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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제3지대’에 누가 깃발 꽂나

지역 기반이나 대선주자 있어야 생존하는 영역… 정치개혁 성과는 늘 다당제 때 이뤘다
등록 2022-07-01 00:43 수정 2022-07-01 00:43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신진욱의 질문
2022년 치른 두 차례의 전국선거에서 유권자의 선택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란 거대 양당으로 양극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역대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제3당의 존재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제3지대라는 정치공간은 사라졌는가.(제1417호)

숫자 ‘3’은 완전함의 상징이다. 기독교의 신이 성부·성자·성령의 세 위격을 지니는 것이나, 근대 이후의 사법 판결이 3심제로 운영되는 것도 이런 3의 의미작용과 관련 있을 것이다. ‘3단논법’ ‘3두정치’ ‘3권분립’의 3 역시 마찬가지다. 동시에 3은 불확정성의 기표다. 양자관계의 상징인 ‘2’가 대면적 직접성을 특징으로 한다면, 3은 그 직접성의 경계를 넘어선 미지와 불확실의 영역이다. ‘제3의 인물’ ‘제3의 공간’에서의 3이 그런 경우다. 이제는 정치권 용어로 정착한 ‘제3지대’는 또 어떤가.

독자성·지속성 결핍한 정치적 잔여 공간

​2020년 총선과 2022년 대선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가 ‘제3지대의 소멸’이란 사실엔 별다른 이견이 없다. 국민의당의 교섭단체 진출을 두고 ‘제3지대 확장’을 입에 올린 게 2016년 총선 직후였던 점을 떠올리면, 5년 안팎의 변화치고는 그 폭이 가파르다. 한국에서 ‘제3지대’라는 용어를 대중화시킨 공의 8할은 KBS가 1998년 방영을 시작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로 돌려야 한다. <현장르포 제3지대>라는 타이틀로 2005년까지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직업과 취향, 삶의 방식이 다양한 이들의 일상을 꾸밈없이 담아내 두꺼운 마니아 시청층을 확보했다. 여기서 말하는 ‘제3지대’란 마이너리티 인생들의 다채로운 삶이 펼쳐지는 뒷골목 신세계, 사회문화적 틈새지대를 의미했다.

제3지대가 정치권 언어로 용례가 확장된 건 2006년 무렵이다. 그즈음 ‘100년 정당’을 표방했던 열린우리당이 실정과 내분으로 자멸의 길에 들어섰다. 범여권에 떠도는 정계개편 시나리오의 하나로 ‘제3지대 신당 창당론’이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한 언론은 이를 “민주당의 정체성과 역사성, 정통성을 유지한 가운데 열린우리당, 민주당, 고건 전 총리 등 범여권 세력이 제3지대에 일제히 헤쳐모여 신당을 만들자는 게 골자”라고 소개했다. 일체의 기득권도 인정하지 않는 정치적 중립지대를 뜻하는 단어가 제3지대였던 셈이다.

이처럼 정치 공간으로서 제3지대는 지속성을 지닌 채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독자적이고 안정적인 권역과는 거리가 먼, 부단한 확장과 축소를 반복하되 유력 진영 어디에도 포획되지 않는 잔여 공간에 가깝다. 강력한 두 중심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진공구역이자 이념의 무중력지대, 변경과 변경이 만나 어느 세력도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주권의 공백지대가 제3지대인 셈이다. 한국 정치에서 그것은 ‘가능성’의 형태로 항존하다가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어김없이 실체를 드러내는데, 대체로 그 시기는 거대 양당이 주도하는 정당시스템에 유권자 집단의 염증이 커지거나, 기성 정당체제에 속하지 않는 새롭고 매력적인 지도자가 대중의 환호 속에 등장하는 때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한국 정치에 제3지대가 형태를 바꿔가며 꾸준히 지속될 수 있었던 배경을 사회경제적 균열과 정치적 갈등구조 사이의 불일치에서 찾는다. 급격한 산업화와 더불어 사회경제적 갈등은 다원화되고 복잡해졌는데, 갈등을 담아낼 정당 간 경쟁 구조는 1960년대 말에 긴박된 탓에 기존 정당체제가 포괄하지 못한 ‘대의의 공백지대’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중도우파의 공간 재편하려던 정의당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제3지대는 대체로 중도우파의 공간이었다. 그 공간을 주도하는 세력은 이념적 스펙트럼상에선 민주당 계열과 국민의힘 계열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국민적 호소력이 큰 유력 대선주자를 보유한 신생 정치세력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92년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정주영의 통일국민당, 2016년 총선을 통해 등장한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여기에 속한다. 두 당의 성공에는 기존 거대 양당에 일체감을 갖지 않는 정치적 무당층의 확대, 사회경제적 불안정성 심화, 유능함과 개혁성을 갖춘 제3후보에 대한 집단적 갈망이 공통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번 제20대 대선 레이스에서 흥미로웠던 건 과거와는 다른 양상의 ‘제3지대 담론’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중도우파가 주도하는 제3지대론에 거리를 둬온 중도좌파 후보가 선도적으로 제3지대 연대를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2021년 11월22일 기자회견을 열어 “오늘부터 제3지대의 공조를 시작한다. 누구라도 시대교체, 정치교체의 뜻을 같이한다면 만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대선은 두 가지 메뉴 중에서만 선택을 강요당해온 국민들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대선이 돼야 한다. 다양한 시민들의 요구가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오는 다당제 책임 연정이 실현되면 시민들의 열망을 중심으로 정치 재편이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도우파인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김동연 새로운물결 후보를 겨냥한 정치적 구애였다.

심상정의 제안엔 막다른 골목에 몰린 ‘대선 3수생’의 절박한 위기의식이 담겨 있었다.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선’이란 말이 회자될 만큼 거대 양당 후보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했지만, 정의당을 위시한 군소정당 후보들은 과거 같은 반사이익조차 누리지 못했다. 유권자 다수는 거대 양당뿐 아니라 제3지대를 배회하는 세력들의 실력과 진정성에도 별다른 신뢰를 갖지 않았다. 결국 ‘이러다간 정치적 존재감 자체가 사라져버릴지 모른다’는 극심한 불안이 민주당의 우경화를 비판해온 진보정당 후보에게 민주당보다 오른쪽에 있는 우파와의 제휴까지 모색하게 했다.

불행히도 반향은 없었다. 김동연이 가장 먼저 이재명과 손잡았다. 얼마 안 가 안철수도 윤석열 품으로 투항했다. 제3지대에 끝까지 남아 레이스를 완주한 심상정은 80만3358표를 얻는 데 그쳤다. 5자구도로 치른 5년 전 대선 득표(201만7458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성적이었다. ‘양당 체제 종식’이란 슬로건을 앞세우고 ‘제3지대의 진보적 재편’을 꿈꿨던 심상정과 정의당에 최종 득표율 2.37%는 민망한 수준을 넘어 파산과 몰락에 가까운 숫자였다.

제3지대 공간 열리는 시나리오는 ‘민주당 분열’

물론 안철수·김동연의 투항과 심상정의 실패가 제3지대라는 정치공간의 소멸을 뜻하는 건 아니다. 한국 현대 정치사를 보면, 현실 정치의 영역인 제3지대가 붕괴하더라도 정치적 가능성의 공간인 제3지대는 지속적으로 살아남았다. 경쟁적 정당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양당제가 포획 불가능한 잔여지대는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3지대의 봉인이 풀리더라도 그 공간을 일굴 동력과 모멘텀이 만들어지는 정치적 프로세스는 민주화 이후 30년의 경로의존성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제3지대가 유의미한 정치공간으로 기능했던 시기는 대체로 그것이 거대 양당의 한쪽이 연루된 정계개편과 연동됐을 때다.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 안철수의 국민의당도 그랬다. 자민련은 1990년 3당 합당으로 보수집권연합에 참여했으나 영남 세력과의 헤게모니 경쟁에서 패한 뒤 이탈해 독자생존에 성공했다. 충청이란 지역 기반을 보유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국민의당은 리버럴의 하위 파트너가 되기를 거부하고 민주당을 이탈한 호남세력이 안철수라는 중도 성향 대선주자의 1인 정당과 통합해 정치적 지분 확보에 성공한 케이스다.

현실정치 영역에 제3지대의 공간이 다시 열린다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170석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분열하는 것이다. 그 균열이 친이재명과 반이재명 사이에 형성될지,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 만들어질지는 현재로선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8월 전당대회를 치르는 과정에서 반목과 불신이 심화하고, 누적된 불만과 적대감이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 룰 다툼으로 폭발한다면 당이 깨지는 건 순식간이다.

제3지대에 깃발을 꽂은 세력이 안정적 생존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느냐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지역 근거지와 대선주자급 간판스타 확보 여부에 달렸다. 민주당 이탈 세력이라면 어떻게든 호남의 지지와 이재명에 필적하는 대선주자급 정치인을 끌어안으려 할 것이다. 둘 모두를 확보한다면 차기 대선 국면까지 어떻게든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살아남을 테지만, 둘 중 하나라도 갖추지 못하면 당장 2년 뒤 총선에서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한국 정당정치가 역동성을 지닌 채 가시적 개혁 성과를 확보한 시기는 1988년 총선을 통해 등장한 제13대 국회 전반기와 2016년에서 2020년에 이르는 제20대 국회 4년간이다. 두 시기 모두 다당제 여소야대 국회였다. 사실 다당 구도는 양당 구도에서 볼 수 없었던 여러 차이를 만들어낸다. 제20대 국회만 하더라도 교섭단체 하나가 늘어났을 뿐이지만, 협상 테이블에서의 상호작용 양상은 참가자가 둘일 때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양자 구도에선 대면하는 상대의 반응만 예측하면 됐지만, 참가자가 셋이 되면서부터는 마주 보는 상대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3자의 판단과 태도까지 계산하며 한층 복잡한 전략적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탄핵 과정에서 민주당과 국민의당, 새누리당 비박계가 탄핵안 표결 시기를 두고 벌인 ‘밀당 게임’이 대표적이다. 불과 4년 만에 강력한 양당구도로 회귀하긴 했어도, 제20대 국회는 양당 체제였다면 쉽지 않았을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성사시켰고, 민주당과 군소야당의 정치협상 테이블인 ‘4+1협의체’를 통해 불가능할 것 같았던 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간과해선 안 될 사실은, ‘정치적 합의’라는 건 밥그릇 지키기에 필사적인 참가자들끼리 밥상을 엎지 않기 위해 이견을 좁히고 자기 몫을 줄여나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타협의 결과물이란 점이다. 불완전할지언정 제20대 국회에서 다당제와 합의제 민주주의의 문법을 ‘선행 학습’한 것은 이런 점에서 한국 정치의 의미 있는 성과다.

거대 정당 이탈파의 ‘앵벌이 영업장’ 안 되려면

제3지대의 빗장이 열리는 건 시간문제다. 중요한 건 그 공간을 유력 정당 이탈파들의 ‘앵벌이 나와바리’가 아닌, 독자의 이념과 정책대안을 갖고 거대 정당들과 대등한 경쟁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제3세력의 항구적 활동무대로 재편할 수 있느냐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바람을 실행에 옮길 주체도 세력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더 많은 시행착오와 환멸의 시간을 통과해야 할까.

이세영 <한겨레> 기자

이세영의 질문
최근 더불어민주당뿐 아니라 정의당까지 연이은 선거 패배와 지지율 추락을 겪었다. 진보적 시민사회 역시 깊은 침체에 빠졌다는 평가가 있다. 지금 ‘진보의 위기’는 얼마나 깊으며 그 핵심은 무엇인가? ‘진보의 재구성’은 어디로 가야 하나? (제1421호로 이어집니다.)

*신진욱X이세영의 정치크로스: 정치사회학자인 신진욱과 정치부 기자 출신인 이세영이 한국 정치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하는 형식의 정치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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