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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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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왜 김건희 여사 이야기에는 일단 발끈할까

‘패션 셀러브리티(유명인)’ 또는 ‘인플루언서’로
소비되는 여사 이미지, 대통령 스타일도 영향 미쳐
등록 2022-07-19 14:17 수정 2022-07-20 01:29
대통령실은 2022년 7월3일 스페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와 숙소 인근을 산책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대통령실 제공

대통령실은 2022년 7월3일 스페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와 숙소 인근을 산책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대통령실 제공

대통령의 부인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합의된 답은 없다. 법으로 정해진 규정도 없다. 개인의 신념과 의지에 따라 권한, 역할, 국정 참여 범위 모두 유동적이다.

정치적 행보는 최대한 배제하고 대통령을 조용히 내조하는 역할만 할 수도 있다. 김정숙 여사(문재인 대통령 부인)가 이 유형에 가깝다. 자신의 관심 영역과 관련한 정책을 펼치는 경우도 있다. 작은도서관 운동을 펼쳤던 권양숙 여사(노무현 대통령 부인)나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를 펼쳤던 김윤옥 여사(이명박 대통령 부인)가 대표적이다. 김건희 여사(윤석열 대통령 부인)도 2022년 6월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유기동물, 동물권에 관심 있다고 밝혔다.

치마, 디올, 휴지, 귀 성형, 팔찌, 목걸이, 발찌…

대통령의 정치에 적극 참여하는 파트너이자 조력자로는 이희호 여사(김대중 대통령 부인)나 프랑스의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부인)가 있다. 미국 질 바이든 여사(조 바이든 대통령 부인)는 사상 처음 ‘전업’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하지 않고 기존 직업인 교직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대통령 부인의 역할은 전적으로 그의 ‘성향’이 어떠냐에 달려 있다.

정해진 권한은 없을지라도 ‘대통령 부인’이란 자리에 국민이 기대하는 일정한 상은 존재한다. ‘대통령 배우자의 바람직한 스타일’과 관련해 전문가(한국행정학회·한국정치학회 교수) 100명을 조사했더니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사회봉사에 헌신하는 이미지’(48.4%)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그다음은 ‘전문적인 자기 영역을 갖는 적극적인 이미지’(21.6%)와 ‘대통령의 정치 및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서의 이미지’(15.4%) 순서였다(조은희, ‘대통령 배우자의 바람직한 역할과 자질’, 한국행정학회 동계학술발표논문집, 2006년)

10여 년 뒤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일보>가 2017년 20~70대 성인 남녀 517명을 대상으로 ‘선호하는 대통령 배우자상’을 조사한 결과, ‘대통령이 미처 살피지 못하는 사회의 음지와 소외계층을 찾아 돌보는 국모형’이란 응답이 83.4%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아동·여성·사회복지 등 독자적 사업을 통해 국정에 참여하는 정책가형’이 38.3%로 뒤를 이었다.(복수응답)

‘국모’냐 ‘정책가’냐.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갓 두 달이 넘은 상황이라, 김건희 여사가 어떤 유형인지는 뚜렷하게 드러나진 않는다. 다만 국민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른바 ‘패션 셀러브리티(유명인)’ 또는 ‘인플루언서’에 가까워 보인다. 최근 3개월(4월13일~7월10일) 동안 구글 검색 트렌드를 분석하면,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상위 검색어는 ‘치마, 디올, 휴지, 귀 성형, 팔찌, 목걸이, 발찌’로 그가 무엇을 입고 어떤 브랜드를 선호하는지에 집중됐다.(표2 참조) ‘대통령 부인’으로서가 아니라 “얼마나 비싼 옷과 액세서리를 했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휴지’가 연관검색어에 오른 것도 팬클럽 ‘건희사랑’ 운영자인 강신업 변호사가 공개한 사진을 두고 ‘12롤에 7만원대’인 비싼 휴지를 사용한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여사 친오빠가 일부 기자에게 사진과 정보 전달

비슷한 기간(4월12일~7월12일)의 네이버 검색량 데이터를 살펴봤더니, 김건희 여사 관련 검색량이 윤석열 대통령을 앞선 경우는 옷·가방·신발 등이 주목받거나(종교계 인사 만남, KBS <열린음악회> 참석, 지방선거 사전투표, 집무실 방문), 사적 인맥을 공적 행보에 동원해 ‘비선 보좌’ 논란을 자초한 경우(권양숙 여사 만남, 민간인 ㄱ씨 나토 순방 동행)가 대부분이었다.(표1 참조)

‘대통령 부인’이란 위치와 책임은 지워지고 ‘김건희’ 개인만 남은 꼴이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이 기간에) 자신의 허위 경력을 둘러싼 (경찰의) 서면조사에 응하거나 해명하지 않고 (개인이 운영하는) 팬클럽에 사진을 보내는 등의 행보는 윤석열 정부의 지지층인 60대 이상 고연령층에도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건희 여사가 허위 경력 기재 의혹과 관련해, 경찰 요청 두 달 만에 서면답변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이 7월14일 알려지기도 했다.

국민이 김건희 여사의 옷차림에 관심을 보일 수는 있다. 문제는 공사 구분이 무너진 상황이다. 김건희 여사의 친오빠가 일부 기자에게 사진과 정보를 전달했기 때문에, 패션 관련 정보가 널리 퍼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김 여사가 권양숙 여사를 만나기 위해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했을 때도 공식 직책이 없는 지인이 동행해 논란이 됐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순방 때는 대통령비서실 이원모 인사비서관의 부인이자 유명 한방병원 재단 이사장의 딸인 민간인 ㄱ씨가 동행했다. 그는 대통령 전용기를 함께 타고 귀국했다.

이처럼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의혹이 나올 때마다, 윤석열 대통령은 발끈하거나 아예 문제를 회피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대통령 후보 시절에는 김 여사의 허위 학력 의혹이 불거지자 “시간강사는 공개채용하는 게 아니다”라며 취재진에게 손가락질하며 벌컥 화냈다. 김 여사가 봉하마을에 방문하면서 지인을 동행한 점이 논란이 되자, 윤 대통령은 “저도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라 공식, 비공식을 어떻게 나눠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근 들어 추락하는 데 ‘김건희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경고음이 계속 울리는데도, 대통령실은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의 답변만 내놓고 있다. 7월7일 대통령실은 계속 민간인을 사적으로 동원해 김 여사를 지원하면서도, 이미 대선 때부터 폐지하겠다고 선언한 대통령실 제2부속실을 “(다시) 만들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부속실 내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김건희) 여사 일정이 생기면 충분히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상응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정치와 법은 다른 영역이다. 법만 지킨다고 정치가 되는 게 아닌데 (윤 대통령은) 평생 검사였던 점을 못 벗고 정치인으로의 전환이 기대보다 더 늦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최순실 수사 때 기준을 스스로한테 적용해봐야

윤석열 대통령 개인의 스타일이 여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있다. 한 부장검사는 “윤 대통령은 ‘보스형’으로 옳고 그름이 아니라 ‘내 가족이냐’로 판단한다. 내가 지켜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고 (지키지 못하면) 같이 무너진다고 생각한다”며 “처가는 그에게 운명공동체다. 김 여사 덕에 대통령이 됐다고 믿고, 김 여사를 문제 삼으면 참지 못한다”고 말했다.

다른 부장검사는 “윤석열 캠프에 들어간 한 검찰 출신 인사가 김건희 여사 관련 문제가 계속 불거지자 ‘솔직하게 사과하자’고 이야기했더니 윤 대통령이 크게 화냈고, 해당 인사는 결국 캠프를 나왔다”고 말했다. 자신과 사적으로 가까운 인사는 “덮어놓고 챙기는” 스타일이니만큼, 부인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 주변의 공통된 설명이다.

윤 대통령 개인의 의지나 생각과는 별개로, ‘대통령 부인’은 명백히 공적인 자리이니 투명하고 독립적인 감시가 뒤따라야 한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김건희 여사는 (대통령 부인으로서) 사적 영역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다. 공적 영역에서 얼굴을 드러낸다면 이름이 ‘제2부속실’이든 아니든 간에 (대통령 부인을) 대처하고 관리하는 공적인 기구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며 “관련 처리 비용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배우자를 포함해 친인척의 비위를 감시하는 ‘특별감찰관’ 임명을 서둘러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신경아 교수는 “(김 여사가) 대통령 부인으로서 일정한 조력자 역할을 하고 싶다면 막을 수는 없다. 다만 그 업무를 공식화하면 되는 것”이라며 “감시받을 수밖에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특별감찰관 제도를 부활하고 전담 부속실을 되살려 필요한 경우 명확한 지원과 감시를 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선 실세’ 논란을 일으켰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한 당사자로서 윤석열 대통령이 현재 상황을 제대로 자각할 필요도 있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김 여사 논란과 관련해) 제대로 된 해답은 대통령 본인이 알고 있을 것”이라며 “박근혜·최순실 수사 때와 똑같은 기준을 스스로한테 적용해봐야 한다. 앞으로도 (김 여사 관련 이슈 대응을) 지금처럼 하면 (지지율 반등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부인 적절한 역할 기준 10가지

1980년대 초부터 대통령 부인의 역할을 분석하고 평가해온 미국 뉴욕 시에나대학교 연구소는, 대통령 부인이 적절한 역할을 하는지 판단하기 위한 10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배경(Background), 청렴성(Integrity), 지도력(Leadership), 용기(Courage), 대중적 이미지(Public Image), 업적(Accomplishments), 국가 기여도(Value to the Country), 대통령 기여도(Value to the President), 백악관 관리인으로서 역할(내조·Being the White House Steward), 여성 지도자로서 주체성(Being Her Own Woman)이다.

미국의 기준을 한국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는 없을지라도, 대통령 부인의 공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 대통령 부인이 ‘리스크’로 전락하고 ‘패션 셀러브리티’에 머무는 상황을 방치하지 않으려면, 이 고민과 논의는 당사자인 대통령 부부와 이들을 보좌하는 대통령실에서 시작돼야 한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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