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자기 말재주를 지나치게 믿는 것 같다. 합치기로 한 이낙연·이준석 신당이 쪼개지게 된 2월19일, 한 위원장은 그들이 며칠 전 정당 보조금을 받은 사실을 들어 “위장결혼하듯 창당한 다음 돈을 받아갔다”며 “분식회계를 통한 보조금 사기와 다를 바 없다”고 비꼬았다.
합당 선언과 입당으로 현역 의원 수가 늘어 보조금을 더 받게 된 건 사실이나, 그 돈이 제3지대 통합의 이유였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두 세력은 안간힘을 썼으나 정치적 방향과 속도에서 큰 차이를 확인한 채 결국 통합을 접었다. 배경과 맥락이 대부분 공개됐다. 두 대표도 공히 부실했다, 성급했다 앞다퉈 고개를 숙였다. 한 위원장의 돈 타령, 분식회계 타령은 이 과정을 둘러싸고 나온 정치권의 말 가운데 가장 잔인하고 야비한 조롱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날 기자들 앞에서 국회의원 정수 축소, 중위소득에 세비 맞추기 등 본인의 정치개혁 방안을 내세우기 위해 개혁신당의 ‘개혁’ 단어를 끌고 오면서 이 말을 했다. 주제를 돌리거나 말꼬리를 잡거나 비교해 되받아치는 건 법무부 장관 시절 야당 의원들과 입씨름할 때는 눈에 띄는 재주였는지 몰라도, 집권세력의 중간평가에 해당하는 총선을 앞둔 여당 대표가 뽐낼 재주는 아니다. 위성정당을 만들어 수십억 보조금을 더 받아쓸 정당의 수장이 할 말은 더욱 아니다. 세비 깎기에 대한 문제제기를 두고 “‘싫으면 시집가’라는 이야기”라고 비아냥댔던 것과 나란히 대표적인 ‘한동훈표 말본새’로 꼽히겠다.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조명과 찬사가 모두 자신이 잘한 덕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단언컨대 지금 제3지대 세력을 이끌며 고군분투하는 누구를 데려다놓은들 한동훈보다 못할까 싶다. 몇 배의 정당 보조금을 깔고 앉아, 훈련된 당직자들의 조력을 받으며, 정부 부처 산하기관과 유관기관의 수많은 자리를 옵션으로 든 채 장기판의 말 옮기듯 쉬운 공천부터 하는 일 말이다. 갈등이 불거지지 않고 잡음이 안 들리는 이유가 자신의 정치력과 리더십 때문이라고 믿는다면 큰 착각이다. 올 누드 생닭을 굳이 까만 비닐봉지 밖으로 꺼내 흔드는 게 시장 상인도 돕고 사진기자도 돕는 ‘민생 행보’라 여기는 것만큼이나 그로테스크한 현실 인식이다. 사천 논란으로 시끄러운 야당 대표와의 ‘비교우위’가 없다면, 국민감정 따위는 아랑곳없이 ‘사랑밖에 난 모르는’ 대통령의 ‘기저효과’가 없다면 과연 가능한 평가일까.
윤석열 대통령만 뒤끝 있는 게 아니다. 유권자도 뒤끝 있다. 한 위원장이 보통 사람의 근로소득으로는 도저히 거주할 수 없는 집에 살면서 서민들 커피값 부담을 들먹이는 걸 과연 순수히 받아들일까. 제 자녀를 미국 대학생 만들고자 온갖 편법과 탈법을 동원한 일도 아무 일 없었던 듯 잊어줄까. 유튜브와 에스엔에스(SNS)에서 자기 흉을 본 기자에게 1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낸 일도 ‘입틀막’이 아니라고 여길까. 야당을 향해선 온갖 입바른 소리를 그리 잘하면서 정작 자신도 핵심 관련자인 ‘고발 사주’ 사건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걸 계속 참아줄까.
사람들이 이 모든 걸 양해해서가 아니라 지금은 굳이 따지고 들 계제가 아니니 잠시 묻어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하나. 그는 총선 뒤에는 어찌 될지 모르는 ‘바지사장’일 뿐이다. 스스로 링에 오른 적도, 자기 정치로 평가받아본 적도 없는 이가 다른 정치인들의 실존을 건 도전과 투쟁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모습은 참으로 ‘말문막’이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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