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상으로 떠난 엄마, 지금도 카톡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보지만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 추모식을 하루 앞둔 2025년 12월28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1층에서 열린 유가족 단체 분향에서 권혜원(가명)씨가 생전 부모님이 좋아하던 과자와 우유를 상에 올리고 있다. 유가족협의회 제공
179명이 사망한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위원장에 최기영 인하대 항공우주방산전문대학원장이 2026년 7월20일 새로 임명됐다. 2월 말 위원회 소속이 국토교통부에서 국무총리실로 바뀐 뒤 5개월 만이다. 앞서 국토부 산하에 있을 때는 ‘셀프 조사’ 논란이 일었다. 한겨레21은 참사 희생자 유가족의 구술을 토대로 한 희생자의 기록을 계속 이어간다. _편집자

전남 무안국제공항 1층 분향소에 분향객이 꾸며놓은 나비 장식. 유가족협의회 제공
엄마는 비금도, 아빠는 광주가 고향이에요. 엄마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광주로 와서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아빠 직장도 광주였어요. 엄마의 절친이 아빠를 소개해줬는데, 회사에 완전 황태자 같은 남자가 있다고.(웃음) 한번 만나봐라 해서 만나게 된 거예요. 처음에는 아빠가 엄마 스타일은 아니었대요. 엄마가 광주에 황태자가 이렇게 없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아빠는 엄마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계속 만나자고 했는데, 엄마가 답을 안 주고 무시했대요.
아빠가 엄마 회사로 전화해서 연락 한 번만 받아달라고 하니 엄마가 이제 그만하셔라, 이렇게 전화하고 밥 한번 먹자고 했대요. 그 식사 자리에서 아빠가 밥을 정말 복스럽게 먹어서, 엄마가 그거 보고 내가 해주는 음식도 저렇게 복스럽게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아빠가 되게 착하거든요. 엄마는 반대로 성격이 좀 불같아요. 아빠가 그걸 다 받아주고, 엄마가 새벽 늦게 서울에서 광주로 오면 데리러 나가고 그런 다정한 면이 많았나봐요. 그래서 엄마는 아빠랑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했대요.
두 분 다 골프를 좋아해서, 부부 동반으로 골프여행을 간 거였어요. 원래 국내 위주로 다니는데 마침 저도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코로나19 끝나고 나서 두 분이 처음으로 간 국외여행이었어요. 제가 편입 준비 중이라서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토익 시험을 치고 있었어요. 시험이 끝나고 엄마 아빠한테 아무 생각 없이 카톡 보내고, 그날 친구들이랑 저녁을 먹기로 했단 말이에요. 친구들이 딱 시험 끝났을 시점에 사고 당시 뉴스랑 사진을 보냈더라고요. 전 그게 군 비행기인 줄 알고 친구들한테 이 군인들 어떡해, 이렇게 보냈어요.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갑자기 사촌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사촌 언니가 “너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니, 엄마 아빠 어디 있냐”고 했어요. “엄마 아빠 여행 갔죠” 하니까 사촌 언니가 나에게 놀라지 말고 들으라고 했을 때 그 비행기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혹시 그 비행기가 부모님 비행기냐, 오늘 오신다고 했다” 하니까 언니가 알아보라고 해서, 여행사에 연락해보니 부모님이 그 비행기에 탔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내가 지하철에서 너무 우니까 사람들이 막 쳐다보는 거예요. 차도 없고, 기차도 다 매진이었어요.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고 가족한테 다 소식 전하고, 작은이모 차를 타고 무안공항에 내렸어요.

무안공항 참사 유족이 생활하고 있는 전남 무안국제공항 2층에 마련된 셸터. 유가족협의회 제공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그냥 차가 되게 많았어요. 기자도 아주 많고 소방차, 경찰차도 있었고. 이모가 “어디에 주차해야 하지” 하고 있을 때 저는 그냥 내려야겠다 하고 혼자 막 뛰었어요. 뛰다보니까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인 곳이 있더라고요. 거기 가니까 제 이름이 들려서, 친가, 외가 식구 다 모여 있고. 어떻게 됐냐고 물어봤는데, 그때까지 뉴스를 못 보겠는 거예요. 친척들이 “아직 못 찾았다, 조금 기다려보자” 하고. 그때도 저는 부모님이 사망했다는 걸 모르고 있었어요.
계속 기도했죠. 제발, 제발… 이러면서 기도하며 계속 울고, 소리 지르고 하니까 고모가 막 달래주고, 외가 친척은 다 조용히 계시고. 작은이모랑 이종사촌 언니들이 왔는데 그때쯤 아빠를 찾았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저는 도저히 못 보겠으니까 고모부한테 다녀오라고 했는데, 고모부한테 어떻게 됐냐고 물어보니까 말을 못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잘못됐구나, 하고 제발 엄마라도 무사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작은이모부가 되게 ‘T’이거든요. 엄마가 살아 있을 확률이 0.1%도 안 될 거다,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도 제발 살아 있어라 기도하고.
디엔에이(DNA) 검사하고 그다음 날에 엄마가 발견됐어요. 외삼촌이 먼저 보러 가서 엄마 얼굴 괜찮다더라. 그런데 엄마가 무릎부터 발까지 다리가 없다는 거예요. 엄마 다리가 없다는 게 좀 충격이었고…. 그때도 기도했어요. 엄마 다리 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그 뒤에 부모님 신원 확인을 했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큰이모댁에 살고 있어요. 사촌 언니 두 명이 있는데 큰언니 같은 경우에는 우리 엄마랑 4살 차이밖에 안 나요. 그래서 큰언니랑 엄마랑 되게 친했거든요. 오히려 저보다 더 엄마 얘기를 많이 해줘요. 사실 저는 분위기가 좀 싸해질까봐 부모님 얘기를 선뜻 잘 못하는데 언니가 먼저 얘기해주니까 거기서 위로를 받아요.
친가 쪽 사촌 언니도 있는데 그 언니의 엄마, 작은고모가 2024년에 돌아가셨어요. 언니가 저보다 먼저 엄마를 잃은 경험이 있어서 도움을 많이 줬어요. 언니가 앞으로 이럴 때는 이런 생각이 들 거고, 어떨 때는 저럴 거다. 이렇게 먼저 말해주니까 좀 괜찮았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없다는 게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제가 방향을 못 잡았을 수도 있는데, 사촌 언니가 방향을 잡고 아주 잘 살고 있어서 나도 그 언니처럼 돼야겠다 생각했어요. 엄마가, 부모님이 없어도 이렇게 잘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어서 그게 많이 위로가 돼요. 20대분들은 한창 미래를 향해 나아갈 시기에 큰 참사를 겪은 거잖아요. 그래서 방향을 못 잡는 분도 계신 것 같고, 아니면 부모님 품이 너무 그리워서 헤어나지 못하는 분도 많고. 저는 다른 또래분들보다 조금 더 빨리 나아진 것 같아요.
가족이랑 사이가 아주 좋았어요. 제가 외동이기도 하니까, 엄마 아빠랑 친구처럼 지냈거든요. 연애사도 엄마한테 다 이야기하고, 흉보는 것도 엄마한테만 하고. 친구들한테 말하는 이런저런 거 전부 다 엄마한테 이야기했어요. 아빠와도 사이가 좋았죠. 한번은 남자친구랑 헤어졌을 때 그때가 새벽 서너 시였는데 아빠한테 전화해서 나 잠이 안 온다고 그런 적도 있고.
아빠랑 성인이 돼서도 스킨십을 많이 했거든요. 뽀뽀 같은 것도 많이 하고. 아침에 양치 안 하고 아빠한테 뽀뽀하면 아빠가 제발 이 좀 닦고 하라 그러기도 하고. 엄마는 아빠랑 저랑 사이좋은 걸 좋아했어요. 다른 딸들은 보통 아빠한테 그러지 않으니까. 아빠도 제 앞에서는 막 싫은 척하더니 이번에 아빠 친구분들을 만나니까 자랑을 했더라고요.
아빠가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 꼭 저를 불러요. 그러면 제가 숙취해소제나 우유 같은 거 사가거든요. 아빠가 그때마다 우리 딸은 아직도 나한테 뽀뽀를 한다고. 친구들한테 말하면 그분들이 도대체 비결이 뭐냐면서 자기 딸은 그냥 틱, 방에 들어간다고 하면 아빠가 되게 뿌듯해하고. 엄마와도 제가 서울에 있다가 광주에 가면 같은 침대에서 자고, 밤늦게까지 친구처럼 이야기하고. 저도 엄마한테 힘든 걸 많이 얘기했지만 엄마도 저한테 힘든 일 있으면 이야기해주고 그랬어요.
제가 덜렁거리는 성격이라 입시 때도 중요한 서류를 안 낸 거예요. 우체국도 다 문을 닫아서 전남 순천에 딱 하나 무인 우체국으로 아빠 차를 타고 갔어요. 아빠는 단 한 번도 짜증을 안 냈어요. 제가 계속 ‘어떡해, 어떡해’ 하니까 침착하라고 진정시켜주고요. 나중에 아빠에게 왜 짜증을 안 냈느냐고 물어보니 제가 더 속상해할까봐, 화가 난다기보다는 네가 고생했던 날들이 물거품이 될까봐 아빠는 그게 더 속상하고 안쓰럽다고 얘기해주더라고요.
그리고 결과 발표가 났는데 제가 가장 가고 싶던 1지망 학교에 떨어졌어요. 학교에서 집까지 차로 30분 정도로 먼데, 제가 속상해서 그 거리를 그냥 걸었어요. 아빠에게 전화해 “아빠 왜 전화 안 해” 했더니, 아빠가 널 모르냐고 합격했으면 바로 전화했을 텐데 전화 안 오는 걸 보고 결과를 짐작했다고 하더라고요. 아빠가 왜 그 추운 날 걸어오냐며 택시 타고 오라고. 좀 걷다가 택시를 타고 집에 왔는데 앞에 아빠가 서 계셨어요. 아빠랑 같이 아파트 단지를 계속 돌면서 이야기했던 기억도 있네요.
또 재밌는 게 아빠가 항상 학교 끝나면 저를 픽업하러 오셨거든요. 제가 늦게 끝난 날은 저를 빼고 친구들만 태우고 데려다줘요. 전화해서 “아빠 그럼 나는 어떡해?” 하면 너는 택시 타고 오라고 해요. 그런 웃긴 에피소드가 많아요.
엄마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도전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분이에요. 회사 다니다가 아나운서도 하고, 책도 쓰고,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도 했다가 갑자기 자기는 수학이 더 재미있다며 최근까지는 수학 과외 교사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노후를 위해 이제는 도배를 배워봐야겠다면서, 도배 자격증도 땄거든요. 사고 딱 일주일 전에 그 자격증이 나왔더라고요. 자격증이 나오면 손님을 받을 수 있잖아요. 하루에 5명 정도 예약이 들어오면 자랑하고 그랬대요.
엄마랑은 정말 친구 같았죠. 아빠가 저녁에 학교 끝나고 저를 데리러 왔다면 엄마는 아침에 데려다줬어요. 그 전쟁 같은 아침에 많이 싸웠죠. 서로 카톡 주고받으면서 장문으로 미안하다고 화해하고. 쇼핑도 많이 다니고. 아빠 몰래 둘이서만 차 타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고.
또 제가 좋은 곳을 찾으면 엄마가 굉장히 좋아해요. 돈 내주는 건 다 엄마인데…. 우리 혜원이 덕분에 이렇게 좋은 데 왔다고, 우리 딸 어쩜 이런 것도 잘 찾냐고 별거 아닌데도 많이 칭찬해주고. 수능 끝나고는 엄마랑 데이트를 많이 했어요. 그때 서로 서운했던 것도 풀고. 제가 서울에 상경해서는 엄마랑 하루에 서너 시간씩 통화했죠. 그래서 그 사람이랑 어떻게 됐냐, 내가 차였다 이러면 엄마가 어디 감히 우리 딸이랑 사귀려 그러냐고 말했어요.
한번은 남자친구를 광주에 데리고 간 적이 있어요. 정식으로 부모님께 소개한 건 아니었는데, 엄마가 남자친구를 데리고 가기 좋은 장소들을 추천해줬어요. 엄마가 모든 식당을 다 섭외한 거예요. 우리 딸 지금 남자친구랑 가니까 잘해달라고. 가는 곳마다 서비스를 주시고 결제를 안 해도 된다고 하시는 거예요. 네가 혜원이니, 그러시면서. 저는 다 우리 엄마 덕이라고 뿌듯해하고.
제가 자취하러 서울로 올라왔을 때 가족끼리 더 애틋해졌어요. 이전에도 사이가 좋았지만 더 좋아져서, 주변에서 저질 가족이라고 말할 정도로 스킨십도 많이 했어요. 우리 가족은 서로서로 너무 좋아하고. 우리 부모님은 제 결혼식 얘기만 나오면 막 우셨어요. 우리 딸 누구랑 결혼할까, 어떤 사람이 될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막 우시는데, 그 장소가 카페든 친척이 모인 자리든 그냥 제 결혼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우셨어요. 엄마가 제 결혼식 때 울면 안 되는데 어떡하냐고 막 그러시면, 아빠는 엄마 울면 자기도 운다고 하시고. 저는 카페에서 창피하게 왜 우냐고 장난도 치고. 아무튼 주변에서 웃기는 가족이란 말을 많이 들었어요.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 제공
광주 본가에는 그냥 모든 게 그대로 있어요. 부모님 옷만 몇 벌 가지고 오고 그대로예요. 여행 가기 전에 분리수거도 다 깔끔하게 하고 갔더라고요. 그래서 종이 쓰레기만 좀 버렸어요. 부모님이 가장 생각날 때는, 친구들과 만났을 때 부모님 이야기를 한다거나, 친척분들을 보면 얼굴에 우리 엄마 아빠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럴 때도 생각나고 저랑 아빠랑 얼굴이 많이 닮았거든요. 그래서 또 생각나고…. 좋은 일 생길 때도 부모님 생각나고. 엄마가 아빠와 저에게 너무 많이 양보해서, 엄마한테 해주고 싶은 게 정말 많았거든요. 그래서 좋은 걸 보면 엄마 생각이 많이 나요.
살아 계실 때는 부모님이 특별하다는 걸 몰랐거든요. 그냥 일반적인 가정의 평범한 엄마 아빠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주위 사람들과 친구들의 가족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우리 부모님이 저를 많이 사랑해주셨더라고요.
정말 현명했어요. 제가 어떤 고민거리를 말해도 대답을 잘 해주고 정말 착했어요. 부모님을 친구처럼 대하고, 스킨십도 많고, 같이 놀러 가는 것도 좋아하고. 저는 제가 달라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줄 알았거든요. 내가 좀 특별한 딸이고 성격이 이래서 그런 줄 알았는데 엄마 아빠가 나를 잘 대해주니까, 부모님이 노력한 덕분에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구나. 내가 잘난 게 아니라 엄마 아빠가 특별했기에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이제는 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부모님께 정말 고마웠어요.
부모님은 남들한테 다 퍼주는 타입이거든요. 제가 항상 “나는 엄마 아빠같이 그렇게 호구처럼 안 살 거야”라고 말했어요. 나는 진짜 좋아하는 사람한테만 잘해주지, 엄마 아빠처럼 당하고 살지 않겠다고. “나는 계산적인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하면 엄마는 “나는 우리 딸이 그렇게 안 컸으면 좋겠다. 자기가 좀 손해 보더라도 남들한테 베풀었으면 좋겠다. 친절하게 베풀고, 지혜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며 “그래야 나중에 혜원이에게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남들도 도와준다”고 말했어요. 네가 계산적이고 손해 안 보려고 하면 주위에 아무도 안 온다고.
아빠는 제가 매 순간 지혜롭고 침착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뭘 할 때는 미리미리 하고, 고민되는 일의 결론은 급하게 내리는 게 아니라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고. 제가 많이 급한 편이거든요. 그래서 실수도 많이 하고 나중에 후회도 많이 하더라고요. 아빠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해보고 제가 감내할 수 있을 때 결론을 내라는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지금은 부모님이 해준 말씀을 잘 지키려고 노력해요. 손해를 보더라도 좀 양보하고, 고민에 대한 답도 천천히 내리고 있어요. 결론 내리는 게 늦어지면 일 처리도 좀 늦어지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더라고요.
부모님이 제 결혼식을 못 보시는 게 가장 아쉬워요. 엄마는 제 결혼식을 위해서 따로 적금을 들어뒀거든요. 모은 돈으로 제일 좋은 걸 해준다고 했는데. 많이 기대했을 텐데 못 봐서 너무 아쉬워요. 제가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어떨지도 되게 궁금해했는데. 저는 아직 학생이잖아요. 부모님이 정말 잘해줬는데 저는 뭘 해줄 수가 없잖아요. 제가 나중에 돈을 벌어도 엄마 아빠에게 뭘 해줄 수가 없어서 아쉬워요.
사실 제가 사고를 계속 받아들이지 못해서, 아직도 엄마한테 카톡을 보내거든요. 남자친구를 만나면 셀카를 보내기도 하고, 좋은 곳 가면 좋은 데 왔다고 말하기도 하고. 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 앞이 공사 중이었는데 다 지어졌다고 보내기도 하고. 어차피 저는 서울에서 부모님이랑 떨어져서 살았으니까, ‘엄마 아빠는 광주에 있고 나는 그냥 서울에 있는 거야’ 이런 식으로 회피한 적이 많아요.
그런데 카톡에 ‘읽음’ 표시가 안 사라지거나 할 때 갑자기 덜컥 와닿을 때가 있어요. 제가 광주를 출발해 수서역이나 용산역에 내리면 엄마한테 도착했다고 꼭 전화하거든요. 아직도 가끔 그때가 생각나서 엄마한테 전화를 거는데, 지금은 안 받으니까 엄청 울었어요. 사고 이후에 블랙박스도 다 내려받았어요. 부모님과의 통화 녹음 한 것 들으면서 울고. 갤러리를 보다가 부모님 사진 나올 때는 상실감이 들어요. 그 온기가 너무 그리우니까.
다음 생에도 지금이랑 똑같은 가족이면 좋겠어요. 그렇지만… 계속 좀 편하게 살다 갔으면 좋겠어요. 왜 드라마를 보면 그런 게 많잖아요. 누구 죽는 장면. 제가 그럴 때 엄마 아빠는 어떻게 죽고 싶냐고 물어봤어요. 부모님이 항상 하는 말이 있었거든요. 나는 나중에 나이 들어 자면서 죽고 싶다고.
다음 생에는 지금이랑 똑같이 살다가 제 결혼식이랑 자식도 보고, 같이 좋은 것 많이 먹고. 좋은 곳도 많이 가고. 나이 들어서 끝인사도 하고, 잠자다가 그렇게 돌아가셨으면 좋겠어요.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 제공
우리 부모님은 정말 훌륭한 분들이었다고 이 세상에 기록을 남기고 싶어요. 정말 착하고, 사랑 많고, 지혜로운 분들이었어요. 부모님 친구분들이 자주 저한테 연락을 주세요. 생일 선물도 주고 새해 인사도 해주고, 덕담이랑 위로도 해주고. 그리고 광주에 부모님 유골함이 있는데 많이들 보러 가주더라고요. 납골당 가면 꽃을 놓잖아요. 가서 놓을 때 보면 제 것뿐만 아니라 여러 개가 이미 놓여 있어요. 아직도 와주는 분들이 있구나, 우리 엄마 아빠 정말 잘 살았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지 나름대로 많이 고민했는데, 좀 예민한 주제긴 하지만 네이버에 제주항공 참사를 검색하면 연관 배너에 ‘제주항공 참사 배상금’ 이런 게 뜨거든요. 저는 그 돈이 저한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제가 어떤 노력을 하거나 일해서 받는 돈이 아니잖아요. 그 돈의 가치도 모를뿐더러 엄마 아빠한테 제가 해준 게 없으니까 대신에 그 돈을 기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엄마를 닮아서 도전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아빠는 늘 걱정해요. 너 이렇게 이것저것 다 하면 네가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기 어렵다면서 한 우물만 파라고. 사실 사고 직전까지도 제가 이것저것 다 하고 실수도 하고 그랬거든요. 이제는 그렇게 안 하고 제가 정말 잘할 수 있는 걸 하려고요.
저는 이 사고가 복합적인 사고라고 보거든요. 일단 조류 충돌이 첫 번째 원인이고, 그런데 또 그 전에 엔진이 잘못된 건 아닌지. 원래 비행기 출발 전에 점검하는데 그런 게 제대로 됐는지 1차로 궁금하고, 2차로 조류 충돌 문제가 궁금해요. 무안공항에서 사전에 조류 충돌 방지를 위한 총이라든가 그런 걸로 예방했는지, 조종사에게 새를 피하라고 알려준 게 충돌 몇 초 전이잖아요. 그 몇 초 동안 어떻게 피할 수 있겠어요. 또 조류 충돌을 했더라도 복항을 안 하고 그냥 활주로 그대로 내려왔으면 어땠을지도 궁금하고. 둔덕은 말할 것도 없이 결함이 너무 많으니까. 처음부터 규정대로 지어진 게 아닐뿐더러 이후에도 규정 위반이 됐고. 그리고 사고 원인뿐만 아니라 사고 수습이 너무 늦었잖아요. 그런 것에 대한 진상규명도 제대로 됐으면 좋겠어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시민들이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차라리 서울에서 난 사고였다면 관심을 많이 받았을 텐데. 이 참사가 한 지역에서 일어난 거라서 나와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에, 관심을 좀 덜 가져주시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있어요.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면 좋겠고, 책임자도 그에 맞는 형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시민들이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이 참사를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이 사건이 끊임없이 이슈가 되어야 진상규명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데, 유가족들의 힘만으로는 힘들거든요. 이 참사가 아무래도 가족 단위로 한번에 당한 일이라 다른 참사와는 결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우리 유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의 힘이 필요해요.
정나라·이소아·허정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활동가
*2026년 1월20일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활동가들이 유가족 권혜원(가명)씨를 인터뷰하고 기록했습니다. 이 글은 ‘무안공항 참사 이후를 사는 사람들’ 7회로, 한겨레21 누리집을 통해 이전 연재물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h21.hani.co.kr/arti/SERIES/3408
*이 구술기록은 2025년 4·16재단 부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재난 피해자 권리회복사업 지원을 받아 수행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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