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5월19일 오후 충북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있는 고깃집 천둥소리의 임문철(54) 사장이 텅빈 홀에 서 있다. 청주(충북)=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46살 ㄱ씨는 사실상 정리해고를 당했다. 15년 동안 일한 회사가 어느 날 갑자기 지역에서 서울 본사로 발령 내더니 업무를 주지 않았다. 알아서 사직서를 내라는 말이었다. ㄱ씨는 서울에 자취방을 구하고 회사에서 내준 책상에 덩그러니 앉아 1년을 버텼다. 결국 회사에서 쫓기듯 나와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장사는 쉽지 않았다. 코로나19와 극심한 불황을 거치면서 벌이는 금세 마이너스가 됐다. 가게를 내놓았지만 인수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ㄱ씨는 이후 2년 동안 꼬박 가게 문을 열고 있지만, 빚만 늘어나고 있다. 그는 절규했다. “얼마 전 저당 잡힌 아파트를 경매에 부치겠다는 법원의 통지서가 왔어요. 저도 미치겠어요.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건 적은 돈이라도 꼬박꼬박 월급 받는 생활입니다.”
임금노동 시장에서 밀려난다. 재취업은 어렵고 연금 받을 나이가 되려면 한참 남았다. 혹은 연금을 받아도 기본 생활이 안 된다. 퇴직금에다 대출금을 보태 작은 가게를 연다. 이런 진입 경로를 밟았을 가능성이 큰 ‘(직원 없는) 나홀로 자영업자’는 2025년 4월 현재 421만5천 명에 이른다. 전체 취업자 대비 자영업자 비율은 1963년 이래 최저치라는데, 나홀로 자영업자 수는 석 달 만에 되레 12만4천 명이나 늘었다. 이들도 코로나19 이후 바뀐 소비 행태와 이 틈을 타 유통망과 배달망을 장악한 대기업과 빅테크 플랫폼의 착취 구조, 지역 소멸 문제와 극심한 불황이 겹친 상황에서 자영업이 ‘개미지옥’이 됐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마침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건 생존을 위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1565호 표지이야기)
한국의 대통령은 ‘제왕’으로 불린다. 4천~1만3천 개 정도의 고위 공직자 임명권과 600조원 가까운 예산 결정 권한(이선우 전북대 교수)을 가진다.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임명권도 지닌다. 법률안을 직접 제출할 수도 있고, 국회가 제정한 법률안을 거부할 수도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발동했던 금융실명제처럼 긴급명령권도 행사할 수 있다.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선포 역시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이 남용된 대표적 사례다. 이 때문에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선 대선 이후 사회대전환을 위한 개헌을 하면서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421만5천 명에 이르는 나홀로 자영업자를 비롯한 기층 인민에게는 역설적으로 당장 그 ‘제왕적 권한’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한겨레21이 찾은 영남과 호남, 강원과 충청 지역의 자영업자들은 대기업과 빅테크 플랫폼에 대한 규제, 지역 소멸과 골목상권 붕괴 대책, 고령이거나 생계형인 자영업자의 부채를 탕감하는 방안, 소비 진작을 위한 양적완화 정책 등을 빠르게 추진할 수 있는 권한 행사를 정치에 앙망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들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절박한 이들이 자영업자뿐일까. 20년 가까이 빈곤가구로 지내다 생계·의료가 끊기며 숨진 채 발견된 전북 ‘익산 모녀’와 같이 가난한 사람들, 노동 현장의 산업재해 위험이 사라지지 않고 있음에도 몸을 던져 일하다 숨진 에스피씨(SPC)삼립 시화공장 50대 여성 노동자와 같은 이들도 정치에 손을 내밀고 있다. 그 손을 외면하는 후보를 뽑으려면 대선 같은 건 치를 필요가 없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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