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서 그런지 조사는 면밀하게 하고 있다. 다만, 조사한 내용의 방향이 어디로 갈지는 아직 확실치 않은 것 같다.”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 제보자 강혜경씨의 법률 대리인인 노영희 변호사는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빌드업’ 중이라고 말하면서도 끝내 ‘메이드’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거쳐야 하는 정거장에 들러 태워야 할 ‘손님’들을 태우는 과정인지, 아니면 번지수를 잘못 짚은 척 다른 ‘목적지’로 가려는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명태균씨와 김영선 전 의원을 구속한 창원지검 전담수사팀(팀장 이지형 차장검사)의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2024년 11월27일 명씨가 신청했던 구속적부심 신청이 기각되면서 당장의 거추장스러운 장애물도 사라졌다. 조만간 검찰은 명씨의 여론조사 조작 혐의에 대한 구속영장을 추가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명씨에게 여론조사 조작 혐의가 추가된다는 것은 김영선 전 의원실을 무대로 하는 정치자금법 위반을 넘어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2022년 3월 대통령 선거, 2022년 6월 지방선거 등에서 이뤄진 공직선거법 위반까지 수사가 확대된다는 의미다. 최근 소환된 이들에 대한 조사 역시 “여론조사 조작 방식과 활용 여부”에 대한 것으로 집중되고 있다.
2024년 11월27일과 28일 연이틀 이뤄진 국민의힘 당사 압수수색은 ‘손님’을 더 태우겠다는 검찰의 의지를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짜고 치는 봐주기 수사”(더불어민주당 논평)가 아니냐고 하지만, 제아무리 ‘시간 예고제 압수수색’이었다고 해도 검찰이 집권 여당 당사에 진입했다는 것은 분명 수사가 쉽게 중단되긴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검찰 조사 과정을 지켜본 강씨의 법률 대리인들은 “대통령 관련된 부분을 이틀 동안 집중해서 물었다”며 “대선 미공표 여론조사 조작 방법과 조작의 문제를 캐물었는데 이건 표면적으로 보면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종착지로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여론조사 조작 혐의는 ‘위로 가는 수사’일 수도 있지만 ‘옆으로 번지는 수사’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명씨와 여론조사를 매개로 거래한 것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정치인은 10여 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특히 오세훈 서울시장, 박완수 경남도지사 등은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에 이름이 포함돼 있다. 지상욱 전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원장도 2022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미래한국연구소에 여론조사를 의뢰한 정황이 담긴 통화 녹취가 공개됐고, 조은희 의원도 2022년 3월 서울 서초갑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경선 여론조사 때 미래한국연구소에 당원 안심번호를 제공해 여론조사를 진행하게 하고 조사 비용을 받지 않았다는 강씨의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조 의원은 “한마디로 허무맹랑한 소설”이라고 일축했다.
물론, ‘위로 가는 수사’를 펼칠 수 있는 중요한 연결 고리도 나왔다. ‘명태균 게이트’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의혹은 명씨가 ‘윤석열 대선 후보를 위해 81차례 여론조사를 하고 그 대가로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을 받았다’는 것이다. 2024년 10월31일 민주당이 공개한 윤석열 대통령의 육성은 그래서 매우 중요한 증거다. 게다가 11월27일에는, 명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한 미래한국연구소 쪽이 여론조사업체인 피플네트웍스리서치(PNR·피엔알)에 작성해준 채무이행 각서에 김건희 여사가 언급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한겨레 취재 결과, 창원지검은 미래한국연구소가 피엔알 쪽에 진 부채 6천여만원을 ‘김 여사에게 돈을 받아 갚겠다고 약속했다’는 내용이 적시된 2022년 7월 채무이행 각서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각서에서 피엔알은 ‘김 여사에게 받을 돈이 있다는 내용이 거짓이면 사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2022년 12월까지 채무를 상환하지 않을 경우 사기죄로 고소해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내용을 포함했다. 각서는 피엔알 쪽에서 작성해 온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는 피엔알 쪽이 먼저 여론조사를 해주고 나중에 대금을 받기로 한 과정에서 명씨 등이 김 여사로부터 돈을 받아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이를 인지하고 있었기에 여론조사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정황 증거다.
이 각서를 작성한 것은 피엔알 대표인 서아무개씨고 미래한국연구소에서는 직원 강혜경씨가 채무이행 각서에 지장을 찍었다. 명씨는 나중에 이 각서의 존재를 인지하고 ‘왜 개인적으로 각서를 써줬냐’며 강씨를 질책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서 3억7천만원을 받아 오지 못한 명씨가 피엔알 대표를 피해 다녔고, 독촉에 시달리던 강씨가 권한도 없는데 각서에 날인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피엔알은 지난 대선 시기 미래한국연구소가 윤석열 대통령과 관련해 실시한 81건의 여론조사 중 공표 조사 58건을 의뢰한 업체다. 채무 역시 이 과정에서 발생했기에 실무자인 강씨가 변제 약속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미래한국연구소와 피엔알 각서에 김 여사가 등장한 것은 강씨 등이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 이유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다. 명씨 등이 실제로 당시 김 여사에게 받을 돈이 있었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니면 채무변제를 미루기 위해 둘러댄 단순한 거짓말에 불과했는지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 이 대답을 할 수 있는 이는 김 여사뿐이다. 각서 내용대로라면, 여론조사 비용은 정치자금이고 비용 대신 제공된 공천권 역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된다.
국민의힘은 김 전 의원 공천을 언급한 2022년 5월9일 윤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이어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에 반하는 판례를 만든 기소를 했던 게 바로 윤 대통령 자신이다.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시절 이른바 ‘엠비(MB) 수사팀’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후보자 및 당선자 시절에 김소남 전 한나라당 의원으로부터 비례대표 국회의원 공천 청탁을 명목으로 돈을 수수하고,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08년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준 혐의로 기소했다. 이에 대해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여론조사 실시 비용을 대신해 공천을 주고 세비의 절반까지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면, 그 일련의 행위들이 사전 수뢰 혹은 정치자금법 위반이 된다”며 “다른 범죄 혐의들을 빼더라도 그것만으로도 탄핵 사유가 된다”고 지적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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