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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위기’에 놓인 진보의 다음은

보수 과두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국 득표율 ‘3%+α’는 원외 정당 생존권의 마지노선
등록 2025-05-15 18:42 수정 2025-05-19 13:22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가 2025년 5월13일 오전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입구역 인근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가 2025년 5월13일 오전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입구역 인근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에는 선불로 보내고 생각하련다.” 지난 대선 때 차마 윤석열 되는 꼴을 볼 수 없어 심상정 찍지 않은 미안함을 ‘후불’로 표시했던 한 친구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자마자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의 후원회에 입금부터 했단다. 압도적 내란 응징이냐, 내란 너머의 미래냐는 투표장에 들어갈 때까지 좀더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내란 세력이 또 무슨 해괴한 수를 쓸지 모르니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덧붙였다. 나와 내 친구들은 스무 살 이후 단 한 번도 머리 쥐어뜯지 않고 투표권을 행사한 적이 없다. 진짜 성격이 팔자이고 끼리끼리는 과학인가.

정의당이 녹색당·노동당과 함께 ‘신호등 정당’을 자임하더니,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민주노총 주요 산별노조와 여러 노동·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연대체를 꾸려 ‘진보 단일 후보’를 내세웠다. 정의당 대표인 권영국 후보가 전 민주노총 위원장 한상균 후보를 누르고 뽑혔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이 얻은 광역 비례대표 득표율(4.14%)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 티브이(TV)토론회 참석 자격(3% 이상 득표)을 갖췄으니, 이 귀한 ‘발언 기회’를 그대로 놓칠 수 없다는 뜻이 모인 결과다. 당명도 민주노동당으로 바꿨다. 함께한 이들의 정체성을 모아 담은 대선 프로젝트 정당명이다.

내란으로 온 나라가 격렬히 흔들리는 바람에 가라앉아 있던 모든 것이 일시에 부유했다.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었다. 사법·행정 엘리트들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그들이 누려온 기득권의 구린내가 진동했다. 이 모든 바탕 위에서 확실히 ‘윤석열’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이런 이들과 공존하면서도 이 정도로 살아온(낸) 게 스스로 기특할 지경이다.

내란이 여전히 진행 중이고 확실한 단죄가 이뤄질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이들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로의 몰표를 바란다. 그러나 각종 감세 정책을 필두로 실용을 내세워 지나치게 우향우하는 이재명의 행보가 마뜩잖은 이들은 선뜻 그에게 표를 줄 수가 없다. 저마다 실존을 건 선택을 하는 중이다.

내란의 밤, 모두 숨죽이고 뉴스를 지켜보던 시간 한 지인은 밤새워 동네를 돌아다녔다. 치매 아버지가 그날따라 유난히 밤마실을 졸라대서였다. 그는 내란 소식을 다음날 한낮에야 알았다. 이렇게 밥벌이와 돌봄에 유난히 거친 손을 가진 이들일수록 선거 때마다 후보에게 감정이입이 심하다. 지속 가능한 삶에 앞서 지탱 가능한 삶을 위해,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온몸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극심한 양극화와 인구절벽의 속도를 보건대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안전’과 ‘돌봄’이어야 마땅하거늘, 뜨거운 아이디어와 의견이 쏟아져나와도 모자랄 판국에 우리는 또 절박한 이유로 검찰의 동태를 살피고 어느 판사의 술접대 뉴스에 귀를 세운다. 대체 이게 뭔가. 왜 이런 선거밖에 못하나.

나는 이재명이 득표율 50%를 넘길지보다 권영국이 3%를 넘길지가 더 궁금하다. 원외로 밀려난 정당이 선거에서 ‘공적 발언권’을 지키는 마지노선이기 때문이다. 생존권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이재명의 압도적 승리도 매우 중요하지만 권영국이 대표하는 세력의 ‘멸종 위기’는 더욱 걱정된다. 다양성이 사라지면 세상은 점점 더 무채색으로 바뀐다. 이재명의 당선은 확실하고 그를 지키는 이들은 강고하다. 그런데 ‘이재명의 다음’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우리가 끝내 그걸 생각하지 않아도 될까.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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