭇 달랐다. 뭔가를 결심한 듯 사기충천해 보였고, 심지어 씩씩해 보이기까지 했다. 청소가 끝나자 네 명의 사회복지사들은 자기가 담당하는 아이들을 한 명씩 소속된 방으로 옮겼다. 덩치가 가장 큰 나는 맨 나중에 옮겨진다. 내 주변을 맴돌던 민호마저 발가락으로 리모컨을 눌러 텔레비전을 끄고 들어갔을 때, 그녀가 한쪽에 세워진 휠체어를 펼쳤고 다른 두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나를 앉힌 뒤, 아무 말 없이 현관문을 나섰다.

나를 데리고 마당으로 나온 그녀는 휠체어를 밀며 마당을 한 바퀴 돈 후에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상지원은 산 중턱을 깎아 건축되었기 때문에 언덕에 위치했다. 정문을 나서면 포장된 도로가 나오는데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이다. 외진 곳이라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했다. 그녀가 말했다.

“은정아? 이 비탈길, 속 시원하게 내려가보고 싶지 않니?”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멈춰선 그녀는 휠체어를 앞으로 밀었다, 뒤로 당겼다 하면서 가속을 붙이기 위해 반동을 줬다. 휠체어가 그녀 쪽으로 당겨졌을 때 등 뒤로 뻗은 팔을 이용해서 그녀의 옷자락을 잡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잡을 수 없는 나의 손은 공허하기만 했다. 휠체어가 그녀의 몸에 부딪히나 싶더니 다시 앞으로 확 밀렸을 때 그녀가 손잡이를 놓았다. 어떻게 하든 그녀의 옷자락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내가 붙들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휠체어에 앉은 나는 미끄럼 방지를 위해 홈이 파인 우둘투둘한 포장도로를 따라 덜덜거리며 내려갔다. 내 눈알이 바늘에 찔린 듯 놀라서 정지했고, 내리막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정신없이 찾았다. 오른쪽으로 약간 휘어진 경사로 끝에는 시내버스들이 다니는 차로가 있었다. 휠체어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거침없이 내려갔다. 비틀어진 머리, 뒤로 뻗은 팔, 비굴하게 꿇려 있는 무릎. 어딘가로 돌진하기 위해 태어난 몸처럼, 내 몸은 지금의 하강과 무척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휘날려 시야를 가리기도 했다. 내려가는 데 속도가 붙을수록 내 몸은 휠체어에서 분리되려 했다. 이번에는 발바닥을 이용해 휠체어의 각 옆면에 몸을 붙여보려 했지만 허사였다. 휠체어에서 벗어나 거친 노면을 따라 구른다면? 차들이 다니는 대로까지 굴러간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끝장? 이렇게 끝장? 처음으로 ‘벼랑’이라는 지점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살고 싶었다. 공허한 내 손 못지않게 발도 허무하긴 마찬가지였다. 난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과속방지턱이었을까, 쿨렁하고 바퀴가 뭔가에 세게 부딪혔고 내 몸은 공중으로 붕 솟아올랐다. 스키점프를 하듯 활강하는 나. 나의 전광판에 [그래도 한 명쯤은]이란 붉은 문구를 피 토하는 심정으로 썼다.

나풀나풀거리는 노란 나비가 큼지막하게 박힌 하얀 원피스를 입고 4호실을 나섰다. 성일이와는 이미 눈을 맞추며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이다. 길고 좁은 복도를 지나 거실에 서서 한 바퀴 빙 돌았다. 원피스가 나팔꽃이 만개하는 것처럼 활짝 펴졌다. 거실과 연결된 주방에 처음으로 들어가봤다. 사회복지사들이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 “은정아, 오늘 기분 좋아 보이는구나, 어디 가니?” “네~, 약속이 있어요!” 나는 유쾌하게 대답을 하고 나와, 2호실과 3호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한창 낮잠 중인 아이들 볼에 일일이 입맞춤을 했다. 마지막으로 1호실로 들어가 민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내 손은 더 이상 밭고랑을 갈 때 쓰는 농기구처럼 흉측하거나 뻣뻣하지 않았다. 1호실 방을 나와, 다시 거실에서 빙그르르 한 바퀴 돌고 하이힐을 신고 현관문을 나섰다. 마당을 지나 정문을 통과하고,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와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자바 칩 프라푸치노’를 주문했다. 음료를 받아들고, 햇볕이 잘 드는 2층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가벼운 발걸음의 행인들을 내려다봤다. 고개를 들어 실내를 둘러봤다. 저쪽에서 걸어오는 하얀 여자. 엄마 같은데…, 엄마 같아…. 나라고 엄마가 쉽게 용서되는 건 아니야…, 그래도 보고 싶어…. 기대감에 부풀어 언젠가 그녀가 맛보라며 입에 넣어준, 처음으로 맛보았던 커피 음료를 빨대로 쭉 빨았다. 하얀 여자가 웃으며 다가왔다. 그녀였다.

정신이 들었다. 입 안에 침인지 피인지 모를 액체가 고여 있는 것 같았다. 무심한 내 몸뚱이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무감각하게 길 위에 누워 있을 뿐이었다. 언덕에서 그녀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얼굴을 하고 나를 향해 최선을 다해 뛰어오는 그녀의 모습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못되고 추한 그녀, 쌍스럽고 악랄한 그녀, 그러나 한없이 가여운 그녀. 나는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언니, 괜찮아?]

그녀가 땀을 뻘뻘 흘리며 내 곁으로 왔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내달렸는지 가쁜 숨을 연신 내뱉었다. 헉헉대며 얼굴을 내 얼굴 가까이에 대고 있어 처음으로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행성처럼 돌아가는 내 눈동자에 붉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이 사진처럼 박혔다. 그녀는 한참 숨을 고르고는 울먹거리며 나를 일으켜세우고 말했다.

“널 죽이고 싶었어! 니가 싫어! 널 보면 나를 보는 거 같아. 넌 왜 이렇게 태어나서 이 지경으로 살고 있는 거야!”


나는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 검지를 뻗어 그녀의 허벅지를 긁었다. 그녀가 깜짝 놀라 휠체어를 바르게 고정하고 “뭐야? 너 손가락 움직여?” 하며 나의 열 손가락을 하나씩 테스트했다. 나는 검지를 계속 꼼지락거렸다. 그녀가 자신의 손바닥을 폈고 나는 거기다 이렇게 썼다. 살어.

그녀가 주저앉아 내 허벅지를 잡고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나는 눈알을 굴리며 그녀의 절규를 가만히 들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우리 뒤로 차량들이 지나가는 소리와 행인들의 수군거림이 들렸지만 그녀의 울음소리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그녀가 내 마음처럼 울고 있었다.

울음을 그친 그녀가 지나가는 이의 도움으로 나를 휠체어에 태우고, 있는 힘을 다해 밀어올렸다. 힘겹게 나를 마당 중앙에 데려다놓고, 구석에 있는 수돗가로 가서 꼭지를 틀고 호스를 든 채 솟구치는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런 후에, 소망동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서 물이 든 유리컵과 숟가락, 물수건을 가지고 나왔다. 물수건으로 내 입가를 닦아준 뒤 숟가락으로 물을 떠서 내 입에 넣어줬다. 의식을 치르듯 조용조용 행하던 손놀림을 끝내고 휠체어를 마당 한편에 있는 벤치를 향하게 해놓고 자신은 그 벤치로 가서 앉았다. 그녀가 나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봤다. 앙다무는가 싶었던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얼굴도 일그러졌다. 속울음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무는 것처럼 보였다. 나를 향한 시선은 거두지 않았다. 조금씩 떨리는 그녀의 몸. 벤치 가장자리를 잡았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때, 그녀의 전광판에 불빛이 들어왔고 글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참을 수 없는 심정이 되어 쇳소리를 내며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몸부림을 쳤다. 소리 없이 흐느끼던 그녀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휠체어를 천천히 눕히며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하늘 본 지 오래됐지?”

내 시야에 파란 하늘이 들어왔다. 나는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 검지를 뻗어 그녀의 허벅지를 긁었다. 그녀가 깜짝 놀라 휠체어를 바르게 고정하고 “뭐야? 너 손가락 움직여?” 하며 나의 열 손가락을 하나씩 테스트했다. “오른손 검지 하나는 확실히 움직이는구나, 왜 몰랐을까” 했다. 나는 계속해서 검지를 꼼지락거렸고 그녀는 자신에게 무슨 할 말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검지를 계속 꼼지락거렸다. 그녀가 자신의 손바닥을 폈고 나는 거기다 이렇게 썼다. 살어. 그녀는 내가 쓴 글자를 인식하더니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동글동글한 눈물이 맺혔다.

서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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