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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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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햇볕을 차지할 것인가

85만 평 국내 최대 단일염전 실종… 영백염전도 60% 이상 ‘태양광’
국내산 천일염과 자연경관 사라질 판 “사회·문화 다양성 고려돼야”
등록 2024-11-01 22:39 수정 2024-11-05 11:27
2024년 10월15일 전남 영광군 염산면 두우리 염전에서 홍순근 염주가 최근 늘어나는 태양광 발전 시설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24년 10월15일 전남 영광군 염산면 두우리 염전에서 홍순근 염주가 최근 늘어나는 태양광 발전 시설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과정은 일방적이었고 결과는 이미 예정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 싸움을 잘 봐두어야 한다. 햇빛을 둘러싼 소금과 전기의 싸움이다. 아니 지속 가능한 세상을 향한 생태와 에너지의 다툼이다.

“나는 계속할 거야. 안 할 이유가 없잖아.”

60년 넘게 전남 영광군 염산면 두우리 영백염전을 지켜온 염주 홍순근이 말했다. 그는 소멸하는 서해안 바다 갯벌 습지를 붙잡고 있는 마지막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한때 200명이 넘었던 영백염전의 주인은 이제 딱 5명 남았다. 2024년 10월 현재, 50여 명이 영백염전에서 염전업을 하고 있지만 5명을 제외한 땅 주인들은 모두 외지에 있다. 임차인들은 생산량의 40~50%를 땅 주인에게 주기로 하는 연 단위 계약을 한다. 임차인들은 땅이 팔리는 상황에 따라 염전을 옮겨 다닌다. 40년째 임차해 염전을 하고 있다는 65살 김상국은 “여기 온 지는 몇 년 됐고 신안, 영광, 부안 뭐 염전 있는 데 전국을 다 떠돌았지”라고 말했다. 부인과 함께 일하는 그는 염전 말곤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다.

1997년 소금 수입 전면 자유화 뒤 염전업 쇠락

한평생 햇볕이 바닷물을 졸이는 시간과 함께해온 홍순근의 나이는 올해 85살이다. 하지만 그도 역시 여전히 부인과 함께 염전에서 일하고 소금 창고 앞에서 밥 먹으며 산다. 솜씨가 좋은 사람만 있다면 ‘체부’(인부)를 쓰고도 싶지만, “뿌리 박고 일할 그런 사람”은 이제 없다. 홍순근의 부인은 봉지 커피를 저어 내어주며 말했다. “서울서 땅 사러 온 거야? 잘 왔네. 우리만 여기 땅 주인이야. 저 사람들은 다 아니고.” 홍순근은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부인을 나무라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내가 3정(9천 평)을 갖고 있어. 지금 소금 한 가마니가 얼만 줄 알아? 내가 만 가마니를 치니까 연으로 따지면 2억원이야. 해만 나면 돈이 벌리는데 이걸 왜 관둬.”

천일염을 생산하는 한국 염전의 역사는 1907년 인천 주안염전에서 시작된다. 이후 1940~1950년대 전남 신안과 영광에 염전이 생겨나며 보편화했다. 1990년대까지는 쏠쏠한 산업이었다. 염전의 쇠락은 한국 사회의 많은 것이 그랬던 것처럼 1997년 결정적인 분수령을 맞았다. 뭐든 빗장을 해제하고 시장을 열어야 우리가 살 수 있다던 때였다. 정부는 ‘관세·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따른 수입 자유화 계획이라며 1997년 7월1일부터 소금 수입을 전면 자유화했다.

그때 정부는 어떤 산업들을 아예 경쟁력이 없다고 판정했다. 염업이 그랬다. 농업, 어업, 임업을 제치고 염업부터 구조 조정했다. 쌀은 모든 지역에 걸친 모두의 관심사다. 쌀을 건드릴 때면 국회 앞에서 가마니가 불태워진다. 소금도 쌀만큼 모두에게 필요하다. 하지만 생산량의 80% 이상이 특정 지역에 편중돼 있다. 중앙의 시각에선 잘 보이지 않는, 모서리 끝에 있는 지역들이다. 그래서 쌀에 있는 정치적 힘이 소금에는 없다.

국산 천일염의 경쟁력을 높게 보지 않았던 정부는 소금밭의 산업적 의미는 아예 없다고 봤다. 수입 자유화 이후 정책적으로 천일염 생산 염전의 폐전을 지원했다. 기계염과 가공염에 대해서는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의 폐전이 국가정책이었던 상황은 2004년까지 이어졌다. 염전이 저문 첫 번째 시기다. 서해안 바닷가 갯벌 습지를 네모반듯하게 구획하며 이어지던 2천여 개의 염전은 그 시기를 거치며 1천 개 이하로 줄었다.

2024년 10월15일 전남 영광군 염산면 두우리 영백염전 자리에 태양광 발전 시설이 설치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24년 10월15일 전남 영광군 염산면 두우리 영백염전 자리에 태양광 발전 시설이 설치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전 공정 사람 손 거치는 ‘낡은 산업’

“그때는 소금값이 말이 안 됐어. 수입산이 들어오니까 중간에서 장난치는 사람도 많고. 조합도 믿을 수가 없고. 해서 뭐 하나 하는 생각도 했지.”

40년째 남의 땅을 빌려 염전업을 하는 김상국이 말했다. 실제 2008년까지 소금은 식품이 아니라 광물로 분류됐다. 서해안 건너 중국은 연간 6천만t의 소금을 생산하는 세계 생산량 1위 국가다. 중국의 값싼 광물이 밀려들며 발생한 소금값의 출렁임은 수십 년 바닷물을 졸이고 긁으며 이고 매는 일만 해왔던 이들을 소멸시켰다. 게다가 그들은 늙어가고 있고, 염전의 노동 강도는 새로운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염전은 생산, 포장, 선별 과정까지 전 공정에서 전적으로 인력에 의존하는 산업이다. 그래서 생산비 중 인건비 비중이 50%가 넘는다. 게다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술의 습득을 필요로 한다. 바람과 햇볕의 강도에 따라 소금밭을 여닫아 물을 옮겨야 한다. 그 작업은 보통 사흘에 한 번씩 반복된다. 어떤 때는 사나흘 또 어떤 때는 하루이틀이다. 이걸 정립된 지식으로 전수하기란 불가능하다.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인데 사람이 없으니 습지에 바닷물을 가둬놓기만 하면 소금을 만들어내던 햇빛의 쓰임도 그렇게 함께 소멸의 시간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

방조제에 막히고 간척에 치이고 사람이 없어 쩔쩔매던 염전에 진짜 끝장의 시간이 온 건 2010년대 초반 무렵이다. 염전에 재생에너지 바람이 불었다. 그나마 근대에서 산업화를 거쳐 소득 4만불 시대에 이르기까지 염전이 수십 년간 형태를 유지해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곳이 육지의 가장 끝, 개발하기 힘든 거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육지 입장에서 염전은 육지가 필요로 하는 요소들을 채워놓기 어려운 바다다. 그러면서도 염전은 도시 사람들이 좋아하는 바다의 요소에는 수렴되지 않는 습지다. 수백 년 넘게 육지이면서 바다고 바다이되 습지여서 버텨낼 수 있었던 염전은, 다만 공격적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재생에너지에는 최적의 입지 조건이다.

9천만원 하던 땅이 20억으로 ‘껑충’

“그때 뭐 말들이 엄청났죠. 땅만 팔면 된다. 금방 부자 된다. 언제까지 염전을 할 거냐. 외지 나간 자식들이 팔라고 성화 부린 데도 많았고. 그때 팔았지, 뭐.”

이제는 전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태양광 단지가 된 영광군 하사리에서 만난 한 주민이 말했다. 염전 부지와 태양광 단지는 정확히 같은 입지 조건을 공유한다. 햇빛과 바람이 풍부하면서도 가격은 싼 땅이다. 하사리 마을의 원래 이름은 ‘염전마을’이었다. 지금도 교통 표지판에는 그렇게 쓰여 있다. 또 다른 주민이 말했다. “할 사람도 없고, 남들 다 팔기도 했고, 나라에서 한다는 일인데. 그게 나으니까 다들 그때 팔았겠지.” 그는 태양광 단지가 개발된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염전 저수지에서 망둥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버려진 저수지에는 여전히 소금 말뚝들이 그대로 박혀 있었다. 염전이 태양광 단지가 된 줄 모르는지 저어새와 이름 모를 새들이 여전히 날아다녔다. 새들은 쉴 곳을 잃었는지 바다로 나갔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재생에너지 바람이 불기 전까지 땅끝 염전 부지의 가격 변동은 크지 않았다. 입지와 시설 조건에 따라 달라도 평당 5만원을 넘진 않았다. 거래도 많지 않았다. 염전 부지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 건 2007년이었다. 그해 12월 충남 태안에서 기름 유출 사건이 발생하며 천일염 가격이 2배 이상 치솟았다. 생활 수준이 높아지며 천일염이 주목받기도 했다. 그때 염전 부지 가격이 꿈틀해 평당 7만~10만원 선으로 올랐다. 결정적인 변곡점은 몇 년 뒤에 찍혔다. 2010년도 초반, 재생에너지 바람이 불며 염전 부지 가격은 평당 15만~20만원까지 올랐다. 서울의 업자들이 땅끝을 부지런히 오가며 정책을 얘기하고, 정부의 방침을 설파하고 다녔다. 그렇게 염전이 저문 두 번째 시기를 거치면서 전국의 천일염전은 700~800개 정도로 줄었고, 이 중에서도 이미 태양광 단지에 팔린 것까지 고려하면 천일염을 실제 생산하는 염전은 500개 정도에 불과하다는 게 염전을 하는 주민들의 얘기다.

2024년 10월 현재 영백염전 역시 전체 염전 부지의 60% 이상이 태양광 시설로 바뀌었고, 지금도 바뀌고 있다. 인근에 있던 광백사 염전은 부지 면적이 85만 평에 이르던 국내 최대 규모의 단일 염전이었지만 이제 완전히 사라지고 모두 태양광 시설이 됐다. 영백염전 한복판에는 더 많은 전기를 처리하기 위한 변전소 공사가 한창이다. 영백염전도 곧 더 많은 부지, 아니 어쩌면 부지 전체를 태양광에 내줄 것이다. 홍순근이 말했다. “태양광 전에 한 15년쯤 됐나 염전을 한번 팔려고 했거든. 그때 9천만원 준다고 합디다. 근데 지금 얼마 준다는 줄 알아요? 20억이야. 땅이 그렇다니까.” 15년 전에 평당 1만원 하던 땅이 지금은 22만원까지 올랐다는 얘기다.

설 곳 없는 국내산 천일염… “생태계·음식 모두 변할 것”

이 싸움은 그래서 결과가 이미 예정돼 있다. 서해안의 모든 해안선에서 소금은 끝내 패퇴할 것이고, 땅값을 짊어진 외지 업자들은 점령군의 깃발처럼 염전 부지에 태양광 패널을 박을 것이다.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두 요소의 경합 속에서 국내산 천일염은 가라앉고 있다. 염전은 낡고 대체 가능한 것으로 취급되며 ‘문화재’의 자리로 밀려나고 있고, 재생에너지는 반드시 달성해야 할 정책 목표이자 미래 가치 ‘산업’으로 굳건하다.

이 가치의 경합은 어느 한쪽이 옳고 어느 한쪽은 그르다는 식으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우리 땅에서 생산하는 소금의 문제도 중요하고, 재생에너지로 생산할 수 있는 대체에너지도 중요하다. 다만 사라지는 것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것들이 그냥 사라져도 좋은 것인지 전혀 고민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서해안 마을들은 대체로 ‘산-마을-밭-논-염전(갯벌습지)-바다’로 이어지는 경관 흐름을 갖고 있다. 염전은 특성상 넓은 갯벌을 품고 있어야 해서 경관 흐름이 좋은 곳일수록 많았다. 이 흐름이 지금 끊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김준 목포대 교수는 “염전이 태양광으로 바뀐다는 것은 이 경관이 무너지는 것이고 이게 무너진다는 것은 바다가 가지고 있던 고유한 특성들이 거세되는 꼴”이라며 “생태계는 연결된 시스템인데, 염전은 육지와 바다가 지닌 서로 다른 속성들을 차단하고 교환해 상호 완충하는 특징이 있다. 이게 사라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염전이 생물 다양성 측면에서 높은 보존 가치를 지닌 건 아니라고 얘기한다. 물론, 모든 해양 생물이 사는 바닷속만큼 높진 않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개발해도 좋을 만큼 생태적 가치가 낮은 땅인 것도 아니다. 김 교수는 “염전 같은 짠물에서만 사는 염생식물의 가치가 최근 조명받으며 해양연구원 논문으로도 발표된다”며 폐전이 되는 상황은 “조개류나 게류들에 영향을 미치고 천일염이 사라지면서 음식이 달라지고 음식 저장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생물 다양성과 함께 이런 사회적·문화적 다양성도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는 데 태양광 공급 확대는 필수적 과제다. 최근 도심 지역에 설치되는 태양광 패널이 늘곤 있지만 도심 위주 소규모 전력 생산만으로는 에너지 전환을 달성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그게 어디든 대규모로 생산하는 단지를 만들고 거점을 거쳐 공급되는 망까지 갖춰야 한다. 다만 과거 전북 부안의 핵폐기물 반대 투쟁, 경남 밀양의 송전탑 건립 반대 운동에서 보듯 이 과정은 요소 요소 사회적 갈등 사안이고, 지역과 도시의 대립이 불가피한 이슈들이다. 섬세한 이해관계 조정과 민주적 절차에 따른 갈등 관리가 필수적인 문제들이란 뜻이다.

염전에서 생산한 전기는 서울로 서울로

하지만 소금과 전기의 싸움은 애초부터 그런 설계조차 없는 무규칙 회로 위에서 벌어졌다. 염전에 건설되고 있는 대규모 재생에너지 단지 개발은 에너지 전환 전략을 정부가 고민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땅값을 지불할 수 있는 민간 자본이 무분별하게 입지를 사들이며 시작된 광풍이다. 정부는 ‘설치 보조금’이란 이름으로 이 막개발을 재촉했다. 전남 일부 지역을 비롯해 대규모 재생에너지 단지가 들어선 지역들은 이미 ‘아르이(RE)100’(2050년까지 전력 전량을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조달하자는 캠페인)을 달성했거나 근접한 지역이 많다. 인구소멸지역인 경북 영양군 509%를 비롯해 전북 진안군 127%, 강원 화천군 102%, 전남 신안군 99.8% 등이다. 하지만 서울과 수도권은 여전히 1%에 머문다. 염전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전력거래소를 거쳐 서울을 비롯한 도시에 공급된다. 전기가 만들어진 이래 계속 도시에서 쓸 전기를 도시에서 가장 먼 지역에서 생산하는 시스템의 골격은 바뀌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이게 근본적인 문제인지도 모른다.

영광(전남)=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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