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영의 질문 한국의 보수정치가 최근 배출한 전직 대통령 두 명은 법원에서 중형을 선고받았고 그중 한 명은 탄핵됐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는 아예 자신의 후보를 배출하지도 못하고 문재인 정부의 검찰 수장에게 의탁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 보수의 가치, 철학, 비전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건강하고 유능한 보수 세력은 정치권에서 그들의 대표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정치는 왜 이렇게 됐고, 어디로 가는 걸까?(제1423호)
윤석열 정부의 국정수행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가 임기 초반부터 급격히 악화되면서 심각한 정치적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연령·지역·이념을 불문하고 민심의 이반이 상당하며, 대선 때 윤석열 후보를 찍은 유권자와 보수 언론·지식인들까지 깊은 우려와 탄식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탄핵과 수감으로 10년의 보수 정부 시대가 끝난 뒤, 문재인 정부 역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실망이 누적되어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그러나 새로 들어선 보수 정부는 통치를 위한 준비 자체가 돼 있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홍보와 인사 등 기술적인 데서 원인을 찾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상황이 궁극적으로 대통령의 문제라는 데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 하지만 이는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본질적인 문제는 결국 보수정치의 권력 중심에 좋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사회에 던져진 질문은 그저 왜 윤석열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왜 보수정치의 혁신을 이끌 새로운 리더십의 형성이 이토록 오랫동안 지체되고 있는가다. 보수 정부의 성공을 도울 인재가 우리 사회에 많음에도 말이다.
근본 원인은 민주화 이후 보수정치가 독재 시대의 유산과 단절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행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독재를 겪은 많은 나라에서 보수정치는 그런 역사적 과제에 직면했다. 보수가 이 문턱을 넘은 나라에서 정치발전이 가능했다. 일례로 독일의 기독민주연합은 나치 패망 이후 보수적 가치를 바탕으로 노동·복지·젠더·환경 등 개혁의제를 포용한 국민정당이 되어갔다.
한국에서 보수정치는 민주화 이후 극복해야 할 세 가지 역사적 유산이 있었다. 첫째는 협치와 대화보다 국가권력을 동원하는 권위주의 통치 방식, 둘째는 기득권층의 특권·특혜와 노동착취, 셋째는 반공·반북·반좌파 등 방어적 정체성이 아닌 보편적·긍정적 이념의 부재가 그것이다.
박정희 군사정변의 주체 세력은 대외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경제’를 표방했지만 현실에서는 국가와 재벌의 동맹에 의한 산업발전이 최우선이었다. 정치적 자유도, 민주주의도, 공정 경쟁도 없었다. 노동인권은 전무했고, 복지 예산이 국내총생산의 1%밖에 안 되는 각자도생의 나라였다.
국가 공식 이념이던 ‘자유민주주의’는 분단·독재체제의 상황에서 반공·반북의 사상 통제를 위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 그것은 시민적 자유, 정치 경쟁, 참여권, 법치와 같은 사회적 이상의 내용은 없이, 오로지 통치체제 유지를 위해 동원되는 공허한 기호일 뿐이었다.
보수정치가 이같은 역사적 유산을 극복한다는 것은 보편적 인권, 시민참여, 사회적 대화, 복지국가, 공동체적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가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보수를 표방하는 정치사회 세력은 좀처럼 독재 과거와 단절하고 다시 태어나지 못했다.
① 사라진 다원주의적 보수파정치환경의 민주화와 사회문화적 다원화 속에서 보수 세력은 진보 세력과 치열한 경합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이에 보수파는 전통적인 반공권위주의를 적극적으로 정당화하거나, 새 시대에 부응하는 혁신을 이뤄야만 했다. 그 한쪽 극단에는 진보파를 척결해야 한다고 믿는 극단주의자가, 반대쪽 극단에는 그러한 폭력성과 단절하려는 다원주의적 보수파가 있었다.
이러한 역동성을 우리가 잘 이해하려면 ‘보수’나 ‘진보’가 하나의 통일된 집단이나 이념체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보수, 진보, 보수주의, 자유주의, 진보주의 같은 단어는 모두 단수형 명사지만 현실에서는 다양한 이념적 요소와 세력을 포함한다. 그중 지배적 측면도 변화한다.
민주화 이후에 한국의 보수정치가 과거의 유산을 어쩌면 극복할 수도 있었던 세 번의 기회가 있었다. 민주화 직후, 참여정부 후반, 그리고 탄핵 이후였다. 그러나 앞의 두 번은 보수정치 내의 수구파와 개혁파 사이에 벌어진 각축 끝에 수구파가 승리했고, 세 번째 기회에서는 아예 아무런 각축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윤석열 정부의 탄생이다.
민주화 직후 노태우·김영삼 정부는 권위주의 지배체제의 연장선상에 있었지만 어느 정도 새로운 시대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 정책,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화 정책 등이 그러하다. 보수언론도 이 시기에는 개혁적 시민단체들과 캠페인을 하며 인권, 여성, 환경, 복지 등 여러 면에서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강경보수 사회세력이 활발히 조직됐다. 독재 때는 직능단체나 관변단체가 전부였지만 이제는 능동적 반좌파 투쟁단체가 중심이었다. 1987년 자유총연맹, 198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1995년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대령연합회 등이 창립됐고, 연합조직으로 1994년 자유민주민족회의, 2000년 자유시민연대 등이 발족됐다.
이들은 ‘체제수호’라는 독재 시대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계승했다. 독재 때는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쟁의를 ‘내부의 적’으로 몰아 고문·감금했다면, 이제는 정치권력과 국가기구가 ‘진보좌파에 점령’됐다는 방어적 극우 이데올로기가 부상했다. 김영삼 정부는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보수를 새 시대에 맞는 방향으로 혁신하지 못하고, 점차 억압적인 정권으로 퇴행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기는 보수정치 혁신의 두 번째 기회였다. 노 대통령 당선 뒤 한나라당은 구 민주당 세력과 손잡고 대통령 탄핵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참패해 ‘천막 정당’ 신세가 됐다. 이한우씨는 2005년 ‘한국의 자유주의와 <조선일보>’라는 글에서 “밖으로는 정권 상실, 안으로는 이론적 공허함이라는 이중적인 위험”으로 이 상황을 정의했다.
이 시점에 보수의 이념을 재정립하려는 여러 시도가 이뤄졌다. 일례로 윤평중의 ‘비판적 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의 한계에 대한 자기비판, 자유주의 이상에 입각한 사회비판을 통해 냉전반공주의, 시장만능주의, 반자유주의적 진보주의를 극복할 것을 주장했다. 박세일의 공동체자유주의는 ‘좋은 자유와 좋은 공동체의 선순환 관계’를 실현해야 함을 주창했고, 한나라당은 이를 당 노선으로 채택해 따뜻한 보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려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노무현 정부에 대한 많은 보수 세력의 반응은 극단주의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국민행동친북좌익척결본부’ ‘반핵·반김 국민협의회’ ‘자유민주비상국민회의’ 등 반공우익 단체들이 설립됐다. 또한 ‘뉴라이트 네트워크’ ‘뉴라이트 전국연합’ 같은 뉴라이트 연합체가 설립됐는데, 이 중 일부는 더 포용적인 보수로의 변화를 추구했지만 대부분은 강한 이념 성향을 띠고 있었다. 노인층 유권자의 강경 보수화가 시작된 것도 바로 이 시기다.
이처럼 사회 영역에서 보수 단체와 유권자가 과격화됨에 따라 한편으론 보수정치권이 그런 강경 지지층에 구속받는 구조가 생겼고, 다른 한편으론 중도와 온건보수 성향의 다수 시민들과 괴리가 깊어지는 구조가 생겼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끊임없이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혔던 점, 그리고 정권 내부의 부패와 실정을 스스로 교정할 수 없었던 점이 이 구조로 설명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은 이러한 실패를 성찰하고 진정한 민주화 시대의 보수정치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아니 그래야만 했던 세 번째의 기회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리고 의아하게도, 우리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보수정치권 내에서 그러한 성찰과 변화의 시도를 보지 못했다. 변화의 시도가 없었기 때문에 변화에 저항하는 힘과 충돌하는 장면도 본 적이 없다.
③ 성찰과 변화의 시도도 없었다이는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정부로 오면서 보수정치가 계속 퇴행해왔음을 말해준다. 이념의 언어는 공허해지고, 정책의 고민은 사라졌으며, 오직 ‘밈’(Meme)만 남았다. 여가부, 페미, 멸공, 좌파, 종북 같은 한 단어 ‘밈’들은 혐오, 불안, 증오, 열등감 같은 어지러운 감정들의 도가니였다. 정치로, 정책으로 구체화될 내용은 텅 비어 있었다.
이것은 보수정치만의 문제인가? 양대 정당이 상대방의 허물로 자신의 허물을 덮는 방식으로 적대적 공존을 이어가는 폐쇄적 엘리트 순환의 체제에서, 한쪽의 모습은 다른 쪽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래서 이 글의 모든 이야기는 더불어민주당의 과거에도 변형된 형태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윤석열 정부 5년의 미래에 대한 경고문이기도 할 것이다.
신진욱의 질문 김순호 행정안전부 경찰국 초대국장이 과거 노동운동 동료들의 정보를 경찰에 넘기고 경찰에 특채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김 국장은 자신이 주체사상에 경도된 조직에 회의를 느껴 ‘전향’한 것이라고 했지만, 과거의 동료들은 그가 전향의 차원을 넘어 적극적인 ‘밀정’ 노릇을 했다며 그의 사퇴를 요구한다. 기실 ‘전향’은 정치권에서도 민감한 주제다. 정치인이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바꾸는 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제1429호로 이어집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신진욱X이세영의 정치크로스: 정치사회학자인 신진욱과 정치부 기자 출신인 이세영이 한국 정치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하는 형식의 정치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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