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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정] 케네스 마클, 당신을 잊지 않겠소

등록 2006-11-18 00:00 수정 2020-05-03 04:24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1990년대를 뜨겁게 살아낸 이 땅의 젊음들을 분노케 했던 이름이 있다. 케네스 마클(34). 그는 1992년 10월28일 동두천에서 성매매 여성 윤금이씨를 처참하게 죽인 죄로 15년형을 선고받았고, 지난 8월 형기를 1년 반쯤 남기고 가석방됐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지난달 국정감사 때 나온 법무부의 자료를 통해서다. 그때 동두천 민주시민회 의장으로 지역 투쟁을 이끌었던 이교정(46) 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 전무는 “오랜만에 마클의 이름을 들으니 옛 투쟁 기억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윤씨의 사건은 10년 뒤 효순·미선이 때와 마찬가지로 중앙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참혹한 일이 터졌는데도, 언론들은 이 사건을 지방면 1단 기사로 처리합니다.” 경찰은 윤씨가 숨진 지 이틀 만에 주검 화장을 허용했고, 그 다음날 마클을 잡고도 별다른 조사 없이 미군 현병대에 넘겼다.

“윤씨 사고가 나기 한 달 전에 미군들이 부대 앞 보산동 상가 일대에서 술을 마시고 한국 사람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등 난동을 피운 일이 있었거든요. 그때 사람들이 그 미군들을 잡아 경찰에게 넘겼는데 미 헌병들에게 넘겨주더라고요.” 그 광경을 지켜본 시민 100여 명이 보산동의 미군 헌병초소에 돌을 던지며 크게 항의했다. “아마 그 사건이 윤씨 사고의 서막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클의 참혹한 범죄와 이후 한국 사법당국의 행동을 지켜본 동두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하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택시 기사들은 미군들의 승차를 거부했고, 시내에서 장사하는 일부 상인들도 미군 출입을 거부했다. 동두천 시민 400명은 두 번이나 대규모 집회를 열어 “마클 처벌”을 외치며 미군에 항의했다. 투쟁은 전국에 들불처럼 번졌고 마침내 미 2사단 사단장은 시민들에게 공개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때 사건으로 대중들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미군 범죄에 각성하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주한미군의 윤금이씨 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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