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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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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비겁하고 억지 부리는 아이 하나가 서 있는 것 같았다’

전기 르포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쓴 소설가 정아은 인터뷰
‘5·18 학살’ 책임자 전두환,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대한 기록
등록 2023-05-19 07:46 수정 2023-05-23 17:03
전두환씨 부부가 집권기였던 1983년 4월13일 경북 문경 대성새마을유아원에 방문한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전두환씨 부부가 집권기였던 1983년 4월13일 경북 문경 대성새마을유아원에 방문한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겨울이면 주변 논에 물을 부어 얼린 후 장병들과 가족들이 스케이트를 탈 수 있도록 해주었고, 부대 내 교회에 유치원을 만들어 자녀들을 돌봐주었다.”

전두환씨는 2017년 낸 <전두환 회고록> 3권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이런 내용도 있다. 자신이 안양교도소에 있을 때, 손주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목적으로 동화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행복한 왕자’도 있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가 어떤 이야긴가. 세상에 대해 전혀 모르고 생을 마감한 왕자는 동상이 된 뒤에야 세상의 온갖 가난과 슬픔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마지막 눈까지 떼어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 집권 기간 재벌들로부터 상납금을 걷는 등 9천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한 정치군인이 ‘행복한 왕자’를 읽는 장면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다.

“전씨에 우호적인 사람들 얘기도 해야 했다”

이 얘기는 과연 진짜일까. 전씨에 대한 전기적 르포를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취재하던 정아은 작가(사진)는 의심스러웠다. 전씨는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군인이자 살인·성폭행 등 5189명의 피해자를 낸 대형참극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사실상 국정 최고 책임자였다. 회고록에는 수많은 허위 사실(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로 표현하는 등)이 들어 있으니, 모든 내용을 의심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그런데 정 작가는 취재하다 우연히 ‘어린 시절 살았던 김포 인근 유치원 원장이 전두환씨였다’고 말하는 취재원을 만났다.

신간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사이드웨이 펴냄)을 낸 정아은 작가. 김진수 선임기자

신간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사이드웨이 펴냄)을 낸 정아은 작가. 김진수 선임기자

“그분이 젊은 시절의 전씨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주변에 잘했는지 얘길 하는 거다. 처음엔 개념이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파고들어가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관계없는 타인의 생명은 소중한 걸 전혀 몰랐다는 것, 철저히 외면했다는 것이야말로 이 사람의 치명적인 과오고 대한민국의 비극이 아니었을까. 전씨에 대해 우호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길 하지 않으면 오히려 설득력이 없는 책이 될 것 같았다. 그 다양한 결을 나열하면서,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우리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상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정 작가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즈음해 2023년 5월15일 출간한 책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사이드웨이 펴냄)에서 이렇게 썼다.

“문제는 정확히 이 지점에 있다. 전두환이 배려하고 사랑을 베푸는 사람의 범위가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경우로 한정된다는 것. (중략) 전두환은 상상력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나와 가까운 사람, 그래서 내가 잘해주면 결국 그 결과가 내게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돌아오도록 되어 있는 사람이 아닌 ‘진정한’ 타인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낯선 생명체를 나와 같은 인간으로 인지하고 그의 희로애락을 떠올려 공명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가.”

오직 자신과 연관된 사람에게만 사랑을 베풀다

2013년 장편 <모던 하트>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정아은 작가는, 언젠간 꼭 역사 대하소설을 써보겠다는 꿈을 품고 정치인들을 유심히 지켜봐온 터였다. 그러다 우연히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일한 라종일 전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의 책을 읽고 직접 만날 기회가 생겼다.

고 김영택 전 <동아일보> 기자가 쓴 <10일간의 취재수첩>(1988)에 나오는 공용터미널 상황.

고 김영택 전 <동아일보> 기자가 쓴 <10일간의 취재수첩>(1988)에 나오는 공용터미널 상황.

“전두환에 대한 책은 크게 두 종류다. 전두환의 잘못을 고증하는 책, 또는 전두환의 리더십을 영웅화하는 책. 전두환이란 한 인물을 통해 사회를 총체적으로 읽어내는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라 선생님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가 직접 쓰면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라 선생님이 무척 바빠 혼자 쓰게 됐지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전씨에 대한 책을 쓰는 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전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취재가 아니어도 ‘우리 아빠가 전씨 경호부대에 있었다’ ‘내 친구가 고시를 패스한 고위 공무원이었는데 전씨에 대한 농담을 했다가 바로 잘렸다’ 등 전씨에 대한 기억을 가진 주변 사람이 많았다.

“흥미로운 건 인터뷰이가 전씨 집권기에 어떤 혜택을 받았느냐 등에 따라 뉘앙스가 달랐다. 어떤 인터뷰이는 ‘나쁜 놈’이란 전제를 깔면서도 각론에서는 감싸고 싶어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예를 들면 교수, 기자 등 당대 오피니언 리더들은 금전이나 아파트 지원 등도 많이 받지 않았나. 나도 뭔가 혜택을 받은 게 있다면 약간 다르지 않았을까.”

전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어린 시절 할아버지 자택 침실 벽에 돈봉투가 가득 담긴 가방이 여러 개 있었고, 하나회 등 손님들이 오면 용돈을 주는 것이 관례였다”고 말한 것을 떠올려보면 더 상상하기 쉽다.

천수를 누린 학살자, 왜 33년간 단죄하지 못했을까

“대량으로 살인을 저지른 자가 풍요롭게 천수를 누리다 제집에서 자연사했다는 것은 국민의 마음에 날카로운 자상을 남겼다. 전두환이 그렇게 세상을 뜬 이후, 사람들은 공허감에 시달렸다. 전두환은 반드시 해야 했던 일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그가 해야 했던 유일한 일을.”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중에서)

책은 1부 영광(1931-1980), 2부 모순(1981-1987), 3부 몰락(1988-2021), 4부 악의 기원으로 나눠 전씨의 일생을 살폈다.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어느 범죄자의 죽음은 정 작가에게 ‘굉장히 이상한 장면’으로 느껴졌다.

“수많은 사람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 권좌에서 내려와 제대로 단죄도 받지 않고 풍요롭게 살다 떠났다. 재산 몰수조차 못했다. 이상하지 않나. 권좌에서 내려와 죽기까지 33년, 1~2년도 아니고 33년 동안 왜 단죄를 못한 걸까. 그 궁금증을 따라가면서 책을 썼다.”

1980년 5월23일 광주시 동구 주남마을 앞길에서 공수특전여단 군인들이 쏜 총에 두 눈을 잃고 43년째 빛을 보지 못하고 사는 5·18유공자 강해중씨. 주홍 작가 제공

1980년 5월23일 광주시 동구 주남마을 앞길에서 공수특전여단 군인들이 쏜 총에 두 눈을 잃고 43년째 빛을 보지 못하고 사는 5·18유공자 강해중씨. 주홍 작가 제공

1980년 5월, 군인들이 광주 시내에서 시민들을 무작위로 공격하는 장면은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촬영 영상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어느 거리에 평범하게 서 있는 남성에게 군인이 느닷없이 달려가 몽둥이로 내리치는 장면, 양복을 입은 평범한 시민들이 놀라 도망가는 장면 등은 1980년대 일어난 일이라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대검에 찔린 시민들, 주검으로 널브러진 10대들, 납치돼 성폭행당한 여성들에 대한 기록은, 어떤 말로도 합리화돼선 안 될 만큼 참혹하다. 그럼에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 발언은 우리 사회에서 끊이지 않았다. 전씨를 ‘정치나 경제는 유능했다’고 미화하는(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을 당원협의회를 방문해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혹은 전우원씨의 증언을 폄하하는 사람들(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전우원씨에 대해 ‘“참으로 철이 없다고 생각한다. 설령 아버지 할아버지가 비자금을 그렇게 많이 감췄다 해도 손주로서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도 있다. 정 작가에게 이런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인터뷰이 중 법 없이도 살 것같이 선량하게 열심히 산 어느 분이 저를 혼내면서 전씨를 옹호한 게 기억에 남는다. 전씨와 전혀 무관한 분인데도 전씨를 구국영웅이라 믿고 있었다. 전두환 시대 전화 보급률이 9.7%다. 언론사 검열만 하면 감출 수 있는 게 너무나 많았다. 감추면서 신격화되고 대통령이 일종의 종교가 돼버린 게 아닐까 싶었다. 현대에 들어 소속감을 느끼기 힘든 사회가 됐다. 옛날만큼 신이 차지하는 자리도 크지 않다. 그 빈자리에 들어온 게 정치인 아닐까. 정보가 차단된 시대에 성실하게 살며 인생의 보람을 느끼던 사람들, 발전하는 국가에 소속감이 강했던 사람들은 당대의 대표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현상이 없을 수 없다.”

돈이 아니면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없다는 불안

정 작가는 현 정치인들의 이권 다툼 때문에 근현대사를 학교에서 깊이 배우지 못하는 학생 등 젊은층, 과거를 미화해 기억하는 노년층이 이 책을 많이 읽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씨의 권력은 12·12 사태에 가담한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 이어졌다. 이 세력은 윤리적 약점이 있었기에 항상 능력과 경제를 강조했다. 정치에는 능력과 윤리가 모두 필요하지 않은가. 한쪽은 윤리만 강조하고 또 한쪽은 능력만 강조하는, 이 두 가지가 절대 같이 갈 수 없는 것 같은 정치권의 왜곡된 이분법적 프레임이 그때 시작된 게 아닐까.”

2023년 3월31일 광주를 찾은 전우원씨를 5·18 유가족이 안아주고 있다. 유튜브채널 연합뉴스TV 갈무리

2023년 3월31일 광주를 찾은 전우원씨를 5·18 유가족이 안아주고 있다. 유튜브채널 연합뉴스TV 갈무리

전우원씨가 전면에 등장한 건, 정 작가가 초고를 출판사에 보낸 뒤였다. ‘전씨 후손은 분명 불행할 것’이란 추측을 책에 썼는데, 과연 이 이야기가 독자에게도 설득력이 있을지 우려하던 무렵이다. 전우원씨를 보고 ‘맞구나’ 생각했다. 원래 썼던 추측을 덜어내고 전우원씨에 대한 내용을 추가했다.

“나에게 정당성 없는 돈이 엄청나게 주어진다면 어떤 심정일까. 그 돈을 버리긴 힘들다. 의지로 돈과 특권을 버리는 게 거의 불가능한 게 인간이니까. 전씨가 5·18 유족들을 찾아간 모습을 봤을 때, 나 역시 눈물을 흘렸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전두환의 DNA를 가진 사람을 안았다. ‘얼마나 용서하고 싶었을까’ 생각했다. 누군가를 평생 미워하는 건 사실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분들에겐 선택지가 없었던 거다. 사죄해야 용서할 텐데 사죄를 안 하니까.”

신간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표지. 사이드웨이 제공

신간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표지. 사이드웨이 제공

정 작가는 책을 쓰기 시작할 땐 전씨가 굉장히 크고 무서운 사람처럼 느껴졌는데, 이야기를 다 써갈 때쯤엔 ‘비겁하고 조그맣고 억지 부리는 어린아이가 하나 서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전씨가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하면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돈봉투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식으로 마음을 샀다. 전씨의 행동에서 ‘늘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를 생각해보면 답은 하나였다. 그 사람이 그때 처했던 상황. ‘나의 안위’.”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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