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영의 질문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모든 연령대에 대중화하면서 한편으론 시민의 정치 지식과 참여 기회가 많아졌지만, 다른 한편으론 가짜뉴스나 증오표현, 끼리끼리 확증편향 등 해악도 점점 더 심각해진다. 디지털·정보화 시대에 정치의 문법과 역학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그 장점을 살리면서 위험을 완화할 대안은 무엇인가?(제1440호)
21세기는 디지털·인터넷 시대, 정보사회, 네트워크 사회 등의 단어로 묘사된다. 인터넷, 스마트폰, 유튜브, 카카오톡·텔레그램 같은 메신저 앱,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 등 사회연결망서비스(SNS)는 우리 삶의 본질적 일부가 돼 있다. 정보사회의 이런 변화는 우리 사회의 구조를, 사람들의 삶과 사회적 관계를, 정치의 문법과 환경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인터넷·디지털·플랫폼 등 새로운 기술 조건의 이해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단지 기존 생활방식과 사회구조 안에서 사용되는 도구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스페인의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스는 인간과 인터넷의 관계가 텔레비전을 ‘보거나’ 라디오를 ‘듣는’ 것과 질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인터넷과 ‘함께 산다’. 그것은 일과 일상, 사회의 재조직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인류는 디지털·인터넷 기술에 기초해 작동하는 ‘네트워크 사회’라는 새로운 사회구조와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사회관계로 빠르게 진입했다. 19세기 후반 정립된 산업사회의 상징이 공장과 거대조직이라면, 21세기 네트워크 사회는 수많은 개인이 다른 수많은 개인과 동시에 소통하는 관계망으로 구성된다. 카스텔스는 그런 우리 시대의 특성을 ‘인터넷 갤럭시’에 비유했다.
은하계는 멀리서 보면 제각각 빛을 발하는 수많은 별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장관을 만들어낸다. 개인들의 노드가 서로 넓고 유연하며 느슨하지만 자유롭게 연결된 네트워크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중 많은 별은 생명 없는 불모지며, 지구라는 이름의 푸른 별도 민주주의와 자유만이 아니라 전쟁과 폭력, 빈곤의 고통이 가득한 곳이다.
한때 사람들은 21세기 정보시대에 자유로운 개인의 세계가 도래할 거라고 낙관했다. 집단지성의 합리성, 다중의 전복적 잠재성, 온라인 공론장의 자정능력, 지도자 없는 사회운동, 점진적인 사회진화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만연했다. 그런 기대는 근거가 없지 않았고, 실제로 그 같은 새로운 긍정적 에너지가 오늘날 정보사회를 움직이는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룬다.
하지만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이 보통 사람의 자율성을 높이고 사회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을 넓혀줬을 때, 문제는 그처럼 정보사회에서 신장된 능력을 갖게 된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다. 또한 네트워크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권력을 장악해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술을 누가 더 일찍, 더 많이, 더 적극적으로 터득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1995년 최초로 인터넷이 대중에 보급됐을 때, 그것이 정치와 사회를 얼마나,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킬지에 많은 논쟁이 시작됐다. 낙관론, 비관론, 냉소론 등 다양한 관점이 있었는데 2010년 ‘아랍의 봄’, 2011년 스페인의 ‘분노한 자들의 운동’, 같은 해 미국의 ‘월가 점령 운동’ 등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온라인 행동주의에 대한 진보적 낙관주의가 퍼졌다.
하지만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 많은 나라에서 온라인상의 정치 양극화, 혐오와 극단주의, 가짜뉴스 등의 문제가 급속히 악화하고 실제 선거정치에서도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고 유럽 각국에서 과격우익 정당들이 내각에 참여하면서 정보사회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논의의 흐름이 바뀌었다. 정보사회의 긍정적 잠재성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위험성을 주목하게 된 것이다.
국제반테러센터(ICCT)의 2019년 보고서는 ‘리더 없는 운동’ ‘탈중심적 네트워크’ 등 선구적 조직형태와 활동방식을 가장 먼저 개척한 것은 극우운동이었다고 알려준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 딘 프릴론 교수 등이 2020년 <사이언스>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좌파와 우파 운동 모두 온라인 행동주의를 발전시키지만, 좌파는 주로 해시태그 캠페인으로 의견을 알리는 데 비해 우파는 기존 매체를 왜곡하고, 그들만의 플랫폼을 구축하며, 극우 매체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한국에서도 2008년 촛불집회 이후 온라인 시민정치와 집단지성에 대한 찬미가 넘치던 때가 있었다.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소통이 위계적이고 폐쇄적인 소통을 대신하고, 탈중심적이고 유연한 네트워크가 중앙집중적이고 관료적인 조직을, 개인의 자발성과 다양성의 중시가 과거 집단주의와 획일성을 대신하는 긍정적 사회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당시부터 이미 정보사회의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필자는 다음 아고라와 300만 명의 회원을 가진 인터넷카페에서 촛불집회가 진행된 수개월 동안 게시된 시사 관련 모든 포스팅의 조회 수, 추천 수, 댓글 수와 상징연결망을 분석한 몇 개의 연구를 수행했다. 그 결과 드러난 것은 수많은 사용자 중 극소수가 대부분의 주목과 영향을 독점했고, ‘프락치’ 또는 ‘알바’의 여론조작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공론장의 신뢰와 개방성이 훼손됐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2010년대에 인터넷 공간에서 정치권력의 도구가 된 국가기구는 깊고 포괄적으로 개입해왔다. 2022년 12월13일 대법원은 배득식 전 국군기무사령부 사령관에 대해 징역 3년 판결을 확정했다. 배 전 사령관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기무사 공작조직에 지시해 인터넷에 정치 관련 댓글 2만여 건을 게시하도록 했고,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극렬 아이디’를 수백 개 지정해 가입 정보를 불법적으로 조회하도록 했다.
군뿐만 아니라 정보기관도 인터넷 공작으로 여론을 조작하고 증오 담론을 대량 유포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역시 이명박 정부 때 국정원 심리전단에 인터넷 게시글 찬성·반대 클릭, 다음 포털 아고라와 비판적 인터넷카페들에 게시글 작성 지시, 그리고 ‘민간인 댓글 부대’ 지원에 수십억원의 국고 사용 등에 대해 2021년 11월 징역 9년형이 확정됐다. 이렇게 국가와 정치권력은 온라인상에서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움직이기 위해 조직적으로 활동해왔다.
바로 이 시기부터 ‘일베’ 같은 극우 인터넷 커뮤니티가 번창하고 증오 담론이 확산한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러한 담론과 활동을 허용하거나 지원하는 정치 환경 아래 한국의 온라인 공간이 중대한 성격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이후 온라인상의 폭력성과 적대성은 독자적인 생태계와 담론의 질서, 역동성을 형성했다. 한편으로 종북, 공산주의자, 페미니스트, 장애인, 이주자, 난민, 빈민, 그리고 사회적 재난의 희생자들에 대한 혐오 담론이 퍼지고 그것이 집합 정체성으로 구성됐다. 그와 더불어 이들과 대립하는 집단과의 적대적 상호작용이 가열되는 과정이 진행됐다.
이처럼 21세기 정보사회의 새로운 사회적 공간의 지형도가 특정한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은 우연도 필연도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인 인간 행위와 정치의 결과다. 바로 이 사실에 우리의 자유와 책임이 동시에 있다. 우리는 온라인 정치의 현실을 바꿀 수 있지만 변화의 방향은 정해져 있지 않다. 올바른 방향의 변화를 위해 무엇이 중요할까.
개인이 지구적 범위에서 연결된 이 새로운 시대를 ‘행성사회’ 또는 ‘복합사회’라고 명명한 이탈리아 사회학자 알베르토 멜루치는, 오늘날 사람들의 정체성 형성과 사회갈등의 양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관찰했다. 그 변화의 핵심은, 상이한 시간과 장소에 닻을 내린 사람들이 이제 정보통신기술로 연결된 사회적 공간에서 상호 작용하며 연대하고 적대한다는 데 있다.
각기 다른 시대환경에 태어나 살아온 사람들, 다른 계급계층에 속하는 사람들, 다른 물리적 장소에서 일하고 거주하는 사람들이 지금 온라인 공간과 미디어에서 서로 노출되고, 접촉하고, 같은 영상물과 텍스트를 본다. 그런 가운데 이들의 경험, 의식, 언어가 섞이고 조합되며 유동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주목한 ‘조각 깁기 정체성’의 배경에는 이런 역사적 구조가 있다.
이런 시대에는 계급, 민족, 종교, 성별, 인종, 세대 등 그 어떠한 주어진 사회경제적·인구학적 속성도 개인의 의식과 정체성을 결정하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은 개방된 커뮤니케이션 장에서 하나의 상징·메시지·코드가 된다. 근대적 분배정치, 전근대적 종교정치와 구분되는 탈근대적 정체성 정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의 ‘의미’를 구성하기 위한 치열한 행동과 투쟁이 정보사회의 동시대적 공간 안에서 매 순간 벌어지는 것이다. 그 공간에서 다수의 마음을 연결시키는 데 성공하는 집단이 커뮤니케이션 권력을 얻는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신진욱의 질문 꼭 20년 전이다. 미군 궤도차량에 치여 숨진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이 2002년 12월 서울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뒤 촛불은 2000년대 한국의 거리정치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떠올랐다. 촛불은 앞으로도 주기적 출몰을 반복할까? 나아가 한국 민주주의의 궤도 이탈을 막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이어갈 수 있을까? (제1445호로 이어집니다)
*신진욱X이세영의 정치크로스: 정치사회학자인 신진욱과 정치부 기자 출신인 이세영이 한국 정치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하는 형식의 정치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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