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중요한 사건이면 검사장님이나 차장검사님이 직접 기소하시죠.”
1964년 8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송치한 이른바 ‘1차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을 두고 이용훈·장원찬·김병리 등 당시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검사들이 한 말이다. 진술 외에 “아무런 증거가 없어 기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서울지검장이던 서주연은 “기소해서 무죄가 되더라도 검사들에겐 책임을 안 지운다는데 왜들 그러느냐”고 설득했지만, 검사들은 사표를 쓰겠다며 버텼다. 결국 사건을 전혀 모르는 당직 검사인 정명래에게 중앙정보부 송치의견서를 베껴 쓰도록 해 공소장을 완성했다. 정명래는 이후 중앙정보부 부국장으로 영전했다.(<한겨레> 2010년 4월18일치 `“증거 없이 기소하란 말씀이냐” 인혁당 담당 검사들 항명' 참조) 이 사건은 2015년 5월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2024년 1월31일,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던 윤석열 검찰이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고발을 사주한 의혹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손준성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에게 징역 1년형을 선고하면서 그가 고발 사주를 위해 야당 쪽에 고발장을 제출했을 뿐만 아니라 수사정보정책관실 검사 다수도 사건에 조직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이 한창이던 2023년 4월 대검은 손준성에 대한 감찰을 무혐의로 종결했고, 같은 해 9월 윤석열 대통령은 그를 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검사 누군가가 고발장을 썼을 테고, 무혐의 처분서에 서명했을 테고, 승진 서류에 도장을 찍었을 테다. 60년 전 1차 인혁당 사건 때처럼 결기 있던 검사들은 멸종 위기에 처한 걸까.
2024년 1월과 2월에는 ‘재판거래’와 ‘삼성 이재용 불법승계’ 사건 1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세상을 뒤흔들었던 사건을 수사하고 기소하며 결기를 보이는 듯했던 수사 책임자들은 그러나, 곧 멸종 위기 상태로 돌아간 듯하다. 검사 시절 ‘재판거래’를 수사하고 기소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나중에 여러 평가가 있을 것”이라 했고, ‘삼성 이재용 불법승계’를 수사하고 기소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삼성그룹의 사법 리스크를 일단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할 뿐이었다. 두 사건을 지휘한 윤석열 대통령은 아무 말이 없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검사님은 영전할 뿐… 무죄는 검사받지 않는다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5139.html
“잘못 기소한 검사 한 명이라도 제대로 처벌하면 함부로 하겠나”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5137.html
검사의 국회 진출, 왜 위험한가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51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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