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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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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보인다, 국민의힘 ‘피해자’ 프레임의 노림수

보수정치가 걸그룹의 ‘무섭노’를 ‘일베 낙인’으로, 배재고 야구부 징계를 ‘과잉’으로 포장하는 너무 뻔한 속내
등록 2026-07-10 13:11 수정 2026-07-1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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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오른쪽)와 정점식 원내대표가 2026년 7월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향하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오른쪽)와 정점식 원내대표가 2026년 7월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향하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문재인 정권이 개헌을 추진할 때 보수 야당은 자유한국당이었고 대표는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었다. 당시 홍준표 대표는 가죽점퍼를 입고 “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주의 개헌’을 온몸으로 막아내겠다”며 사회주의 개헌 저지 특별위원회 출범을 알렸다. 보수언론이 연일 이들의 주장을 대서특필하였음에도, 유권자들은 이들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이 제출한 개헌안은 객관적으로 봐도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미래통합당이 되고 다시 국민의힘이 되는 동안 코로나19 팬데믹과 부동산값 폭등, 검찰개혁을 주제로 한 피곤한 사건들이 겹치자 ‘문재인 정권은 전체주의’라는 식의 보수진영 이슈파이팅은 실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정권교체는 그 결과였다.

 

‘전체주의’ 공략으로 정권교체한 전례

 

최근의 보수정치는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026년 7월7일 시행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입틀막법’으로 부르며 “벌써 일부 정치인이 아이돌의 사투리 한마디에 일베 낙인을 찍고 있다”며 마녀사냥이 일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말 그럴까? 이 법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거라는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 여당은 이러한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 법은 잘못된 사투리 사용을 대상으로 하지 않으며, 일정 규모 이상의 유튜브 운영자 등이 아닌 일반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사실과 맞지 않는 국민의힘 사람들 주장은 이른바 사투리 논란을 자신들이 선호하는 프레임에 끼워 맞추기 위한 시도이다.

이 ‘프레임’이란 무엇인가? 2026년 5월27일 한겨레에 실린 신진욱 중앙대 교수의 글(‘‘5·18 탱크데이’, 그 한없이 가볍고 무서운 폭력’)을 보면 도움이 된다. 이 글에는 오스트리아 언어학자 루트 보다크가 제시한 우익 포퓰리즘의 담론 전략이 서술돼 있는데, 이는 ‘도발-부인-피해자화-전치-주류화’의 패턴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계산된 모호성으로 도발적 메시지를 던지고, 비난에 처하면 의도성을 부인한다. 제재가 가해지면 ‘전체주의’ ‘파시즘’을 비난하며 자신을 억압받는 피해자로 만들고, 쟁점을 ‘표현의 자유’로 전치하여, 자신들의 도발을 사회가 관용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혐오적 표현에 제도적으로 대응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자 ‘표현의 자유’를 쟁점화하고 ‘전체주의’를 반대하는 전선 구축에 나선 것은 정확히 여기에 들어맞는다.

여기서 ‘아이돌의 사투리 한마디’는 ‘피해자’로서 동원된다. ‘동원된다’고 표현한 이유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사투리 논쟁에서 애초 문제 제기 취지는 ‘계산된 모호성’의 전형인 일베식 표현이 일반화된 나머지, 선량한 사람들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데 이르지 않았나 하는 거였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단 몇 줄의 메모로 시작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설전을 정치권으로 옮기는 경솔한 일은 있었지만, 발화자인 아이돌 가수를 정치적으로 편향된 인사로 몰아붙이거나 어떤 책임을 질 것을 조직적으로 요구하는 흐름은 없었다. 오히려 그런 결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훨씬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문제가 된 “무섭노”의 기원을 뭘로 보든 간에, 이 아이돌 가수를 아끼는 사람이 ‘진보진영’ 내에도 다수였기 때문이다. 둘째, 그런데도 보수정치와 보수언론은 단지 우려하는 걸 넘어 ‘진보진영이 일베 낙인을 찍고 있다’고 입을 모아 주장했다. 이제 많은 사람은 보수진영의 ‘낙인론’과 자신이 SNS에서 본 일부 광경을 짜맞춘 인식을 근거로 ‘진보진영’이 ‘~노’로 끝나는 경상도 사투리 전부를 일베 표현으로 규정하는 마녀사냥에 나서고 있다고 진지하게 믿게 되었다. 이게 동원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국민의힘 소속인 나경원·김민전 의원이 SNS에 ‘진보진영’을 비판하며 “남조선 돼가노, 무섭노” “아이스아메리카노 맛있노” “속이 풀리노” 등 완벽한 ‘일베어’를 구사하는 ‘전치-주류화’ 단계를 수행하는 장면에 이르면서, 앞서 신진욱 교수의 요약은 완성도 높은 사례로 뒷받침될 수 있게 됐다. 보다크가 이역만리 한국에서 의문의 1승을 거둔 것이다.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응원 구호로 논란을 빚은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소속 학생과 교장·교직원·학부모 그리고 광주제일고등학교 학생들이 6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이 안장된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응원 구호로 논란을 빚은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소속 학생과 교장·교직원·학부모 그리고 광주제일고등학교 학생들이 6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이 안장된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정통망법은 ‘입틀막법’으로 짜맞춰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의 5·18 조롱 응원에 대한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의 태도는 이를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사례이다. 배재고 학생들에 대한 징계 절차가 정당성 있게 진행됐는지, 징계 수위는 적정했는지 등은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보수 정치의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도 과거에 5·18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가졌다는 점을 고백했으면서, 왜 배재고 학생들에게는 인식을 개선할 기회를 주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나 징계 역시 그 기회를 주는 방식의 하나다. 자유의 천국처럼 묘사되는 미국의 경우도 인종차별적 혹은 소수자 혐오적 행위로 학생 선수가 출전 정지 등 제재 대상이 된 사례가 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학교 현장은 교육의 영역이기 때문에 학생에 대한 다양한 제재가 존재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젊은 세대를 비하한 인터넷 방송인(최욱)이 여전히 방송을 진행하고 있으며, 스타벅스도 영업정지를 당하지 않았는데 배재고 학생들만 불이익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터넷 방송인과 스타벅스가 고교야구 대회에 출전한 것이 아닌 이상, 이런 비교는 애초에 성립하지도 않고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폭행의 핑계로 5·18을 이용한 전 서울시장 후보(정원오), 대통령이 새천년NHK 사건에 연루된 인사(김민석)를 당대표로 미는 상황 등을 언급하며 배재고 학생들이 이에 영향을 받아 5·18 민주화운동을 가볍게 여기게 됐을 거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다룰 가치도 없다.

중요한 건 이들의 ‘아무 말 대잔치’가 ‘피해자 가로채기’(Hijacking Victimhood)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이는 정치사회학자 제시 바턴 흐로네쇼바와 대니얼 크레이스가 현대 포퓰리즘의 핵심 전략 중 하나로 제시한 개념이다. 이 사건에서 피해자는 광주일고 선수들과 광주시민, 5·18 유족 등이다. 그런데 보수 정치인들의 황당한 주장과 보수언론이 이 사건을 정통망법, 사투리 논란과 같이 엮는 시도로 배재고 학생들은 순식간에 구제받아야 할 피해자로 둔갑했다. 이게 ‘피해자 가로채기’다.

 

‘아무 말 대잔치’에 기시감이 든다

 

앞서 두 학자는 극우 지도자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와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을 연구해 이 개념을 제시했다. 한국 보수정치가 뭘 벤치마킹하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사실 이들은 2022년에도 이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자유민주주의자를 자처한, 정권으로부터 핍박받은 ‘피해자’ 윤석열은 그렇게 집권했다. 지금 이 상황을 그저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일까?

 

김민하 정치평론가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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