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하루 앞둔 2025년 5월17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5·18 전야 행사에 참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왼쪽)와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화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새 정부 초기 개헌 가능성이 1987년 제9차 개헌(제6공화국 헌법)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핵심 당사자인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재명 대통령 모두 개헌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2025년 4월6일 우 의장이 제안한 ‘대선 전 개헌’을 5월18일 당시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대선 후 개헌’으로 받아들인 것이 긍정적인 신호다. 두 사람은 전 대통령 윤석열 파면 전후 여러 차례 대화하면서 개헌을 상의하고 준비해왔다. 더욱이 현재 민주당과 국민의힘을 포함해 모든 원내 정당이 개헌에 동의하고 있다. 두 사람의 개헌 논의와 발표 과정을 주변 인사들의 설명과 그동안 나온 기사를 종합해 재구성해본다._편집자
2025년 3월 말~4월 초 국회 의원회관 501호 우원식 의원실. 우 의장과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가 두 차례 마주 앉았다. 4월1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윤석열 탄핵 선고 재판을 4월4일 연다고 밝혔다. 우 의장의 요청에 따른 두 차례 만남에서 두 사람은 대선 전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개헌하자고 의기투합했다. 통상 개헌이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는 때는 대선 운동 기간이다. 이때 후보들은 저마다 개헌을 공약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면 집권 초기엔 ‘블랙홀’이라 미루고, 임기 후반엔 ‘레임덕’에 빠져 추진하지 못한다. 이 점에서도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이었다.
두 차례 만남에서 두 사람이 논의한 개헌 내용은 이랬다. 먼저 권력 구조와 관련해 대통령 4년 중임제(또는 연임제)와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데 뜻을 같이했다. 국무총리를 국회에서 추천하거나 대통령 산하의 감사원을 국회 산하로 이관하는 등 국회 권한을 강화하는 것에도 공감했다. 이와 함께 헌법 전문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포함하고 계엄령 선포 때 국회의 사전 승인을 받게 하는 것에도 공감했다. 국회의장과 과반수 정당의 유력한, 잠재적 대통령 후보가 뜻을 모았으니 개헌이 절반은 된 셈이었다. 그즈음 우 의장은 국회부의장이자 국민의힘의 헌법개정특별위원장인 주호영 의원도 따로 만났다. 이 자리에서도 대선 전 개헌과 4년 중임제 도입, 헌법 전문에 5·18 정신 포함 등에 서로 공감했다.
앞서 우 의장은 2024년 11월 국회의장 직속 ‘국민 미래 개헌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국회의장 개헌안을 준비해왔고, 개헌 제안을 위한 적절한 시기를 기다려왔다. 2월23일 한겨레21과 한 전화 인터뷰에선 “나는 오랜 개헌론자다. 그러나 국회의장이 개헌 이야기를 꺼내면 반드시 개헌이 돼야 하지 않겠나”라고 신중하게 말했다. 개헌을 위한 사전 준비를 충분히 하고 조건이 모두 갖춰졌을 때 개헌을 제안하겠다는 뜻이었다.
4월4일 윤석열이 파면됐다. 우 의장은 즉시 조국혁신당을 비롯해 진보당, 개혁신당,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 등 원내 정당 지도부에 연락했다. 얼마 남지 않은 대선 전 개헌의 필요성과 긴급성을 설명하고 의견을 들었다. 우 의장은 오랫동안 고치지 못한 권력 구조 등 대선 전에 합의할 수 있는 선에서 개헌하고 대선을 치르자고 제안했다. 다른 개헌 과제들은 2026년 지방선거로 넘기자고 덧붙였다. 다수 정당이 공감을 표시했다. 개헌 제안 준비는 대략 끝난 듯했다.
윤석열 파면 이틀 뒤인 4월6일 일요일, 우 의장은 ‘개헌 특별 담화’를 열었다. 그동안 여러 정당과 상의하고 공감한 내용을 바탕으로 개헌을 제안했다. “새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기 전에 물꼬를 터야 한다. 기한 내에 합의할 수 있는 만큼 논의하되, 가장 어려운 권력 구조 개편은 이번 기회에 꼭 해야 한다. 부족한 내용은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2차 개헌을 할 수 있다. (…) 여야 지도부와 개헌 논의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다. 민주당뿐 아니라 여러 당 지도부와 다 얘기했다.”
우 의장의 개헌 제안은 나오자마자 거대한 역풍을 맞았다. 민주당 중진이자 대표적 친명 인사인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우 의장을 향해 “국회의장 놀이를 중단하고 더는 개헌 주장으로 국민의 분노를 사지 않기를 바란다”고 비난했다. 역시 대표적 친명인 김민석 민주당 수석최고위원도 “내란 척결과 정권 교체 최우선. 내각제 불가”라고 짧지만 강하게 반대했다. 김 수석이 우 의장이 거론하지 않은 ‘내각제’를 꺼낸 것도 개헌 반대에 불을 붙였다. ‘내각제는 보수 세력의 장기 집권 음모’라는 부정적 인식은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수박’이니 ‘개헌 수괴’니 하는 모욕적인 비난까지 쏟아졌다.
정치권의 눈길은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의 반응에 쏠렸다. 4월7일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이 대표는 “개헌을 안 하면 역사적으로 비난받게 된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재평가받을 기회가 없기 때문에 취임하자마자 내리막길을 가게 된다”며 대선 전 개헌의 필요성을 말했다. 그러나 내란 종식이 최우선이라는 최고위원 다수의 의견을 넘지 못했다. 결국 이 후보는 “개헌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내란 종식이 먼저”라며 한발 물러섰다. 다만, 이 후보는 헌법 전문에 5·18 정신 담기, 계엄령 선포 요건 강화 등은 대선 전에도 개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개헌의 핵심인 권력 구조 개혁은 포함하지 않았다.
개헌 역풍을 더욱 거세게 만든 건 4월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하면서다. 한 권한대행의 이 지명은 국회가 추천한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조차 거부한 기존 태도와는 정반대였다. 이미 파면된 윤석열이나 내란에 동조한 국민의힘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 까닭이다. 내란 세력의 준동이 계속된다는 뜻이었다. 내란 세력과의 개헌 논의는 안 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이와 관련해 이 후보의 한 측근 의원은 “최고위원 회의에서 강한 반대가 있었고, 개헌 제안이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전에 최고위원들이 충분히 알지 못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4월9일 우 의장은 사흘 만에 개헌 제안을 거둬들였다. 우 의장은 “현 상황에서는 대선 동시 투표 개헌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국민적 공감대에 기초한 제 정당의 합의로 대선 이후 본격 논의를 이어가자”고 말했다. 이때도 우 의장은 자신의 개헌 제안이 이 후보와 사전에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을 밝히지 않았다. 이런 설명으로 인해 개헌 논의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음을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로 그날 이 후보는 대선 출마를 위해 민주당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며칠 뒤 이 후보와 우 의장이 통화했다. 이 후보는 사전에 공감했던 우 의장의 개헌 제안에 화답하지 못한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개헌 이슈는 다시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4월27일 이재명 후보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5월이 되자 민주당에서 이재명 후보의 개헌 공약이 곧 발표될 것이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5월17일 저녁 광주 금남로 5·18민주화운동 전야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밝은 표정으로 대화했다. 다음날인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 오전 9시, 이 후보는 페이스북에서 개헌을 공약했다. 내용은 헌법 전문에 5·18 정신 담기, 대통령 4년 연임제, 대선 결선투표제, 국무총리 국회 추천, 감사원 국회 이관, 주요 기관장을 국회 동의 받아 임명, 비상명령과 계엄 선포 사전 국회 승인 등이었다. 개헌 시기는 2026년 지방선거나 2028년 총선거 때로 제안했다.
이날 이 후보가 발표한 개헌 내용은 대부분 3월 말~4월 초 우 의장과 상의하고 공감한 것들이었다. 이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그동안 말 못한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애초에) 개헌을 합의 가능한 범위 내에서 대선과 동시에 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국회의장과도 그 얘기를 나눴는데, 5·18 광주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이나 대통령 4년 중임제,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이런 것은 이번 대선에 동시에 추진하고자 했다. 그래서 국회의장이 그 말씀(개헌 제안)을 했는데 ‘지금 개헌보다 중요한 건 내란 극복’이라는 국민적 목소리가 워낙 큰 바람에 진행이 쉽지 않았다. 국회의장께서 오해도 많이 받고 고생 많이 하시는데 그 점에 대해서 저도 매우 유감스럽다.”
그동안 논란을 일으켰던 개헌을 둘러싼 여러 사실이 확인됐다. 이 후보와 우 의장의 사전 개헌 논의, 두 사람이 공감한 개헌 내용, 우 의장의 개헌 제안을 자신이 받지 못한 이유, 우 의장에 대한 미안함 등이었다. 그러나 한 달 넘게 속앓이를 하던 우 의장은 환영한다는 의견도 내지 못했다. 대선 운동 기간이어서 국회의장으로서 중립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우 의장의 개헌 제안을 이 후보가 개헌 공약으로 받기까지 한 달 열흘이 넘게 걸렸다. 이 동안 우 의장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무수한 욕을 들었고, 이 후보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한마디 거들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이 애초에 상의하고 공감한 내용은 이 후보의 개헌안에 대거 포함됐다. 다만 개헌 논의는 막 시작했을 뿐이다. 이제껏 걸어온 길보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훨씬 더 멀다. 수많은 대통령 후보가 개헌을 공약했지만, 실제 대통령이 돼서 추진한 경우는 노무현·문재인 두 사람뿐이었다. 과연 이재명 대통령이 38년 동안 한 번도 고치지 못한 헌법을 개정할 수 있을까? 이재명 대통령은 제7공화국을 열 수 있을까?
국회의장실의 한 관계자는 “대선이 끝났지만 또 기다려야 한다. 국회가 먼저 나설 수는 없다. 이 대통령이 주요 국정 과제를 정하고 대통령실과 내각의 인사를 마쳐야 한다. 이 대통령이 국회에서 개헌특위를 구성해 논의해달라고 요청해야 개헌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한 측근은 “개헌을 하려면 먼저 국민투표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리고 여야가 개헌특위를 구성해야 개헌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먼저 합의되는 내용은 2026년 지방선거 때, 숙의가 필요한 것은 2028년 총선 때 개헌할 것이다. 가을 정기국회쯤이면 개헌이 활발히 논의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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