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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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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의 시간’을 위해 필요한 4가지

‘1% 대 99%’라는 단순 구도가 아닌 교차균열과 복합갈등의 난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진보’에 남겨진 숙제
등록 2022-07-14 06:33 수정 2022-12-09 07:56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이세영의 질문
최근 더불어민주당뿐 아니라 정의당까지 연이은 선거 패배와 지지율 추락을 겪었다. 진보적 시민사회 역시 깊은 침체에 빠졌다는 평가가 있다. 지금 ‘진보의 위기’는 얼마나 깊으며 그 핵심은 무엇인가? ‘진보의 재구성’은 어디로 가야 하나?(제1419호)

최근 몇 년 사이에 양대 정당 중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젊은 유권자층이 크게 늘었고,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인 40대 역시 2022년 6·1 지방선거에서 투표율 40%를 기록할 만큼 유보적으로 됐다. 이 상황은 ‘진보정치’를 대표하며 ‘청년의, 청년을 위한 정당’을 선포했던 정의당을 위한 시간이다. 그런데 정의당은 어느 때보다 심각한 존재감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정의당의 내부 역학과 전략 문제, 진보정치의 미래에 관한 토론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정의당의 위기가 곧 진보의 위기일까? 이 시대에 ‘진보’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진보’라는 단어를 특정 집단이 독점하는 것에 많은 사람이 동의할까? 진보정치의 사회적 환경은 어떻게 바뀌었으며, 그 변화는 진보의 이념과 노선에 어떤 변화를 요구할까? 이런 문제를 더 종합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함께 고민해봤으면 한다.

이 시대에 진보정당은 무엇일까

‘진보’와 ‘진보주의’는 완결된 체계를 갖춘 사상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역사적·정치적 담론 구성물이다. 그것은 여러 변혁의 사상과 주체를 포괄하고 접합하는 헤게모니 전략의 상징어로서 성격을 띤다. 따라서 그것의 의미와 실천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와 함께 움직이며 재구성돼야 한다. 만약 그런 혁신에 성공한다면 진보주의자는 계속 다수를 결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화하는 현실과의 간극이 점점 커진다면 그 세력은 외면받고 왜소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정치적 개념으로서 ‘진보’의 역사를 추적한다면 1950년대에 상당한 국민적 신망을 얻었던 조봉암과 진보당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사회진보의 사상과 주체는 다양한 이름을 가졌다. 진보파는 1950년대에 ‘혁신’ 세력으로도 불렸고, 1970~1980년대엔 ‘민중’이 핵심어가 됐으며, 1990년대엔 ‘시민’이 새로운 개혁운동의 주체 개념으로 등장했다.

민주화 이후 진보정치와 진보운동은 이러한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성공은 물론 당시의 리더십과 정치전략 등 내부 요인과도 관련 있지만, 절대적으로 좋은 리더십과 전략이 있다기보다는 그 시기의 특수한 정치사회적 환경을 명확히 이해하고 그에 합당한 헤게모니 기획을 구성할 수 있느냐가 진짜 관건이다.

그 시기에 한국 사회는 김대중·노무현 정부하에서 정치민주화와 문화적 자유화를 겪었지만, 1987년 민주화의 미완의 과제이자 1997년 금융위기로 더욱 긴급해진 노동·복지·불평등 의제를 대변해줄 세력을 필요로 했다. 시민사회에선 개혁운동의 연대 네트워크가 강한 영향력을 가졌고, 재벌과 보수 진영은 이런 의제에 적대적 태도를 보였다. 민주노동당은 이런 배열과 역학의 맥락 안에서 고유하고도 긴급한 존재 이유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2000년대 내내 한국 자본주의와 정치, 시민사회 그리고 문화적 코드에 큰 변화가 진행됐는데, 진보정치와 진보운동은 아직 그 변화의 핵심을 명확히 인식하고 혁신의 길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함께 생각해볼 만한 구조적 변화의 네 측면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모든 주제에 ‘PC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첫째는 한국 자본주의의 변화와 함께 진행된 계급구조의 변화다. 전략적 관점에서 봤을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민중’의 내적 분화와 새로운 계급의 출현에 따라, 진보정치의 핵심 기반과 동맹전략을 어떻게 설정할지가 불분명해졌다는 것이다. 계급구조 변화는 오늘날 서구 사회에서도 진보정치에 큰 도전이 되지만, 거기에 한국적 특수성이 중첩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선 삼중의 역사적 층위가 동시대 계급구조 안에 공존하고 있다. 후발 산업화 국가로서 아직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 있는 자영업자 집단과 비공식 부문, 다음으로 꾸준히 확장돼온 생산·사무·서비스직 노동계급, 그리고 최근 더욱 증가하는 플랫폼경제 종사자, 프리랜서, 장기 구직자 등 새로운 불안정 계급이다.

이처럼 내적으로 이질적인 계급구조 안에서 진보정치의 전략적 초점을 명확히 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모든 일하는 사람의 보편적 기본권을 옹호하는 헤게모니 정치를 한다는 과제는 현실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때는 비정규직을 옹호하며 정규직을 기득권층으로 몰고, 다른 때는 모든 노동자의 지지를 기대하는 식의 편의주의로 계속 갈 수는 없다. 비지배계급 내의 상이한 존재조건과 이해관계를 접합해야 할 과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

둘째, 교차성이라는 전략적 난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라는 질문이 점점 커지고 있다. 계급구조의 복잡성 증대는 ‘1% 대 99%’라는 식의 단순 구도가 아니라 이제 보통 사람들 내의 균열과 갈등이 이슈가 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거기서 더 나아가, 계급적 균열의 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젠더·지역·세대·성정체성 등 여러 축이 가로지르는 교차균열과 복합갈등이 부상했다.

모든 각각의 이슈에서 여론이 두 동강 나서 싸운다 해도, 그렇게 두 동강 나는 이슈가 한둘이 아니다. 여러 균열의 선이 서로를 가로지르며 엉클어져 이 사회를 갈등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고소득과 저소득, 정규직과 비정규직, 자가보유와 임대생활, 서울과 비서울 거주자, 페미니스트와 반페미니스트, 성소수자, 기후위기 등 많은 이슈에서 적대가 생겨난다.

진보정치의 도덕적 이상은 이 모든 이슈에서 개혁적 입장을 취하는 것일 터이다. 하지만 그처럼 모든 진보성의 교집합 영역에만 색칠하는 접근법은 자칫 진보정치의 구성원을 극도로 협소하게 할 수 있다. 노동권을 옹호하고, 페미니스트고, 생태주의자·채식주의자·평화주의자이고, 동물권에 관한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까지 갖춘 사람이 몇 퍼센트나 되겠는가? 다중적 적대의 시대에 연대의 정치가 어떻게 가능할지 고민되는 지점이다.

새로운 진보의 저수지 넓어져

셋째, 이제 ‘진보 진영’이 진보적 가치를 독점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진보운동과 정치세력이 오랫동안 주창해온 진보적 가치가 사회 곳곳에 확산됨에 따라, 우리 사회의 제도 중심부가 점차 그런 사회적 가치를 수용해 거기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진보적 가치의 확산과 체제 내적 변형이 진보 진영의 입지를 축소했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 식으로 말한다면 정치경제 권력이 상징자본까지 갖는 과정이 진행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사회 주변부에 위치한 진보세력은 ‘진정한 진보’를 외쳐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자신들만이 진보적 상징과 실천을 차지할 권리가 있는 듯이 억지를 부리는 독선적 집단처럼 비칠 위험이 커졌다. 사회의 권력집단이 도덕적 헤게모니를 확장하는 과정인 것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기업들의 사회적 가치 추구는 실체적인 제도나 기관의 설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서울시를 필두로 전국 각지에서 확대된 협치 기구와 공익활동 지원 프로그램이 그 예다. 또한 삼성, 엘지(LG), 에스케이(SK), 네이버, 다음, 카카오 등 대기업들이 공익적 캠페인을 벌이고 재단을 만들며 젊은 활동가들을 지원한다. 진보는 이제 이런 힘들과 협력하면서 경쟁해야 한다.

넷째, 시민사회와 정당정치의 영역에서도 진보의 지형도가 변했다. 시민사회에서 ‘운동권’의 헤게모니가 종식된 지는 오래다. 이것이 곧 시민활동 자체의 위축을 뜻하진 않는다. 지금 과제는 막연하게 죽은 시민사회를 살리는 일이 아니라,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참여하는 시민들과 소통하는 새로운 문화적 코드를 자리잡게 하는 일이다.

이제 운동에 헌신하는 사람은 소수다. 민족해방(NL)-민중민주(PD)라는 거대 담론과 노선투쟁에 동참할 사람도 없다. 그 대신에 사회적 가치 추구, 개개인의 학업과 직업생활, 정부·지자체의 협치 참여, 기업적인 영리 추구 등의 활동을 병행하거나 오가는 유연한 조합이 대세다. 새로운 활동가 문화는 존중과 관용, 평등한 소통을 중시한다. 낡은 진보의 입지는 좁아지고 새로운 진보의 저수지가 넓어졌다.

‘어느 정도’ 진보인 민주당의 양면성

정치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진보의 의제와 담론, 전문가 집단을 흡수해온 과정이 있다. 민주당에 진보라는 명칭이 붙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가치와 이념 성향이 진보적인 시민 다수가 오늘날 민주당을 찍는 것이 현실이다. 전통적인 ‘비판적 지지론’의 성격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실제 민주당이 다소 진보화된 과정이 있었고, 이제 민주당이 ‘어느 정도’ 진보적 정당이라고 생각하는 시민들이 있다.

이러한 모든 변화의 함의는 양면적이다. 한편으로 진보정치의 의제와 주체가 다변화되고 진보적 가치가 정부, 기업, 시민들과 주류 정당에까지 확산된 과정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이제까지 ‘진보 진영’으로 불렸던 단체와 세력이 새로운 현실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고 스스로 혁신해야 할 시대의 압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신진욱의 질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초청받아 다녀온 윤석열 대통령의 이미지컷들이 어색함과 작위성 때문에 빈축을 사고 있다. 윤 대통령 주변에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이미지 연출을 총괄했던 탁현민 전 의전비서관의 역할을 할 사람이 없다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현대 정치에서 지도자의 이미지 연출은 통치를 위해 불가피한 일인가(제1423호로 이어집니다)

*신진욱X이세영의 정치크로스: 정치사회학자인 신진욱과 정치부 기자 출신인 이세영이 한국 정치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하는 형식의 정치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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