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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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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없는 OECD 회원국, 달랑 둘… 이재명 정부도 방치하나

‘2026 부처별 업무보고’에 차별금지법 거론 안 돼…‘사회재생산 위기’ 극복 위한 어젠다 필요해
등록 2026-01-02 10:36 수정 2026-01-05 20:36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12월16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12월16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혐오와 차별은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지만, 무엇이 혐오이고 차별인지 가를 기준인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는 실종된 상태다. 2007년 이후 13차례나 국회에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권인숙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8월 ‘평등 및 차별금지 법안’을 제출한 이후에는 발의조차 끊어졌다.

내란 사태에 저항하는 ‘응원봉 시민들’이 요구한 1순위 사회대개혁 법안이 차별금지법 제정이었는데,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고도 차별금지법은 사실상 금기어처럼 여겨지고 있다. 2025년 12월11~23일 이뤄진 부처별 ‘2026년도 업무계획 보고’에서도 차별금지법은 거론되지 않았다. 한겨레21이 차별금지법 입법 계획에 대해 묻자 ‘성평등’을 이름에 못박은 성평등가족부는 “법무부가 주관 부처”라고 답했고, 법무부는 “입법할 계획 없다”고 말했다.

여가부에서 이름 바꾼 성평등가족부 “법무부 주관”

국제사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곤란한 문제로 취급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일본 두 곳뿐이다. 일본조차 혐오표현을 억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인 ‘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 해소를 위한 대처법’(헤이트스피치 규제법)을 시행(2016년 6월)하고 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2025년 5월), 여성차별철폐위원회(2024년 6월), 자유권위원회(2023년 11월) 등은 한국 정부에 반복적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다. “차별과 혐오가 증가하고 있으나 이를 막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실질적인 제도적 조치를 신속히 취할 것을 촉구한다”(자유권위원회)는 식이다.

국회 차별금지법 발의가 끊긴 원인은 무엇일까. 일부 극우 개신교 쪽의 악성 민원 같은 실력 행사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일부 민원이 국민의 목소리로 과대 대표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차별금지법(평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던 이상민 당시 민주당 의원은 2022년 1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한 목사님한테서 ‘요즘 전국의 목회자들이 이상민 의원을 악마로부터 구해달라고 기도한다’는 문자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국회가 여성 정책과 관련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방기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헌재가 2019년 4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형법상 낙태죄’는 헌법 불합치”라고 판단했지만 국회는 관련 법 개정 기한(2020년 말)을 훌쩍 넘겼다. 관련 법(모자보건법)이 바로잡히지 않아 미프진 같은 임신중지약물 사용은 여전히 ‘불법’ 범주에 속한다. 북한마저도 2013년 일찌감치 미프진 허가국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 문제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도 잘 알고 있지만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12월19일 성평등가족부 2026년도 업무계획 보고 자리에서 “(법 개정에 대한) 제일 큰 반대 입장이 종교계냐?”라며 잠시 침묵한 뒤 “계속 고민해보자”고 말한 것이다.

손솔 진보당 의원은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안 하는 게 이상한 법안인 차별금지법이 발의조차 힘든 상황까지 된 건 정치권의 보수 개신교 표에 대한 눈치 보기가 컸다. 악성 민원으로 법안이 여러 차례 철회됐다. 그 과정에서 보수 개신교는 ‘이렇게 하니까 되더라’라는 경험을 쌓았다”며 “종교가 진짜 해야 할, 가난하고 힘든 사람의 곁에 서는 일 대신 외부 공격 요인을 만들어 교인들을 규합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안을 만들어놓고도 공동발의 의원 10명을 채우지 못해 발의를 못하고 있는 손 의원은 “발의하려고 다른 의원들에게 손편지를 썼다는 보도(11월20일) 이후 항의 전화를 많이 받았고, 크리스마스 때 항의 ‘손편지’도 받았다”며 “그래도 (2025년) 12월30일로 9명을 모았다. 발의는 곧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후 법제사법위원회가 이 법안을 다루지 않으려 할 수도 있어, 반드시 다뤄지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바라는 시민들의 강력한 네트워크가 ‘보이는 방식’으로 드러나도록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영화·언론은 혐오 정서 활용해 ‘화제몰이’

정치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화와 언론 등 미디어에서도 이익을 위해 혐오 정서를 활용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대표적인 예가 ‘이주민의 범죄율이 높을 것’이라는 편견에 기초한 각종 가짜뉴스다. 2024년 기준 한국인의 인구 10만 명당 범죄율은 3120건으로, 외국인 10만 명당 범죄율(1384건)보다 약 2.25배 높다. 그럼에도 ‘황해’(2010년), ‘청년경찰’(2017년), ‘범죄도시’(2017년)와 같이 중국인 거주 공간을 범죄 공간처럼, 중국인을 범죄자로 묘사한 영화가 잇따라 개봉했다.

또한 중국인 관광객 무비자 입국과 관련해 “국민 안전을 담보로 한 위험한 도박”(김민수 국민의힘 최고위원), “범죄, 불법체류, 감염병 확산 등 유사시 신속 대응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등의 혐오 발언이 언론에 필터링 없이 그대로 보도되고 있다. 비상계엄 당일 한 인터넷 매체는 “계엄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중국인 간첩 99명을 체포했다”는 100% 날조된 내용의 기사를 배포하기도 했다.

이윤영 한라대 교수(범죄사회학)는 “외국인 범죄 담론은 사실 여부를 떠나 사회적 낙인과 연관된다. 범죄 유형도 외국인이라고 특정 범죄의 비중이 높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국인보다 범죄를 덜 저지르는 외국인을 막연한 공포 속에 바라보면서 혐오 현상이 확산된다”며 “혐오와 갈등이 확대·지속되는 현실에 맞는 차별금지법과 같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정아 백석예술대 초빙교수(공연예술학)는 “영화 ‘청년경찰’의 경우 주민들과 아무런 사전 협의도 없이 대림동(서울 영등포구)에 가서 상호 등을 그대로 노출했다”고 지적했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장은 “기존 편견·낙인에 가짜뉴스가 더해지니 편견이 두려움을 자극해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먹힌다”며 “혐오와 갈등을 줄이고 사회를 통합해가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지만, 현실의 많은 정치인이 표가 있고 돈이 있는 곳을 이용해 권력을 가지려 한다”고 지적했다. 강다영 대한성공회용산나눔의집 소속 이주인권 활동가는 “혐오표현은 개인 간의 모욕으로만 보긴 어렵다. 하나의 집단이나 인종 전체를 위축시키는 일”이라며 “특히 정치인이 혐오 발언을 했을 때 (대중에게) ‘해당 집단에 대해선 그런 말을 해도 괜찮다’는 것을 인정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도 특정 정당들은 혐오를 무기 삼아 활동한다”고 지적했다.

차별금지법 제정 찬성 여론 더 높아

사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시민 여론이 더 높다. 2025년 9월 한겨레·한국정당학회 설문조사(유권자 2207명)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찬성이 64.1%로 나타났고, 반대는 35.9%에 그쳤다. 2022년 발표된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개신교인 1천 명 대상 조사에서도 찬성(42.4%)이 반대(31.5%)보다 높게 나타났다. 국회가 이런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고, 지난 18년간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며 혐오를 방치하는 사이 극우세력이 성장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2025년 12월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업무보고 사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원 장관은 후보자 시절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장관이 된 이후 계획과 방안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2025년 12월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업무보고 사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원 장관은 후보자 시절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장관이 된 이후 계획과 방안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는 “거스를 수 없는 변화 흐름을 보면서도 ‘일부 극우 개신교의 반대 ’를 핑계 삼는 정치권 의 문제로 인해 ‘ 윤석열 극우 정치 ’가 탄생했고 , 차별금지법에 적극 반대해온 사람인 안창호 같은 이가 국가인권위원장에 올라 인권을 모독하고 내란을 옹호하는 일이 발생했다 ”며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자살, 삶의 불안함, 정신건강 ·고립 ·돌봄 등 이른바 ‘사회재생산 위기’는 모두 불평등 그리고 차별과 연결돼 있다. 그런데 이를 풀어가야 할 더불어민주당은 새로운 사회를 위한 뚜렷한 어젠다의 제시 없이 계속 ‘내란 종식이 먼저, 민생이 먼저’라는 얘기만 한다”고 말했다. 이 공동대표는 이어 “차별과 불평등 해소를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이야말로 정말 민생 문제”라며 “무엇이 차별인지 어떻게 발생하는지 알리고 근본 구조를 바꿔나가는 법제가 없으니, 증오범죄 대응도 오히려 처벌 중심으로 흐르게 되는 것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김지학 소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12월16일 보건복지부 업무계획 보고 자리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고 언급한 점을 거론했다. 그는 “탈모 문제에 대해 머리를 나게 해주는 게 아니라 외모에 대한 낙인을 줄여가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라며 “정작 진짜 생존과 관련된 임신중지약 허가나 자궁경부암의 원인이 되는 HPV(사람유두종바이러스) 백신을 남녀가 모두 연령에 상관없이 의무 접종하는 문제 등은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유급 생리휴가가 남자 역차별이라고 무급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남자도 아프면 쉬게 해달라고 해야 할 것을 완전히 어리석은 방향으로, 모두가 손해 보는 방향으로 풀어가려고 한다”며 “모두가 평등하게 존재하는 사회가 아닌, ‘누군가 경쟁에서 탈락하면 내가 생존에 유리할 수 있다’는 식으로 배제와 경쟁의 사회가 돼가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분석했다.

‘탈모 언급’ 대통령에게 더 시급한 문제는

우리는 어떤 자세로 혐오 문제를 마주해야 할까. “혐오 문제는 ‘약자 지원’ 차원이 아닌, ‘저 사람이 없으면 내 삶의 일부도 유지될 수 없다’는 상호 의존, 상호 돌봄의 문제로 접근해보면 어떨까요. 우린 모두 연결돼 있잖아요. 이주민만 봐도 우리 사회에서 필수노동을 맡고 있어요. 이 돌봄 없인 사회가 유지될 수 없어요. 그런데 이들을 타자화해 추방하려 해요. 매우 안타깝습니다.” 신정아 교수가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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