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체포됐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다. 대통령이었던 이들이 ‘피의자’ 신분이 된 건 6차례 있었다. 그 가운데 구속된 사례는 지금까지 4번이다. 하지만 현직 신분에서 피의자가 되고, 체포까지 이른 건 헌정사상 윤석열이 처음이다.
윤석열은 오랫동안 타인을 법으로 규율하는 일을 업으로 하던 검사였다. 하지만 관저를 요새화하고 버틴 43일 동안 오직 자신만은 그 법에서 예외라는 듯 버텼다. 민주사회의 가치, 법질서를 어지럽힌 반칙과 특권이었다. 법은 요새가 된 관저를 쉽사리 돌파하지 못했다. 만인 앞에 평등함을 강조하던 법도 대통령 앞에서는 더뎠다.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선언해 나라를 내란으로 몰아넣은 윤석열은 더딘 법 집행을 조롱하듯 이후 사회를 저강도 내전 상태로 몰아넣었다. 내전 선동은 체포되는 순간에도 계속됐다. 체포되는 순간 수사기관의 위법성을 지적하는 ‘영상 메시지’가 재생됐다. 첫 조사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는 와중에 민주주의 파괴범이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가치전복, 언어도단의 ‘육필 원고’가 공개됐다.
윤석열은 육필 원고에서 자신에 대한 체포를 ‘무법적 패악’으로 규정했다. 그가 문제 삼고 있는 건 내란죄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 권한, 관할지가 아닌 서울서부지방법원의 영장 발부, 55경비단의 공수처 수사 협조 공문 등이다. 한마디로 자신을 체포한 모든 법적 절차가 위법하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체포영장이 집행된 것은 ‘법률가, 법조인이 정치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것’이란 입장이다. 언제까지 유지될지 모르지만, 그가 꺼낸 묵비의 전략은 공수처의 수사가 위법하므로 기소 이후 법원에서 죄의 유무를 다투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의 말은 전부 틀렸다. 우선, 수사 권한 문제는 수사 제도가 바뀌면서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내란죄에 대한 수사 권한이 경찰, 검찰, 공수처 가운데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것이다. 피의자 윤석열이 아니라 법원이 정리할 문제다. 게다가 법원은 이미 한 달여 전에 결론을 내렸다. 내란죄라는 같은 혐의로 검찰도, 경찰도, 공수처도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바뀐 수사 제도가 복잡해 수사 대상과 범죄 혐의에 따라 수사기관이 나뉘는 것은 사실이지만 법원은 내란죄를 경찰도, 검찰도, 공수처도 수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내란 중요 임무 종사자인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은 검찰이 체포하고 구속했다. 경찰청장 조지호와 서울경찰청장 김봉식은 경찰이 체포하고 구속했다. 공수처는 검찰·경찰과 협의해 윤석열, 이상민(전 행정안전부 장관) 관련 수사를 이첩받기로 했고, 윤석열에 대한 영장을 청구해 2차례나 발부받았다. 윤석열 쪽이 제기한 이의신청은 법원이 기각했다.
윤석열 쪽은 공수처의 관할지는 서울중앙지법인데, 공수처가 서울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해 발부받은 것이 위법적이라고 주장한다. 사실이 아니다. 관할지는 기관별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범죄 구성 요건과 범죄자의 거주 지역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범죄 관할지가 범죄가 발생한 장소와 연관되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피의자 윤석열의 주 거주지가 용산이므로 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만약 영장 청구가 공수처의 관할지를 벗어난 것이라면 판사가 기각했어야 한다. 하지만 판사는 적법하다고 보고 2차례나 영장을 발부했다. 어차피 공수처는 윤석열을 기소할 권한은 없다. 검찰이 기소해야 한다. 그래서 검찰과 공수처는 윤석열 관련 수사를 이첩하는 협의 과정에서 체포 이후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해 구속되면, 이후 20일의 수사 기한을 열흘씩 나눠 쓰자는 구체적인 일정 조정까지 했다.
윤석열이 거짓 공문서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55경비단 공수처 출입 요청’ 공문의 경우 2025년 1월14일 오후 2시25분 공수처가 55경비단으로부터 체포영장 관련 대상 지역 출입을 허가한다는 공문을 수신했지만, 2시간 뒤인 오후 4시24분쯤 55경비단이 다시 ‘대통령 경호처 출입승인 담당부서에 추가적인 출입승인이 필요하다'는 공문을 재발송한 것을 말한다. 적법한 체포영장 집행이 이뤄지지 않던 상황에서 55경비단의 입장 번복은 경호처의 외압 여부가 있었는지를 가려야 할 사안일 뿐, 피의자가 영장 집행의 적법성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
윤석열은 12·3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군경을 동원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권능을 정지시키며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을 일으킨 내란 우두머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각 수사에 착수한 뒤 윤석열의 지시로 내란에 가담한 김용현, 국군방첩사령관 여인형, 수도방위사령관 이진우가 내란 중요 임무 종사 혐의 등으로 이미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따라서 윤석열이 지금 답해야 할 것은 왜 이들을 내란에 가담하도록 했고, 이들에게 어떤 지시를 내려 헌정을 문란하게 했는지다.
이에 대해 공수처는 윤석열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 200쪽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 질문의 구체적 내용은 재판에 가서야 공개되겠지만, 유추해볼 훌륭한 ‘족보’는 이미 있다. 구속된 내란 중요 임무 종사자 김용현의 공소장이다. 한겨레21이 입수한 김용현의 공소장에는 김용현보다 윤석열이 더 많이 등장한다. 총 83쪽에 달하는 김용현의 공소장에서 김용현은 124회 언급되지만 ‘대통령’은 141회 언급된다. 주범-종범의 관계가 없는 내란죄에서 김용현과 윤석열은 공동정범이지만, 내란 범죄의 비중이 누구에게 더 쏠려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이 법 앞에 답해야 할 것은 무수히 많지만 큰 갈래로 따지면 네 가지다. 우선, 왜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포고령을 발령했는가다. 이에 대해 윤석열은 여러 차례 ‘부정선거로 거대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탄핵안을 발의하고, 예산안을 삭감한 행위’가 ‘전시, 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고 주장했다. 원인이 있기에 비상계엄을 선언했고, 그 원인이 전시, 사변에 준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란죄에 관한 대법원 확정 판례(96노 1892판결, 1996년 12월16일)는 내란죄를 원인 여부가 아닌 ‘행위 결과’로 따진다. 윤석열은 국회의원과 정치·사회 주요 인사 그리고 선관위 직원을 영장 없이 체포·구금 시도하려 했다. 선관위 전산자료를 영장 없이 압수 시도했고, 국회를 무력화시킨 뒤에는 별도의 비상 입법기구를 창설하려는 의도도 확인됐다.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인 국회, 국회의원, 선관위를 강압하여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그 ‘행위’가 바로 국헌문란의 내란 ‘행위’다. 시간이 짧았건, 사상자가 없었건, 평화적으로 해제되었건 이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확정 판례에 따르면 법적 쟁점은 오직 한 가지, ‘행위’ 여부다.
그 행위를 윤석열은 장기간 동안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준비하고 명령했다. 현재까지 수사기관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윤석열은 2024년 3월 말께, 서울 삼청동 안가에 김용현, 여인형 등을 불러 “비상대권을 통해 헤쳐 나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며 비상계엄을 준비하도록 했다. 이후 2024년 5월, 8월, 10월, 11월9일, 11월24일, 11월30일, 12월1일, 12월2일 등 최소 8차례 이상 비상계엄 선언과 실행 계획을 중요 임무 종사자들과 논의했다.
비상계엄 선언 당일인 12월3일에는 조지호와 김봉식을 직접 삼청동 안가로 불러 계엄 선언 이후 국회 통제를 지시하고, 체포자 명단을 건넸다. 비상계엄 선언 이후에는 수차례 조지호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들어가려는 국회의원들 다 체포해, 국회의원들 다 포고령 위반이야, 체포해”라고 지시했다.
경찰이 국회를 장악하고 국회의원들의 이동을 강압하던 동안에는 이진우, 전 특전사령관 곽종근에게 수차례 전화로 ‘국회 봉쇄와 국회의원들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저지’를 지시했다. ‘국회 문을 부숴라’ ‘문짝을 도끼로 부숴라’ ‘건물 유리창을 깨라’ ‘총을 쏴서라도 끌어내라’ ‘국회의원이 150명 넘으면 안 된다. 다 끄집어내라’ ‘두 번, 세 번 계엄령 선포하면 된다’ 등의 구체적 행위 지시가 모두 윤석열의 육성으로 사령관들에게 전달됐다. 윤석열은 이 과정에 280명의 군인이 투입됐을 뿐이라고 하지만 이도 거짓말이다. 수사기관이 확인한 내란에 동원된 군과 경찰의 규모는 4800여 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국회 작전에 투입된 인원은 2500명이었다.
윤석열은 또한 이재명, 우원식, 조국 등 14명과 선관위 직원들을 영장 없이 불법적으로 체포해 수도방위사령부 비원(B1) 지하 벙커에 강제 구금하도록 지시했다. 이를 위해 국가정보원에는 ‘대공 수사권’ 부활을 약속하며, 전폭적인 지지를 명하기도 했다. 주요 인사 체포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판사가 포함됐는데, 이는 체포와 구금 지시가 다분히 윤석열 개인의 주관과 감정에 의존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체포조 임무를 부여받은 기관은 육군 방첩사령부, 정보사령부, 국가정보원, 경찰 국가수사본부, 국방부 조사본부 등 국가기관 전반에 걸쳐 있고 체포조로 편성된 군경 인원은 1천 명이 훌쩍 넘는다.
12·3 내란사태의 세부적인 기획을 담당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전 정보사령관 노상원이 자신이 운영하던 점집 근처인 경기 안산의 롯데리아에 모여 전현직 정보사 장교들과 ‘선관위 서버 점거 및 반출’ 기획을 논의하는 데 윤석열의 지시나 개입이 있었는지도 밝혀져야 할 내용이다. 이들은 부정선거 의혹을 밝혀야 한다며 선관위 서버 점검을 논의했고, 이후 전현직 요원들을 동원해 야구방망이를 들고 선관위를 장악하러 갔다. 선관위 직원 30여 명은 복면을 씌워 수방사 벙커로 이송할 계획까지 세웠다. 윤석열은 체포된 이후에도 끝까지 부정선거론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헌법학자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정질서의 엄정함,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 차원에서라도 부정선거로 인한 계엄이 통치 행위라는 윤석열의 인식을 법원 판결로 완전히 없애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체포 이후 공개된 편지에서 윤석열은 “탄핵 소추가 되고 보니 이제서야 제가 대통령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자각이 너무 늦었다. 윤석열은 자신이 ‘대통령’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체포됐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불소추 특권을 아득히 뛰어넘는 내란 우두머리라는 혐의, 그리고 소환, 영장 집행 거부까지. 결국 법원은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 치욕만은 막기 위해 자신의 참모들이 ‘제3의 장소에서의 수사’라는 카드까지 제시했지만, 윤석열 스스로 걷어차버렸다. 윤석열은 법 집행을 거부하다가 체포된 헌정사상 첫 현직 대통령의 역사를 썼다.
재임 중 체포되는 대통령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에게 재직 중 형사 소추를 받지 않는 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그만큼 어지간하면 대통령은 체포될 수 없다. 헌법학자인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은 대통령에게 재직 중에는 마음 놓고 국정 운영에 전념하라는 의미에서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도록 했다. 그럼에도 내란 및 외환의 죄를 범하면 형사상 특권은 없어진다”며 “헌법이 내란 및 외환의 죄를 얼마나 중대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아무리 현직 대통령이라도 국가의 존립을 흔들고 국민에게 대항하는 그러한 죄를 범하면 소추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극적인 최초 타이틀은 역대 대통령들과 견줘도 가장 치욕적이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파면된 대통령(박근혜), 쫓겨난 대통령(이승만) 등의 역사가 있지만, 현직 중 체포된 대통령이 가장 치욕적인 역사”라고 평가했다.
윤석열에게는 또 하나의 ‘최초’ 기록이 있다. 재임 중 처음으로 내란죄를 범한 대통령, 나아가 민주화 이후 최초의 반역을 저지른 혐의자라는 것이다. 12·3 내란사태부터 윤석열이 체포되기까지의 43일을 돌아보면, 그가 검찰총장까지 지낸 법조인이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된다. ‘관저 요새화’는 그 하이라이트였다. 법조인이 법원의 판단을 인의 장벽을 쌓아 거슬렀다. ‘법치’를 끝내 거부하던 윤석열은 1월15일 2차 영장 집행에 이르러서야 두 손을 들었다.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서가 아니라 물리력에서 밀렸기 때문일 뿐이다.
윤석열은 아직도 공수처 수사와 체포영장 자체가 불법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는 “한국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본인이 다 무너뜨리고 나서 오히려 영장을 집행한 게 불법이고, 법치주의가 무너졌다고 한다”며 “전혀 엉뚱한 얘기를 하고 있다. 국민이 어떻게 이해하겠나. 시정잡배라도 이렇게 하진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궤변이 그럴듯한 법률 용어로 포장돼 지지층에 유통된다는 점이다. 벌써 극우 유튜브와 극우 지지층 사이에선 윤석열과 윤석열 쪽 법률 대리인단이 내어놓은 수많은 궤변이 마치 정당한 법리인 것처럼 공유되고, 탄핵 반대 여론으로 결집하며, 국민의힘 주류 세력으로 나아갈 기세까지 내비치고 있다. 내란 우두머리가 이제 체포됐을 뿐, 그가 뿌린 내전의 씨앗이 어떤 사회적 반칙종으로 자라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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